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구자철, 조영철, 김동섭(오른쪽부터)은 19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의 주축 선수다.(사진 송기찬)
조동현(57) 감독이 이끄는 19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이 2009년 FIFA(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본선 출전권을 획득했다.
청소년대표팀은 11월 8일 사우디아라비아의 담맘 프린스 모하메드 빈 파하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8강전에서 일본을 3-0으로 꺾고 준결승에 진출해 아시아축구연맹(AFC)에 배정된 4장의 출전 티켓 가운데 1장을 땄다.
2003년 아랍에미리트연합 대회 이후 4회 연속 U-20 월드컵 진출이다. 그러나 대회 직전까지 청소년대표팀이 U-20 월드컵 출전권을 확보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주장 구자철(19,제주 유나이티드)은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다”며 대회 전후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청소년대표팀이 U-20 월드컵 본선에 오르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총평을 해 달라고? 별로 할 말이 없는데. 굳이 한마디 하자면 형편 없어.” 9월 1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19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경기가 끝난 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한 기술위원은 “조동현(57) 감독이 어떤 축구를 펼치려는지 모르겠다. 공수 균형도 안 맞고 색깔도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은 이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와 0-0으로 비겼다. 아르헨티나는 FIFA(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6차례 정상에 오른 강팀이다.
2000년 이후 열린 4개 대회에서 우승 3회, 3위 1회의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이번에 방한한 아르헨티나는 완벽한 팀이 아니었다.
세르히오 바티스타(46) 아르헨티나 감독은 “주축 선수들은 소속 팀 사정으로 함께 오지 못했다. 내년 1월 20세 이하 남미청소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새로운 선수들의 실력을 점검한 데 만족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경기 내내 주력 선수가 빠진 아르헨티나를 쥐고 흔들었다. 아르헨티나는 거친 파울로 한국의 공격을 막기에 급급했다. 아니발 알라르콘(19,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은 후반 22분 경고 누적으로 퇴장했다.
수적 우위를 점한 한국은 아르헨티나 골문을 향해 12개의 슈팅을 날렸지만 모두 골과 거리가 멀었다.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도 골을 넣지 못하니 지켜보는 사람들로선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청소년대표팀은 9월초 열린 2008 센다이컵에서 1무2패에 무득점 6실점으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다.
아르헨티나전에는 기성용(19,FC 서울), 조용철(19,요코하마 FC), 김동섭(19,시미즈 S펄스), 서정진(19,전북 현대) 등 프로 선수들이 합류해 지난해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예선 이후 가장 전력이 좋았다.
어두운 표정으로 기자 회견을 한 조감독은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조직력에 초점을 맞췄는데 선수들이 기대한 만큼 경기를 잘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감독은 기자회견장에서 빠져나가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짧은 소집 기간에 대해 불평했다.
조감독은 “센다이컵을 치르고 돌아온 지 3일밖에 안 됐다. 기성용, 조용철, 김동섭, 서정진은 경기 하루 전에 합류했다. 조직력이 갖춰졌을 리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조감독의 말대로 청소년대표팀은 100% 전력이 아니었다. 프로 선수들은 경기 하루 전날 소집돼 기존 선수와 한 차례 훈련만 함께 한 뒤 경기에 나섰다.
지난해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예선 이후 1년 만에 손발을 맞춘 것이다. 또 주장 구자철(19,제주 유나이티드)은 왼쪽 무릎 부상이 완쾌되지 않아 합류하지 못했다.
조감독은 “청소년대표팀에 대한 관심도 부족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2만518명이었다.
청소년대표팀 경기치곤 꽤 많은 관중이었다. 2주 전 한국과 요르단의 A매치 관중은 1만6537명이었다. 그러나 축구 팬의 관심은 한국-아르헨티나전 이후 벌어진 한국과 일본의 OB 올스타전에 있었다.
기성용(왼쪽)은 11월 20일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사우디아라비아전 출전으로 19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사진 정태도)
또 이날 경기는 대한축구협회 창립 75주년 기념 경기로 입장료가 없었다. 조감독은 “다음달 최정예 멤버로 팀을 꾸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잡음
조감독이 자신감을 가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대한축구협회 소집 규정에 따라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개막 2주 전에 주력 선수들을 데려와 훈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감독은 조영철, 김동섭, 서정진, 오봉진(19,제주), 김승규(18,울산 현대) 등 기존 선수 외에 이범영(19,부산 아이파크), 정준연(19), 유지노(19,이상 전남 드래곤즈), 문기한(19,서울), 구자철 등 프로 선수를 대거 불러들였다.
그러나 조감독의 기대는 절반만 이뤄졌다. 기성용과 이승렬(19,서울)이 명단에서 빠졌다. 기성용의 제외는 예정된 일이었다.
조감독은 애초 기성용의 발탁을 고려하지 않았다. 9월 5일 요르단전을 통해 A매치에 데뷔한 기성용은 국가대표팀의 주력 미드필더로 발돋움했다. 4경기 연속 A매치에 선발 출전해 2골을 넣었다.
4경기 가운데 2경기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북한, 아랍에미리트연합전이었다.
기성용은 11월 20일(이하 한국시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원정 경기에 뛸 것이 유력했다. 청소년대표팀과 국가대표팀에 불려 다니면 혹사 논란이 불거져 나올 게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이승렬이 빠진 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이승렬은 소속팀 서울의 차출 반대로 청소년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이승렬은 청소년대표팀 주전 왼쪽 미드필더로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예선 4경기에서 6골을 터뜨렸다. 조영철(13골)과 김동섭(8골)에 이어 팀 내 득점 3위였다.
정규리그 우승을 노리는 서울로서는 이승렬을 청소년대표팀에 보낼 수 없었다. 정조국(24)이 다친 데다 김은중(29)의 컨디션 난조로 데얀(27)과 이승렬 외에 마땅히 내세울 공격수가 없었다.
조감독은 “(기)성용이와 (이)승렬이는 청소년대표팀의 중심이다. 자신이 할 일을 해내는 건 물론이고 동료 선수들의 경기력도 끌어올리는 선수다. 성용이와 승렬이가 빠져 전력에 차질을 빚었다. 장기로 치면 차와 포를 뗀 격”이라고 말했다.
몇몇 축구 관계자는 기성용과 이승렬이 제외된 것보다 부족한 훈련량에 우려를 나타냈다. 한 축구 관계자는 “프로 선수들의 소집이 늦어져 주축 선수들이 조직력을 다질 시간이 부족했다. 그 점이 가장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청소년대표팀은 10월 16일 파주 NFC(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 소집돼 훈련했다. 그러나 대회 개막 10일 전까지 소속팀 경기 출전이 허용돼 선수들이 모두 모인지는 1주일이 채 안 됐다.
구자철은 10월 18일 대구 FC전에 90분을 뛴 뒤 다음날 대표팀에 합류했고 유지노는 10월 22일 수원 삼성과의 컵대회 결승까지 뛰었다.
조영철, 김동섭 등은 경기만 뛰고 소속팀으로 돌아갔던 아르헨티나전을 제외하면 지난해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예선 이후 1년 만에 청소년대표팀에 들어왔다.
조영철은 “1년 만에 청소년대표팀에 소집돼 훈련하니 초반에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한 선수는 “훈련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제대로 구성된 청소년대표팀이 훈련한 건 1년에 겨우 1주일이었다. 운동을 하는데 선수들끼리 손발이 안 맞았다. 마음먹은대로 경기가 안 돼 대회를 앞두고 걱정이 많았다”고 말했다. 청소년대표팀은 불안감 속에 10월 23일 출국했다.
의견 차이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개최지는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청소년대표팀이 중동에서 경기를 갖는 건 2006년 1월 열린 카타르 8개국 초청 국제청소년대회 이후 처음이었다.
당시 청소년대표팀 멤버는 조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뿐이었다.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더구나 이번 청소년대표팀에서 중동에서 경기를 해 본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조감독은 “2년 9개월 만에 가는 중동이었다. 나야 한 번 경험이라도 했지만 선수들은 그렇지 않았다. 때문에 이것저것 준비를 많이 해야 했다”고 말했다.
(SPORTS2.0)
청소년대표팀은 현지 적응을 위해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에 훈련 캠프를 차렸다. 5일 동안 중동 기후에 적응하면서 컨디션을 점검하는 데 주력했다. 대회 개막을 코앞에 두고 있어 훈련 강도는 높지 않았다.
그러면서 프리킥, 코너킥 등 세트피스 훈련에 집중했다. 그런데 훈련 캠프 초반 미드필드의 부분 전술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4-4-2 전형을 쓰는 청소년대표팀은 중앙 미드필더로 구자철과 문기한을 중용했다. 문제는 청소년대표팀과 제주 그리고 서울에서 하는 미드필드의 경기 운영 방식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었다.
제주와 서울은 미드필드의 패스 플레이를 강조하며 두 선수에게 공격적인 임무를 줬다. 청소년대표팀에서는 볼 배급뿐만 아니라 수비 가담 능력도 필요했다.
한 명이 공격에 나서면 다른 한 명이 뒤를 받쳐야 했다. 훈련 시간이 적어 선수들의 전술 이해가 부족했다. 훈련 도중 계속 엇박자를 냈다.
구자철과 문기한, 코칭스태프는 의견을 조율하며 문제점을 해결했다. 최상의 전력을 내기 위한 의견 교환이었다.
구자철은 “청소년대표팀과 소속팀의 미드필드 부분 전술이 좀 달랐다. 하지만 전력에 차질을 빚거나 팀 분위기를 망칠 정도로 큰 문제는 아니었다. 감독님은 말씀을 잘 안 하시는 편이지만 선수들의 의견은 잘 받아주시는 편이다. 두바이 훈련 때도 그랬다”고 말했다.
청소년대표팀은 현지 적응 훈련을 하며 문제점을 하나씩 고쳐 나갔지만 경기력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청소년대표팀은 10월 27일 아부다비에서 가진 호주와의 평가전에서 2-0으로 이겼다. 그러나 경기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공수 균형이 이뤄지지 않은 데다 선수들의 호흡은 여전히 문제투성이였다. 게다가 주전 공격수 조영철이 경기 도중 발목을 심하게 다쳐 사흘 앞으로 다가온 시리아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 출전이 불투명했다.
조영철의 파트너인 김동섭은 사타구니 부상이 완벽하게 낫지 않아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담맘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조감독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미완성
사우디아라비아는 청소년대표팀이 걱정했던 것과 달리 지낼 만했다. 10월말 사우디아라비아의 날씨는 그리 덥지 않았다. 경기가 열리는 담맘과 코바르는 바다에 가까워 시원한 바람이 불기도 했다.
오후 5시 이후에는 쌀쌀하기까지 했다. 장진용 청소년대표팀 주무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사우디아라비아에 도착하니 많이 덥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선선해졌다. 선수단 안에서 중동에 온 것 같지 않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고 전했다.
청소년대표팀은 10월 28일 담맘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한국 식당을 찾았다. 한식을 먹고 싶어 하는 선수들을 위해 코칭스태프가 사기 진작 차원에서 한국 식당을 찾은 것이었다.
청소년대표 선수들은 음식 때문에 애를 먹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건 김치와 김뿐이었다. 코칭스태프는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 위주로 식단을 짰다.
청소년대표팀은 10월 31일 시리아와 조별리그 첫 경기를 가졌다. 객관적인 전력상 한국이 한 수 위였지만 한국은 100% 전력이 아니었다. 조직력이 미흡한 데다 조영철의 발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조감독은 공격수에 김동섭과 최정한(19,연세대)을 내세웠다. 청소년대표팀에서 김동섭과 최정한이 함께 뛴 건 처음이었다.
훈련 때도 두 팀으로 나눠 호흡을 맞췄는데 김동섭의 짝은 늘 조영철이었다. 청소년대표팀은 시리아전에서 고전했다.
첫 경기에 따른 부담감 때문인지 선수들의 몸은 무거웠고 손발도 맞지 않았다. 김동섭과 최정한의 투톱도 위협적인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
청소년대표팀은 답답한 경기 끝에 경기 종료 직전 김영권(18,전주대)의 헤딩 결승골로 시리아를 1-0으로 누르며 힘겹게 승점 3점을 챙겼다. 개운치 않은 승리였다.
시리아전이 불만족스러웠던 조감독은 11월 3일 아랍에미리트연합과의 조별리그 2차전에 조영철을 선발로 내보냈다. 조영철이 투입되면서 청소년대표팀의 공격력은 확실히 살아났다.
조영철(왼쪽)은 발목 부상으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지만 가장 중요한 고비였던 일본전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며 3-0 승리를 이끌었다.(사진 이종일)
김동섭은 전반 28분 구자철의 프리킥을 헤딩골로 연결했다. 조감독은 1-0으로 앞선 후반 43분 조영철을 빼고 수비수 이창호(19,숭실대)를 투입했다. 수비를 두껍게 해 1골 차 승리를 지키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청소년대표팀은 수비 집중력이 흔들리면서 후반 47분 아메드 주나이비에게 프리킥 동점골을 허용한 데 이어 1분 뒤 하빕 파르단에게 역전골을 내주며 1-2로 역전패했다.
김동섭은 “선제골을 넣은 뒤 아랍에미리트연합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선수들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수비수들이 정규시간 동안 아랍에미리트연합의 공세를 잘 막아 냈는데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연히 이길 줄 알았던 경기에서 추가 시간에 2골을 내주며 어이없게 패하자 청소년대표팀의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한국이 8강에 오르기 위해선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인 이라크를 반드시 이겨야 했다. 한국과 이라크는 1승1패에 골득실 차까지 +0으로 같았다.
그러나 이라크(3골)가 다득점에서 한국(2골)에 앞서 비겨도 조별리그 탈락이었다.
구자철은 “조별리그 내내 힘겨운 경기를 펼쳤다. 그렇지만 이라크에 질 것 같다는 생각은 한번도 들지 않았다. 선수들 모두 이라크전 준비를 잘 해 반드시 8강에 오르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8강에 오르면 상대가 일본이라는 사실도 선수들에게 자극이 됐다. 한국이 이라크를 이길 경우 8강전에서 A조 1위와 싸우게 돼 있었다.
일본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A조 1위를 차지하게 돼 있었다. 한국과 이라크의 경기가 시작되기 전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가 1-1로 비겼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조감독은 “일본을 상대하기 위해선 먼저 이라크부터 꺾어야 한다”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청소년대표팀은 김보경(19,홍익대)과 문기한의 연속골로 이라크를 2-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했다.
코칭스태프는 이라크전을 마친 뒤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한국 식당을 다시 찾았다. 그런데 전에 갔던 식당 건물이 노후화돼 전기가 끊긴 탓에 영업을 하지 않았다. 현지 교민을 통해 다른 한국 식당을 알아 냈다.
그런데 거리가 꽤 멀었다. 버스로 1시간 30분이 넘게 걸린 끝에 도착한 한국 식당에서 탕수육, 불고기, 된장국 등을 푸짐하게 먹었다.
선수들은 “정말 맛있다. 맛있는 걸 배불리 먹었으니 다같이 힘을 내 일본전에서 꼭 승리하자”고 입을 모았다.
완승
청소년대표팀 선수들은 대회 기간 내내 일본과 맞붙길 바랐다. 8강전에서 맞붙을 후보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으로 좁혀졌을 때 선수들은 하나같이 일본과의 맞대결을 기대했다.
한일전의 특수성이 있는 데다 9월 15일 센다이컵에서 당한 패배를 설욕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청소년대표팀은 구자철, 조영철, 김동섭 등 주력 선수가 빠졌지만 김승규, 김영권, 최정한, 오봉진, 윤석영(18,광양제철고), 오재석(18,경희대) 등 많은 선수가 센다이컵에 뛰었다.
프로 선수들이 빠진 청소년대표팀은 일본에 0-3으로 졌다. 장진용 주무는 “감독님은 센다이컵 일본전 결과에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선수들은 아니었나 보다. 일본이 8강 상대로 결정된 뒤 선수들의 의지가 더 강해졌다. 팀 분위기도 이라크전과 비교해 180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일본전에 대한 각오는 숙소 생활에서도 나타났다. 청소년대표팀은 시리아, 예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 일본과 같은 숙소에서 묵어 다른 나라 선수들과 자주 부딪쳤다.
6개 팀이 함께 지내다 보니 하루 3차례 식사 때마다 식당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조금만 늦게 가도 음식이 동이 났다.
식단이 정해져 있던 청소년대표팀으로선 식당에 늦게 도착하면 먹을 게 없었다. 구자철은 “식단이 자유로워 치즈 케이크 등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일본 선수들이 부러웠다. 우린 먹고 싶어도 침만 꿀꺽 삼켰는데”라며 “한국 선수들은 조별리그에서 부진해 분위기가 안 좋았는데 일본 선수들은 조별리그에서 이란과 예멘을 4-2, 5-0으로 누르며 자신만만했다. 기고만장한 일본 선수들의 콧대를 꺾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SPORTS2.0)
11월 7일 8강전을 하루 앞두고 한국과 일본 청소년대표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 청소년대표팀에서는 조감독과 주장 구자철이 참석했다.
일본 취재진은 한국 청소년대표팀에 질문 공세를 펼쳤다. 한국이 센다이컵에 베스트 멤버로 출전하지 않은 걸 알고 있던 일본 취재진은 전력이 향상된 한국을 껄끄러운 상대로 여겼다.
구자철은 “일본과 내년 U-20 월드컵 본선 출전권을 놓고 겨루게 돼 흥미롭다. 반드시 이겨 좋은 추억으로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구자철은 일본전 시작 직전까지 선수들과 미팅을 수시로 하며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이튿날 프린스 모하메드 빈 파하드 경기장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8강전. 강한 정신력으로 똘똘 뭉친 청소년대표팀은 조별리그 때처럼 무기력하지 않았다. 경기 시작과 함께 거센 압박과 공격적인 플레이로 일본을 몰아붙였다.
일본은 한국의 기세에 눌려 좀처럼 수비 진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볼을 멀리 걷어 내기에 급급했다.
김동섭은 “J리그에서 활동해 가나이 다카시(요코하마 F 마리노스) 등 일본 선수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일본 선수들은 거칠게 나서면 무기력해진다. 또 밀착 수비를 하지 않아 선수들이 공격하기 편했다”고 말했다.
일본전에서 조영철의 활약이 빛났다. 조영철은 전반 초반 몇 차례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놓쳤지만 전반 21분 왼쪽 측면을 파고들어 날카로운 크로스로 유지노의 선제골을 도왔다.
후반 39분에는 두 번째 골을 터뜨렸다. 조영철은 “발목이 아파 조별리그 내내 제대로 뛰지 못했는데 일본전을 앞두고 발목이 많이 좋아졌다. 골을 넣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진짜 골을 넣었다. 정말 짜릿했다”고 골을 넣은 순간을 기억했다.
일본전 대기 멤버였던 박종우(19,연세대)는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다리를 동동 굴렀고 침을 연신 삼켰다.
박종우는 “(조)영철이가 득점 기회를 많이 놓쳐서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영철이가 두 번째 골을 넣자 그런 생각이 싹 달아났다.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그라운드로 뛰어나가 영철이를 얼싸안으며 기뻐했다”고 말했다.
청소년대표팀은 후반 47분 최정한의 쐐기골을 더해 일본에 3-0으로 이겼다.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일본에 3골 차 이상으로 이긴 건 38년 만이었다.
한국은 1970년 제12회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일본과의 3, 4위전에서 조한흥(2골), 이희성, 김학기, 이차만의 연속 골을 묶어 5-0 승리를 거둔 적이 있다.
청소년대표팀은 일본과의 최근 4차례 맞대결에서 승부차기 패배를 포함해 모두 무릎을 꿇었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10골을 넣었던 일본은 한국을 상대로 이렇다 할 반격조차 펼치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일본이 각급 대표팀 경기에서 한국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며 완패한 경기는 거의 없었다.
경기가 끝난 뒤 일본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일본 축구 팬에겐 한국전 패배는 물론 U-20 월드컵 본선 출전권 획득 실패가 충격이었다. 일본은 1995년 U-20 월드컵 본선에 오른 이후 8회 연속 출전했다.
2001년 대회를 빼고 모두 조별리그를 통과했을 정도로 청소년 무대에서 일본 청소년대표팀은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일본 축구 잡지 〈사커 다이제스트〉는 “마키우치 다쓰야 감독의 지도력과 선수들의 자신감 결여가 패인이었다. 두말할 것도 없는 완패였다”고 보도했다.
조감독은 “일본전은 최고의 경기였다”며 선수들을 칭찬했다. 그리고 깜짝 선물을 했다. 일본전 이틀 전 생일이었던 유지노의 생일 파티를 열었다.
그토록 먹고 싶었던 케이크를 맛볼 수 있었다. 또 매일 오후 9시에 먹는 간식으로 햄버거 30개를 구입해 나눠 줬다.
청소년대표팀 선수들은 그동안 경기력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햄버거를 입에 대지도 못했다. 평소 간식은 바나나와 초콜릿이었다.
몇몇 선수는 오랜만에 먹는 햄버거에 감격스러워했다. 한 선수는 “햄버거가 정말 맛있었다. 양도 한국에 비해 2배였다. 감독님의 배려에 다들 고마워했다”고 말했다.
조동현 감독은 이승렬(사진)을 차출하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사진 이종일)
Again 2007
청소년대표팀은 1차 목표를 이뤘지만 2차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11월 11일 가진 우즈베키스탄과의 준결승에서 0-1로 져 우승의 꿈을 접어야 했다.
경기력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일본전을 정점으로 다시 내리막길을 걸었다. 방심이 낳은 결과였다.
한 선수는 “선수들이 일본전 승리와 U-20 월드컵 본선 출전권 획득으로 풀어져 있었다. 또 우즈베키스탄을 만만하게 여겼다.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조감독은 “정신력에 문제가 있었다. 내가 좀 더 다그쳐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내가 잘못했다”며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는 이제 지나간 일이다. 아쉬움을 빨리 잊고 내년 U-20 월드컵 본선을 목표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U-20 월드컵 본선에 나가는 청소년대표팀을 향한 축구 팬들의 기대는 크다. 2007년 캐나다 대회에 출전한 청소년대표팀이 보여줬던 것 같은 멋진 경기 내용을 바라고 있다.
이청용(20,서울), 이상호(21,울산), 송진형(21,뉴캐슬 제츠) 등이 주축이 된 청소년대표팀은 지난해 U-20 월드컵에서 2무1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브라질, 미국, 폴란드를 상대로 탄탄한 조직력과 수준급의 기술을 펼치며 인상적인 경기를 했다.
특히 빠르고 매끄럽게 돌아가는 공격적인 플레이는 역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FIFA도 “D조에서 가장 인상적인 팀은 한국이었다”고 높게 평가했다. 축구 관계자와 축구 팬들은 “한국 축구의 황금 세대”라며 20세 이하 선수들을 칭찬했다.
이번 청소년대표팀은 자연스레 2년 전 청소년대표팀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청소년대표팀은 이런 비교에 대해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객관적으로 실력 차가 크기 때문이다. 올해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최종 명단에 오른 23명 가운데 10명이 프로 선수다. 그 가운데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뛰는 선수는 구자철과 조영철밖에 없다.
그나마 구자철은 잦은 부상으로 올 시즌 14경기 출전에 그쳤으며 조영철은 요코하마 FC에서 공격수가 아닌 왼쪽 미드필더로 뛰고 있다.
2006년 19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은 20명 가운데 12명이 프로 선수였다. 김응진(21,전남) 정도를 빼고는 거의 모든 선수가 1, 2군을 합쳐 많은 경기에 뛰면서 경험을 쌓았다.
한 축구 관계자는 “프로 선수와 아마추어 선수는 기량 차가 꽤 크다. 상황 대처 능력에서 실력이 확연히 드러난다. 19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은 훈련량이 적은 데다 프로 경험까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청소년대표팀 사령탑도 조감독이었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해 U-20 월드컵을 마친 뒤 뛰어난 경기 내용을 높게 평가해 조감독을 교체하지 않았다.
내년 이집트 대회는 조감독에게 2007년 대회에 이어 두 번째 세계 무대 도전이다. 조감독이 추구하는 경기 스타일은 1년 전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욱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조감독은 “나의 축구 색깔은 변하지 않았다. 지난해 U-20 월드컵처럼 공격적인 축구로 세계적인 팀들과 당당하게 맞설 것이다.
3-5-2 전형에서 4-4-2 전형으로 바꾼 건 수비 자원이 많아서기도 하지만 보다 공격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축구를 펼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조감독은 이어 “이번 청소년대표팀은 소집 기간이 짧아 완벽한 경기를 펼치지 못했다. 일본전에서만 평소 실력이 드러났다. 지난 청소년대표팀에 견줘 아직은 전력이 처지지만 앞으로 조직력을 보완하고 기성용과 이승렬 등 재능 있는 선수들이 가세하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지 모르는 일”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U-20 월드컵에 나서는 조영철의 의지는 특별하다. 조영철은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부상 때문에 펼치지 못했던 기량을 마음껏 뽐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야무진 각오를 밝혔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축구 팬의 기대가 부담스럽진 않다. 특출한 선수는 없지만 선수 개개인이 고르게 기량을 갖추고 있다. 남은 시간 동안 잘 준비하면 이번 청소년대표팀도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선배들처럼 ‘황금 세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