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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의 능력(출15장 1-21)
성경본문: 출애굽기15: 1-21
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4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5 깊은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
6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7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지푸라기 같이 사르니이다
8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 같이 일어서고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
9 원수가 말하기를 내가 뒤쫓아 따라잡아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내 욕망을 채우리라, 내가 내 칼을 빼리니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 하였으나
10 주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거센 물에 납 같이 잠겼나이다
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12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13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14 여러 나라가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15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16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매 주의 팔이 크므로 그들이 돌 같이 침묵하였사오니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께서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19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그들 위에 되돌려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지나간지라
20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21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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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시편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배 순서 중에 찬양이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모세의 노래로 알려진 찬송입니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찬송입니다.
모세는 그 시점에서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복음성가 중에 “이와 같은 때엔 난 노래하네, 사랑을 노래하네, 주님께! 이와 같은 때엔 손 높이 드네, 손 높이 드네,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때엔 난 노래하네
사랑을 노래하네 주님께
이와 같은 때엔 손 높이 드네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이와 같은 때엔 난 기도하네
조용히 기도하네 주님께
이와 같은 때엔 손 높이 드네
손 높이 드네 주님께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와 같은 때’를 만났습니다.
모세는 기적적으로 홍해 바다를 건넌 후에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강산 손으로 행하시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다가 갈라지고, 마른 땅을 밟고 건넜지만, 그렇게 강력했던 바로의 군대, 병거들, 마병들이 다 바다에 수장되는 것을 보고, 이와 같은 때에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날에 미리암과 여인들의 찬양이 가장 뜨거웠습니다.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면서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라”라고 외쳤습니다.
특히 모세는 개인적으로도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도 잘 못하는 자기를 택하여 쓰시고, 하나님의 위대하신 일을 보게 하시고, 그 일에 동참하게 하신 것”에 대한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떨기 나무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셔서 모세를 부르신 이후, 모세의 지팡이를 하나님의 지팡이로 사용하심을 경험하였습니다.
홍해 바다를 건널 때에도, 모세의 지팡이를 바다로 향하여 들자, 큰 동풍이 불어왔고, 바다가 갈라졌고,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를 통과한 후에는 모세가 다시 지팡이를 든 손을 바다에 내밀자, 물이 다시 흘러서 애굽의 군사들,병거들과 마병들이 다 물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일하실 수도 있으셨지만, 매번 하나님은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서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모세를 동참시키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개인적으로도, 민족적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찬양은 어떤 찬양이었을까요?
이 찬양은 가장 오래된 찬양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찬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시, 모든 찬양의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세의 찬양은 오늘 우리도 계속 불러야 할 찬양이요, 천국에서도 불러야 할 찬양입니다. 요한 계시록에도 모세의 노래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계15:2-4)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모세의 찬양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1) 우선 모세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에 대해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크신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바다에서 구원하신 것에 대해 찬양하고 있습니다. 즉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2) 이어서 모세는 “그러므로 세상에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누가 주와 같이 거룩하고, 주와 같이 능력이 있겠는가?”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3) 마지막으로 모세는 출애굽과 홍해바다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은 앞으로도 이스라엘을 거룩한 산까지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기대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찬양한 이유는 하나님은 하나님(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위대한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의 강한 군사들을 바다에 빠뜨리시고, 연약한 이스라엘은 마른 땅을 밟고 건너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 여인들과 노인들, 심지어 짐승들까지 이스라엘에 속한 것은 다 안전하게 건녔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며,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말씀으로 천지 만물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마리아의 찬송에서도 하나님의 권세를 찬양합니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를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눅1:51-53)
우리 주님은 하시고자 하시는 일은 뭐든지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사람을 낮추시기도 하시고, 사람을 높이시기도 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에 대해 몇 가지 놀라운 고백을 하면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모두의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여러분의 하나님으로 분명히 믿고 계십니까?
출15: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모세는 하나님에 대해 묘사하면서 ‘하나님을 용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3절입니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용사이신 하나님을 대적해서 이길 존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집트의 바로와 그의 군사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였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홍해 바다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습니다.(출15:21)
21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본문의 모세의 노래에서 아주 재미 있는 표현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의 군대들을 바다에 던지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 앉았다(5절), 그들이 거센 물에 납처럼 감겼다”(10절)는 표현이 나옵니다.
돌이나 납은 한번 가라앉으면 다시 떠오르지 않습니다.
용사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엔 구원을 베푸시고, 바로의 군대에겐 영원한 심판으로 갚으셨음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아니 계신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을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시139:7-10)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주의 영을 피하여 어디로 가며 주 앞에서 어디로 피하겠습니까?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하나님은 거기서도 나를 인도해 주시고,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들어 주신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알파와 오메가가 되십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와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찬양은 항상 최상급으로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습니다.
그 무엇과도,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찬양에서 가장 자주 반복하고 있는 내용이 “세상엔 하나님과 같은 분은 없다”는 찬양입니다. 영어 표현에 “Couldn’t be better”란 표현이 있습니다.
더 이상 좋을 수 없다는 뜻인데, 우리 하나님보다 더 위대한 존재는 없습니다.
11절 보세요.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이리이까?”
세상에 여호와와 같이 좋고,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고, 여호와와 같이 위대하신 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모세의 찬양은 과거에 행하신 일에 대해서만 찬양하지 않았습니다.
현재에 함께 해 주시고, 장래에도 인도하실 하나님에 대해 찬양하였습니다.
출15:13절,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게서 구속하진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시내산)
출15: 17절에서도 찬양합니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이한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예루살렘, 시온산)
이것은 지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고, 결국에 약속의 땅으로, 주의 성전이 세워질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실 것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신앙적 관점으로 보면 이스라엘을 예배의 자리, 또는 예배로 인도해 주실 것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거룩한 처소, 주의 처소, 성소’와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불러 주의 백성 삼으신 목적이 찬양을 받으시기 위함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찬양 받으시게 합당하십니다. 찬양 받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이사야43장에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사43:1, 사43:21절을 보세요.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이유(이집트에서 구원해 내신 이유)는 주님의 소유가 되어서 주님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불러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히 찬송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엡1:6,14)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언제 찬양해야 하나?
사람들을 기쁠 때 노래하고, 또 기쁘기 위해 노래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괴로움을 잊고 기쁨을 얻기 위해 술을 의지하고, 세상 노래를 부릅니다.
군인들은 두려움을 내쫓고 사기를 높이기 위해 군가를 부릅니다.
한국인만큼 술과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도 없는 것 같습니다.
CNN 방송에서 한국 특집으로 직장인들이 술과 노래를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모습을 방영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술이나 세상 노래보다 휠씬 좋은 방법으로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군가보다 힘과 용기를 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찬송”입니다. 즐거움을 위해 술집이나 노래방에 갈 이유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5장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적인 방법이 아닌 성령 충만과 찬송을 통해 기쁨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엡5:18-20)
무엇으로 성령 충만한지 안 한지 알 수 있을까?
사도 바울의 통찰에 의하면, 찬양 생활을 하는지, 아닌지를 통해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입술에 감사가 넘치고, 찬양이 넘치는 사람은 분명히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입술에 감사 대신 불평이 있고, 전혀 찬송하지 않는다든지, 찬송을 하면서도 마음을 담아서 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성령 충만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찬양하지 않을 수 없음)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 바다를 건넌 후 목소리 높여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성삼위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찬양해야 할 주제는 성 삼위 일체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엡1장)
하나님 아버지는 만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여, 불러 하나님의 자녀를 삼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에베소서1:7절과 요한 계시록1:5절에서 우리가 예수의 피로 구원받고, 죄에서 해방되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엡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계1:5b,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의 구원의 보증이 되어 주시며,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시지 않고 오셔서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늘 성 삼위 하나님을 찬송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찬양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가?
찬양의 능력에 대해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사도행전 1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제2차 전도여행 중에 로마의 첫 성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줌으로써 치료해 주었을 때, 돈벌이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알고 그 여종의 주인들이 바울을 고발하였습니다.
교활한 주인들은 관리들에게 바울과 실라를 끌고 가서, 귀신 들린 여종을 치료해 준 좋은 이야기는 쏙 빼고,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이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하면서 고발하였습니다.
무정한 상관들을 자초지종을 알아보지도 않고, 그들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명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많이 두들겨 맞고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에 무척 억울하고 통증도 심했을 것입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찬송이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밤 중 쯤 되어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자 죄수들이 듣고 있었습니다.
그 때 빌립보 감옥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큰 지진이 일어나고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풀렸습니다.
자다가 깬 간수는 너무 놀라 죄수들이 다 도망친 줄 알고 자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바울이 소리를 질러서 간수를 죽지 않도록 말렸습니다.
“스스로 몸을 상하게 하지 마시오. 우리가 더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이 그의 목숨을 구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날 밤에 빌립보 간수와 그 가족들이 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으며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캄캄한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할 때에 기적이 일어났는데, 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모든 매인 것이 풀렸습니다.
죄인을 가두는 감옥의 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쇠사들이 풀어진 것은 아주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찬송을 부를 때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 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을 묶어 두었던 쇠사슬, 수갑이 풀렸다는 것은 찬송이 얼마나 큰 능력이 있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과 찬송은 지옥 권세, 죄의 권세를 떨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을 얽매고 있는 죄의 결박을 푸는 능력이 있습니다.
찬송가에서도 “351장 2절에서도 예수의 이름과 찬송의 능력을 노래합니다.
“원수 마귀 모두 쫓겨가기는
예수 이름 듣고 겁이남이라
우리 찬송 듣고 지옥 떨리니
형제들아 주를 찬송합시다.”
빌립보 감옥 사건에서 최고의 기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사실은 옥문이 열린 것보다 그 날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전도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간수가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의 식구들이 다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간수가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한 것과 그 날 그의 온 가족이 구원을 얻고 세례를 받은 것이 최고의 기적입니다. (행16:33-34)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구약성경 역대하 20장보면, 유다왕 여호사밧와 시대에 있었던 모압과 암몬과의 전쟁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통 전쟁 이야기와 많이 다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은 전쟁을 하러 가면서, 무장한 군인들을 앞세우지 않고, 찬양을 맡은 제사장들을 앞세워서 나갔던 것입니다.
그들은 나가면서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찬양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셨습니다.
대하20:22-23절에 그 때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느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이스라엘 군대는 싸울 필요도 없이 적군들끼리 서로 싸워서 둘 다 멸망받은 것입니다.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스라엘이 찬송할 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찬송 -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찬송 중에 계십니다.(시22:3)
찬송할 때 악한 마귀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신28:7)
(누가 언제 찬양할 것인가?)
시편에서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시150:6)고 했습니다. 호흡이 있는 자는 호흡하는 동안에는 항상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은 기쁜 일이 있을 때에만 찬양하는 것은 아닙니다. 슬픔 중에도, 고난 중에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이칼하게도 위대한 찬양은 고난 중에, 슬픔 중에 만들어졌습니다.
모든 크리스천들이 제일 좋아하는 찬송가 중에 하나인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가오니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이 찬양을 누가 지었는지 아십니까? 시각 장애인이었던화니 크로스비(F.J. Crosby)가 지었습니다.
크로스비 여사는 생후 6개월 때 실명하여 92세까지 앞을 보지 못하였지만 누구보다도 얼굴이 밝았으며, 찬송시도 수 천 개나 지었습니다.
찬송가의 여왕이라 불렸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는 눈을 뜨고 싶지 않다고 말했는데, 이유는 “천국에서 깨끗한 눈으로 예수님을 처음으로 보고 싶어서”라고 했습니다.
함께 435장을 불러 보았으면 합니다.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이 찬양은 누가 작사했는지 아십니까?
미국의 법률가 H.G. 스패포드(Spafford)인데, 시카고에서 가장 잘 나가던 변호사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카고 대 화재 때에 재산을 잃고, 아내와 네 딸이 유럽 여행 중 배가 대서양에서 난파해 네 딸을 잃고 아내만 구조되는 비극을 겪게 되었습니다.
네 딸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을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급히 다른 배를 타고 유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사고 해역을 지나는데, 선장이 바로 이곳에서 사고가 있었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너무 슬퍼서 방에 들어가서 울며, “주님,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했던 제게 어찌하여 이토록 큰 시련을 주십니까?”라고 절규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말할 수 없는 평안이 밀려왔는데, 입술로 이런 고백을 하고 있었습니다.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God’s Will be done.” 이 때 “내 영혼 평안해”라는 찬송시가 탄생한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423장을 불러 보겠습니다.
찬송가 66장, “다 감사드리세”라는 아름다운 찬양은 누가 언제 작사했는지 아십니까?
“다 감사 드리세 온 맘을 주께 바쳐
그 섭리 놀라워 온 세상 기뻐하네
예부터 주신 복 한 없는 그 사랑
선물로 주시네 이제와 영원히”(66장 1절)
대장장이 아들인 독일 루터파 교회 목사인 마르틴 린카르트(Martin Rinkart)입니다.
30년 전쟁의 공포로 피난민들이 그의 고향인 아일렌부르그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기근과 역병이 돌아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하루에 장례식을 50회 치른 날도 있었습니다.
린카르트 목사가 이 찬양을 작사한 것은 이런 고난을 겪은 후, 평화가 찾아왔을 때였습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고, 찬양하자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은 어떤 상황에서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시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66장도 같이 불러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찬양은 이 땅에서 뿐 아니라 하늘에서 영원히 성도가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한 계시록에는 많은 찬양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천군 천사들도 찬양하고, 하늘의 성도들도 찬양하였습니다.
계4:8,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계7:10, “구원하심이 보좌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계15:3-4,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요한 계시록에서 반복해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 주 하나님은 영원히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모세가 홍해 바다를 마른 땅을 밟고 건넌 후에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과 같이,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행하신 위대하신 일을 기억할 때,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반드시 입술에서 감사와 찬송이 흘러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시고, 좋으시고, 전능하신 분은 없습니다.
날마다 찬양하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찬양하시고, 영원히 주님을 찬양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