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내 키만한 행운목을 들고 아이처럼 싱글벙글거리며 현관을 들어선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떤 아줌마가 들고 있길레 " 와..좋네요" 하고 말하였더니
"가지실래요? " 하면서 선듯 건네주더란다.
믿기지 않는 일이 가끔 이렇게 일어날 수 있길래 세상 사는 맛이 난다
나는 속으로 '어쩜 그 아줌마 천사일거야.. 천사가 잠시 아줌마로 변신해 남편을 통해 우리 집에 행운을 주신거야'하고
잠시 상상의 날개를 펴보았다.
얼른 커다란 유리병속에 꽂아 베란다에 내다 놓았다. 남편은 전리품을 감상하듯이 팔짱을 끼고 흐뭇한 표정이다.
어떻게 저런 커다란 나무토막에서 저렇게 무성한 잎사귀들이 뻗어나는지 참으로 신기하였다.
그런데 그만 사단이 나고 말았다.
베란다에 나가 보았더니 어제는 건성으로 보았던 잎사귀 끝이 말라있었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물이 오를 리 없지. 이렇게 큰 통나무인데.."
남편이 안방에 있는 사이 부엌칼을 들고 나와 3개나 되는 굵은 잎가지들을 쳐내려갔다.
그리고 칭얼대며 마른 젖을 빨아대는 아기를 위해 혼신을 다하던 엄마처럼 수고를 해온 몽통에게
'이제 좀 살 것 같지 않니?"하고 위로를 해주며 홀가분해진 몽통을 베란다 구석에 세워놓았다.
<자식도 크면 독립시켜야 하지 않는가>
"뭐야!!!!!!!!!!!!!!!!!!!!!"
연습장에 간다고 골프채 들고 나간 남편은 갔다와서도 말이 없다.
이럴 땐 강아지라도 있었음 얼마나 좋을까... 갑자기 뚱딴지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난 호랑이도 잡는다는 용맹스럽기 짝이 없다는 풍산개나 영리하여 때로는 사람보다 낫다는
진돗개는 물론 이쁜 강아지라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왠 강아지 타령이냐고..
꼬리를 흔들며 살랑대는 강아지가 있다면
우리 동서처럼 "아빠한테 가봐라 뭐하시나"하고 능청이라도 떨 수 있잖아
"맙소사. 그 순간... 정말 00가 씌었나봐..왜 내가 그런 실수를 저절렀지"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소 느슨해지는 부부사이를 점검해 보게 되었다.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배려'란 무엇인가
내 생각보다 남편의 생각을 먼저 존중해주는것. 설사 내 생각이 옳다 해도 먼저 남편의 의견을 물었어야 했다.
내 생각엔 가지를 쳐서 뿌리내리기 하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어떤 사람도 나처럼 뿌리 내리기 하여 주위사람들에게 행운을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설사 물이 안 올라 죽더라도 그 자체가 멋있다고 그냥 그대로 두기를 바랬던 남편의 뜻을 따랐어야 했다.
'그래도 그렇지 나보다 행운목이 더 귀하단 말이야?'가슴 한 켠에선 좀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 요즘 속상한 일도 많은데... 이참저참 참다가 터진 거겠지'하고
속마음을 이해 하니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나이가 들면 작은 일에도 신경이 써진다고 한다.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행운목 때문에 하마터면 부부싸움을 할 뻔 했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자칫 헐거워지기 쉬운 부부사이를 다시 점검해 보게 되어 감사하다.
행운목이 다시 뿌리를 내리는 동안 우리 부부 사랑도 그렇게 뿌리를 내려갈 것이다.
대화의 물을 마시며....
행운을 가져다 주신 '천사님 고맙습니다.'
첫댓글 부부란 오랜세월 살다보면 느슨해지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한가지 가장 중요한 것은요.. 절대로.. 결코.. 막말이나 자존심 상하는 언어는 삼가해야 한다는거.. 비록 이혼법정에 서는 순간에라도 그것은 금기사항 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부부는 죽는날까지 남남이고 또 사랑을 즐겨야하는 사이니까요... 맛난 속이없는 빈만두피 상태로 살아가야하는 부부는 참으로 의미가 없겠지요... 행운목이 계기가 되어 ..관성의 법칙으로 돌아오는 탄력있는 고무줄처럼 논두렁님 부부의 사이가 더욱 가까워지시길 바랍니다^^
의미있는 글을 읽고, 자신을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논두렁처럼 맛깔스러운 글이군요. 갑자기 행운목을 얻게 된 과정부터, 대견해하는 남편의 모습, 옳다고 생각하여 잎을 쳐낸 논두렁님의 처리, 화가 난 남편,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부부관계를 점검하게 된 일련의 사건이 재미있고 조리있게 쓰여졌네요. 강아지라도 있었으면 하는 대목에서는 저절로 미소를 지었어요. '자신의 입장에서보면 모든 사람이 옳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시비비를 따지기 전에,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아주 오래전에, 미국에서, 언니와 같이 살 때, 제가 돌조각이 붙은 묵은 나무뿌리를 주어왔지요. 다음날 언니가 돌조각과 잔 나무뿌리를 쳐내 밋밋하게 만들어 놓은 걸 발견하고 얼마나 황당했는지! 바로 그것때문에 저는 그 나무뿌리가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언니는 그게 지저분해서, 깨끗하게 한다고 한 행동을 저는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우리는 서로의 차이점 때문에 상대방에게 매력을 느끼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웃음 활짝!
송천님 속에는 어쩌면 이리도 깊은 정이 들어있습니까. 댓글 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닌데 많이도 달아주셨군요.
맞아요 서로의 차이점이지요. 쳐낸 가지들이 벌써 물 속에서 하얀 뿌리를 내렸어요.
"여보!!!!!!!! 뿌리가 내렸어요"
책을 보는 남편의 등 뒤에서 애들처럼 소리를 질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