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 빼다 155 절
이 문장은 필자가 교보문고에서 여러 담마 빼다를 고르다가
ㅡ 0 아ㅡ스님께서 나름 원본에 충실하게 해석했노라고 머릿말에 밝힌바
그동안 사이트에 올려진 여러 학자들에 빼다 중에서 구입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여러곳을 살펴보니 원본은 원본인데 영어 원본을 보고 재해석 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엇으며
결국 여러 학자들에 해석을 믿지 못하여 필자가 재해석을 하게 되엇습니다.
하여 ㅇ아 스님에 해석과 소납에 재해석에 대해 재론 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다시 글을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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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ritva brahma cariya // aladdha yobbane dhana/m //
아차리뜨바 브라마 차리야 // 알라다(닿) 욥바빠네 다나 //
청정한 삶도 살지 않고 젊어서 재산도 얻지 못한 사람은
jinnakonca va jhayanti // khinamacche va pallale
진나꼰차 바 즈하얀띠 // 킨나 막체(쩨) 바 빨라레
고기 없는 연못가에 늙은 백로처럼 쇠약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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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석
acaritva brahma cariya //
수행을 하지 안은 성품을 호흡명상 수행으로
아 차리 뜨바 브라마 차리야
aladdha yobbane dhana/m //
달성한 젊은 청년은 바르다(풍족하다, 다 내려놓다, 다 놔))
알라다 요빠나(오빠나) 다 놔
jinnakonca va jhayanti //
늙은 (노련한) 왜가리 명상하듯 (심사숙고하는 바, 응시하는 바)
지나 컨차 바 즈하얀띠
khina macche va pallale
연못에서 낚시하여 (끄시나는 바)끝을 내는 것처럼
끄히나 막채 바 뻘랄레
ㅡㅡㅡㅡㅡ지난번 예경 독송에 올린바 있지만
1) 청정한 삶도 살지 않고 : 영어 해석에서는 : holy life : 경건한 생활, 신앙생활, 성스러운 삶 ,정도로 나오는데
일반 청년들에게 청정한 삶을 요구한다는 것은 수도승이 되라고 권하는 것 밖에 되지 안으며.
1-2) 아 차리뜨바 브라마 차리야를 청정한 삶도 살지 않고" 로해석할 수 있느냐인 것입니다.
2-1) 알라다 :익히 설명한 바와 같이 "a" 가 붙엇다고 없는 ,무 , 아니다라는 해석은 이 단어에 본 뜻을 생각하지 안은 채 해석한 것과 같으며,
필자가 항상 하듯이 ㅡ 산스어와 빨리어에 차이점 중 거국적으로 통일 해야할 것이
"ㅇㅏ, 어" 라는 단어를 어느 경향에 맞출 것이냐가, 해석을 미루게 되는 너무나 많은 단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빨리사전과 같이 해석한다면
" 아차리야, 외 아가차띠, 알라야 비자나나 " 등등에 해석을 전부 달리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 되기에
빨리어적 해석은 재고해야 하며 ㅡ 그 기준점은 되도록이면 산스어 해석과 비교해야 정확한 해석이 도출된다는 것이 필자에 평소 주장과 같습니다.
2-2) 젊어서 재산도 얻지 못하고 ㅡ 라는 해석 역시 나오지 안으나 영어권 해석에서 나오는 내용입니다.
3) 늙은 왜가리 명상하듯 , 노련한 왜가리 명상하듯 : 물고기를 잡으려고 외다리로 오랜동안 응시하며 묵상, 수행하듯한 풍경을
젊어서 신앙생활을 통하여 얻은 정신은 풍족하다는 것을 빋대어 이른 것이라 할 수 잇습니다.
그럼에도ㅡ 늙은 백로처럼 쇠약해 진다ㅡ 는 단어가 없는데 어떻게 그런 해석이 가능할지 모르겟습니다.
4) 끄히나 막채 = 끄시나 막채 (khina macche) : 이를 영어권이나 빨리어 사전에서도 고기 없는, 고기가 소멸한 (연못)이라 ㅡ해석했는데 좀 더 사유해보면
끄시나 막채 ; 명상하듯 응시하다가 끝으로 , (그) 끝에서 마악(막) 챘다 (낚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에 언어적 변화를 보다 넓고 깊게 사유하지 못한 해석이라 밖에 볼 수 없다할 것입니다.
◆ㅡ 담마빼다는 423 절로 되어 있는데 , 각 절마다 현대에도 사용하는 우리 사트리가 한두 단어 또는 서너 단어씩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ㅡ
이문장에서도
차리, 차려, 차리야 , 알라다는 산스어로 알라붇다= 얼러붙다이기에 산스어를 비교하면 바로 알수 잇으며
다나 = 다 놔, 끄시나 , 막 채 등입니다,ㅡ
원문을 몇번 되뇌이다 보면 현대에도 사용하는 우리말이 많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요빠도 오빠라고 읽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바 입니다.
◆ 또한 주류학자들 전씨, 이씨 등등과 저명한 승려들 모두가 ㅡ 우리 사투리 언어를 모르는 그들이 해석한 내용으로 가공한 내용을 다시 재해석하는 게으름에 극치요 사대주의에 빠진 결과라 여길 수 밖에 없다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런 오류들을 발견한 필자는 당나라 한자 불경이나 영국인들과 남방불가에서 해석한 불경은 참고만 하고, 현재도 사용하고 회자되는 한국 사트리에 해석을 좀 더 깊이 해야 불경 원전 해석이 잘 이루어지리라 주장했던 것입니다.
어째서 학자들과 더불어 바른 길을 가야할 비구,비구니들께서 이런 행위를 할 수 있는지 참으로 개탄스런
한국 불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간혹 각종 언론을 보면 ㅡ질보다 량을 자랑하거나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그럴듯한 언변술로
잘못된 방향과 량으로 해결되는 불경은 과연
공명심에 쪄들어 잘 못 가르친 죄는 역사에 반역이라는 것을 모를까마는
불경은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원이 없겟습니다.
질 보다 량 !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면 백년 후 한국에 불교는 없어질 것 같습니다.
영국은 지난날 네팔과 인도를 점령하여 고문과 학살 속에 이루어진
문화 권력에 의한 문화 독점을 위하여 ㅡ 빨리 성전협회ㅡ 를 만들어 수많은 인드라 경전및 불경 원전을 가공하여 왜곡 날조한 단체이며 ㅡ 그들을 추종하는 한국에 사대주의 학자, 승려들이 정신 차려야
올바른 한국 불교가 될 것입니다.
삼가 도원 합장 ()
첫댓글 잘 보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