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신앙인(眞信仰人)은 악(惡)한 환경(環境)에 영향(影響)받지 않아야 한다.
<말선3-13~19> (1957,9,8, 전본부교회) 진실(眞實)은 천륜(天倫)이 유린(蹂躪)하는 법(法)이 없고, 참(眞)은 하나님이 버려둘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心)에 의심(疑心)되는 모든 사실(事實)을 해결(解決)하기 위해서 진심(眞心)된 마음(心)으로, 충실(充實)과 충절(忠節)과 정성(精誠)의 마음(心)을 가지고 하나님을 붙들고 호소(呼訴)할 수 있는 이런 각오(覺悟)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 의문(疑問)이 해명(解明)되지 않으면 우리는 죄(罪)의 길을 타개(打開)할 도리(道理)가 없습니다. 제아무리 큰 은혜(恩惠)를 받았다 하더라도 의문(疑問)이 완전(完全)히 해명(解明)되지 않으면 또 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심(疑心)이 크면 클수록 그 마음(心)이 크게 구속(拘束)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문(疑問)을 해명(解明)받기 위해 하나님에게 당돌(唐突)하게 나설 수 있는 용기(勇氣)와 각오(覺悟)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둠의 세력(勢力)과 우리 몸(肉)에 있는 악(惡)의 요건(要件)들은, 우리로 하여금 의심(疑心)을 품게 하고 죄악(罪惡)의 행동(行動)을 하게 하여 우리를 사망(死亡)의 세계(世界)로 끌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로막아 밀어낼 수 있는 환경(環境)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환경(環境)을 찾아 세우고자 하는 종교(宗敎)가 바로 기독교(基督敎)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自身)이 하나님을 믿고 나섰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나를 믿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기독교(基督敎)는 성경(聖經) 속의 하나님으로만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가운데도 신앙(信仰)이 있다는 것입니다. 참(眞)것은 악(惡)과 같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악(惡)에 영향(影響)을 받아 변(變)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환경(環境)이 아무리 악(惡)하더라도 하나님의 참 아들딸이 되면 그 환경(環境)에 지배(支配)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참(眞) 신앙자(信仰者)가 되지 않으면 천륜(天倫)을 대(對)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을 것입니다.
천국(天國)의 중심(中心)을 향(向)한 여러분의 신앙(信仰)의 정도(程度)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만큼 영계(靈界)도 여러분을 통(通)해 더 크게 역사(役事)할 수 있는 것이고, 여러분이 무한(無限)한 신앙심(信仰心)을 소유(所有)한다면 여러분의 그 인격(人格)을 통(通)해 여러분이 상상(像想)할 수 없는 정도(程度)의 초감각적(超感覺的)인 세계(世界)의 사실(事實)과 우주(宇宙)의 사실(事實)을 일시(一時)에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人間)은 이런 놀라운 것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영계(靈界)의 사실(事實)을 책(冊)에 기록(記錄)한다고 하면 몇 만권(萬卷)의 책(冊)으로도 다 기록(記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내용(內容)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인간(人間)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쳐준 영계(靈界)는 일부분(一部分)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영계(靈界)를 소개(紹介)한 책(冊)으로는 전체(全體)의 영계(靈界)를 해명(解明)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죄(罪)가 무엇이냐 하면, 믿(信)을 것을 믿(信)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인물(人物)을 믿(信)지 못하는 것이 죄(罪)요, 그분의 말씀(言)을 믿(信)지 못하는 것이 죄(罪)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우주적(宇宙的)인 하나님의 이념(理念)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확고(確固)한 믿음(信)을 갖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런 믿음(信)을 갖고 나가려 할 때 여러분의 마음(心)속에는 그와 상반(相反)되는 의심(疑心)이 생길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心)에 악(惡)의 세력(勢力)이 작용(作用)하기 때문입니다.
그 악(惡)의 세력(勢力)은 여러분의 마음(心)에 두려움과 공포(恐怖)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 악(惡)의 세력(勢力)에 삼켜지는 신앙(信仰)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런 것들을 소화(消化)하며 넘어갈 수 있는 아량을 갖고 나가야 됩니다. 이런 입장(立場)에 서셨던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그분은 십자가(十字架)를 지는 자리라도 피(避)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누가 비난(非難)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진정(眞正)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도저히 비난(非難)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입장(立場)에서 우리는 새로운 신앙노정(信仰路程)을 찾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말선3-203> 오늘날 여러분이 나아가는 노정(路程)에는 반드시 물질적(物質的)인 고통(苦痛)이 따를 것이며, 또 그 물질(物質)이 여러분을 치고 만민(萬民)이 여러분을 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아가는 노정(路程)에서도 인간(人間)과 만물(萬物)이 여러분을 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하늘을 책망(責望)하거나 원망(怨望)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이기지 못하면 끝날의 심판(審判)의 관문(關門)을 통과(通過) 할래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基督敎)에서는 모든 것을 버리라고 했고 육신(肉身) 적(的)인 모든 것을 다 희생(犧牲)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말선3-128> 입고 먹는 것 때문에 식구(食口)끼리 싸움이 벌어집니다. 먹는 것 때문에 시어머니, 며느리, 형님(兄任), 동생(同生) 간(間)에 싸움이 벌어지고 국가(國家)면 국가(國家)끼리, 친척(親戚)이면 친척(親戚)끼리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分明)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먹고 입는 문제(問題)가 사탄이 되는 동시(同時)에 사탄이 활동(活動)할 수 있는 활동(活動)의 실천장(實踐場)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는 일 전체(全體)에는 언제나 사탄이 침범(侵犯)하려고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사탄이 침범(侵犯)할 수 있는 어떠한 조건(條件)도 제시(提示)하지 않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선3-202> 이제 여러분은 어떠한 고개를 넘어야 할 것인가, 여러분들은 어떠한 고개를 넘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먼저 역사적(歷史的)인 탄식(歎息)의 고개를 넘어서야 하겠고, 그다음에는 여러분의 전후(前後) 좌우(左右)에서 보이지 않는 공포(恐怖)의 세력(勢力)으로부터 가로막고 있는 사탄들을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절대적(絶對的)인 아버지 앞에 참(眞) 아들딸로 서기 위(爲)하여 새로운 신앙(信仰)으로 이 모든 의심(疑心)의 세계(世界), 이 모든 사망(死亡)의 세계(世界), 이 모든 죄악(罪惡)의 세계(世界), 이 모든 공포(恐怖)의 세계(世界)를 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늘이 요구(要求)하시는 신앙(信仰)의 내용(內容)을 안다면 그것을 입증(立證)시킬 수 있는 기준(基準)을 세워 하늘 앞에 나서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도저히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信仰)을 갖고 나설 때 여러분은 하나님과 영원(永遠)한 관계(關係)를 맺을 수 있고, 영원(永遠)한 선(善)과 영원(永遠)한 생명(生命)을 누릴 수 있고, 고통(苦痛)으로부터 영원(永遠)한 해방(解放)을 받을 수 있어, 영원(永遠)한 천국권내(天國權內)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명심(銘心)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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