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하지 말 것
(누가복음 18:1-8)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사람들은 간절한 바람을 이야기할 때 ‘인디언 기우제’를 말합니다. 인디언의 기우제는 항상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하늘의 기운을 알아차리거나, 제사의 영험함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해답은 싱겁습니다. 인디언의 기우제가 성공하는 것은 비가 올 때까지 계속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기도의 자세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기도해야 되느냐가 아니라,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것처럼 끈질기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큰 결심을 앞두고 사람들은 ‘40일 기도, 백일 기도’를 한다고 하는데, 방법이 잘못되었습니다. 40일, 100일 동안 기도해 보고 이루어지면 응답받았다고 믿고, 안 이루어지면 응답 못받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는 인디언 기우제처럼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기도의 방법은 한 장소에서, 같은 모습으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밤낮 부르짖는 기도도 있지만, 침묵의 기도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중에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을 자신도 모르는데 어떻게 기도한 것이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내가 의식하는 중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폭넓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생명의 영적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영적 활동으로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의식하고 기도할 수도 있고, 무의식 중에 기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준비를 하고, 시간과 장소를 정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의식하며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인 훈련을 통해 신앙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언제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는 말이 있듯이 기도는 멈출 수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주님을 향할 때는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기도는 위엣 것에 마음을 두는 것’이라고 합니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지닌 인간이 그 한계를 넘어선 세계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고, 내가 해야 하는 것을 편하고 쉽게 이루고자 구하는 것은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은 기도가 아니지요. 그것은 게으름, 욕심입니다.
우리들의 시도 생활은 어떻습니까? 마음을 주님께 두고 살아갑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는 것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재물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부자되게 해달라고 하면 그 기도를 들어 줄 수가 없습니다.
열심히 있는 신자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가난합니다. 딱 한 번만 나를 위해 기도합니다. 복권 1등 되게 해주세요.’ 몇 주일이 지나도 당첨 소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기도합니다. ‘그 소원 하나 안들어 주십니까? 섭섭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네가 복권을 사야 1등 되게 해주던지 할 것 아니냐?’ 최소한 복권을 사는 노력은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일을 하든, 장사를 하든, 내가 노력할 때, 하나님이 물질의 축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건강도 마찬가지이지요. 건강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기도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도만큼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노력은 이루고자 하는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력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가수가 된 어떤 청년이 어렸을 적 꿈은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아빠에게 미술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거절 당했습니다. 나중에 가수가 된 뒤에 아빠에게 그때 일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왜 청을 안들어 주셨느냐’고 하니까, 아빠가 대답합니다. ‘안 들어준 것이 아니라, 네가 간절하지 않았던 거지.’ 미술 공부를 정말 원했다면, 몇 번이고 청하였을 것이고, 그러면 아빠도 들어주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는 끈질긴 자세가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1절에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기도할 때는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고, ‘기도하지 않으면 낙심하게 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둘 다 맞는 말입니다. 기도는 실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해야 하며, 우리 영혼이 기도하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 자신을 하나님과 연결시킵니다.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이 있는데,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해 그 원한을 풀어달라고 청을 합니다. 재판관은 여인의 청을 무시합니다. 어쩌면 뇌물을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부가 끈질기게 청을 하니, 재판관은 ’귀찮아서라도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고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과부는 억울한 일을 해결해 달라는 정당한 청을 하였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이 기대하는 뇌물도 줄 수 없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과부의 간청에 재판관은 여인을 두려워하여 그의 청을 들어줍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끈질기게 간청하면 들어주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의 원한을 들어주시지 않겠느냐‘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재판관은 응답하는데 차이가 있습니다. 재판관은 지체하였지만, 하나님은 속히 들어주십니다. 재판관은 귀찮아서 들어주지만, 하나님은 사랑하기 때문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재판관에게 청하는 것처럼 오래 기도하며 하나님을 설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속히 들어 주십니다. 7절 마지막에 ’오래 참으시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속히 원한을 풀어주리라‘고 8절에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마디 덧붙입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기도는 ’인자가 올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인자가 올 때‘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때입니다. 이때는 기도가 필요 없는 때가 되겠지요. 그때까지 그리스도인은 낙심하지 말고 계속 기도해야 한다고 주님은 가르치십니다.
무엇을 기도할까요? 과부는 원한을 풀어달라고 청합니다.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것입니다. 보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의를 세워달라는 청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청하는 것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존중받으며, 생명이 귀하게 여김받는 것, 온 세상이 평화를 누리는 것을 기도합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신 세상이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따라 보전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물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만 구한다면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응답받는 기도를 할까요?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옳습니다‘ 라고 무한 신뢰하는 사람,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사는 사람이 되겠지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응답받는 기도를 하는 믿음을 보겠느냐‘고 회의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아마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더라도 주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을 따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인 것을 잊지 말고 힘써 하나님께 기도하며,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