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못/ 서하
들고 다닐 수 없는 못물이 거기 있어
내 마음 들고 내가 가네
물의 낯바닥 간지르는 햇살과 늙은 산은
일부러 흘림체로 누운 채
발 담그고 살고 있네
사람들이 흩어져 살 때
갈대꽃처럼 모여 사는 게 아름답다고
못물은 모인 만큼 젖어 있네
모난 데 하나 없는 저 고요
바람은 잘게 부서져 쌓이고
햇살은 물속 뒤지다가 그냥 가네
못물 움켜잡은 둑에 앉아 생각하네
잔물결처럼 그렁그렁한 내 마음도
낮은 산들 벌거벗고 사는 이곳 주소 옮기면
저 물고기로 살 수 있을까
- 시집『아주 작은 아침』(시안,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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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영천 방향으로 가다보면 금호읍 지나 네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청통면 방향으로 좌회전해서 조금만 더 가면 사일못이 보인다. 시인의 자란 곳이 그 동네이고 집과 학교를 오갈 때는 언제나 이 못을 옆으로 끼고 걸어야 했다. 어린 시절 서하 시인은 이 사일못의 광활한 큰물을 바다라고 생각했다. 그보다 더 큰물이 세상에 있으리란 상상을 하지 못했다. 1932년 일제강점기 때 조성된 사일못은 면적이 약18만평, 수심은 1~4m인 큰 저수지에 속한다. 경관이 수려하고 어종이 풍부해 강태공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사일못은 2015년 3월까지 수질과 생태계 보호를 위해 낚시를 금지해 오고 있다. 대신 여름철엔 물놀이 수상레저 시설이 설치되어 바다에서처럼 아이들이 까르륵거리며 첨벙대고 논다.
전국에서 강수량이 가장 적은 곳으로 알려진 영천에는 크고 작은 농사용 저수지가 천 개가 넘는다. 이는 강원도 전체의 세 배에 해당하는 숫자로 전국최다이다. 춘천을 호반의 도시라고 부르는데 비해 어감은 뭣 하지만 영천은 저수지의 도시다. 아니 농촌이다. 비가 적게 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친수환경이 조성된 셈인데, 그로 인해 맑은 날이 많아 별을 관측하기에 적합하다 해서 동양 최대의 천문대가 영천 보현산에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영천에서 생산되는 과일은 햇볕을 많이 받아 당도가 높다. 영천은 적은 강우량과 풍부한 일조량으로 과일 생산에 최적의 기후 환경을 가진 곳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결혼하고서부터 대구로 나와 살고 있지만 ‘모난 데 하나 없는 저 고요, 바람은 잘게 부서져 쌓이고 햇살은 물속 뒤지다가 그냥 가’는 그 사일못이 가슴 안에서 떠나질 않는다. ‘못물 움켜잡은 둑에 앉아’ 너른 금호평야 바라보며 가득 고향을 담는다. 이맘때면 부모님 생각과 실루엣같은 추억들로 더욱 홍건해진다. 기어이 ‘잔물결처럼 그렁그렁한 내 마음’ 이곳으로 주소 옮길 궁리를 한다. 하지만 마음의 주소지는 굳이 이전할 필요가 없다. 멀쩡한 이름의 ‘사일못’을 영천시에서 ‘풍락지’로 고쳐 부르는 연유를 잘 모르듯이. 예전 그대로 사일못은 물고기 잘 살고 고요하며 평화롭다.
권순진
Peace Afterwards - Shannon Jans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