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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장14-28)
성경본문: 여호수아24:14-28
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16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17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18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
19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20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
21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 하는지라
22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 하더라
23 여호수아가 이르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 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하니
24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하는지라
25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
26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우고
27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28 백성을 보내어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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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는 본문에서 “오늘 섬길 자를 택하라,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했는데 우리의 선택 중에 가장 잘한 선택은 예수님을 믿기로 한 선택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일 잘 한 선택은 예배의 자리에 나온 것인 줄 믿습니다.
오늘이 여호수아서 강해 설교 마지막 날입니다.
여호수아서 1장은 모세가 죽은 후에 젊은 여호수아가 새롭게 민족의 지도자가 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가 죽은 후 새로운 사명 앞에서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겠다는 약속보다 더 힘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 여호수아서 마지막 장은 이제 여호수아가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세겜이란 곳에서 백성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고 하나님의 부름 받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여호수아서 24장 마지막은 세 사람의 장례식으로 대 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1) 여호수아의 장례식 :
110세에 죽어서 그의 기업의 경내 딤낫 세라에 묻히기 되었습니다.
모세의 시종으로 불렸던 여호수아이지만 죽을 때엔 여호와의 종이란 칭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2) 요셉의 장례식 :
요셉은 이집트에서 죽었지만, 언젠가는 가나안 땅에 묻히길 소원했던 그의 유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할 때,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내 여호수아 시대엔 가나안 땅에 묻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셉도 여호수아처럼 110세까지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3) 엘르아살의 장례식 :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 제사장의 죽음과 장사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질문) 만약에 여러분은 인생을 마치고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처한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습니까?
후손들에게 무슨 유언을 남기고 싶습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평소에 보고 싶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마지막으로 만나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 되면 사랑하는 사람들, 소중한 사람들, 가족들을 모아 놓고 하고 싶은 말과 유언을 남기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 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습니까?)
여호수아서 23장에 이어 본문에서도 여호수아의 유언이 강조되어 있는데, 그렇다고 무슨 사적인 유언은 아닙니다. 자녀들, 손자들을 모아 놓고 당부한 말씀은 없습니다.
대신에 여호수아는 민족의 지도자로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장로들, 지파의 수령들, 관리들, 재판장들을 모아 놓고 하고 싶은 말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인 여호수아 24장은 여호수아가 죽기 전에 온 백성들을 세겜이란 곳에 다시 불러 모아 놓고, 백성과 더불어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언약을 맺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겜이란 어떤 곳인가?
여호수아가 마지막으로 백성들을 불러 모은 곳은 세겜이란 장소였습니다.
왜 세겜으로 모이게 했을까요?
세겜은 이스라엘 민족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세겜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갈데아 우르에서 빠져나와서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었습니다.
창12:4-7절을 보세요.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시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세겜 땅은 야곱이 하란 땅에 약 20년 살다가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때에, 가족들이 가져온 우상들을 땅에 파묻었던 지역이었습니다.(창35:4)
그곳에서 야곱과 그의 가정이 이제 우상들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만 섬길 것을 결단하였을 것입니다.
세겜 땅은 또한 그리심산과 에발 산의 중간 지점으로써, 여호수아 8장에서 가나안 정복의 첫 단계를 마치고, 에발 산에 돌 제단을 쌓고, 온 백성들이 모여서, 절반은 그리심 산 쪽에 서고, 절반은 에발 산 쪽에 서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읽었던 곳이었습니다.(수8:30-35)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하나님께 거기서 감사 예배를 드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역사적인 장소에서 여호수아는 마지막 당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행한 일은 크게 두 가지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여호수아는 우선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들을 위해서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역사를 회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읽지 않은 수24장 앞 부분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회중들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형식으로 간략하게 말씀하였습니다.
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 옛적에 아브라함의 선택
☞ 이삭을 주심
☞ 이삭에게 야곱과 에서를 주심
☞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주었으나 야곱과 그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다. –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고난도 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출애굽의 은혜, 광야에서의 보호와 인도하심
☞ 요단 저쪽에서 아모리 왕들을 물리쳐 주심
☞ 모압왕 발락이 발람을 시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심
☞ 요단 강을 건넌 후, 가나안 족들과의 전쟁에서 이기게 하심
☞ 왕벌을 보내심
여호수아는 무엇보다 가나안 땅을 거저 차지하게 한 은혜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수24:13, “내가 또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에 거주하며 너희는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하셨느니라.”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은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강조했듯이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인쳐 주셨으며, 날마다 함께 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엡1장)
우리는 교회적으로도 은혜를 받았고, 개인적으로도 한 없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우리 교회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교회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건물도 거저 주시고, 전도하지 않아도 많은 성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많은가?
(저는 요즘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지난 날을 생각해 보아도, 하나님의 은혜요,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 보아도 하나님의 은혜를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복과 은혜를 세어본다면 너무 많아서 다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찬송가 429장을 불러보겠습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1절 :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 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2절: 세상 근심 걱정 너를 누르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나갈 때
주가 네게 주신 복을 세어라 두렴없이 항상 찬송하리라
3절: 세상권세 너의 앞길 막을 때 주만믿고 낙심 하지 말아라
천사들이 너를 보호하리니 염려없이 앞만보고 나가라
후렴-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둘째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서,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라”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여호수아24:14-15,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여러분, 이 말씀은 여호수아가 마지막으로 백성들에게 꼭 주고자 했던 말씀이요, 오늘 우리들에게도 꼭 해주고 싶었던 말씀일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야 할 말씀이요, 후손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말씀입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과 결단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기로 선택하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이 여럿 있습니다.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 전공이나 직업을 선택하는 일, 어디에서 살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도 중요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선택과 결단은 우상 신을 섬기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문제는 구원의 문제요, 현재의 삶뿐 아니라 영원한 삶과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복과 저주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본인의 인생뿐 아니라 자손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천대까지 복을 받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출20:6)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누구를 축복하고 누구를 저주하시는 분이 아니라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고 그것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십니다.
신명기11:26-28절을 보세요.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이 말씀에 근거하면 어떤 사람이 복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저주를 받을 것인가가 누구에게 달려 있나요?
무엇에 달려 있나요?
본인의 선택과 결단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면 복을 받게 되지만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면 저주를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신30:19-20절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네가 거주하리라.”
그러나 여러분,
안타깝게도 어떤 성도들은 복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만 복 받은 길을 택하지 않고 저주의 길을 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모순되고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누구에게 복을 주시고 누구에게 저주를 주시는 분이 아니라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시고, 복의 길을 택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저주의 길을 택하는 자에게 저주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하는 것이 생명과 복을 선택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축복을 부어주실까요?
신명기 말씀과 오늘 여호수아의 권면에 의하면 사람이 복을 받으려면 우선적으로 복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을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신이 아닙니다. 아무 능력도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살아 계신 분이요 복을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 신을 만들어 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늘날에는 다른 종류의 우상 신을 섬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돈이 우상이 되기도 하고, 명예나 권력이 우상이 되기도 하고, 쾌락이 우상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이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자기가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고 섬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고 하면서 너희들이 강 저쪽와 애굽에서 섬기던 우상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더 이상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오늘 섬길 자를 택하라고 하면서 자기와 자기 가족은 여호와만 섬길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15절)
여호수아가 ‘너희가 오늘 섬길 자를 택하라’고 하신 것은 종교 선택의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을까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무 신이든지 선택해서 잘 섬겨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의 본심은 그 누구도 우상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만 섬기기를 결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군가, 무엇인가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성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우상, 미신이라도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생명과 복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지만, 우상 신을 섬기는 것은 사망과 저주의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발적 결단을 통해 그들의 결단이 변치 않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선택하라고 하였고, 자기와 자기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자발성이 얼마나 중요한가?
교회는 자발적 공동체입니다.
중국의 총리 중에서 주릉지(주용기)라는 총리가 있었습니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중국 총리를 지낸 분입니다. 중국의 제일인자는 되지 못했지만, 지금의 중국이 있게 한 지혜로운 총리였습니다.
그가 강조한 것은 ‘자발성을 통한 강한 경쟁력’을 도출해 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공산주의가 실패한 것은 자발성을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주릉지는 그런 자세가 중국을 약화시켰다고 진단하고, 중국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자발성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생명의 삶, 2011년 3월호, p. 169.)
그 결과 중국은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 발전을 이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발성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에서 자발성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교회의 모든 봉사, 활동은 다 자발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봉사를 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하고, 헌금도 자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세상의 신을 섬길 것인가를 선택하고 하는 것도 자발성에 근거한 신앙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슨 일이든 억지로 하는 것은 오래 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할 때, 지속성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사랑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억지로 할 일이 아닙니다.
가장 기쁘고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호수아는 마지막으로 백성들에게 하나님만을 기쁘게 섬기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겨야 합니다.
여호수아의 도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그들은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만 섬길 것이라고 반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집트에서 종살이 할 때, 자기들을 구원해 내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광야를 지나올 때 보호해 주신 분도 하나님시요, 가나안 땅의 족속들을 쫓아내시고 그 땅을 선물로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하였습니다. (수24:16-18절)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호수아가 “너희들은 여호와를 잘 섬기지 못할 것”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여호수아의 도전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고 다짐하는 백성들에게 여호수아는 격려하기 보다 “너희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 구절이 ‘가장 충격적인 구약의 성경 구절’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만 섬기라고 해놓고,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까, 너희는 그럴 능력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하는 백성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은 발언을 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호수아의 발언의 진의는 무엇일가요?
본문 수24:19-20절입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죄들과 잘못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거룩하신 하나님이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적절한 표현이 없어서 질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질투는 연인들 사이에서 자기에게 돌아와야 할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향할 때 일어나는 분노의 감정입니다.
사랑하면 질투하기 마련입니다.
사랑하면서 질투가 없다면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사랑과 찬송,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시는데, 하나님께로 향해야 할 사랑이 우상에게 향할 때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싫어하신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두 마음을 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힘들 다해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겜에서 언약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상은 버리고 오직 여호와만 섬기기로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서, 돌로 기념비를 삼아서 세겜의 상수리 나무 옆에 세웠습니다.
이제 언약을 맺었으니 변치 말고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언약식에 대해 본문 수24:26-27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 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 나무 아래에 세우고,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여호수아는 직감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늘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결단하였지만, 세월이 흐른 후에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게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거듭거듭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는 말씀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언약을 맺고 돌로 증거까지 세웠습니다.
여러분, 돌이 무슨 언약식을 보고 들었겠습니까?
이 돌이 들었고, 증거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만 섬기기로 서약했으니 그 마음이 돌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변치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돌은 항상 그 자리에 있고 변하지 않습니다.
아까 앞에서 질문했지만 다시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만약에 세상을 떠날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후손들에게 마지막 말(유언)을 남겨야 하다면 어떤 말을 남기고 싶습니까?”
여호수아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백성들에게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라” “ 하나님인지, 우상인지를 섬길 자를 택하라”고 하면서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일생을 하나님만 섬겼고, 이제 백성들도 그렇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택과 결단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게 되어 있는데, 특별히 신앙적 선택과 결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연세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 박사 아버지 백사경씨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줄 압니다.
맹인이며 유명한 무당이었는데, 전도자가 지나가면서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신의 영혼이나 후손들의 장래를 생각해서 점치는 생활을 청산하고 예수님을 믿으시오”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자꾸 그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다고 합니다.
결국 그 점쟁이는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교회 건축을 할 때, 땅을 팔아서 헌금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의 선택과 결단으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 백낙준 박사는 미국 유학까지 가게 되고, 1920년대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고 <연세대 초대 총장>이 된 것입니다.
복 받기를 원한다면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만 선택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순종의 길로 가세요.
복과 저주의 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데, 저주의 길이 아니라, 생명과 복의 길로 가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축복해 주시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되십시오.
복만 바라지 말고, 복 있는 사람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일생을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단하실 수 있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