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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東方)의 주류(主流)는, 황인종(黃人種), 몽고족(蒙古族)은?
몽고족(蒙古族)은, 서이(西夷)로 색목인(色目人)이다.
○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行星)인 지구(地球)에서, 인간(人間)은 가장 우월(優越)한 존재(存在)이고, 온 세상(世上)을 지배(支配)하고 있다. 이들 인간집단(人間集團)은 크게 세 부류(部類)로 나눌 수 있는데, 「황인(黃人)·백인(白人)·흑인(黑人)」이다.
유치원(幼稚園) 꼬맹이들도 다 아는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理由)가 뭐냐? 그렇다. 요즘의 유치원(幼稚園) 꼬맹이들도 이 정도(程度)는 안다.
「구라파(歐羅巴)」는, 백인(白人)계열(系列)이 주류(主流)를 이루고,
「아세아(亞細亞)」는, 황인(黃人)계열(系列)이 주류(主流)를 이루고,
「아프리카」는, 흑인(黑人)계열(系列)이 주류(主流)를 이룬다.
대략(大略) 조선사(朝鮮史)가 전개(展開)된 영역(領域), 정벌(征伐)과 교화(敎化)가 미쳤던 곳 등으로 볼 때, 위의 세 경우(境遇)의 외(外)는, 찾기 어렵다고 보아진다. 오늘의 주제(主題)는 몽고인(蒙古人)들의 형상(形相)에 대해서다.
○ 유난히… …왜 필자(筆者)는, 여러 번에 걸쳐, 본시(本是) “몽고족(蒙古族)”의 형상(形相)에 대해 언급(言及)하며, “색목인(色目人)”이라는 주장(主張)을 할까?
소위(所謂) 말하는 고전(古典) 또는 원전(原典), 역사서(歷史書)라고 하는 옛 기록(記錄)에서 말하는 것과 오늘날 사가(史家)들이 설명(說明)하는 것과 너무 큰 차이(差異)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몽고족(蒙古族)에 대한 옛 기록(記錄)과 현대(現代)의 해설(解說)은, 너무 다른 것이다. 이는 분명(分明) 왜곡(歪曲)과 조작(造作)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또 오늘날의 “외몽골” 땅과 관계(關係)가 있는 것이다. “반도(半島) 땅의 7배가 넘는다.”는 “외몽골” 땅은, 바로 옛 조선인(朝鮮人)들의 삶의 터전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려 하는 것이다.
오늘날 그곳에 살고 있는 3백만(百萬)명의 사람들 속에, “옛 몽고인(蒙古人)의 후예(後裔)들이 있을까?” 색목인(色目人)들은 왜 모두 사라진 것일까?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본래(本來)부터 이곳은, 황인계열(黃人系列)의 백성(百姓)들이 토착(土着)했으며, 색목인(色目人)들은, 한 때 구름이 흘러가듯, 잠시 스쳐지나간 것은 아니었을까? 이것으로부터 출발(出發)하는 의문(疑問)이었다.
오늘날의 「외몽골 땅, 이곳은 본래의 몽고(蒙古) 땅이 아니었다.」는 증거(證據)다. 「이곳 ‘몽골’ 땅은, 바로 조선사(朝鮮史) 영역(領域)에 속한 곳일 뿐이다.」라는 것을 주장(主張)하기 위한 것이다. 아래의 옛 기록(記錄)을 보면서, 광활(廣闊)한 “외몽골 땅”을 그려보자.
※ 이런 일련의 주제(主題)의 글은 : 〈오늘날의 “몽골공화국”이나 “몽골국민”들에 대한 비난(非難), 비하(卑下)등을 위한 것들이 아닙니다. 오직 고전(古典) 원문(原文)과 연행기록(燕行記錄)등에 의한 옛 몽고(蒙古) 종족(種族)에 대한 진실(眞實)을 찾고자 함이므로, 상호(相互) 오해(誤解)없기를 바랍니다.〉 참고(參考)로 첨언(添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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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의 ‘몽골(蒙古)공화국(共和國)’은,
인구(人口) : 약 3,122,000명 세계136위(2018 통계청 기준)이며,
면적(面積) : 1,564,116km2 로, 한반도(韓半島)의 약 7.4배 정도 된다.
국가독립일 : 1921.7.11 (소련 적군의 지원으로 청(淸)으로부터 독립)이다.
한반도(韓半島) 면적(面積)의 7.4 배 정도(程度)나 되는 큰 영토(領土)에서, 인구(人口)는 겨우 3백만(百萬)명 정도(程度)가 살고 있으니, 무인지경(無人之境)이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청(淸)으로부터 독립(獨立)할 때인 1,920년대의 ‘몽골’ 인구(人口)는, 겨우 몇 만, 아니 몇 십만(十萬)명은 되었을까? 참 아이러니(irony)한 일이고, 이해(理解)하기 어려운 경우(境遇)다.
【위에서 말하는, 3백만(百萬) 명이란 숫자… … 「십여(十餘)년 전(前) 쯤의 ‘백과사전(百科事典)=백과사전(百科辭典)’등에 “만주(滿洲)”에 관한 것들을 검색(檢索)해 보면 : 20세기 일인(日人)들이 은밀(隱密)하게 방방곡곡(坊坊曲曲)을 다니면서, 인구(人口) 및 ‘광물(鑛物)=지하자원(地下資源)’에 대한 조사(調査)를 진행(進行)했는데, 전체(全體) 인구(人口)가 “3백만(百萬)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광활(廣闊)한 땅에서 살았는데, 대부분(大部分) 무인지경(無人之境)이었다.」 고 하였다.】
이게 “아세아(亞細亞)와 구라파(歐羅巴) 사람들을 공포(恐怖)에 떨게 했다.”는… …오늘날의 러시아(Russia)인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덜덜 떨었다’는 “칭기즈칸(ChingizKhan)”【成吉思汗(鐵木眞) / 1162~1227.8.25. / 재위1206~1227】의 후예(後裔)들이라고?
이들 인종(人種) 및 종족(種族)에 대한 새로운 역사해석(歷史解釋)이 절대적(絶對的)으로 필요(必要)하다고 본다. 역사통설(歷史通說)에서는,
(1) 몽골[Mongolia, 蒙古] / 두산백과
《아시아의 중앙 내륙에 있는 국가이다. 13세기 초 칭기즈 칸이 등장해 역사 상 최대의 몽골 대제국을 건설했으며, 동서 여러 국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몽골제국이 멸망하고 남은 내륙 중앙부가 1688년 청(淸)에 복속되어 ‘외몽골’로 불렸다. 1911년 제1차 혁명을 일으켜 자치를 인정받았으나, 1920년 철폐되었고, 러시아의 10월 혁명에 영향을 받아, 1921년 제2차 혁명을 일으켜 독립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몽골 [Mongolia, 蒙古] (두산백과)》
(2) 몽골의 주민 / 두산백과
《민족 분포를 보면 「할하 몽골족(族)이 94.9%를 차지」하는데, 북부지역에 부리야트, 서부에 바야드·도르보드·다하틴·토르구트·오르도드·미앙가드 다르하드, 동부에 다리강가·우제무틴 등 다양한 부족으로 나뉘어진다. 언어적으로 몽골어계통이 인구의 90%를 차지하고, 이밖에 서부지역에 투르크 언어계통의 울란하이·호튼·카자흐족이 살고 있다. 공용어는 할하 몽골어인데 소수민족 중 인구가 가장 많은 카자흐족이 사는 일부 서부지역에서는 카자흐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문자는 위구르문자를 바탕으로 한 구문자(몽골문자)를 한 때 사용하였지만 1941년부터 러시아문자(키릴문자)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종교는 라마교(90%), 이슬람교(5%)(2013년)이다. 인구 1000명당 출생률이 21.07 명으로 높고 사망률이 6.21명으로 낮지만 유아사망률이 42.65명으로 대단히 높다(2007년 추산) [네이버 지식백과] 몽골의 주민 (두산백과)》
(3) 몽골은, 인구(人口) 약 3,122,000명 세계136위(2018 통계청 기준)이며, 면적(面積)이 1,564,116km2 로, 한반도(韓半島)의 약 7.4배 정도 된다. 국가독립일: 1921.7.11 (소련 적군과 연합하여 중국으로부터 독립)이라고 한다. (인용/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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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의 「몽골공화국」을 이루고 있는, 주류(主流) 종족(種族)들의 형상(形相)을 보면 : 대부분(大部分) 황인종(黃人種)이며, 우리와 특별히 다를 바 없는, 몽고(蒙古)반점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종족(種族)이다.
몽고반점(蒙古斑點 : Mongolian spot) : 〈갓난아이의 엉덩이에 멍든 것처럼 퍼렇게 돼 있는 얼룩점으로, 몽고 인종에게서 흔히 발견돼 붙은 명칭이다. 동아시아인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푸른 반점으로 우리나라 신생아의 엉덩이 등에서 흔히 관찰된다. 한편 몽골계 아시아인에게서 몽고반점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멜라닌 세포가 백인보다 많기 때문이다. 한국 어린이의 경우 90% 이상에서 나타나고, 유럽 인종은 약 5% 정도에서 몽고반점이 보인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몽고반점 (시사상식사전, 박문각)〉고 설명하는 것을 보면,
몽골계 아세아(亞細亞)인에게 많이 나타나는 반점(斑點)이란 것을 알 수 있고, 구라파(歐羅巴)등의 서양(西洋)인에게는 극히 소수(小數) 또는 예외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위에서 말하는, 여러 역사해설(歷史解說)은, 오늘날의 “몽골공화국”을 말하는 것이지만, 인종적(人種的)으로 보면,「옛 “몽고(蒙古)”의 후예(後裔)나 후인(後人)도 아니요, 또한 연결성(連結性)도 없다.」
〈몽고족(蒙古族)〉 은,
〈돌궐(突厥)이 ‘에프탈족【Ephthalites : 嚈噠=엽달(擫噠)】’을 깨뜨리자 위협(威脅)을 느낀 ‘글란(契丹)’무리들은, 동(東)쪽으로 도주(逃走)하였다.〉고 하였다. 여기서 엽달(擫噠)이란 종족(種族)은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아랄 해(Aral 海)” 남(南)쪽에 있었다.
당시(當時) 돌궐(突厥)은, 흑해(黑海)로부터 ‘카스피 해(Caspi 海)’ 주변(周邊)에서, 동(東)쪽의 엽달(擫噠)을 공격하니, 엽달(擫噠) 주변에 있던 “글란(契丹)”은 그 위세(威勢)에 위협(威脅)을 느끼고, 곧장 동(東)쪽인 발하슈 호(湖) 북방지대(北方地帶)로 도주(逃走)하게 된다.
이때 글란(契丹)의 무리(衆) 일부(一部)는, 돌궐(突厥)의 노예(奴隸)가 되고, 일부 부락(部落) 일만(一萬)여가 고구려(高句驪)에 피신(避身), 의탁(依託)하게 되고, 일부(一部)는 여기저기 흩어져버렸는데, 〈여기에는 소부락(小部落)으로, 글란(契丹)에 기대어 살아가던 몽고족(蒙古族)도 있었다.〉 이때 글란(契丹)에 기대어 살던 소부락(小部落) “몽고족(蒙古族)”들이 바로 역사서(歷史書)에 등장(登場)하는 본래(本來)의 몽고족(蒙古族)이다.
글란(契丹)에 속한 소부락(小部落)으로, 글란(契丹)에게 부역(賦役)하며, 살던 몽고족(蒙古族)들에 대한 “후대(後代)의 기록(記錄)” 은,
➊ “라시드”의 “집사”에서 : 〈칭기스칸=철목진:(鐵木眞)의 아버지(父)는, 파란 눈(靑眼)을 가졌는데, 그의 후손(後孫)들도 마찬가지였다.〉 고 하였고,
➋ 청(淸)나라 사람 위원(魏源)이 1,847년-1,852년에 걸쳐 완간한 〈해국도지(海國圖志)에도, 몽고족(蒙古族)은 청안(靑眼)을 가졌다.〉고 하였으며,
➌ 신원사(新元史) 서기(序紀)에서는 :〈新元史.本紀第一.序紀:蒙古之先,出於突厥.中略.孛兒只斤.突厥語譯義灰色目睛,蒙古以灰睛爲貴種也. : 신원사(新元史) 본기(本紀)제1,서기(序紀) : 몽고(蒙古)의 조상(祖上)은, 돌궐(突厥)에서 나왔다. 중략(中略). 패아지근(孛兒只斤)이란, 돌궐(突厥)의 말로 통역하면 그 뜻은 회색(灰色)목정(目睛)을 뜻하는바, 몽고(蒙古)에서는 회색(灰色) 눈동자(目睛)는 귀한 혈통(血統)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회색(灰色)눈동자(目睛)를 가진 자(者)들은, 귀종(貴種)”이라고 하였다.
○ 위의 글에서 본 바와 같이(➊+➋+➌), 역사서(歷史書)에서 말하는 “몽고족(蒙古族)”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날의 “몽골공화국” 국민(國民)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 색목인(色目人)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事實)이다.
조작(造作)되기 이전(以前)의 세계사(世界史)는, 곧 조선사(朝鮮史)다.
역사서(歷史書)에 기록(記錄)된 몽고족(蒙古族)의 주류(主流)는, 아세아(亞細亞)계 황인종(黃人種)이 아니다. 옛 오손(烏孫)과 같고, 오늘날의 러시아(Russia)계 인종(人種)과 매우 유사(類似)한 종족(種族)이, “본래(本來)의 몽고족(蒙古族)”이라고 말한다.
‘칭기즈칸’의 원(元)나라는, 일시적(一時的)으로 그 땅(몽골)을 지배했을 뿐, 본래(本來)의 그 땅은, 조선왕조(朝鮮王朝)의 것이었으며, 원(元)이 망(亡)하고 난 뒤, 고려(高麗)가 수복(收復)한 땅이며, 그 뒤로 근대조선(近代朝鮮)의 땅이었기도 했다. 그래서 중요(重要)하다는 것이다.
본래(本來)의 몽고인(蒙古人)들의 형상(形相)에 대해 다시 한 번 알아보기로 하자. 〈이들 본시(本是)의 몽고족(蒙古族)들은, 오늘날의 ‘몽골공화국’ 국민(國民)들과는 전혀 다른 색목인(色目人)들이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하고도 남는다.
● 그러나 또한, 누구도 이를 말하려 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말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몽고족(蒙古族)의 형상(形相)을 말한 기록(記錄)을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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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행기록(燕行記錄)으로 보는 몽고인(蒙古人)의 형상(形相)
연행기(燕行記)보다 더 정확(正確)하게, 종족(種族)의 형상(形相)에 대해 기록(記錄)한 사서(史書)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실제(實題)로 보고, 기록(記錄)한 여행기(旅行記)이기 때문이다. 저자(著者)가 실제(實題)로 보고 적은 것이니, 당연(當然)한 이야기일 것이다.
➊ 열하일기(熱河日記) /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선생(1737~1805) : 《그는 정조(正祖) 4년, 곧 1,780년에 그의 삼종형(三從兄) 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의 수행원(隨行員)으로, 청(淸) 고종(高宗)의 70수를 축하하기 위하여 중국에 들어가, 성경(盛京)ㆍ북평(北平)ㆍ열하(熱河) 등지를 역람(歷覽)하고 돌아와서 이 책을 엮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성경잡지(盛京雜識) 4년 경자(庚子) 가을 7월 10일 병술(丙戌) : 蒙古人 :《蒙古人의 特徵 : 皆 鼻 高 目 深 : 모두 코는 높고, 눈은 깊다.》
〈모두 코는 높고, 눈은 깊다 : 皆 鼻 高 目 深〉 이러한 인종(人種) 또는 형상(形相)은, 오늘날의 외몽골이나 동양인(東洋人)의 모습이 결코 아니다. 전형적인 중앙(中央)아세아(亞細亞) 및 동(東)구라파(歐羅巴) 인종(人種)의 모습을 말해준다.
이건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직접보고 기록(記錄)한 것이다. 「“당시(當時)의 몽고인(蒙古人)”과 “오늘날의 ‘몽골’ 국민(國民)”들과는 전혀 다른 인종(人種)이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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➋ 연행기사(燕行記事) / 이조판서(吏曹判書) 이갑(李坤) : 1,777년
연행기사(燕行記事) 이갑(李坤) : 1,777년 문견잡기(聞見雜記) / [잡기(雜記)] 하【이조판서(吏曹判書)이갑(李坤)【영조(英祖)13년(1,737)∼정조(正祖)19년(1,795)】정유년(1,777, 正祖 1) 7월에 출발(出發)하였다고 하였다.】 이 분의 기록(記錄) 역시 직접(直接) 보고, 듣고 한 것이다.
蒙古族 :《其爲人與淸人自別.兩顴高.眼碧髥紫.皆悍惡麤健.不思室居. : 몽고인은 청인과는 아주 다르게 생겼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이 푸르며 수염이 붉다. 그리고 모두 사납고 거칠며 집에서 살지 않는다. 雖極寒之時.只設帳於車上而宿於道路.朝乃拂雪而起.飢則只噉駱肉.又與狗同器而食.中略. : 아주 추운 때라도 단지 수레 위에 장막을 치고 길에서 자며 아침에는 눈을 털고 일어난다. 배가 고프면 다만 낙타의 고기를 먹을 뿐이고 또 개와 한 그릇에 먹는다. 중략(中略).》고 하였는데,
몽고족(蒙古族)의 특징(特徵)은 : 〈兩 顴 高. 眼 碧 髥 紫 :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이 푸르며 수염이 붉다.〉 는 것이다.
이들과 똑같은 형상(形相)을 가진 자(者)들은 누굴까?
➋ -1) 통전(通典), 전한서(前漢書) : 오손(烏孫)이다. 곧 《烏孫於西域諸戎其形最異.今之胡人,青眼赤髭鬢,狀類彌猴者,本其種也. : 오손(烏孫)은 서역(西域)의 여러 융(戎 : 오랑캐. 되) 중에서 그 형상이 가장 기이(奇異)하다. 지금의 호인(오랑캐 사람. 되놈)이다. 청안(靑眼 : 푸른 눈동자)과 콧수염(髭)과 구레나룻(鬢)이 붉은 색이며, 형상(용모)이 원숭이(獼猴 : 미후) 종류와 같은데, 본시 그런 종족이다.》라고 하였으니,
➋ -2) 연행기사(燕行記事) / 이조판서(吏曹判書) 이갑(李坤) 동서(同書) :《大鼻㺚子.卽鄂羅斯.蒙古之別種.國在於沙漠外絶遠之地. : 대비달자(大鼻韃子)는 곧 아라사[鄂羅斯]인데, 몽고(蒙古)의 별종(別種)으로 나라가 사막(沙漠) 바깥 지극히 먼 땅에 있다. 其人身長.軀殼壯健.狀貌極凶悍獰惡.眼碧顴高.鼻隆如拳.紫髥鬱密. : 그들은 키가 크고 몸이 건장(健壯)하여 상모가 극히 흉한(凶悍) 영악(獰惡)하다. 눈은 푸르고 광대뼈가 튀어나왔으며 코가 주먹같이 높고 붉은 수염이 텁수룩하게 났다.》고 하였다.
위의 글을 보면 : 〈오손(烏孫)=몽고족(蒙古族)=대비달자(大鼻㺚子)등의 종족(種族)의 형상(形相)이 똑같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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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송막기문(松漠紀聞) 홍호(洪皓) / 황두여진(黃頭女眞)·황두실위(黃頭室韋)
《髭 髮 皆 黃, 目 精 多 綠 亦 黃 而 白 多 : 머리털과 코밑수염이 모두 누렇고(黃), 눈동자는 녹색(綠色)이 많고, 또한 누렇고 흰색도 많다.》하였다.
황두(黃頭)생여진(生女眞)이라는, 황두여진(黃頭女眞)은, 《髭 髮 皆 黃, 目 精 多 綠 亦 黃 而 白 多 : 머리털과 코밑수염이 모두 누렇고(黃), 눈동자는 녹색(綠色)이 많고, 또한 누렇고 흰색도 많다.》고 표현(表現)하고 있는, 이 종족(種族)은 어디에 있었을까? 이들의 후예(後裔) 또는 후손(後孫)들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황두실위(黃頭室韋)라고 기록(記錄)한 사서(史書)도 있음.】
이들 색목인(色目人)들은, 혼혈(混血) 곧 다른 인종(人種)이나 종족(種族)과의 결합(結合)으로, 유전적(遺傳的) 요소(要素)가 몽땅 사라져 버릴 것일까? 또 달리 생각해 보면, 유전적(遺傳的)인 요소(要素)는 “황두 여진(黃頭女眞)”의 것만이 도태(淘汰)될 수는 없는 것이며, 황두여진(黃頭女眞)의 유전적(遺傳的) 요소(要素)가 우성(優性)으로 살아남아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중원(中原)땅이나, 대륙(大陸)의 서(西)쪽 중앙아세아(中央亞細亞)지방에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카스피(Caspian海) 서(西)쪽 지방에, 우랄산맥(Ural山脈) 서(西)쪽 지대(地帶)에, 이들과 아주 유사(類似)한 종족(種族)들이 주류(主流)를 이루고 살고 있다.」는 사실(事實)이다.
● 황두여진(黃頭女眞)·황두실위(黃頭室韋)등 역시(亦是),〈오손(烏孫)=몽고족(蒙古族)=대비달자(大鼻㺚子)등의 종족(種族)의 형상(形相)과 똑같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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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연경재전집외집(硏經齋全集外集) 卷 五十九 / 筆記類 / 蘭室譚叢(난실담총) : 鄂羅斯【저자(著者) : 성해응(成海應) 1760년(영조 36) : 1839년(헌종 5)】
《鄂羅斯 : 今蒙古以西居胡南鄂羅斯.意唐書所謂點戛斯也.其種皆赤髮.晢面綠瞳.甞見金人所錄.黃頭女眞皆山居.號合蘓館女眞.黃頭女眞.意卽鄂羅斯也.中略. : 악라사(鄂羅斯) : 몽고(蒙古)의 서(西)쪽 오랑캐 남쪽에 악라사(鄂羅斯)가 살고 있는데, 당서(唐書)에서 말하는 이른바 점알사(點戛斯)이다. 그 부족(部族)은 모두 붉은 머리털이고, 얼굴은 밝고 초록 눈동자(綠瞳)이다. 일찍이 금인소록(金人所錄)에서 본 황두여진(黃頭女眞)은 모두 산(山)에서 사는데, 합소관(合蘇館)여진(女眞)이라 일컫는다. 황두여진(黃頭女眞)은, 곧 악라사(鄂羅斯)이다. 중략(中略).》라고 하였다.
이들은 “인종적(人種的)으로 똑같은 자(者)”들이란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들의 정체(正體)가 풀리는 것이다. 〈몽고(蒙古)의 서(西)쪽에 악라사(鄂羅斯)가 있는데, 황두여진(黃頭女眞)은, 곧 악라사(鄂羅斯)이다.〉란 이야기다.
해국도지(海國圖志) 56 北洋俄羅斯國沿革 :《唐時有黠戛斯、骨利幹等國 / 職方外紀 : 亞細亞,西北之盡境,有大國曰莫哥斯未亞(即鄂羅斯也)中略. : 당(唐)나라 때의 힐알사(黠戛斯), 골리간(骨利幹)등의 나라이다. / 직방외기(職方外紀) : 아세아(亞細亞)의 서북(西北)쪽의 끝나는 지경에, 대국이 있는데 막가사미아(莫哥斯未亞)이다. (즉(卽) 악라사(鄂羅斯)이다.). 중략(中略)》
연행록(燕行錄) / 심전고 제2권 유관잡록(留館雜錄) 악라사관기(鄂羅斯館記) : 악라사(鄂羅斯)란 또한 이름을 대비달자국(大鼻㺚子國)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 3 - 석전류 2 석전잡설(釋典雜說) : 악라사국은 북극(北極) 가까이 위치하여 있다.
●《“악라사(鄂羅斯)=점알사(點戛斯)=골리간(骨利幹)=막가사미아(莫哥斯未亞)=대비달자(大鼻㺚子)”는, 똑같은 나라이다. 왕조(王朝)에 따라 서로 다르게 불렀던 이름인데, 이들은 곧 황두여진(黃頭女眞)=황두실위(黃頭室韋)이다.》 또한〈오손(烏孫)=몽고족(蒙古族)과 그 형상(形相)이 똑같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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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당회요(唐會要) / 烏護
《烏護.紇骨子.其契弊即契苾也.烏護則烏紇也.後為迴鶻.其紇骨即紇扢斯也.由是而言. : 오호(烏護)는 흘골자(紇骨子)다, 그것은 글폐(契弊) 곧 글필(契苾)이다. 오호(烏護)는 오흘(烏紇)이다. 뒤의 회골(迴鶻)인데, 그 흘골(紇骨)은 곧 흘흘사(紇扢斯)이다. 蓋鐵勒之種.嘗以稱迴鶻矣.其轉為黠戛斯者.蓋夷音有緩急.即傳譯語不同.其或稱戛戛斯者.語急而然耳. : 철륵(鐵勒)의 종류(種類)이다. 일찍이 회골(迴鶻)이라 불렸다. 그것은 전음이 되어 힐알사(黠戛斯)인데, 오랑캐 음의 느림과 빠름으로 인한 것이다. 그것은 혹 알알사(戛戛斯)라고 부르는데, 말의 급함이 그렇게 된 것이다. 訪於譯史云.黠戛是黃頭赤面義.中略. : 이곳을 방문(訪問)한 통역(通譯)자의 기록(記錄)에서 이르기를 : 힐알(黠戛)【힐알사(黠戞斯)】은, 금발머리(黃頭)에 붉은 얼굴을 가졌다.》고 하였다.
「오호(烏護)➠오흘(烏紇)➠회골(迴鶻)➠흘골(紇骨)➠흘흘사(紇扢斯)➠흘골자(紇骨子)➠글폐(契弊)➠글필(契苾)」등으로 불렸는데, 철륵(鐵勒)의 한 종류(種類)로, 회골(迴鶻)이라고 하였는데, 전음(轉音)이 되어, 힐알사(黠戛斯)로, 다시 알알사(戛戛斯), 힐알(黠戛)이라 하는데, 이들의 형상(形相)은, “금발머리에 붉은 얼굴이다.(黃頭赤面義)”라고 하였다.
철륵(鐵勒)의 한 종류(種類)인 회골(迴鶻)은, 장안으로부터 16,900 리 떨어져 있다고 하였고, 곧 힐알사(黠戛斯)이다. 힐알사(黠戛斯)는 또 해국도지(海國圖志)에서 말하는 악라사(鄂羅斯)이다. 악라사(鄂羅斯)는, 대비달자국(大鼻㺚子國)이다. 이들은 아세아(亞細亞)의 서북(西北) 끝나는 지경에 있다(亞 細 亞, 西 北 之 盡 境)고 하였다.
● 이들 모두의 종족(種族)의 형상(形相)에 대해 말하기를 :〈금발머리(黃頭)에 붉은 얼굴을 가졌다.〉고 하였다. 또한〈오손(烏孫)=몽고족(蒙古族)과 그 형상(形相)이 똑같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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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海國圖志 /《按:唐時堅昆在西,骨利幹在東,皆今俄羅斯南境,今其人多赤發皙麵,綠瞳,蓋堅昆裔也. : 안(按) : 당(唐)나라 때의 견곤(堅昆)은 서(西)쪽에 있고, 골리간(骨利幹)은 동(東)쪽에 있었는데, 모두 지금 아라사(俄羅斯)의 남(南)쪽지경이며, 그 사람들은 붉은 머리가 많고 뚜렷한 윤곽과 녹색 눈동자(綠瞳)인데, 대개 견곤(堅昆)의 후손(裔)들이다.》
견곤(堅昆)과 골리간(骨利幹) 역시(亦是), 붉은 머리가 많고 뚜렷한 윤곽과 녹색 눈동자(綠瞳)를 가지고 있다【今其人多赤發皙麵,綠瞳,蓋堅昆裔也】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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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通典 邊防傳 / 結骨 :《結骨在迴紇西北三千里.勝兵八萬.其國南阻貪漫山.多林木,夏沮洳,冬積雪,往來險阻,有水從迴紇北流踰山經其國. : 결골(結骨)은 회흘(迴紇)의 서북(西北)쪽 3천리(千里)에 있다. 뛰어난 병사 8만이 있다. 그 나라의 남쪽은 험한 탐만산(貪漫山)인데, 임목(林木)이 많다. 여름에는 물에 잠기고, 겨울에는 눈이 쌓여, 왕래가 험하고 위태롭다. 물은 회흘(回紇) 북쪽을 따라 흘러 넘쳐 그 나라의 산을 지나간다. 人並依山而居,身悉長大,赤色,朱髮綠睛.有黑髮者,以為不祥.中略. : 사람들은 산(山)에 의지하여 사는데, 신체(身體)는 모두 장대(長大)하고, 붉은 빛이고(赤色), 붉은 머리털(朱髮)을 가졌고, 눈동자는 녹색(綠睛)이다. 흑발(黑髮)을 가진 자도 있는데, 이 자들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중략(中略).》고 하였다.
(6) -1) 唐會要【송(宋) 왕부(王溥) A. D 961】結骨國 /《結骨在迴紇西北三千里.勝兵八萬.口數十萬. : 결골국(結骨國) / 결골(結骨)은 회흘(迴紇) 서북(西北) 삼천리(三千里)에 있다. 뛰어난 병사가 8만이며, 수십만(數十萬)의 백성(百姓)들이 있다. 南阻貪漫山.有水從迴紇北流.踰山經其國.人並依水而居. : 남쪽에 험한 탐만산(貪漫山)이, 회흘(迴紇)의 북쪽으로 흘러가는데, 그 나라의 산을 지나간다. 사람들은 나란히 물에 의지하여 산다. 身悉長大.皙面綠睛朱髮.有黑髮以為不祥.人皆勁勇.鄰國憚之.其大與突厥同. : 사람들의 신체(身體)는 모두 장대(長大)하며, 얼굴이 희고 녹안(綠眼)이며 붉은 머리털이다. 검은 머리를 가진 자도 있으나 자세하게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모두 굳세고 용감하여, 이웃나라가 꺼려한다. 그들은 크게 돌궐(突闕)과 같다.》고 하였다.
(6) -2) 海國圖志 / 俄羅斯國 :《直回紇西北三千裏,南依貪漫山地,夏沮洳,冬積雪,人皆長大,赤發,皙麵,綠瞳,以黑發為不祥,黑瞳者必曰陵苗裔也.男少女多,俗趫伉,氣多寒,雖大禾亦半,禾稼有禾粟,大小麥,青稷穄. : 곧바로 회흘(回紇)서북(西北)삼천(三千)리이며, 남(南)쪽 탐만산(貪漫山)땅에 의지하였는데, 여름(夏)에는 축축하고, 겨울에는 눈이 쌓이며, 사람들은 모두 장대(長大)하고, 붉은 머리에, 윤곽은 확실하고, 초록눈동자(綠瞳)이며, 검정머리털을 가진 자는 자세하지 않은데, 검은 눈동자를 가진 자들은 틀림없이 “이능(李陵)”의 후손들이다. 남자는 적고, 여자는 많은데, 재빠르고 굳세며(趫伉), 기후는 추운 곳이 많아, 큰 벼(嘉禾)는 많을 지라도 또 절반정도며, 큰 벼를 심고 큰 조도 있으며, 크고 작은 보리, 청기장과 검은 기장도 있다.》
「결골(結骨)은 결골국(結骨國)이며, 아라사국(鵝羅斯國)」이다. 이들에 대한 역사(歷史) 기록(記錄)은 하나 같이 똑같다. : “회흘(迴紇) 서북(西北) 3천리(千里)에 있다.”고 하였다. 회흘(迴紇)은 장안(長安)으로부터 16,900 리 떨어져 있다 하였고, 결골(結骨)은, 회흘(迴紇) 서북(西北) 3천리(千里)에 있다하였으니, 결국(結局)「장안(長安) 서북방(西北方) 19,900 리에 있었다.」라는 이야기다.
● 이들 종족(種族) 역시도 〈얼굴은 붉은 빛이고(赤色), 붉은 머리털(朱髮)을 가졌고, 눈동자는 녹색(綠睛)이었다.〉고 하였으니, 위의 글 (1)+(2)+(3)+(4)+(5)에서 말하는 것과 똑같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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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騮馬國 :《其北有騮馬國.鄰北海.畜騮馬而不乘.但取其酪充飧而已.貌類結骨. : 그 나라(결골:結骨)의 북쪽에 류마국(騮馬國)이 있는데, 북해(北海)와 이웃하고 있다. 류마【騮馬 : 말의 털이 붉은 빛이고, 갈기는 검은 말을 말한다.】는 가축으로 타지 않는다. 다만 그 타락(유즙)을 얻어 저녁밥으로 채운다. 얼굴은 결골(結骨)무리이다. 安西都護蓋嘉運撰西域記云.堅昆國人皆赤髮綠睛.其有黑髮黑睛者.則李陵之後.故其人稱是都尉苗裔. : 안서(安西)도호(都護) 개가운(蓋嘉運?)이 지은 서역기(西域記)에서 이르기를, 견곤국(堅昆國)사람들은 모두 붉은 머리털에 푸른 눈동자(碧眼 : 綠睛)이다. 그 중에서 검은 머리털과 검은 눈동자를 가진 자가 있는데, 곧 이릉【李陵 : 전한(前漢)의 기도위(騎都尉)로, 흉노(匈奴)에게 항복(降伏)해, 선우(單于)의 사위가 되어 우현왕(右賢王)이 되었다.】의 후예(後裔)인데, 고로 이 사람들을 도위(都尉)의 후예(後裔)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위의 여러 기록(記錄)들을 살펴보면 : 〈오늘날의 카스피 해(Caspian 海)와 우랄산맥(Ural 山脈) 서(西)쪽에 있는 부족(部族)과 종족(種族)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은 모두 색목인(色目人)들이다. 이게 우연(偶然)의 일치(一致)일까? 결코 우연(偶然)의 일치(一致)일 수 없는,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이다.
● 여기서 간혹(間或),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를 가진 자(者)”들이 있었는데, 이 자(者)들은 “전한(前漢) 이릉(李陵)의 후예(後裔)들이다.” 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이야기는. 「당시(當時)나 지금(只今)이나 동방(東方)에는,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를 가진 자(者)들이 주류(主流)를 이루고 살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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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손(烏孫)=몽고(蒙古)=견곤(堅昆)=결골(結骨)=골리간(骨利幹)=류마국(騮馬國)=회골(回鶻)=힐알사(黠戛斯)=아라사(鵝羅斯) 및 황두여진(黃頭女眞)〉등의 종족(種族)과 부족(部族)의 형상(形相)은 대체적으로 같았다는 이야기다.
이들의 인종적(人種的) 특색(特色)은, 「身 悉 長 大. 皙 面 綠 睛 朱 髮 : 사람들의 신체(身體)는 모두 장대(長大)하며, 얼굴이 희고 녹안(綠眼)이며 붉은 머리털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堅 昆 國 人 皆 赤 髮 綠 睛 : 견곤국(堅昆國)사람들은 모두 붉은 머리털에 푸른 눈동자(碧眼 : 綠睛)이다.」》라고 하였는데,
전한서(前漢書), 통전(通典), 당회요(唐會要), 해국도지(海國圖志)등에서 말하는 대표적(代表的) 색목인(色目人)들이며,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이들은, 「카스피 해(Caspian 海) 서(西)쪽과 우랄산맥(Ural) 서(西)쪽이 거점지(據點地)였다.」는 사실(史實)이다.
이러한 곳은, 장안(長安)으로부터 16,900 리 또는 19,900리라는 숫자와도 같은 맥락(脈絡)으로, 「카스피해(Caspian海) 서(西)쪽과 우랄산맥(Ural山脈) 서(西)쪽 지방(地方)으로, 스칸디나비아반도(Scandinavia 半島), 독일(獨逸, Germany) 땅까지에 이른다.」
이런 사서(史書)의 기록(記錄)을 어떻게 이해(理解)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것은, 각 자(者)의 사고력(思考力)과 전향적(轉向的)인 자세(姿勢)에 관한 문제(問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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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기록(記錄)으로부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당시(當時)의 동방(東方)【동역(東域)=진역(震域)=진단(震旦)】 땅에는, “검은 머리털과 검은 눈동자【黑 髮 黑 睛】를 가진 자(者)들이 주류(主流)를 이루고 살았다.”》는 이야기다. 이걸 증명(證明)하려 많은 시간(時間)을 소비(消費)하고 있는 것이다.
또 “전한(前漢)시대(時代)에, 기도위(騎都尉) 이릉(李陵)과 격돌(激突)한 흉노(匈奴)들은, 색목인(色目人)이었다.” 는 이야기로 비화(飛火)된다. 왜냐하면 :
전한(前漢) 무제(武帝)때 “기도위(騎都尉)”로 거연새(居延塞)에 주둔(駐屯)하고 있다가 흉노(匈奴) 선우(單于)를 치기 위해 “거연새(居延塞)”를 나와 서북(西北) 수천(數千)리에서, 선우(單于) 군대(軍隊)와 접전(接戰)을 벌이다, 후원군(後援軍)의 지원(支援)이 없어 기진맥진(氣盡脈盡), 포위(包圍)되어 항복(降伏)한 “이릉(李陵)”은, “선우(單于) 사위(婿)”가 되어, 흉노(匈奴) 땅에서 살다가 죽었는데, 「黑 髮 黑 睛 : 검은 머리털과 검은 눈동자」를 가진 소수(少數) 무리들이 있었는데, 바로 “이릉(李陵)의 자식(子息)들, 곧 후손(後孫)들”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 이들은 주류(主流)가 아닌 비주류(非主流) 곧 소수민족(少數民族)이었다는 거다. 그렇다면 주류(主流)는 누구였느냐? 바로 색목인(色目人)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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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천(數千)년 변함이 없는 것은, 땅(地)과 인간(人間) 무리들이다. 그 땅(地)에 살고 있는 종족(種族)이나 인종(人種)들은 크게 변함이 없다. ‘전한(前漢)=서한(西漢)’시절(時節)은, 기원전(紀元前:BC) 200년 경(頃) 부터로, 이때부터 21세기 지금(只今)까지 “2,300년(年)”이란 오랜 세월(歲月)이 지났으나, 그 때 살았던 땅(地)이나, 그 땅위에서 살았던 인간(人間)무리나 크게 변함이 없다는 이야기다.
산(山)과 강(江)이, 호수(湖水)가, 바다(海)가, 산맥(山脈)이, 사계절(四季節)이니 아열대기후(亞熱帶氣候)니 하는, 자연환경(自然環境)이 크게 변한 것은 없다는 뜻과 같다.
「변했다」는 것은 소수(小數)의 인간(人間)들이 정치적(政治的) 목적(目的)이나 야욕(野慾)으로, 인간사(人間事)를 왜곡(歪曲)하고, 조작(造作)한 것뿐이다.
○ 역사서(歷史書)의 표현(表現)을 빌리자면 :
《「총령(葱嶺)=곤륜산(崑崙山)=불주산(不周山)」의 동(東)쪽 땅, 「동방(東方)에는 구이(九夷)들이 토착민(土着民)으로 살았다.」 이들은 오늘날 우리와 똑같은 황인종(黃人種)이 주류(主流)를 이루고 살았다.》
그렇다면 “한족(漢族)”이란 뭐냐?
「한족(漢族)은 남방(南方)계로 분류(分類)되어있다」는 것을 눈여겨 볼 필요(必要)가 있다. ➨ 한족(漢族)은. 티베트(Tibet)족, 타이(Thai)족, 미얀마(Myanmar)족과 같은 남방(南方)과 서남방(西南方)의 소수민족(少數民族)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백과사전(百科事典)에도 나오는 말이다.
이런 소수민족(少數民族)이 중원(中原) 대륙(大陸)의 주인(主人)이었다는 말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곧 중원(中原) 대륙(大陸)의 토착민(土着民)들은 한족(漢族)이 아니었다는 증거(證據)이며, 「이곳의 토착민(土着民)은 동방(東方)의 구이(九夷)였다」는 거다. 더불어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의 광활(廣闊)한 사막(沙漠)과 초원지대(草原地帶)를 이루고 있었던 내몽고(內蒙古) 및 외몽고(外蒙古) 땅 또한 구이(九夷)들의 활동무대(活動舞臺)였다는 거다.
이러한 이야기는, 사기(史記)로부터 전후(前後)한서(漢書), 통전(通典), 자치통감(資治通鑑)등 주요(主要) 원전(原典)에서 말하는 것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한 것들이다. 원전(原典)내용(內容)을 새롭게 해석(解釋)해야 할 필요성(必要性)이 크게 대두(擡頭)되는 시점(始點)이라고 본다.
이게 중요(重要)한 거다.
○ 역사(歷史)의 주인공(主人公)은, 조선왕조(朝鮮王朝)와 그 백성(百姓)들이었다. 진실(眞實)은, 잠시 어둠에 묻혀 있을 뿐이다.
2018년 11월 22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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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음의 게재 글은 "연경(燕京)"에 관한 것을 준비하고 있는데, 물론 원전(原典)에서 말하는, 그 설명을 그대로 따르려 합니다.
대륙에서 이들이 말하는 정사와 그외의 古典(고전)과 조선사(朝鮮史)에서 말하는 "연경"을 함께 알아보기로 하십시다.
위의 글은 오늘날의 "몽골공확국"에 대한 것이 아닌,
고전에서 말하는 "몽고족"에 대한 것임을 첨언드리며,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연경 기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한희수>님!
변함없는 조선사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고전의 원문에 충실하게, 지형지세와 기후와 자연환경등을 비교하면서 , 오늘날의 '하북성 북경이 연경'이라는 역사해설에 반론 성격이 강합니다. 곧 연나라의 서울이었던 연경이 북경일 수 없다는 것이죠.
많은 설과 주장이 있지만, 정리하고 취합해서 보충해 본것입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문무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징기스칸의 몽고는 오늘날 카자흐스탄~우크라이나 지역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안녕하세요. <로터스>님!
21세기 오늘날까지도 옛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의 영향력이 있는 곳이 바로 중앙아세아와 그 서쪽 일부지방이라고 합니다.
특히 그곳의 유력가문은 이러한 색채가 농후하다고 하며, 이들은 옛 원의 후인들이라고 스스로 자차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인종족으로 보아도 똑같은 후인들이죠. 역사서와 21세기 역사해설은 전혀 다르게 설명되고 있는 것은, 서구인들이 지들의 역사를 새롭게 만드는 과정에서 왜곡되고 조작된 것이라고 봅니다.
관심과 성원, 항상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칭기스칸은 철목진인데 우리 동국여지승람 함경도 홍원현편에 보면 " 철목진 " 이 바로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記錄되 있습니다. 그당시 기준으로 철목진은 高麗人이며 초원과 사막지대를 장악한 뒤부터 그들만의 제국을 세운걸로 알고있는데 묘하게도 고려의 武申政辨과 오버랩되는것이 수상하지만 어찌되었든 칭기스칸은 함경도 홍원현에서 태났다고 나와있죠.
좋은글 감사합니다
<대부여>님과 <낙원의방랑자>님!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