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한바퀴 143- 전남 영광
1월29일 전주에서 영광으로 갔습니다.
영광군 ( 전라남도)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서북부에 있는 군입니다. 서쪽으로는 황해와 면하고, 동쪽으로 장성군, 남쪽으로 함평군, 무안군, 북쪽으로는 전라북도 고창군과 접합니다
영광군(靈光郡)은 해상선 길이는 199.15km 이고 부서도서로는 낙월도, 안마도, 송이도등 62개섬이 있습니다.
이곳 주산물 광어.
전망대에서 본 영광
• 본래 백제의 무시이군(武尸伊군)이었습니다.
• 757년 무령군(武靈郡)으로 개칭하고 고창현(高敞縣), 무송현(茂松縣),장사현(長沙縣)을 관할하
했습니다.
• 940년 고려 태조 23년 무령군을 영광군으로개칭하였습니다. 고창현은 고부군에 편입되고, 갑성군을 장성현(長城縣)으로강등하여 그 영현인 삼계현(森溪縣)과함께 영광의 속현이 되고, 압해군의 영현이던 육창현(陸昌縣 ), 임치현(臨淄縣), 무안군의 영현이던 해제현(海際縣) , 함풍현(咸豊縣),모평현(牟平縣)이 영광의 속현이 되었습니다. 뒤에 나주의 속현인 압해현이 영광에 편입되었다가 얼마 후나주로 환원되었습니다
• 1172년 장성현과 함풍현이 주현으로 승격하였습니다. 뒤에 장사현이 주현으로 승격하면서 무송현이 장사에 편입되었습니다
• 1392년 해제현이 함풍현에 편입되었습니다
• 1409년 모평현이 함풍현과 합병하여 함평현이되었습니다. 이 해에 전라도의 모든 속현과 향:소.부곡이 폐지되면서 남아있던 삼계현, 육창현, 임치현과 대안향(大安鄕)∙망운향(望雲鄕 ),진량부곡(陳良部曲), 홍농부곡(弘農部曲).공아부곡(貢牙部曲)이 모두 폐업되었다
관내 산업단지로는 대마전기자동차 일반산업단지, 송림 농공단지, 군서농공단지가 있다. 송림농공단지와 군서농공단지는 주로 식료품, 전기제품 계열의 기업이 많습니다. 2022년 현재 묘량농공단지 조성사업이 본 공사에 들어갔으며, 대마전기자동차 일반산업단지 배후단지 추가조성사업과 인근에 식품산업특화 농공단지 조성을 위한 토지보상을 진행될 예정입니다.
한편 영광이 굴비와 원전으로 인해 수산업과 제조업 이미지가 강한 편이어서 농업에 대해서는 별로 부각되지않는 면이 강한데, 사실 종사 인구가 별로 많지 않아서 그렇지 영광도 농업 종사 인구는 존재한다. 주요 농산물들로는 쌀, 보리, 고구마, 콩, 녹두, 잡곡, 땅콩, 참깨, 포도, 딸기, 고추 등이 재배됩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고추는 충청북도 음성군, 경상북도 영양군과 더불어서 전국 3대 주산지의 하나입니다
전라남도 서북쪽 끝에 있는 군. 군청소재지는 영광읍 무령리. 전라남도에서 유일하게 노령산맥 이북에 있습니다. 북쪽으로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부안군, 동쪽으로 장성군, 남쪽으로 무안군, 함평군과 접해 있습니다. 한빛 원자력 본부가 있습니다. 굴비생산지로 유명하며(하도 굴비 가게가 많아 편의점에서 굴비를팔아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서기 전만 해도 피서객이 많이 찾던 곳이었는데 들어선 이후 대폭 감소했습니다. 대신 원자력발전소로 하여금 얻는 각종 지원과 자체인구 증가로 인해 오히려 군세 자체는 더 흥하는 것 같습니다.
광주광역시와 교류가 많아 광주 영향권으로 분류됩니다. 광주로 가는 22번 국도도 왕복 4차로로 잘 포장돼있으며, 영광읍에서 동쪽의 구도심까지도 50km가 채 안 됩니다. 약 46km. 서해안고속도로로 인해 목포시로 접근성도 향상되었지만, 예전부터 22번 국도를 타고 광주광역시로 왕래해왔고 왕복 4차로에 입체화가 되어 고속도로나 다름이 없는데다 거리도 목포보다 광주가 더 가깝습니다.
법원이나 세무서 같은 공공기관도 광주광역시에 있는 기관의 관할입니다
영광 칠산타워 전망대에서 본 관경
영광 칠산 앞바다를 바라보며 둥글게 우뚝 높이 솟아있는 전남 영광칠산타워는 전라남도에서 최고 높은 건물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영광대교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에서 백수읍을 잇는교량이입니다.
홍농읍을 거쳐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상하면으로이어집니다.
영광칠산타워 전망대
전남영광군 염산면 향화도에 지어진 영광칠산타워 높이 111m 전남 초고층 타워에 오르면 영광군
의 섬 낙월도, 송이도, 안마도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답니다.
영광칠산대교위치 전남 무안과 영광을 잇는 영광 해제 칠산대교로 바다 위에 세워진 사장교이며, 칠산대교 길이 9.52km, 폭 11.5m, 교량 길이는 1.82km라고 합니다
무병장수의 전설
백수는 99개의 봉우리가 소재한 지역으로 백수(白岫)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등대가 있습니다.
조미미가 전남 영광 출생으로 이곳에 조미미의 기념비가 있습니다.
1947년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태어나 목포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5년 동아방송이 주최한 가요백일장에 참가해 김부자, 김세레나와 함께 최종 선발되어 '떠나온 목포항'으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1970년 작사가 정귀문이 경상북도 월성군 감포읍 나정항을 배경으로 작사한 바다가 육지라면으로 인기가수 반열에 오르고, 1973년 정태권 작사, 유성민 작곡의 서귀포를 아시나요로 대중에게 존재감을 확인시켰습니다. 이 노래는 삼다도 소식, 제주도의 푸른 밤과 함께 제주특별자치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으로 원곡은 오은주가 1972년 출시한 내고향 서귀포입니다. 원곡보다 리메이크곡이 더 유명해진 케이스 중 하나 입니다.
이 외에도 단골손님, 서산 갯마을, 란 같은 여자, 해지는 섬포구 등등 많은 명곡들을 남겼습니다.1990년대 이후에는 평범한 주부로 생활하며 딸 2명을 키웠고, 그 중 조카가 가수 김주나입니다. 2000년에는 재일교포이자 사업가인 남편과 일본에서 생활하다가 2010년 귀국해 사망할 때까지 가요무대에 간간이 출연하였습니다.
평소 운동도 좋아했는데, 사망 1달 전이었던 2012년 8월 6일, 마침 체중감량 문제로 병원에 갔다가 간암 말기 판정을받고 입원해 치료하다가, 본인 요청으로 오류동 자택으로 귀가 후 3일 뒤인 9월 9일 사망했습니다.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유족들 외에도 태진아, 금방울 자매 등 여러 동료, 선후배 가수들의 조문이 이어졌습니다. 태진아는 "늘 조용했지만 후배들에게 친절하게 잘 대해줬던 마음이 따뜻한 선배였다"면서 "갑작스러운 소식에 눈물만 흘렀다"라며 고인의 죽음을 추모하였고, 당시 대한가수협회 회장으로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장례를 도왔습니다. 장지는 경기도 양평군 무궁화공원묘원이며, 어머니 옆에 안치되었습니다.
백수해안노을길
천사가 되어 봅니다. 천사를 Angelo입니다. Pedroangelo(베드로천사)
날르는 베드로 천사
이곳의 새우
영광군 9경
영광군 9미
백수해안길
불갑사 꽃무릇 구경 후 영광 백수해안도로 드라이브 코스로 둘러보고 왔어요 해안을 따라가다 보면
스카이워크, 노을광장 전망대, 백수해안공원 이국적인 화장실 풍경, 뷰가 예쁜 카페들이 줄지어 있는
곳으로 서해안 가볼만한곳 영광 지역 볼거리가 많은 곳입니다.
백수해안길
이곳이 대한민국 경관대상 받은곳입니다.
조미미 디스크 소개
1960년대부터 우리 가요계를 이끈 네 명의 기수를 손꼽으라고 한다면 이미자, 나훈아, 남진 그리
고 조미미를 꼽는 사람들이 대다수 입니다. '바다가 육지라면'을 히트시키며 제2의 이미자, 꾀꼬리 가수
라는 별칭을 얻는 조미미는 이후 '서산 갯마을', '서귀포를 아시나요', '삼천포 아가씨' 등을 히트시켰고, 히트작이 모두 바다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이 주목을 끌기도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라면은? 정답은 바다가 육지 라면. 한때 이런 넌센스 퀴즈가 유행했었다고 합니다. 라면의 크기를 바다와 육지에 표현하는 넌센스라 해도 사랑하는 사람이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서로 만나기 수월한 곳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애절한 갈망은 절대 넌센스가 될 수 없었습니다.
당시 베트남 파병을 비롯해 가족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상황들이 빈번했던 1970년. 이 노래가 국민의 심금을 울리게 된 것은 당연지사가 아닐까? 파도가 가로 막고 있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심정을 노래한 조미미는 이제 고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맑고 경쾌한 음성을 기억하고 또 그리워합니다.
'바다가 육지라면'을 통해 그녀가 우리 마음에 없어준 그리움과 못내 다가갈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은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에게나 가까이할 수 없는 가족이나 연인을 둔 지금도 충분히 노래로 엮어질 수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편리해져도 파도가 이는 망망대해 바다를 건널 수 없는 사랑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년 여에 걸친 이 시대의 아픔도 있지 않았는가. 부디 이제는 바다와 육지의 간극이 없는 서로가 소통하고 서로가 오갈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오길 바랍니다
이곳에는 불갑사가 있습니다.
불갑사는 백제 또는 통일신라 때 세워진 사찰입니다. 불갑사가 384년 호승 마라난타가 세웠다는 설이 있지만 믿기 어렵습니다. 조선시대 기록에 신라 때 창건된 절로 나옵니다. 불갑사가 최초로 언급된 기록은 고려 말에 등장합니다. 호승 마라난타 창건설은 믿을 수 없지만 백제에 인도불교적 전통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