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석동호회 단톡방에서]
[채동석회장님제공]
🤠 세상을 이기는 최고의 지혜...^^
"세상을 이기는 최고의 지혜는 나는 모자라고 조금 못났습니다."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던
배삼룡이라는 코미디언이 있었다.
그가 입은 옷차림부터 웃음이 나왔다.
헐렁한 통바지에 낡은 넥타이로 허리를 질끈 묶고 바지 한쪽은 삐죽이 올라와 있었다.
그는 당황하면 남의 책상 위에 있는 전화기를 들어 헛말을 지껄이기도 하고, 문을 찾지 못해 허둥대는 모습도 보였다. 바보 같은 그 모습에 사람들은 악의 없이 웃었었다.
세월이 흐르고 어느새 그는 구시대의 희극인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개그맨 시대가 왔다. 어느 날 그가 칠십대 중반의 노인이 되어 병원에서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는 모습이 나왔다.
그 무렵 한 기자가 삶의 불꽃이 꺼져가는 그와 인터뷰한 기사가 나온 걸 봤다. 늙고 병들어 있으면서도 그는 아직도 그를 찾는 무대가 있으면 나가서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기자에게 “세상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냥 나는 당신보다 좀 모자라고 생긴 것도 못났습니다! 라는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바보 연기의 요체가 그것이었습니다! 라고 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나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삶의 비결은 상대보다 한 계단 내려가 무릎을 꿇는 자세였다.
칠십 년대 말 나는 군 법무관 시험을 보고 훈련을 받기 위해 광주 보병학교에 입소했었다. 그곳에는 두 종류의 그룹이 합류해 함께 훈련을 받았다.
한 부류는 나같이 고시에 도전하다가 실패하고 차선책으로 법무장교 시험을 보고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십 년이라는 기나긴 복무기간이 앞에 있었다.
다른 한 부류는 고시에 합격하고 짧은 군 복무를 위해 입대한 사람들이었다. 제대를 하면 전원 판사나 검사로 임관이 되고 시간만 흐르면 앞날이 보장되는 사람들이었다.
고시에 합격하지 못한 나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잘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시기심이 있었다. 그런 시기심은 실속 없는 건방짐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중에 독특한 겸손을 지닌 사람이 있었다. 지방대를 나온 그는 얼굴도 미남이 아니고 덩치도 작은 편이었다. 그러나 그는 누구에게나 먼저 다가가 자신을 낮추면서 공손하게 상대방의 훌륭한 점을 인정했다.
그와 같이 전방으로 발령이 나서 이웃 부대에 근무했다. 나는 건방졌다. 계급이 높은 사람을 만나도 ‘나는 나다, 너는 누구냐’라는 식으로 대해 적敵을 늘여갔다.
하지만 그 친구는 달랐다. 사병에게까지 겸손하게 그리고 살 깊게 대해 줬다. 그는 항상 대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당신보다 못난 사람입니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세월이 흘렀다. 동기생 중에서 그가 제일 먼저 장군이 됐다. 그 얼마 후 그의 장군 계급장에는 별 하나가 더 붙었다. 장군이 되어도 그의 태도는 예전과 다름이 없는 것 같았다.
별판이 달린 검은 장군차를 타고 어깨에 번쩍거리는 계급장을 달고 으쓱거릴 만도 한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실패한 동기생들을 보아도 항상 온유하고 겸손하게 대했다.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국제형사재판관이 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유능한 판사들이 차출되어 근무하는 곳이다.
십여 년이 흐르고 그는 육십 대 중반이 되어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다시 그는 국제형사재판관으로 재 추천되어 유럽으로 향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재판관들이 그를 좋아해서 다시 재판관으로 모신 것 같았다.
칠십 고개에 다다른 그는 아직도 열성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 사십여 년 전 함께 군부대에서 훈련을 받던 사람들은 전부 일선에서 물러나 뒷방 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한번 그의 입에서 “나 같은 놈이 성공한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모두 주님의 덕德입니다”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의 성공의 비결인 것이다. 그는 철저히 겸손했다. 위선적 겸손이 아니고, 처세의 겸손이 아니었다. 나는 그의 성공을 보면서 세상을 이기는 가장 무서운 힘이 겸손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동기생인 그의 앞에 마음의 무릎을 꿇는다. 성경 속의 예수는 수건을 허리에 동여매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먼지 묻은 발을 하나하나 씻어주고 말했다.
“너희가 주님, 선생님하고 부르던 내가 너희들의 발을 씻어 주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 같이 너희도 남에게 그렇게 하도록 본本을 보여준 것이다. 너희가 이걸 깨달아 그대로 행行하면 복福을 받을 것이다.”
자세를 낮추고 무릎을 꿇으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세상을 이기는 최고의 지혜가 겸손인 걸 나는 그땐 몰랐다.
( 엄상익 변호사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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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수비(文過遂非)
과오를 그럴듯하게 꾸며대고 잘못된 행위에 순응한다는 뜻으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이리저리 꾸며 합리화하고 잘못된 행동을 계속하는 것을 나타낸다.
(녹각의 교훈)
숲속에서 영역 다툼을 치열하게 벌이던 사슴 두 마리가 있었다.
격렬한 싸움중에 뿔이 뒤엉켜 옴짝달싹할수 없는 지경이 됐지만 자존심 때문에 서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반나절이 지나자 배가 고파진 사슴들은 싸움을 멈추려 했으나 뿔이 뒤엉켜 빠지지 않았다.
굶어 죽게생긴 사슴들은 그제야 뿔을 빼려고 안간힘을 쓰며 협동했지만 엉킨 뿔은 빠지지 않았고 결국 두 마리 사슴은 굶어 죽고 말았다.
수도원의 신부님이 산책을 하다 뿔이 엉켜죽은 두 사슴을 발견하고 엉킨 뿔을 그대로 잘라 수도원에 걸어놓고 누군가 뿔을 보고 물어볼 때마다 두 사슴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서로 힘을 과시하다가 죽은 두 사슴처럼 분노에 눈이멀어
자존심만 내세우는 사람은 상대방도 죽이고 자신도 죽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배려와 양보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뒤엉킨 사슴뿔은 독일의 베벤 하우젠에있는 수도원에 지금도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상대에게 상처를주고 아픔을주는 그런 승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역 싸움에빠져
힘으로 상대를 이겨보려는 욕망은 결국 둘 다 망하는 길임을 깨닫지 못한 두 사슴의
교훈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고있지 않은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서로 배려하고, 서로 양보하며, 서로가 소중함을 알았더라면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무지한 짐승이라 치부하기엔 안타까운 일이기에 되뇌어 봅니다.
과오를 그럴듯하게 꾸며대고 잘못된 행위에 순응한다는 뜻으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이리저리 꾸며 합리화하고 잘못된 행동을 계속하는것을 나타낸다.
공자(孔子)가 제자와 같이 길을 가다가 나무 뒤에서 몰래 똥누는 사람을 발견했다.
공자는 그 사람을 크게 꾸짖었다.
그는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라며 용서를 빌었다.
다시 길을 가다가 이번에는
길 한가운데에서 똥을 누는 남자를 보았다. 그러자 공자는 그냥 지나쳐 버렸다.
의아하게 생각한 제자들이 물었다.
"선생님, 길 한가운데에서 똥을 누는자가 더 나쁜데 왜 그냥 지나치십니까?"
이에 공자가 말하기를,
"숨어서 똥을 누는 사람은 그래도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훈계를 하면 개선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길 한가운데에서 똥을 누는 자는 미친 인간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는 훈계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대한민국은 지금 길 한가운데에서
똥을 누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날뛰고 있다.
즉 수치심이없는 자들이 큰소리를 치고있는 것이다. 공자 말대로 훈계가 안 되는 미친 인간들이다. 미친 인간들은 누구인가?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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