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개를 들어 꼿꼿이 꽃을 피운 게, 정선 사람을 닮았어요.
역경을 딛고 예쁘게 피는 신비로운 꽃이에요.”
동강할미꽃보존회 서덕웅 총무는 동강할미꽃을 이렇게 표현했다. 강원도에서도 정선은 오지다. 그러나 정선 사람들은 온갖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뿌리를 내려왔다. 이런 정선 사람들을 쏙 빼닮은 꽃이 바로 동강할미꽃이라는 것이다.
- ▲ 동강변의 석회암 벼랑에 핀 동강할미꽃. 비가 오는 와중에 찍은 사진이다. 비를 맞은 탓에 꽃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노란꽃은 돌담풍이다.
-
동강할미꽃(학명: Pulsatilla tongkangensis Y. Lee et T.C.Lee)은 이 세상에서 오로지 정선 동강 주변의 깎아지른 ‘뼝대(높고 큰 바위 벼랑을 일컫는 강원도 방언)’의 석회암 바위틈에서만 자생한다. 보통의 할미꽃은 지친 듯 꼬부라진 줄기 끝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피지만 동강할미꽃은 하늘을 향해 꼿꼿이 허리를 펴고 핀다. 이런 꽃의 자태는 예쁘다 못해 도도하기까지 하다. 자주, 보라, 연분홍 등 화려한 색으로 동강할미꽃이 피는 3월 말부터 한 달 동안 꽃의 자태를 담기 위해 많은 사진가들이 정선으로 모여든다.
- ▲ 좌)고개를 숙인 일반적인 할미꽃. / 우)제주도에서만 피는 가는잎할미꽃.
-
보통의 할미꽃은 묘지에서 많이 핀다. 요즘 산에는 낙엽이 많이 쌓여 물의 배수가 잘되는 곳에서 피는 할미꽃의 특성상 묘지처럼 좋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한 번은 필자가 제주도에서만 피는 가는잎할미꽃을 찍기 위해 밤에 공항에 도착, 택시를 타고 공동묘지로 가자고 하니 택시기사가 놀란 적도 있었다.
노랑할미꽃은 1986년 북한산에서 필자가 찍은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북한산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북한산에서만 피는 꽃이지만 멸종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어딘가에 피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 좌)1986년 북한산에서 찍은 노랑할미꽃. / 우)백두산에서 찍은 분홍할미꽃.
-
정선의 동강할미꽃은 1997년 필자가 처음 확인해 이듬해 꽃사진 달력에 실었다. 이후 식물학자 이영노 박사가 이 꽃을 보고 연구한 결과 세계에서 유일한 할미꽃종이라는 게 밝혀졌다. 필자는 할미꽃을 알린 공로로 2007년 정선 명예군민이 되는 영광을 얻었다.
- ▲ 좌)백두산에서 자생하는 세잎할미꽃. / 우)하늘 향해 고개를 쳐든 동강할미꽃.
-
그러나 현재 이곳에 자생하고 있는 동강할미꽃은 400포기 정도에 불과하다. 무분별한 채취로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동강할미꽃은 집 안의 화분에서도 잘 자라 관리를 잘하면 30~50cm까지도 자란다. 그러나 이런 꽃에선 할미꽃다운 맛이 나지 않는다.
위태로운 절벽의 바위틈에서 10cm 정도 작게 그러나 화사하게 핀 동강할미꽃을 눈으로 보지 않고선 그 감동을 이해할 수 없다.
- ▲ 좌)매년 4월 초 봄의 전령사 역할을 하는 동강할미꽃. / 우)고개를 꼿꼿히 든 동강할미꽃은 도도한 분위기다.
-
무분별한 꽃의 채취를 막기 위해 정선읍 귤암리 주민들은 2005년 11월 동강할미꽃보존회(회장 김형태 외 회원 33명)를 구성하고 서식지 보존 활동을 해왔다. 또한 정선군의 지원을 받아 2007년부터 매년 4월이면 ‘정선 동강할미꽃 축제’를 열고 있다.
시끌벅적한 축제가 아니라 야생화 동호인과 사진작가들이 동강할미꽃을 잘 찍을 수 있도록 바위에 사다리를 설치해 주는 등 안내와 편의를 제공해왔다. 더불어 정선아리랑과 전통 먹거리 등 토속문화를 소개하는 자리로 마련되어 왔다. 올해는 4월 2일에 정선읍 귤암리에서 네 번째 정선 동강할미꽃축제가 열린다.
- ▲ 뼝대에서 핀 동강할미꽃은 화분 속의 그것보다 훨씬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뼝대는 강원도 사투리로 높은 바위 절벽을 뜻한다.
-
/ 글·사진 김정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