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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 단가(短歌)'- 진수미(1970~ )
처용이 왔다
한없이 작아진 처용이
한없이 어려진 처용이
곤두박질 달려왔다
그렁그렁 잠긴 얼굴을
치마폭에 던진다
한없이 어려져
한없이 좁아져
어깨 하나로
꺼이꺼이 운다
천 년 전 그 밤도
무서웠다고
오늘처럼
오주주 공포였다고
사내야 고개를 묻고 귀를 막아라. 귀를 막고도 들리는 울음 있거든 피하지 말고 다 들어라. 두려우면 치마폭을 빌려주마. 내 치마폭을 감고 네가 울 동안, 울음 그친 후 해쓱해질 그대를 위해 흰죽을 쑤마. 처용이 왔다. 처용의 처도 왔다. 꺼이꺼이 우는 처용 뒤에서 처용의 처가 처용의 어깨를 잡는다. 소금 기둥이 된 서방을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서역을 가야 하는 역할을 이생에선 그녀가 맡았으니, 사내야 그대는 울어라. 처용의 처의 치마폭이 여기 있다. <김선우.시007.05.20 19:1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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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소에서' - 마경덕(1954~ )
희고 매끄러운 널빤지에 나무가 걸어온 길이 보인다. 나무는 제 몸에 지도를 그려 넣고 손도장을 꾹꾹 찍어 두었다. 어떤 다짐을 속 깊이 새겨 넣은 것일까. 겹겹이 쟁여둔 지도에 옹이가 박혔다. 생전의 꿈을 탁본 해둔 나무, 빛을 향해 달려간 뿌리의 마음이 물처럼 흐른다.
퉤퉤 손바닥에 침을 뱉는 목공. 완강한 톱날에 잘려지는 등고선. 피에 젖은 지도 한 장 대팻날에 돌돌 말려 나온다. 죽은 나무의 몸이 향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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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구나. 손도장 꾹꾹 눌러 마음 쟁여야 한 일 많았구나. 그대 몸속 지도를 오늘은 내가 양지 녘에 말린다. 피에 젖은 지도가 수백 장, 수천 장. 이런 옹이를 품고 어떻게 이리 물속 같은 몸이니? 물결 같은 시간이니? 옹이를 품을 줄 알아서 물도 품을 수 있게 된 거니? 죽은 나무야 말해 보렴. 내 몸에서 지도를 떠내는 누군가에게 나도 너처럼 아름다운 등고선을 보여줄 수 있을까.
김선우.시인007.05.18 20:42 입력
'너를 부르마' - 정희성(1945~ )
너를 부르마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라 하마
아무데도 보이지 않아도
내 가장 가까운 곳
나와 함께 숨 쉬는
공기여,
시궁창에 버림받은 하늘에도
쓰러진 너를 일으켜서
나는 숨을 쉬고 싶다.
여기 살아야 하므로
이 땅이 나를 버려도
공기여, 새삼스레 나는 네 이름을 부른다.
내가 그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
그 이름을 부른 뒤에도
그 이름 잘못 불러도 변함없는 너를
자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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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은가.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라 할 것이다. 사랑은 그리 멀지도, 그리 어렵게 있는 것도 아니니,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아, 사랑아, 자꾸 그냥 부를 것이다. 보이지 않아도 그대가 공기처럼 내 몸의 안팎에 있고, 그대가 있어 내가 지금 숨 쉴 수 있음을 아나니. 오월에 쓰러진 풀이여 너를 일으키마. 오월에 우는 새여 네 노래로 푸른 공기의 면류관을 짜리. 그러니 지금 자유로운 자는 물으라. 어떻게 우리가 자유로워졌는가를. 김선우.시인 2007.05.17 20:34 입력
‘삼구(三口)’-김병연(1807~1863)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음력 2월이라도
처와 첩이 참는 모습이 가련도 하다
원앙금침 머리 셋 나란하고
비취 이불 속 팔 여섯이 가지런하다
같이 웃을 땐 세 입이 품(品)자 되고
몸 뒤집어 옆으로 누울 땐 천(川)자 같다
동쪽이 끝나자마자 서쪽이 시작되고
다시 동쪽 옥 같은 손을 쓰다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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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은 왜 한글로 안 쓰고 한자로 시를 썼을까. 그는 평생 자신을 잊기 위해 떠돌았다. 이 시는 현대인에겐 웃음거리가 되겠지만 조선시대의 가상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천장을 보고 나란히 누워 있는 맹춘에 처와 첩과 남자의 모습이 희극적이다. 이 한시의 제목을 ‘삼구(三口)’로 정하고 방바닥에 누워 천장을 쳐다보니 왠지 나도 한숨이 나온다.
<고형렬·시인>2007.07.13 19:22 입력 / 2007.07.13 20:39 수정
한낮 -김상미(1957~ )
꼬마가 문을 열고 나온다
달랑달랑 고추를 달고
알몸으로
본능적 기쁨으로
나는 꼬마를 안아 올린다
꼬마의 향기가
코 끝을 툭 건드린다
신학기 냄새같이
가슴이 설레인다
문득 내 눈을 비껴 아득해지는
꼬마의 시선
햇살일까, 바람일까
우리는 아직 살아 있다일까
따뜻하고 부드럽고 쬐그만
어린것 속에 감춰진
다른 시대 다른 꿈들이
삐곰 나를 올려다본다
여름 햇살이 눈부시게 거리를 밝히는
그 중간쯤에
나는 꼬마를 내려놓는다
달랑달랑 고추를 달고
알몸으로
꼬마가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보조를 맞추듯
한낮의 그림자
천천히 꼬마 위로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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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화자가 꼬마를 안아 올렸다 내려놓는 데서 끝난다. 처음 이 시를 임신과 해산으로 읽었다. 이제 수정하여 한 시대를 건너가는 남자들의 시간으로 본다. 고추가 달랑달랑한 꼬마를 안고 본능적 생의 기쁨을 느끼다가 꼬마의 시선에서 다른 시대의 꿈을 엿본다. 역산(逆算)이 있는 이 시는 미래 세상으로 꼬마를 보내는 여성의 희미한 불안의 심리가 비치고 있다. <고형렬·시인>2007.07.17 20:06 입력
‘아버님의 안경’- 정희성(1945~)
돌아가신 아버님이 꿈에 나타나서
눈이 침침해 세상일이 안 보인다고
내 안경 어디 있냐고 하신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나는
설합에 넣어둔 안경을 찾아
아버님 무덤 앞에 갖다 놓고
그 옆에 조간신문도 한 장 놓아 드리고
아버님, 잘 보이십니까
아버님, 세상일이 뭐 좀 보이는 게 있습니까
머리 조아려 울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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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생각한 적이 없다.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 언제부턴가 옛 선친을 까마득히 잊고 산다. 살아 있는 것들하고만 사는 까닭인가. 갑자기 나 자신이 처량하고 미워진다. 만사에 대해서 그렇지만 죽은 자에게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살아 있는 것들의 편에만 설 순 없는 것이다. 17년 전의 이 시를 읽으니 서먹해진다. 아버지, 하고 큰소리로 밤하늘에 대고 소리치고 울고 싶다.
<고형렬·시인> 2007.08.27 20:22 입력
'첫사랑' - 고재종(1959~ )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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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단 말야? 지금 내 눈앞을 환하게 밝히는 꽃들, 지난 계절 시린 몸으로
지상에 온 눈송이의 도전의 흔적이었단 말야? 두드리고 춤추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수천 번, 수만 번… 그렇지, 꽃 오는 자리에 꽃의 무덤이 하마 있고, 무덤 속에서 꽃의 신령이 죽을 힘 다해 문 두드려 꽃봉오리를 열듯이,
지난날 눈 오시는 밤들이 죄다 열병 앓는 자리더라. 허름한 세상으로 기어코 사랑이 오는 자리가 영판 그러하더라.
<김선우·시인> 2007.04.19 19:57 입력 / 2007.04.19 20:39 수정
'순산' - 조성국(1963~ )
우사 불빛이 환하다
보름이나 앞당겨 낳은 첫배의
송아지 눈매가 생그럽다
바싹 추켜 올라간 소꼬릴 연신 얻어맞으며
얼굴 벌겋게 달아올라서,
새 목숨
힘겨이 받아내던 친구는
모래물집에 젖은 털을 닦아주며
우유 꼭지 물리는데
그 모습 이윽히 지켜본 어미 소가
아주 곤한 잠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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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가서 보았네. 미국산 송아지 안심을 샴푸나 목욕타월 고르듯 골라
카트에 담을 때, 그 귀갓길에 돌연 주저앉아 누군가 울었네. 생그럽다는 내
고향 송아지 눈매여. 미국산 송아지 눈매도 너와 다를 바 없으련만, 사람이
소와 친구였던 시절은 이제 오지 않는 것일까. 닫힌 고향 집 문 앞을 서성이며 바람이 우네. 문 밖은 절벽이니 친구여, 잠시나마 서로의 온기였던 우리의 몸이 울며 가네. 송아지가 단지 상품이 되고, '순산'의 기억은 '생산'만 남기고 거덜나겠네.
<김선우·시인>
'구름 그림자' - 신용목(1974~)
태양이 밤낮 없이 작열한다 해도
바닥이 없으면 생기지 않았을 그림자
초봄 비린 구름이 우금치 한낮을 훑어간다
가죽을 얻지 못해 몸이 자유로운 저 구름
몸을 얻지 못해 영혼이 자유로운 그림자
해방을 포기한 시대의 쓸쓸한 밥때가
사랑을 포기한 사람의 눈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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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없이는 그림자 생기지 않으니, 부딪힐 몸이 있어야 구름의 족보도 가질 수 있지. 구름이 구름을 낳고, 낳고, 낳는 동안, 가죽을 얻은 후라야
가죽을 버릴 수 있었지. 몸을 얻은 후라야 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네.
우금치 한낮처럼 도처에 비린 구름들 울며 떠가는 하오. 울지 마라, 밑바닥
없이는 구름의 유적이 이토록 쓸쓸하니. 절벽에 몰린 밥 때를 알리는 종소리 뭉게뭉게 번진다. 구름의 유언장들이 21세기의 들녘과 거리에 쌓여 쓸린다.
<김선우·시인> 2007.04.17 19:57 입력 / 2007.04.17 20:12 수정
'연초록의 이삿날'- 안도현(1961~ )
연초록을 받쳐들고 선 저 느티나무들 참 장하다
산등성이로 자꾸 연초록을 밀어올린다
옮기는 팔뚝과 또 넘겨받는 팔뚝의 뻣센 힘줄들이 다 보인다
여기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더 가져가겠다는 뜻 없다
저수지에도 몇 국자씩이나 퍼주는 것 보기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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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지매들 꼭 저랬다. 거친 얼굴에 연한 화장이 싱그럽던 아지매들. 팔뚝만큼은 한 아름 튼실하여서 새둥지 여럿 앉힐 만했다. 보름에 한 번 엄마 없는 아이들 엄마 해 주러 오는 아지매들. 시장통 장사 하루 벌이 버겁지만 날마다 아이들이 눈에 삼삼하다는 아지매들. 화장 한번 안 하고 살다가도 보름에 한 번 예쁜 엄마 돼 주러 분 바르고 온다는 스무 살 새댁 같은 쉰 살아지매들. 이불 빨래 팍팍 이겨 빠는 발목에 연초록이 돋아, 아지매들 온 날은 이웃 싸전에도 자전거포에도 싱싱한 연둣빛이 번지곤 했다.
<김선우·시인> 2007.04.16 20:31 입력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최두석(1956~ )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무슨 꽃인들 어떠리
그 꽃이 뿜어내는 빛깔과 향내에 취해
절로 웃음 짓거나
저절로 노래하게 된다면
사람들 사이에 나비가 날 때
무슨 나비인들 어떠리
그 나비 춤추며 넘놀며 꿀을 빨 때
가슴에 맺힌 응어리
저절로 풀리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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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고 그런 세상, 꿈 없이 사는 일이 지옥이어서 꿈 공장을 지었단다. 꿈
공장의 숙련공인 너와 나의 손끝에서 무슨 꽃이 필까. 청산 간 나비는 무사히 바다를 건넜을까. 우리의 영혼을 덮치던 나비의 입술. 몇 방울 피의 꽃. 꼭 만나야 한 꿀 같은 이름들은 사람을 떠나 사람 속에 무사히 도착했을까. 자유 하나에 꽃 하나, 희망 하나에 나비 한 마리. 영희야 철수야 순이야 영호야 '사람들 사이'가 한 번씩 훤해지면 시집 장가를 가고 싶더라.(김선우·시인> 2007.04.15 20:09 입력
'비빔밥' - 고운기(1961~ )
혼자일 때 먹을거리치고 비빔밥만한 게 없다
여러 동무들 이다지 다정히도 모였을까
함께 섞여 고추장에 적절히 버물려져
기꺼이 한 사람의 양식이 되러 간다
허기 아닌 외로움을 달래는 비빔밥 한 그릇
적막한 시간의 식사여
나 또한 어느 큰 대접 속 비빔밥 재료인 줄 안다
나를 잡수실 세월이여, 그대도 혼자인가
그대도 내가 반가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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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는 외로움을, 외로움은 허기를 부르죠. 허기와 외로움이 둘도 없는
단짝임을 알게 되는 때가 되면 그대여. 운동을 시작하고 복근을 키우세요. 맷집이 강해야 외로움도 잘 버티죠. 근력이 있어야 홀로 가는 밥집도 견
만해진답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건 세월의 복근. 세월도 그대처럼 혼자임을 알 때, 외로움 썩썩 비빈 고추장 매운내도 나름 화사해지죠. 나를 잡수실
시간의 맷집을 향해 고적한 스파링을 하게 되는 저녁 참에도 말이에요.
<김선우·시인> 2007.04.13 20:00 입력
'일몰(日沒)'- 강정(1971 ~ )
방금 새가 떠난 자리를 보면 새가 더 분명하다
새가 떠난 자리에 들어앉아 새의 꿈을 꾼다
손바닥만 한 새가 하늘을 가릴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탄복하며
새처럼 웅크려 점점 멀어지는 그림자를 내려다본다
새의 그림자에 가려진 세상은 거대한 알 같다
해질녘,
무언가가 떠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는 것
사라진 새의 가슴에서 투하된 당신의 꿈이 세상에 못 미쳐
자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
세상이 전쟁으로 충만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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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떠난 자리에 들어앉아 당신의 꿈을 꾸는 것. 일상의 데자부를 말갛게 바라봐주는 것. 아기 손톱만 한 해가 돋을 때 그 심지의 붉은 싹이 이미
단풍이듯이, 일출은 일몰의 자리에 들어앉아 꾸는 꿈. 키리에? 당신의 꿈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놓아버린 자리가 아픈 아침저녁의 새들이여.<김선우·시인> 2007.04.12 20:30 입력 / 2007.04.12 20:40
'연' - 박철(1960~ )
끈이 있으니 연이다
묶여 있으므로 훨훨 날 수 있으며
줄도 손길도 없으면
한낱 종잇장에 불과하리
눈물이 있으니 사랑이다
사랑하니까 아픈 것이며
내가 있으니 네가 있는 것이다
날아라 훨훨
외로운 들길, 너는 이 길로 나는 저 길로
멀리 날아 그리움에 지쳐
다시 한번
돌아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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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다울 수 있는 기회를 준 그대. 내가 마지막 사람다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나를 붙들어준 끈이여. 줄줄줄 풀어라.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내 눈앞에 그대가, 그대 앞에 내가 돌아올 때까지. 나를 알고 싶으면
그대에게 가라 하겠네. 나의 희망과 꿈에 대해 누가 물으면 그대의 눈물과
아픔에 대보라 하겠네. 내가 만나고 있는 긴 줄. 줄 끝에 달려 훨훨 나는
사랑이여. 한결 견딜 만한 창공이여. 인연이 없는데 땅이 어떻게 있으며 하늘이 어떻게 있으리. <김선우·시인>
‘꽃’ -이상국(1945~ )
노래하면 몸이 아파
그러한 그리움으로 한 서른 해 앓다 일어
피는 꽃을 보면 눈물 나네
노래로는 노래에 이르지 못해
먼 강 푸른 기슭에서 만났다 헤어지던 바람은
흐린 날 서쪽으로만 가고
작고 작은 말을 타고 삶의 거리를 가며
아름다운 것을 소유할 수 없다는 걸 알기까진
나는 너무 많이 울었네
한 서른 해 아픔으로도
사랑 하나 깨우지 못하여
그러한 그리움으로
마당귀 피는 꽃을 보면 눈물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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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에 있는 시. 이때 이미 이상국은 다 살았던 건지도
모른다. 그 후 우리 삶은 나머지 것인가. 꽃은 아픈
몸이다. 아프게 꽃피었던 시절이 있다. 그 거리의 작고
작은 말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아직도 마당귀에서 피는
목마른 꽃이다.
<고형렬·시인> 2007.08.05 20:01 입력 / 2007.08.05 21:01 수정
‘소가죽 구두’
비에 젖은 구두
뻑뻑하다 발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신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구두는 더 힘껏 가죽을 움츠린다
구두가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린 적은 없다
구두주걱으로 구두의 아가리를 억지로 벌려
끝내 구두 안으로 발을 집어넣고야 만다
발이 주둥이를 틀어막자
구두는 벌어진 구두주걱 자국을 천천히 오므린다
제 안에 무엇이 들어왔는지 모르고
소가죽은 축축하고 차가운 발을 힘주어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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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몸을 각루자라고도 한다. 즉 오물이 쏟아져 나오는 포대다. 또 이 한 물건은 오묘해 알 길이 없으니‘이 뭐꼬’만 남는다. 구두에 발이 들어간다. 젖은 구두는 발을 거부하다 끝내 구두 주걱에 의해 발을 받아들인다. 이것이 인생이다. 던져진 존재. 다행히 젖은 구두는 힘껏 발을 감싸준다.
<고형렬·시인>
‘꽃은 시들고’ - 오세영(1942 - )
꽃은 시들고
물은 마르고
깨진 꽃병 하나
어둠을 지키고 있다.
아, 목말라라.
금간 육신,
세시에 깨어 자리끼를 찾는
꽃병은 귀가 어둡고
세상은 저마다의
꽃들이다.
깔깔 웃는 백일홍
킬킬 웃는 옥잠화.
세시에 깨어
귀를 모으는
금간 꽃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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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오세영시전집』두 권이 상자되었다. 시와 싸워온
시인들의 모습은 대체 초췌하다. 나는 그 초췌함이 좋다.
그러니까 1965년 데뷔 이후 42년이 되었다. 내가 잠든
사이 꽃은 시들었을지언정 지진 않았다. 품에 안고 살아온
시의 꽃들. 분명 나의 꽃들이다. 지금 꽃은 금간 꽃병에서
잠깬 나를 바라본다. 꽃과 나는 서로 자리끼를 찾는다.
평생 시의 꿈을 꾸다 왔다. <고형렬·시인> 2007.07.11 21:39 입력 / 2007.07.12 14:46 수정
‘향수병’ - 박민흠(1954~ )
저 산은 날 부르고 달은 몸을 낮추고
도시 비둘기는 저녁 휘장을 찢고
센트럴 파크 뒷골목을 배회하는 깡패처럼
비수 같은 봄은 젊기만 한데
산골 귀제비처럼 어둠에 숨어
나는 지독한 향수병을 앓고 있다
파사(破寺)에 앉아 태워버릴
불필요한 언어라도 붙잡고
날 새도록 가슴 질러가며
나를 꾸욱꾹 저미는
밤의 공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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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제비는 비수처럼 날아간다. 한 시대와 추억을 관통하는 날개는 검고 가슴은 희다. 1970년대 서울의 겨울공화국을 떠난 지 30년. 뉴욕 센트럴 파크 뒷골목의 깡패처럼 황량한 미주의 봄에 얻은 병과 치유의 까마득한 세월. 명치 끝이 까맣게 탄 걸 산제비가 알까. 이제 지독한 향수와 싸워 온 시인의 심장을 보아야 할 판. 파사에 앉아 있는 한 나그네, 내면에서 들리는 밤의 공포탄이 선명하게 한 생애를 둘로 갈라놓는다.
<고형렬·시인> 2007.07.06 19:33 입력 / 2007.07.06 23:34 수정
‘아주 가까운 피안’ -황지우(1952~ )
어렸을 적 낮잠 자다 일어나 아침인 줄 알고 학교까지
갔다가 돌아올 때와
똑같은, 별나도 노란빛을 발하는 하오 5시의 여름
햇살이
아파트 단지 측면 벽을 조명(照明)할 때 단지 전체가
피안 같다
내가 언젠가 한번은 살았던 것 같은 생이 바로 앞에
있다
어디선가 웬 수탁이 울고, 여름 햇살에 떠밀리며 하교한
초등학생들이
문방구점 앞에서 방망이로 두더지들을 마구 패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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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농촌에서 한낮의 수탁 울음을 듣고 서산은
전율했다. 볏 같은 저 외침은 무슨 연고인가.
‘일성계(一聲鷄)’를 들으면 대장부는 할 일을 마친다
했다. 이 모든 게 꿈일까. 까마득한 기억의 한 티끌과
영원 저 바깥을 잇는 통섭의 시. 오후 5시의 조명은
아파트 벽면에 가로막혀 마음을 들킨다. 일생이던 육체의
환몽 속에 소년들은 지나간다. 이 잠시의 피안은 황지우의
혈흔이다. <고형렬ㆍ시인>2007.06.25 20:06 입력
'뗏목'-신경림(1935~ )
뗏목은 강을 건널 때나 필요하지
강을 다 건너고도
뗏목을 떠메고 가는 미친놈이 어데 있느냐고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빌려
명진 스님이 하던 말이다
저녁 내내 장작불을 지펴 펄펄 끓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운 절방
문을 열어 는개로 뽀얀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곰곰 생각해본다
혹 나 지금 뗏목으로 버려지지 않겠다고
밤낮으로 바둥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 나 지금 뗏목으로 버려야 할 것들을 떠메고
뻘뻘 땀 흘리며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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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네준 뗏목을 버려야 한다. 어떻게 생사를 함께한 것들을 버릴 수 있겠는가. 는개를 내다보며 쉬고 있는 저 깊은 희양산의 봉암사 저녁. 절방에서 생은 참 허허롭기만 했을 것 같다. 나는 지금 필요없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고형렬.시인>2007.06.21 19:57 입력
수건 한 장’ -문성해(1963- )
수건 한 장을 덮고 아이가 잔다
수건 한 장을 덮을 수 있는 몸이 참으로 작다
수건 한 장 속에서 아이는 참 따뜻하게도 잔다
가위눌리는 꿈도 너끈히 막아주는 수건 한 장
그것은 평소 낯을 닦을 때보다 더 크고 푹신해 보인다
수건 한 장은 지금 완벽하다
어떤 바람도 무서움도 스며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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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해는 “부디 지나간 것들도 새롭게 어루만질 수 있는 손이 어서 되기를” 간구했다.모든 문학적 소재는 사실 기억이다. 자신의 여성이 출산한 아이의 잠을 엿보고 있는 모성의 심상이 희고 깨끗하다. 더위가 헐떡이는 염천. 하지만 너를 낳을 때만큼은 하랴. 오히려 아이 눈썹에 노는 녹음이 아롱다롱해. 아이의 배를 덮은 목수건 한 장의 숨. 나도 아이를 하나 낳아 이렇게 무감하게 들여다 보고 놀 순 없겠지? <고형렬ㆍ시인> 2007.07.01 20:04 입력 / 2007.07.02 05:22 수정
가을꽃-정호승
이제는 지는 꽃이 아름답구나 언제나 너는 오지 않고 가고
눈물도 없는 강가에 서면 이제는 지는 꽃도 눈부시구나
진리에 굶주린 사내 하나 빈 소주병을 들고 서 있던
거리에도 종소리처럼 낙엽은 떨어지고 황국도 꽃을 떨고
뿌리를 내리나니
그동안 나를 이긴 것은 사랑이었다고 눈물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물 깊은 밤 차가운 땅에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꿈의 진리’- 박노해(1958∼ )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좋아져도
사람은 밥을 먹어야만 살 수 있다
정보와 서비스를 먹고는 못 산다
이 몸의 진리를 건너뛰면 끝장이다
첨단 정보와 지식과 컴퓨터가
이 시대를 이끌어간다 해도
누군가는 비바람치고 불볕 쬐는 논밭을 기며
하루 세끼 밥을 길러 식탁에 올려야 한다
누군가는 지하 막장에서 매캐한 공장에서
쇠를 캐고 달구고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
이 지구 어느 구석에선가 나대신 누군가가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몸으로 때워야만 한다
정보다 문화다 서비스다 하면서 너나없이
논밭에서 공장에서 손털고 일어서는
바로 그때가 인류 파멸의 시작이다
앞서간다고 착각하지 마라
일하는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다
바람의 노래 – 조용필
살면서 듣게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가면 그때는 알게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건 살아가는 방법 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껴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대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수가 없네
내가 아는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껴갈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대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껴갈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대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벅스패널 pookypooky 님이 올려주신 가사입니다
Angel - Sarah Mclachlan
Spend all your time
Waiting for that second chance
For the break that will make it okay
There's always some reason
To feel not good enough
And it's hard at the end of the day
I need some distraction or a beautiful release
Memories seep from my veins
Let me be empty and weightless and maybe
I'll find some peace tonight
In the arms of the angel
Far away from here
From this dark, cold hotel room,
And the endlessness that you feel
You are pulled from the wreckage
Of your silent reverie
You're in the arms of the angel
May you find some comfort here
So tired of the straight line,
And everywhere you turn
There's vultures and thieves at your back
The storm keeps on twisting,
You keep on building the lies
That you make up for all that you lack
It don't make no difference, escape one last time
It's easier to believe
In this sweet madness,
Oh this glorious sadness
That brings me to my knees
In the arms of the angel
Far away from here
From this dark, cold hotel room,
And the endlessness that you feel
You are pulled from the wreckage
Of your silent reverie
You're in the arms of the angel
May you find some comfort here
In the arms of the angel
May you find some comfort here
IOU - subg by Carry and Ron
You believe that I've changed your life forever
And you're never gonna find another somebody like me
And you wish you had more than just a lifetime
to give back all I've given you
And that's what you believe
당신은 믿고 있어요, 내가 당신의 삶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고
그리고 저와 같은 사람은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수명보다 더 오래 살기를 바라지요.
제가 당신에게 베푼 것을 돌려주기 위해서
그런데 그것은 당신이 그렇게 믿을 뿐입니다.
<Repeat>
But I owe you
the sun light in the morning
and the nights of all this loving
that time can't take away
And I owe you
more than life now, more than ever
I know that it's the sweetest debt
I'll ever have to pay
<후렴>
하지만 저는 당신께 빚지고 있어요
아침의 햇살과
이 모든 사랑스런 밤들
시간이 빼앗아 갈 수 없는 (햇살과 밤을 빚지고 있다)
저는 당신께 빚지고 있어요
현재의 삶 이상의 것을, 그 어느 때 보다도 지금
그것이 가장 달콤한 빚이라는 것을 알아요
내가 영원히 갚아야 할
I'm amazed when you say
it's me you live for
You know that when I'm holding you
you're right where you belong
And my love, I can't help but smile
with wonder when you tell me
all I've done for you
Cause I've known all alone
당신이 말할 때 저는 놀랐어요
당신이 바로 날 위해 산다고 (말할 때 놀랐어요)
당신은 아시죠, 제가 당신을 포옹하고 있으면
당신은 바로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것을
당신, 저는 미소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놀라움으로, 당신이 내게 말할 때
제가 당신을 위해 한 모든 것을 (당신이 내게 말할 때 미소가 나온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까지 혼자만 알고 있었기에
<후렴반복>
If (만약에)- sung by Bread
만약 한 폭의 그림으로 천 가지 말을 표현할 수 있다면
나는 왜 당신을 그림에 담을 수 없을까요?
말로는 내가 알고 있는 당신을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 얼굴을 떠올리는 것으로 천 척의 배를 띄울 수 있다면
난 어디로 향해 갈까요?
그대 이외에는 아무데도 없습니다.
당신은 내게 남겨진 모든 것이니까요.
삶에 대한 사랑이 점점 메말라갈 때
당신은 내게 다가와 모든 걸 주었습니다.
만약 사람이 동시에 두 곳에 있을 수 있다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겁니다.
내일과 오늘
항상 당신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
만약 세상이 자전을 멈추고 종말을 향해 간다면
난 당신과 함께 종말을 맞이하렵니다.
그리고 세상이 끝을 맞이할 때,
모든 별들이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고
당신과 나는 그저 멀리 날아갈 겁니다.
‘역광의 외길’-조양래(1959∼ )
난 오늘도 외로움의 끝까지 헤매며
강둑을 홀로 걸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홀로이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죽음을 곧잘 떠올리며
죽음이 두려우면 슬픔에 의존하며 그렇게 강둑길을 홀로이
언제나 우리 게으른 일상이 그렇듯이
내가 보는 수면은 주름진 물비늘로 빛났다가
힘을 잃은 채 금세 수평으로 되돌아왔다
난 햇볕에 따사로운 양지보다는
역광으로 향했을 때 가려 보이는 어스름의 우수에 평생을 바쳤다
사람들이 그저 우수 지나치며 아늑한 양지를 택했을 때
나는 눈부신 역광의 그 우수에 대해
모든 고뇌에 대해
내 모든 의지를 다해 반역을 가하려 애썼다
오늘도 난 햇빛이 가는 방향 대신
햇빛을 거스르는 역광을 향해
맑고 한적한 긴 둑길을 걸으며
더러 강둑에 앉아 술병을 비우며 시에 대한 집착을 갖고
햇빛이 가리는 어스름을 살피려 애썼다
간간이 지나오는 둑길의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쳤으며
내 되돌아봤을 때 그들은 양지쪽을 향해 무심히 갔다
패기도 사랑도 안식 속엔 금세 생기를 잃어버리는 것을
격정도 희열도 아늑하면 금세 권태로워져버리는 것을
난 평생 역광의 그 가시광선을 향해 가려 한다
지나온 길 민들레 냉이꽃 지천으로 흐드러졌어도
그 따사로운 안식은 날 권태로 잠재우는 봄날의 오수
난 그 권태를 등지며 오늘도 역광 외길을 간다
우수의 햇살에 눈이 시린
굽이굽이 강둑 길을
반짝이는 물비늘에 눈이 시린 먼 강둑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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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꽃이 많아도 내가 못 보는 별과 꽃이 많다. 가난한 시인들이 이 땅 곳곳에 살고 있다. 수원 고등동 단칸방에서 시와 동행한다. 등단 17년 만에 상자한 첫시집을 안고 풍경 끝에 선 땅끝 태생 조양래.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죽음을 곧잘 떠올리며 강둑을 숱하게 걸었다. 죽음이 두려우면 슬픔에 의존해. 물비늘이 비치는 강둑을 걷다 어스름의 우수에 서 있는 자신을 본다.<고형렬·시인> 2007.06.20 20:20 입력 / 2007.06.20 23:23 수정
'애인에게 쓰는 편지' -우랑카이(1943~)
사랑하는 애인한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편지 말이 맘에 들지 않아서 첫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열 개의 태양이 질 때까지 편지를 씁니다
사랑하는 애인한테 계속 편지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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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연시다. ‘모든 시는 사랑시’란 말이 있다. 나중에 보면 기교는 사라지고 깊은 세월감만 남는다. 상투적인 사랑의 이미지만 추억이 되니 묘한 일. 특수성이 보편성에 미끄러져 내려가는 탓. 만법이 ‘일(一)’로 귀의하기 때문. 여성이 이 정도의 사랑은 받아야 되는데, 이 사랑이 받아들여질지 그게 또 미지수다. 아무튼 이 연애편지는 계속되는 현재형이다. 대초원에 해가 열 번 지도록 고치고 고쳐 쓴다. 시의 마음에 들 때까지. 우랑카이의 이십대 후반 작품. 호롤로가 번역했다.
<고형렬·시인>2007.08.01 19:01 입력 / 2007.08.01 22:58 수정
‘난’ - 박목월(1916~78)
이맘쯤에서 하직하고 싶다.
좀 여유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 나머지 허락 받은 것
을 돌려보냈으면.
여유 있는 하직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한 포기 난초를 기르듯
마음에 애틋하게 버린 것에서
미소로 살아나고/잎을 피우고,
그리고 섭섭한 뜻이
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
아아/그윽이 향기를/머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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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가 없었던 1954년 다음해 정월 ‘현대문학’ 창간호에 실린 목월 시다. 목차를 보니 서정주·유치환·김현승·김용호·박남수, 그리고 마지막에 박목월이 나온다. 52년 된 바스러지는 옛 문예지 속에서 작고한 시인들의 시를 보니 감회가 깊다. 이때 목월 나이 서른아홉. 젊은 나이에 목월은 벌써 하직하고 싶어했다. 고단하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 <고형렬·시인> 2007.08.02 18:43 입력 / 2007.08.02 20:55 수정
스카브로의 추억 V.A Cofee 노래:박인희
추억속의 스카브로우여
나 언제나 돌아가리
내 사랑이 살고 있는
가고 싶은 나의 고향
추억속의 스카브로우여
나 언제나 찾아가리
내 사랑이 기다리는
아름다운 나의 고향
나나나나 나나나나~
나나나나 나나나나~
내 사랑이 기다리는
아름다운 나의 고향
추억속의 스카브로우여
나 언제나 부르리라
내 마음이 담겨 있는
아름다운 나의 노래
나그네 - 노래:곽성삼
어허어 어허어 그대 어디 가시오
적막한 들녘의 이름없는 꽃처럼
어지신 마음을 고이 간직하시다
머나먼 곳으로 마음을 날리시나
석양 노을 보면서 어이 떠나시는가
머나먼 곳으로 그대 떠나시는가
가소서 가소서 바람타고 가소서
가소서 가소서 바람타고 가소서
그대 어지신 마음 빛되어 반짝이나
머나먼 곳으로 아련히 가시는가
가소서 가소서 바람타고 가소서
가소서 가소서 바람타고 가소서
어허어 어허어 어허어 어허어
벅스패널 h2k289 님이 올려주신 가사입니다.
꿈을 꾼 후에 -작사.작곡.노래:여진
나는 그대 모습을 꿈속에서 보았네
사랑하는 사람이여 꿈속에서 그댈 봤네
너무나 반가워서 마구 달려갔었네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대를 부르며
장미꽃 향기를 맡으며 잔잔하게 미소짓는 그대 얼굴
보았네 살며시 당신을 그대를
나는 그대 모습을 꿈속에서 보았네
사랑하는 사람이여 꿈속에서 그댈 봤네
장미꽃 향기를 맡으며 잔잔하게 미소짓는 그대 얼굴
나는 보았네 살며시 그대를
나는 그대 모습을 꿈속에서 보았네
사랑하는 사람이여 꼼속에서 그댈 봤네
벅스패널 solid79 님이 올려주신 가사입니다.
Spring Summer And Fall-Song By Ahprodite's Child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
Keep the world in time
Spinning around like a ball
Never to unwind
**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
Are in everything
I know in love we had them all
Now our love has gone
***
This last thing is passing now
Like summer to spring
It takes me and wakes me now
Like seasons
I'll change and then rearrange somehow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
Keep the world in time
Spinning around like a ball
Never to unwind
This last thing is passing now
Like summer to spring
It takes me and wakes me now
Like seasons
I'll change and then rearrange somehow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
Keep the world in time
Spinning around like a ball
Never to unwind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
Keep the world in time
Spinning around like a ball
Never to unwind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
Are in everything
I know in love we had them all
Now our love has gone kool815님께서 등록해주신 가사입니다.
바람의 노래 -작사:양인자 작곡:김희갑 노래:조용필
살면서 듣게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가면 그때는 알게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건 살아가는 방법 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껴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대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수가 없네
내가 아는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껴갈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대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껴갈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대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벅스패널 pookypooky 님이 올려주신 가사입니다.
‘관 뚜겅을 덮고’ -이은봉(1953- )
관 뚜껑을 덮고 눕는다 아직 잠들기는 아쉬운 시간, 딸깍, 하고 꼬마등을 켠다
환해지는 가슴, 푸르르 뒷걸음치는 슬픔, 갑자기 밀려들어온다 어느 먼 날에 달려와 뒤돌아보면, 여기 무덤 속의 날들도 더러는 따뜻하리라
어차피 혼자인 것을, 하며 죽음의 음악을 즐기던 친구가 떠오른다
그도 무덤 속이 곧 세상 속인 것을 알고 있을까
딸깍, 하고 꼬마등을 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목탁 두드리며 외우지 않아도 관 뚜껑을 닫고 눕는 마음, 중얼거린다 무덤 속이 곧 우주라고?
--------------------------------------------
나는 시집을 읽는다. 아니 만지고 비비고 더러는 웃는다. 가장 편한 자세로 엎드렸다 앉았다 한다. 간혹 어떤 시는 나를 두고 노래한 거라고 착각도 한다. 어쩌면 이은봉의 이 시도 나를 두고 한 말 같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죽음의 사유를 좋아하는 걸까. 영원하지 못함을 아는 탓이다. 딸깍, 꼬마등 켰다가 꼬마등 끄는 내 마음.<고형렬·시인> 2007.07.30 19:34 입력 2 18:43 입력 / 2007.08.02 20:55 수정
‘굴뚝 위에 둥지’ - 곽효환(1967- )
하늘 위에 집을 지었다
바이칼 호를 건너
초원과 사막을 지나와
거친 겨울을 나고
메마른 바람 불어불어
어느새 축축한 여름이 왔는데
그네들은 떠날 줄을 모르고
기억은 아득하다
수많은 경계와 경계를 넘나드는
수천 킬로미터의 반복되는 여정에서
그들은 벗어나고 싶은가보다
둥지를 틀고 겨울을 난
황새는 이제 머물고 싶은 게다
텃새가 되고 싶은 게다
날개를 접고 잠시 쉬다가
문득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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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시다. 나도 바이칼 호를 건너온 존재인지 모른다. 2연의, 고난을 겪은 사랑의 날개와 눈은 매섭다. 이 서울의 까마득한 굴뚝 위, 상공을 등진 새. 위안이 되는 건 2연의 힘찬 운율이다. 메마른 바람 불어불어 하는 대목에선 흔쾌했다. 우리가 저 황새들 아닌지. 경계를 보는 곽효환의 눈이 까마득하다.<고형렬·시인> 2007.09.06 20:19 입력 / 2007.09.06 20:19 수정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 -이성미(1967- )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발부리를 톡톡 차면서
이미 알고 있는 답
자꾸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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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성미를 만난 기억이 없다. 언어를 가볍게 탄력 있게 만진다. 날아가버릴 듯싶은데 흔적을 남긴다. 자, 이제 가을이다. 어쩔 테냐. 가을은 진즉 갈 길을 알고 있다. 다만 앓고 있을 뿐이다. 왔던 길이며 갈 길이 덧없는 마음바닥. 그러나 다시 어디로 가야 하나 하고 물어보아야 한다. 이 한 구절을 가지고 가보자. 거기 무엇이 있는지. 이미 다투듯이 찾아와서 거기 모두 울고 있을까. 결국 그곳이 우리가 가는 곳이 아닐까. 나도 발부리를 톡 차본다. <고형렬·시인> 2007.09.05 20:21 입력 / 2007.09.06 05:42 수정
할머니’ - 임길택(1952-1997 )
이제 우리 할머니는
맛있는 거 몰래 꺼내 주던
그때의 할머니가 아닙니다.
큰방을 아버지 어머니께 내주고
호두나무 우뚝 서서
여름 내내 그늘이 많은
뒤란 도장방에서
혼자 잠을 잡니다.
우리가 무얼 먹을 때면
“나 좀 다오.” 하며
손을 내밀었는데
이제 우리 할머니는
호두를 깰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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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교사가 되어 강원도 벽지 아이들을 가르쳤다. 임길택 유고 동시집 『나 혼자 자라겠어요』에 실린 깊고 슬픈 동시. 나는 가을이 오면 할머니가 생각난다. 식구들에게 방을 내주시고 뒤란 도장방에서 혼자 잠을 주무시던 할머니. 그 할머니 마음, 가을날, 호두나무 잎이 같이 이 동시 속에 찾아왔다.<고형렬·시인>2007.09.04 20:32 입력
‘새의 영혼’ - 장대송(1962~ )
새벽 방송을 위해 방송국 건물로 들어설 때
새의 주검을 보았다
푸른 새벽빛이 반사된 유리창,
어떤 나라이기에 영혼을 날려 보냈을까
영혼을 내보낸 새의 몸은 새벽이다
삶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새의 몸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아침이 되기 전 새의 몸속에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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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유적의 삶이 찬란한 새벽빛을 데려왔다. 아무리 살아도 닳지 않고 참회되지 않는 것이 이 세계의 새벽이며 삶이다. 새벽 방송국 앞뜰에 떨어져 죽은 희미한 새의 주검. 까마득한 여명의 옥상에선 피 한 방울 없는 무고통의 전파가 목탁을 울리고 있다. 욕된 삶의 울타리를 벗어나 새의 몸속으로 들어가려는 이 활구는 칼끝이다. 동 터오는 서울, 새는 유리창 새벽빛 속에 무가 되었다.
아침이 되기 전 (날아 막 새벽을 열던) 새의 몸속에 있고 싶다. <고형렬·시인> 2007.09.07 19:13 입력
‘또 다른 사랑’ -곽재구(1954~ )
보다 자유
스러워지기 위하여
꽃이 피고
보다 더 자유
스러워지기 위하여
밥을 먹는다
함께 살아갈 사람들
세상 가득한데
또 다른 사랑 무슨 필요 있으리
문득 별 하나 뽑아 하늘에 던지면
쨍 하고 가을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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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 한 장 쨍그랑 깨지는, 곽재구의 젊은 날의 시. 짧지만 귓전에 울림을 남겼다. 그러나 기실 하늘은 쨍그랑 깨지지 않았다. 여름이 잠을 깬 것. 쨍, 가을이 운다는 이 한 구절로 이 시는 한 권의 시집이다. 이 시심을 읽을 수 있다면 벌써 가을이 와 있음을 알게 된다. 제목이 ‘사랑’이 아닌가. 그 쨍 하는 소리 밑에서 하늘을 쳐다보는 맑은 얼굴들이 보인다. <고형렬·시인> 2007.08.31 19:26 입력
‘핸드폰 가족’-김광규(1941~ )
현대시 강습회1박2일
첫날 저녁 때 교육원 숙소
휴게 코너 기둥 뒤에서 누군가
전화 거는 젊은 목소리
--오늘은 엄마가 집에 없으니까
아빠하고 자야지
이 닦고 발 씻고……
저 여성 강습생은 조그만 핸드폰에 속에
온 가족을 넣고 다니는구나
부럽다 어리고 작아서 따뜻한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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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배우는 엄마가 하룻밤 집 밖에 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집 안에 있다. 아빠하고 자라는 엄마의 소리를 엿듣는 귀의 청량함은 부러움에까지 도달한다. 그 작고 따뜻한 손안에 쥐어질 듯 작은 하나의 가정 하나의 불빛에 시인은 불을 쬔다. 가족이란 말은 영하에서도 늘 따뜻하니까. <신달자·시인> 2007.10.16 20:31 입력
‘시’- 나태주(1945~ )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 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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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1989년 10월 22일에 쓴 시다. 20년이 가깝다. 내 마당 쓰는 일이 지구를 깨끗이 하는일이며, 그 일로 한 송이 꽃이 피어난다. 시 한 편 싹 틔우는 일이 지구 한 모퉁이를 밝히는 일이다. 벌레만 한 시라도 혼을 넣어 쓸 것이다.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다. 사랑하면 할수록 지구는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지고 밝아진다.
<고형렬·시인>2007.09.28 19:06 입력
‘번역 해 다오’-최승자(1952~)
침묵은 공기이고
언어는 벽돌이다
바람은 벽돌담 사이를
통과할 수 있다
나는 네 발목을 붙잡고 싶지 않다
지금 내 손은 벽돌이지만
네 발은 공기다
통과하라. 나를.
그러나 그 전에 번역해 다오 나를
내 침묵을 언어로
내 언어를 침묵으로
그것이 네가 내 인생을 거쳐가면서
풀어야 할 통행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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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모든 것을 지나간다. 침묵은 공기가 되고 언어는 벽돌이 되는 담
사이를 지나갈 수 있다. 너도 그렇게 간다. 그렇게 갈 수 있다. 내 손
이 제아무리 벽돌이지만 공기의 발은 지나가고 말 것이다. 가는 너에게
명령한다. 통과하라 나를. 그러나 통행료는 지불해야만 한다. 침묵과
공기와 언어가 아닌 내 인생을 거쳐가는 통행료는 반드시 지불하라. 내
가 누구인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내가 지금 살고 있는지 죽고 있
는지 꼼꼼히 번역하라. <신달자·시인> 2007.10.05 18:50 입력
시인’-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
너는 내게서 멀어져 간다 시간이여
너의 날갯짓은 내게 상처를 남겨 놓는다
그러나 나의 입은 어쩌란 말인가?
나의 밤은 그리고 낮은?
집도 없으며
기거할 수 있는 조그만 곳도 없다
내가 나를 바치는 모든 사물들은
부자가 되어 나를 마구 써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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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시간이 있네. 뛰는 것도 아니고 나는 시간을 보네. 그 날갯짓에 밤도 낮도 집도 다 흘러 가 버리네. 1904년 5월 9일자로 되어 있는 엘렌 케이에게 릴케가 보낸 편지가 생각난다. 시골에 양친의 집도 낡은 물건도 창이 있는 조그만 집도 없다고 적고 있는 릴케의 심각한 부재의 상실감은 실제의 시간이기보다 영감의 시간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시인일 것이다.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이여. 그대가 그대를 바친 사물들은 그대를 먹고 마구 그대를 써 버려 발몽 요양소서 눈을 감았나요. 그대 묘비명 위로 지금도 시간이 흐르네요. <신달자·시인>
‘너무 가볍다’-허영자(1938~)
나 아기적에
등에 업어 길러주신 어머니
이제는
내 등에 업히신 어머니
너무 조그맣다
너무 가볍다
너희들도 다 살아 보아라. 어른들의 말씀은 금쪽같기만 하다. 어느 날 그 무섭게 회초리 들던 어머니의 굵은 손은 어디로 갔나. 든든한 말뚝 같았던 어머니의 등은 어디로 갔나. 마치 막 흘린 것 같아 주변을 보면 아무것도 없다. 너무 가벼운 어머니를 등에 업어 보았는가. 재처럼 사그라지는 어머니를 안아 본 적 있는가. 너무 가벼워 눈물나는 어머니를. <신달자·시인
2007.10.15 20:46 입력 |
첫댓글 글자가 너무 적어서~~ 감사합니다
이제야 고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