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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교리(그리스도의 교리)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모든 '교리들'이 구원의 교리인 것은 아니고 '성육신의 교리', '삼위일체의 교리', '교회와 이스라엘과 이방인에 대한 교리', '부활에 대한 교리', '대환란에 대한 교리' 이처럼 성경은 전체적으로 교리들을 놓고 살펴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들이 성경에서 '기초'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 기초 위에 다른 교리들을 쌓아올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살펴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의 기초를 떠나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야 하리니, 죽은 행실들에서 회개함과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침례들과 안수함과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리의 기초를 다시 놓지 말지니라(히 6:1,2).
히브리서는 교회시대 이후를 다루는데 우리는 이 교리를 유심히 살피고 적용대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의 기초에서 거듭남이 왜 여기 없는 것입니까? 영적 할례에 대한 언급이 히브리서에 나오지 않습니다. 새 출생, 거듭남이 언급되지 않고 '행실들에서 회개함, 하나님을 향한 믿음, 침례들(!!), 안수,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십자가 이전에도 알려진 교리들)에 대한 것들입니다.
이 기초를 놓으면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해 나가는 과정'으로 히브리서는 환란시대 구원의 교리를 말합니다. '기초를 다시 놓지 말지니라', 환란시대에는 구원을 받았다가 잃어버리고 또 받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한번 놓치면, 성령이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 임재하시지만 떠나시면 다시 돌이킬 수가 없게 됩니다. 이것이 대환란시대가 갖고 있는 경륜적 위치입니다. 환란성도들은 삼손처럼 배교한 상태에서 간구해서 다시 성령을 받지도 못합니다. 배교했으면 거기서 끝납니다. 그래서 인내가 요구됩니다.
범죄하고 그리스도의 교리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이 없으나, 그리스도의 교리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 자니라(요이 1:9).
일반서신서 중의 하나인 요한서신들에서는 대환란 때의 구원을 설명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행위와 끝까지 인내하는 것이 구원받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그리스도의 교리'는 사도 바울이 가르친 은혜의 교리, 즉 그분을 믿고 거저 의롭게 되어 양자가 되는 그 교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인자로 계셨을 공사역 때 가르치신 그 교리들을 말합니다. 그 교리들은 단번에 마음으로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행함'을 통해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교리 안에 거한다'는 말이 곧 구원과 연관됩니다. 그리스도의 교리 안에 거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게 되는 사람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요한서신들에서 '거하는 것', '행하는 것'과 구원이 관련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행함이 없이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오해하고 야고보서와 히브리서를 통해 그 오해를 확신으로 굳히게 됩니다.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교리'에 대해 좀더 주의했다면 실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주의 교리에 놀라니, 이는 주께서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분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기 때문이더라(막 1:22).
서기관들과 선임 제사장들이 그 말을 듣고 어떻게 그를 죽일까 하고 기회를 엿보더라. 그들이 주를 두려워함은 모든 백성이 주의 교리에 놀랐기 때문이라(막 11:18).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그의 교리들을 지킴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여기고 복음서를 서신서들보다 우위에 놓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들에만 빨간줄을 쳐놓고 그것만 믿으면 구원받는 줄로 압니다. 어떤 변개된 성경들을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들만 빨간색으로 표시해 놓습니다. 그렇게 믿으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고 실족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주신 은혜의 '교리'를 받아들여 믿고 거듭난 사람만이 이 시대에 구원을 받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모든 말씀들을 힘써 지키려고 애쓰는 그런 종교인들은 모두가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시대에 구원은 행위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리들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 것은 대환란 때의 일입니다.
물론 거듭난 사람들은 주님이 하신 말씀들을 지키려고 하는데 그러나 온전히 지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합니다. 산상수훈의 말씀 같은 경우도 현재의 죄악 세상에서 죄악된 몸 안에 사는 거듭난 사람이 완벽히 지키는 것은 전혀 안되는 일입니다. 한쪽 뺨을 맞고 웃으면서 다른 쪽 뺨을 돌려댄다고 해서 이 시대에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겉옷을 달라는 사람에게 속옷까지 내놓는다면 강도들이 와서 집을 약탈해 가도 '다 가져가시오' 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세상에서 지켜질 수 있는 룰이 아니고 이렇게 구원을 받으려고 한다면 그는 지독한 행위구원론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대환란 때는 적그리스도가 임명한 세금 징수관들이 집에 쳐들어와서 빨간 딱지를 붙이며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의 재산을 몰수해 가도 '다 가져가시오' 하며 웃을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그리스도의 교리'를 지키는 환란 성도입니다.
천년왕국 때는 더이상 강도도 도둑들도 없을 것이므로 누구든 자기보다 못한 약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주어야 그때 아담의 육신을 가진 그 백성들은 왕국에서 살 자격이 있습니다. 그것이 산상수훈이 문자적으로 성취된 천년왕국 사회입니다.
2. 사도 바울을 통해 계시된 '신약 교회' 교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너희가 죄의 종이었으나 너희에게 전하여 준 교리 의 본을 마음으로부터 순종하여(롬 6:17)
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열을 일으키고 공박하는 자들을 주의하고 그들에게서 떠나라(롬 16:17).
사도 바울은 신약 교회의 '교리'를 계시받아 통째로 전달하고 가르친 사도였다, 그래서 바울은 사도들 중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바울이 교회의 교리를 계시하는 통로가 되었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가 '반석'이 된다고 믿는 카톨릭은 결국 바울의 '교리'도 무시하고 행위구원을 믿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이제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았고 그 안에 선 것이라.
만일 너희가 내가 전한 복음을 굳게 잡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다면 복음을 통하여 너희도 구원받은 것이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달하였나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셔서(고전 15:1-4)
이것이 사도 바울이 계시받은 은혜로 받는 신약적 구원의 교리인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고,' 여기까지를 믿는 것입니다. 뭐가 그렇게 쉽습니까? 구원은 좀더 어렵고 심오한 것이 아닙니까? 존재에 대한 철학적 고뇌와 사색과 성찰을 통해서 한발 한발 깨달아 가는 것이 구원이 아닙니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 헬라인들(이방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파하노니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는 거치는 것이 되고 헬라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되지만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나 헬라인들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또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2-24).
그래서 복음은 너무 '쉽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어리석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때문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어, 이것만 믿으면 영원히 구원받아, 이것이 은혜의 복음이다, 하면 '에이, 뭐가 그렇게 쉬울 수가 있어? 구원은 좀더 복잡하고 어렵고 심오해야 구원이지" 하는 것이 복음을 '어리석다'고 타박하는 이방인들의 생각입니다. 헬라인들은 정작 그러면서 '알지 못하는 신'까지 찾아다니면서 구원을 찾고 있었습니다. 쉬운 길은 버려두고 온갖 어렵고 복잡한 것은 추구하면서 정작 구원은 못 받은 것입니다.
구원의 교리가 그렇고, 또한 목회서신서를 통해서 주님은 사도 바울에게 신약 교회의 운영과 목사, 집사 직분의 교리들에 대해 계시를 주셨습니다. 이것들은 신약 지역 교회 운영에 대한 '교리'이고 교회에 대한 교리는 전부 바울을 통해 주신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3. 마귀들의 교리
하나님의 교리는 성도들을 위해서 주시는 반면 마귀들의 교리는 마귀가 자기 자녀들을 통제하는 교리입니다.
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나니, 마지막 때에 어떤 자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을 따르리라(딤전 4:1).
마귀들은 '교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악한 교리들을 통해서 종교를 형성하고 교회를 만들기도 합니다. 마귀들의 교리는 바빌론에서 시작되어 신비의 큰 바빌론까지 이어집니다. 큰 바빌론으로 향하는 마귀들의 교리들로 형성된 크고 넓은 길로 가는 와중에 '힌두교'도 있고 '불교'도 있고 로마 카톨릭도 있으며 믿는다고 공언하나 마귀들의 교리를 따르는 많은 개신교인들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마귀들의 교리는 하나님의 교리에 대응해서 그 시대마다 제시된 복음을 대적하고 모방하고 변개하는 데 맞춰져 있습니다. 마귀들의 교리는 그 믿는 자들을 구원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리를 믿는 사람들을 길에서 이탈케 만들어 영적으로 무너지게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마귀들의 교리의 특성은 '실족케 하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의 계명들을 교리들로 가르치니, 그들이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하였느니라.”고 하시더라(마 15:9).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배라도 주의 이름으로만 드려지는 경배면 다 받아주신다고 믿는다면 헛된 경배자입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부인하고 믿지 않으면서 단지 몇몇 구절의 '믿음의 근본 사항들'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경배를 드리면 '사람들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되어 헛된 경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의 문에는 '이카봇'이라고 보이지 않게 써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제부터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요, 사람들의 속임수와 교활한 술책으로 그들이 속이려고 숨어서 기다리는 온갖 교리의 풍조에 밀려 이리저리 다니지 아니하고(엡 4:14)
온갖 '교리의 풍조'가 언급되는데 오늘날 교활한 거짓 목사들은 성경에서 몇몇 구절들을 발췌해서 '풍조'를 만들어 내고 movement(운동)을 주장하며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것입니다. '성령 운동'에 대해서 말하자면 성령은 '성령 운동'의 객체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리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는 성령이 아닌데 movement를 벌여 놓고 '성령이여 오소서' 하면 성령이 온다 말입니까?
이런 것이 바로 온갖 교리의 혼란스러운 풍조가 밀려오는 지금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운동들을 벌이고 풍조를 이리 저리 제시하면서 우리의 '운동'에 동참하자, 우리는 능력이 많고 신실하고 열정적이라고 끌어들입니다. 그들은 '속임수와 교활한 술책으로' 뒤에 감추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마귀들의 교리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유치한 원리에서 죽었을진대 어찌하여 마치 세상에서 살아 있는 것같이 법령에 복종하느냐?
(손대지 말라, 맛보지 말라, 만지지 말라 하는 것이니
사용함에 따라서 부패할 모든 것이니라.) 이것은 사람의 계명들과 교리들에 따른 것이라.
이런 것들이 의지 숭배와 겸손과 금욕에는 지혜 있는 것처럼 보이나 육체를 만족시키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골 2:20-23).
골로새서에서는 '자칭 유대인들'의 거짓 교리에 대해 공박하고 있는데 이 경고는 계시록에서도 반복해서 나옵니다. 오늘날 기독교계를 거짓교리(누룩)로 부풀어 오르게 한 여인이 집어 넣은 누룩 중에서 치명적인 것이 바로 '거짓 유대주의'인데 '영적 유대인'이 되기 위해 위와 같이 짐짓 행하는 무리입니다.
겉으로는 반유대적이고 유대인을 멸시, 증오하면서 한편으로는 유대인을 흉내내고 있는 것이 그들입니다. 율법에서는 '손대지 말라, 맛보지 말라, 만지지 말라' 하는 것들이 소위 '의식법'인데 유대인들은 모세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그것을 지킵니다. 이것은 육신을 정결하게 관리하는데 실제 '유익'이 있는 정결례입니다. 유대인들은 중세 암흑시대 유럽을 휩쓴 페스트에서 보호받았는데 정결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육신을 정결케 하는 것은 거듭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율법은 양심은 온전케 할수 없는 법이고 세상에 속한 것들, 육신까지만 정결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육신 자체도 죄가 있기 때문에 율법에 순종하지 않고 만족하지 않아서 죄를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율법을 지켜야 된다, 정결례도 지키고 안식일도 지키면서 살면 '좋지 않은가?'하고 끌어들이면 카톨릭 수도원 '탁발승'들처럼 겉으로 정결하게 살면서 속으로 죄를 지어 지옥에 가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내가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이는 네게 발라암의 교리를 지키는 자들이 있음이라. 그가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거치는 것을 놓게 하며,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하고 또 음행하도록 하였느니라(계 2:14).
그리고 네게 역시 니콜라파의 교리를 지키는 자들도 있도다. 내가 그것을 미워하노라(계 2:15).
그러나 내가 너희와 두아티라에 나머지 사람들, 즉 이 교리를 받지 아니하고 그들이 말하는 사탄의 깊은 것들을 알지 못하는 많은 자에게 말하노니, 내가 어떠한 다른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겠노라(계 2:24).
계시록에서 경고한 마귀들의 교리는 '교리적으로' 설명하자면 대환란 때 선택된 사람들(이스라엘, 환란성도)을 넘어뜨리기 위해 마귀가 사용하는 교리들입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이는 네가 자칭 여선지자 이세벨이란 여자를 용납함으로 그녀가 내 종들을 가르치고 유혹하여 행음하게 하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하기 때문이라(계 2:20)
이세벨은 아합왕의 아내였던 시돈 왕의 딸인데 이세벨이 아합왕을 조종해서 주의 선지자들을 도륙하게 하고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마귀를 숭배하도록 조장했습니다.
그와 같은 일이 대환란 때 일어나는 것을 계시록에서 말씀하시면서 '내 종들'(종들은 환란성도)을 '행음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행음은 실제로 카나안 바알 숭배 의식에서 신전 창녀들과 바알 숭배자들이 음행하는 육체적 음행이 대환란 때 종교의식으로 채택되는 것을 말합니다. 대환란 때는 마귀들의 '회당들'과 소위 '성당(교회들)'에서 신전 창녀들과 종교 의식의 한 과정에 음행이 포함될 것입니다.
결국 이 음행 때문에 이스라엘은 율법의 정죄에 걸려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대환란 때 이스라엘이 저주받게 하기 위해 마귀가 '이세벨의 교리'를 사용할 것이다, 즉 종교와 수반된 음행을 도입해서 그들을 속인다는 말입니다.
그럼 '발라암의 교리'는 무엇인가? 이것도 '음행'인데 발라암은 메소포타미아의 이방 선지자였는데 그가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이스라엘을 축복했다가 발락 왕에게 뇌물을 받고 은밀히 이스라엘을 저주받게 하는 술책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발라암이 가르친 계책은 이스라엘 청년들과 모압 여인들을 음행하게 만들어서 '성으로 매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피느하스가 일어나서 불의를 징벌하고 이스라엘이 저주에 빠지는 것을 막았습니다. 솔로몬 왕이 이스라엘을 배교하게 만든 것은 그가 이방 여인들을 그들의 신들과 함께 받아들여서 육체적 음행이 영적 음행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마지막 때 이스라엘을 파멸시키기 위해 이세벨의 술책, 발라암의 술책을 동원하는데 그것이 마귀들의 교리입니다. 모든 마귀의 종교들에는 이 음행이 들어 있습니다. 카톨릭의 마리아는 음행을 조장하는 여신인데 카톨릭은 자기들이 정복한 땅에 십자가와 함께 여신의 형상을 앞세우고 들어가서 토착화시켰습니다. 마지막 때 큰 바빌론은 역시 여신 마리아를 동원해서 모슬렘도 포섭하고 유대인들도 포섭한다는 것입니다.
니콜라파의 교리는 무엇인가? 이 말은 헬라어의 '니카오'와 '라오스'가 결합된 것인데 니카오는 정복하다라는 말이고 라오스는 백성입니다. 니콜라파는 성직자가 다스리는 계급이 되어서 '국가 교회'처럼 통치하려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 카톨릭은 니콜라파의 대표격이며 성공회나 루터교도 니콜라파에 해당합니다. 그들은 모두 다 국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니콜라파는 이스라엘의 배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재판관기 시대까지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갑니다.
재판관기 17장에 보면 에프라임에 미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떠돌이 레위인을 고용해서 자기 가정집 전용 제사장으로 임명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나옵니다.
미카가 그에게 말하기를 “나와 함께 있어 내게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그리하면 내가 해마다 은 열 세켈과 옷 한 벌과 네 양식을 주리라.” 하니 그 레위인이 들어가더라(판 17:10).
이것은 율법에 명한 제사장 직분을 완전히 변개시킨 것인데 특색은 이 제사장이 '아버지'라 불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레위인은 미카보다 나이도 어린데 미카는 그를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실제 아버지가 아니라 종교적 의미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제사장을 '아버지'라 칭하는 것은 바빌론 종교에서 비롯된 것인데 제사장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카톨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교황은 pope(양육하는 아버지)라고 불리고 신부들은 father라고 불립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총각인 남자들을 'father'라 부르는 것은 일상적 의미가 아니라 '바빌론 종교 전통'에 따라서 그렇게 부르는 것인데 재판관기에 보면 이방화된 배교한 이스라엘 사람이 이 의식을 받아들여 행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 지파'는 완전히 배교해서 '아버지 제사장 숭배'를 하는 바알 숭배자들로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이 '니콜라파'라는 것은 성직자를 그렇게 숭배하고 '아버지'라고 부르며 '눈에 보이는 지상의 하나님 아버지 대리인'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한국 개신교에서도 '우리 목사님'을 너무 높이는 것이 분수를 지나쳐서 카톨릭의 father가 될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니콜라파'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2-3장에서 잇달아서 니콜라파, 발라암, 이세벨의 교리를 경고하는 것은 이것들이 큰 바빌론인 현재의 카톨릭과 친카톨릭 기독교계 내에 암세포처럼 이미 퍼진 것을 보여준 것이고 대환란 때는 그것이 더욱 극명한 형태로 나타나서 택함받은 자들(이스라엘, 환란 성도)까지 미혹할 것임을 보여줍니다.
물론 지금은 카톨릭도 영적으로만 여신 마리아와 음행하는 것이지 실제 음행을 의식에 도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대환란 때는 대놓고 불법을 행하며 고대 바알 숭배가 그대로 부활해서 미사에서는 실제 성도의 목을 쳐서 그 피를 포도주라고 하며 마시고 영적 음행은 실제 음행이 되어서 예배 의식에 동반할 것입니다. 이 마귀들의 교리를 대환란 때 견디고 이기려면 별수없이 '동정들'(virgins)로 살수 밖에 없으니 그들이 대환란 때 첫열매인 14만4천 이스라엘 남자들입니다. 이들은 발라암의 교리, 이세벨의 교리, 니콜라파의 교리를 이기고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대환란 때 등장할 마귀들의 교리는 이미 현재도 암약하고 있고 지옥행 동반자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통일교의 피갈음 교리라던지 또 정명석이라던지 또, 자칭 유대인 행세하는 이만희라던지 이런 자들이 지옥행 친구들을 계속 모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환란 때는 이보다 훨씬 큰 미혹이 오고 그 미혹은 이스라엘과 또한 환란 성도들을 넘어뜨리는 데 집중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상 사람들은 전부 이 큰 종교 창녀(카톨릭)가 주는 음행의 잔을 마시고 취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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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옥주도 아비의 심령으로 죽은 목사도 저주하고 욕합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우리신옥주하죠
ㅠㅠ 어서 깨닫고 나오길
신천지 정명석 여호와의 증인
다들 참 불쌍합니다
말도 하지만 꿈쩍않는 형상
서버에서 전송된 파일들만 스피커 로봇
흐르는 생명수강 떨어져
고여진 물이 되면 "우물속 하늘"
언제나 울음소리 영들의 삼창
"개굴 개굴 개굴" 개구리 왕국
마르지 않는 샘
솟는 샘과 강은 흘러야 한다.
고인물 썩어, 없던 악취들 만들었고,
이토록 거품들 내우고 일지는,
예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바다도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 21:25>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요 6:45>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