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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산 가는 길
이곳(에베레스트)에는 나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더없이 가파른 능선들과 보기만 해도 섬뜩
한 천 길 낭떠러지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오르기 쉬운 눈 비탈에 관한 얘기는 신화적인 얘기
에 불과하다는 점 정도로만 말해두겠소 …….
이건 더없이 스릴에 넘치는 일이오. 이 일이 나를 얼마나 사로잡는지, 나에게 얼마나 큰 기대
감을 안겨주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소. 이곳의 그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대해서
도 그렇고!
▶ 산행일시 : 2019년 2월 9일(토), 맑음, 추운 날씨
▶ 산행인원 : 15명
▶ 산행거리 : GPS 도상 14.6km
▶ 산행시간 : 8시간 40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31 - 동서울터미널 출발
08 : 30 - 횡성군 안흥면 영랑리 추동 마을, 산행시작
09 : 05 - 730m봉, 첫 휴식
09 : 31 - △778.7m봉
10 : 27 - △835.7m봉
10 : 52 ~ 11 : 32 - 임도, 점심
10 : 55 - 1,037고지, 1,038.2m봉
12 : 50 - 1,090m봉, 암릉 암봉
13 : 22 - 오봉산(△1,124.6m)
13 : 53 - 1,100m봉, ┫자 능선 분기
14 : 14 - 임도
15 : 13 - 표때봉(△867.9m)
15 : 37 - 작은표때봉(825.8m)
15 : 50 - 813.9m봉
16 : 17 - 767.3m봉
16 : 33 - 756.2m봉
17 : 10 - 횡성군 안흥면 상안리 상안교 앞, 산행종료
19 : 04 ~ 20 : 58 - 홍천, 목욕, 저녁
21 : 55 - 삼패사거리, 부분 해산
1. 산행지도
2. 산행 고도표
▶ △778.7m봉
멸사봉산(滅私奉山)을 생활의 미덕으로 삼는 산꾼이 계절을 탓하고 일기를 탓할까마는 금년
에는 여느 해와 다르게 눈이 없는 메마른 겨울 산을 가려니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
다. ‘산은 겨울 산’이란 말도 기실 매운바람과 더불어 백설이 만건곤한 중에 오지의 준봉설산
을 누비는 정취가 각별하기에 너나없이 들먹이지 않겠는가.
주천강(酒泉江)을 영랑교(永浪橋)로 건너고 추동 마을이다. 이곳의 지명에 얽힌 유래가 재
미있다. 옛날 이 지역에 술이 솟는 바위샘이 있었는데, 양반이 잔을 들이대면 청주가, 천민이
잔을 들이대면 탁주가 솟았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천민이 양반 복장을 하고 잔을 들이대며 청
주를 기대했지만, 바위샘이 이를 알아채고 탁주를 쏟아냈다고 한다. 천민이 화가 나서 샘을
부숴버리자 이후부터는 술 대신 맑은 물만 흘러나와 강이 되었다 한다. 주천강의 유래다.
영랑리(永浪里)는 신라 때 영랑(永浪)이 선유암에서 놀았다고 하여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두산백과). 그러나 영랑리에 과연 선유암이 있는지조차 의문이고, 이곳에 통일신라 때
의 고분이 발견되고는 있다 하나 신라 사선 중의 한 명인 영랑은 ‘물결 랑(浪)’이 아닌 ‘사나
이 랑(郞)’을 쓴 ‘永郞’이다. 추동(楸洞)은 이곳에 가래나무(楸)가 많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산골마을인 추동의 대기도 차디차다. 영하 6도다. 산자락에 자리 잡은 이국적인 풍경인 펜
션 서너 채를 지나고 얕은 지계곡을 건너 잡목 숲을 헤친다. 생사면 잠깐 오르면 묵은 임도와
만난다. 임도의 대궁만 남은 억새 숲을 벗어나 잘 다듬은 무덤 위쪽을 오르면서 본격적인 산
행이 시작된다. 인적이 있는 듯 없는 듯 가파른 오르막이다.
멀리서 볼 때는 얼른 그 속에 들고 싶게 아름답던 자작나무 숲이 가까이서는 그다지 볼품이
없다. 자작나무가 잡목과 키 재기하면서 듬성듬성 자라서다. 얼은 갈잎 낙엽이 발밑에서 와
작와작 부서지는 소리가 온 산에 꽉 찬다. 자작나무 숲에 이어 잣나무 숲을 지난다. 잣나무
낙엽이 솔잎 낙엽과 한가지라 오르막에서는 엎어질 듯 미끄럽다.
30여분을 냅다 치고 올라 730m봉이다. 누군가 나무판자에 노란 페인트로 ‘730m, 인수봉 쉼
터’라고 써서 걸어놓았다. 첫 휴식한다. 중산 님이 냉장고에 2주를 숙성하였다는 홍어회를
내놓으신다. 이왕이면 뜨뜻한 두엄 속에 넣어 숙성하였다면 콧김과 눈물이 나게 좋을 뻔했
다. 역시 홍어에는 탁주가 제격이다. 마침 가파르고 긴 오르막을 기어 온 터라 입안이 밭고
목은 칼칼하기도 했다.
산정은 영하 10도 가까이 되겠지만 거푸 들이킨 홍탁의 얼근한 기운에 두 뺨은 발그레하고
발걸음은 사뭇 가뿐하다. 등로 수북한 낙엽을 지치며 우르르 내렸다가 그 여세를 몰아
△778.7m봉을 오른다. 삼각점은 ‘425 재설, 72.8 건설부’다. △778.7m봉 주변은 벌목하여
전망이 훤히 트인다. 가야 할 오봉산 연릉 연봉이 장릉으로 반공을 가렸고 그 뒤로 백덕산이
이곳 맹주의 위용을 살짝 내비친다.
왼쪽의 동박골 건너 웰리힐리 리조트의 2층 집들이 보이고 그 뒤의 쌍봉은 왠지 낯이 익기에
기억을 더듬어 보니 우리가 오른 적이 있는 주봉(周峰, 827.3m)이다. 2016년 8월 27일 엄
청 무덥던 날 올랐다. 그때 2부 산행으로 양지말에서 이 △778.7m봉을 넘어 오봉산의 1,037
고지를 올랐다. 오늘 지도로는 그때와 같은 산을 가지만 그때와는 계절이 달라 실제는 전혀
다른 낯선 산을 간다.
△778.7m봉을 내려 바닥 친 안부는 묵은 임도가 지난다. 선두그룹은 임도에서휴식하며
△778.7m봉 주변의 돌덩이에서 더덕을 조각하느라-대개 두상이나 잘하면 토르소 정도다-
무진 애를 쓰는 일행들을 기다려준다. 다시 하늘 가린 숲속에 든다. 길게 오르고 짧게 내리기
를 반복하며 고도를 높인다. 북사면의 분칠한 듯한 분설은 고도를 높일수록 점점 깊어진다.
3. 첫 휴식한 730m봉, ‘730m, 인수봉 쉼터’란 표지판이 걸려 있다
4. 등로
5. 멀리 오른쪽이 오봉산
6. 왼쪽이 오봉산, 멀리 가운데는 백덕산
7. 등로
8. 임도에서 점심식사 후
9. 임도에서 점심식사 후 가파른 오르막
10. 1,037고지 가는 길
11. 1,037고지 묵은 헬기장에서
12. 오봉산 가는 길
13. 멀리 가운데는 치악산 비로봉
▶ 1037고지, 오봉산(△1,124.6m)
△835.7m봉의 삼각점은 ╋자 방위표시만 남고 마멸되었다. 숨 가쁜 오르막으로 등줄기에 땀
이 뺀다. 여전이 조망이 가린 송전탑 밑을 지나 한 피치 바짝 오르면 산허리 도는 절개지 높
은 임도다. 양지바른 임도에 둘러앉아 점심자리 편다. 굳이 비닐 쉘터를 치지 않아도 될 만큼
안온하다. 버너를 상비한 회원 다수가-산정무한, 상고대, 신가이버, 승연 등-갑자기 사정이
생겨 오늘 산행에 참석하지 못하였는데도 버너 3대를 가동한다. 라면 6개를 나누어 끓이니
넉넉하기가 오병이어(五餠二魚) 고사 버금간다.
임도의 능선 마루금은 높은 절벽의 절개지라 감히 덤비지 못하고 산모롱이로 돌아가서 느슨
한 절개지에 붙는다. 그래도 돌담 위 생사면의 오르막은 만복의 옆구리가 결리도록 가파르
다. 저마다 갈지(之)자를 한일(一)자처럼 그리면서 오른다. 능선에 올라서도 가파름은 좀처
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아무렴 든든한 뱃심으로 버텨 1037고지를 얻는다.
1037고지는 지금은 묵은 헬기장이다. 헬기장 가장자리에 ‘자유를 위하여’ 전적비가 있다.
비문은 불어, 한글, 영문을 병기했다.
“1951년 3월 5일,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혹한 속에서 펼쳐진 1037고지 전투에서 유엔군 소
속 프랑스 대대원 28명이 전사하고 113명이 부상을 입었다. 참혹한 전투에서 용맹스럽게 싸
운 프랑스 대대는 값진 승리를 거두었지만, 문재터널까지 전사자 및 부상자들을 후송해야 하
는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자료에 의하면 프랑스는 1950년 11월 29일 부산항에 도착하여 휴
전일인 1953년 7월 27일까지 연인원 3,421명이 전투에 참가했다. 그동안 262명이 전사하고
실종(또는 포로)은 19명, 부상자는 1,008명이었다. 이곳 1,037고지에서의 전투는 특히 치열
하여 위의 비문과는 달리 40명이 전사하고, 200명이 부상하였다고 한다.
비 앞에서 숙연히 묵념하고 산죽 숲 헤쳐 1,038.2m봉을 넘는다. 북사면을 오를 때는 겨울 산
설원을 누빈다. 송전탑에서 잠깐 하늘이 트이고 다시 숲속을 잠행한다. 모처럼 암릉 암봉을
만난다. 일로직등. 1,090m봉이다. 오른쪽 사면으로 우회하는 길을 마다하고 직등한다. 갈림
길에 서서 어찌할까 망설이는 영희언니더러 앞장서게 하여 나아간다. 백두사랑산악회 표지
기가 직등을 자랑한다. 우리라고 못할까. 색이 바랜 가느다란 밧줄이 매달려 있다.
밧줄 없이도 살금살금 암릉을 기어오르면 사방 트이는 암반이 금방이다. 오늘 산행의 최고의
경점이다. 풍취산, 매화산, 치악산 천지봉, 비로봉, 가리왕산, 승두봉 등 유무명 뭇 산들이 다
내 눈 아래에 있다. 미세먼지가 끼어 흐릿한 것이 흠이다. 내리막이 여간 고약하지 않다. 암
반을 지나 몇 걸음 나아가면 2단의 절벽이다. 스틱을 먼저 내려 보내고 왼손은 매달려 있는
가느다란 밧줄을, 오른손은 낙엽 헤쳐 돌부리와 나무뿌리를 움켜쥔다.
1단 내린 좁은 테라스에서 가쁜 숨 고르고 2단의 내 하강 차례를 기다린다. 먼저 내린 스틸
영 님이 발 디딜 곳과 손 잡을 데를 안내한다. 절벽을 마주보고 내려야 한다. 그러려면 절벽
끝에 뿌리내린 나무줄기를 꼬옥 부둥켜안고 몸을 허공으로 180도 돌려야 한다. 바로 내 앞에
서 영희언니가 내리면서 한 손에 움켜쥐었던 밧줄이 바위모서리에 쓸려 뚝 끊어진다. 어쩌면
다행한 일이다. 추락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서다. 낙엽 쓸어 나무뿌리를 찾아내서 붙들고
어렵사리 내린다.
이 다음 1,129.6m봉의 내리막 짧은 암릉은 애교다. 설사면 오르고 암릉을 타지 않은 선두 일
행들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오봉산 정상이다. 오래 휴식한다. 아까 다 먹지 못한 홍탁
을 마저 마신다. 오봉산이란 이름은 아마 5개 봉우리가 연이어 솟아 있어서일 거라고 짐작한
다. 삼각점은 어렵게 판독하여 ‘301 재설, 77.6 건설부’이다.
14. 멀리 가운데는 배향산(?)
15. 앞은 오봉산 북사면
16. 멀리 가운데는 가리왕산
17. 왼쪽은 승두봉
18-1. 오봉산 정상에서
18-2. 오봉산 정상에서(2017년 4월 1일), 이날도 무척 추웠다
19. 백덕산
20. 백덕산
21. 멀리 가운데는 배향산(?)
22. 임도 주변 노송
23. 더덕 건화
▶ 표때봉(△867.9m)
당초 산행계획대로라면 문재 직전의 오른쪽 지능선을 타고 문재골로 하산하는 것인데 그 시
간이 너무 이르다. 물론 문재 직전에 하오고개 가까이 맴돈다고 해도 난이도가 별로 있어 보
이지 않을뿐더러 눈에 흙이 들어가는 더덕 조각도 명품일리 없어 괜한 발품일 공산이 크다.
문재를 지나 사자산 언저리를 올라서 무란이 쪽으로 내려가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으나
문재를 통과하는 데 큰 문제가 있다.
문재를 15명 일행이 아무 탈 없이 통과하리란 보장이 없다. 누군가는 문재에서 틀림없이 더
가지 않겠다고 꽁무니를 뺄 것. 절대로 그럴 기회를 줄 수는 없다. 오던 길 뒤돌아 ┫자 능선
이 분기하는 1,100m봉에서 왼쪽의 표때봉 능선을 가는 것이 묘수이자 묘착이다. 표때봉도
처음은 아니지만 1037고지나 오봉산처럼 이 마른 겨울에는 전혀 다른 산일 것이다.
가장 문재 가까이 내려가서 쉬고 있는 모닥불 님을 소리쳐 불러 오봉산을 다시 오르게 하여
단체 기념사진 찍고 온 길을 뒤돌아간다. 줄줄이 줄달음한다. 그 바람에 1,129.6m봉의 애교
스런 암릉을 놓치고 왼쪽 사면을 길게 돌아 넘는다. 곧 ┫자 능선이 분기하는 넙데데한
1,100m봉이다. 왼쪽 능선 길도 잘났다. 산 또한 오를 때보다는 내려갈 때가 더 조심스럽다.
산죽 속에 혹은 낙엽 속에 숨은 빙판이 발목을 낚아채곤 한다. 그렇게 당할 때마다 뒤에 오는
일행에게 사고다발지역이라고 일러준다. 등로 벗어나 왼쪽 사면을 조금만 내려가면 벌목한
지대라서 오봉산 연릉은 물론 삿갓봉에서 사자산, 백덕산에 이르는 장릉이 썩 장쾌하게 보인
다. 등로 벗어난 전망 좋은 바위에도 꼬박 들러 약간 각도를 달리한 백덕산 연릉을 자세히 들
여다본다.
임도. 오봉산에서 내려온 지 40분이 채 되지 않아 휴식한다. 어차피 하산할 시간만큼 산을 가
니 급할 것이 없다. 휴식할 때마다 입을 그냥 놀리지 않는다. 향상 님이 내놓는 노랗고 말랑
말랑한 곶감을 먹어준다. 달짝지근한 게 입에 착 달라붙는다. 신가이버 님이 생각난다. 이런
곶감을 보면 어머니가 생각이 나서 잘 먹지 못하겠다는 신가이버 님이다.
봉봉 오르고 내리는 굴곡이 꽤 심하다. 내릴 때는 다 험로다. 866.8m봉이 그렇고 걸음걸음
재며 내렸다가 1,100m봉을 내릴 때 보던 것과는 다르게 첨봉으로 돌변한 표때봉을 땀나게
오른다. 표때봉 정상은 수풀 무성한 헬기장이라 아무 조망이 없다. 오지산행에서 7년 전에도
올랐는데 그때와는 판이하다. 삼각점은 ‘안흥 306, 1989 재설’이다. 표때봉의 유래는 깃대봉
의 다른 말이 아닐까 한다. ‘푯대봉’을 ‘표때봉’으로 소리 나는 대로 썼다고 본다.
표때봉을 내렸다가 안부에서 자맥질하고 머리 들면 작은표때봉(825.8m)이다. 그럴듯한 왼
쪽 등로를 따라 시야에서 벗어나려는 선두를 소리쳐 불러 지도를 다시 보시라 주문하고 미역
줄나무덩굴 숲 뚫어 직진한다. 813.9m봉을 오르면서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단연
두드러진 첨봉의 이름이 궁금하다. 진부 석두산일까? 청일 주봉산일까?
813.9m봉에서 왼쪽 방향(남쪽)으로 직각 꺾는다. 좌우 사면은 자작나무숲이고 능선마루는
조망이 트이는 벌목지대다. 왼쪽은 사자산 연릉이 오른쪽은 치악산 연봉이 가깝게 보이는 드
문 경점이다. 767.3m봉 넘고 하산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아울러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되려 한다. 어디로 내릴까 잰걸음하며 왼쪽 사면과 지능선을 살핀다. 깊은 암벽이 천혜
의 성벽으로 길게 둘렀다.
746.2m봉을 올라가 둘러보아도 성벽의 허술한 구석을 찾아내기 어렵다. 그렇다고 하산을 미
룰 수는 없고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 다가왔다. 대간거사 총대장님은 746.2m봉을 조금 내
린 야트막한 안부에서 암벽 밑 왼쪽 사면을 트래버스하자고 하며 앞장선다. 낙엽이 수북한
가파른 사면이다. 낙엽과 함께 쓸려 내려가지나 않을까 오금이 저린다.
주춤주춤 트래버스하여 746.2m봉 남릉을 잡는다. 이제는 길이 뚫리는가 한숨을 돌리려는데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벽에 막힌다. 지도에서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험로다. 골짜기 쪽으로
더듬더듬 기어 내렸다가 다시 가파른 사면을 비스듬히 치고 올라 746.2m봉 남릉을 붙든다.
층층 절벽을 그러기 반복해가며 통과한다. 내려갈수록 골짜기는 빙벽이거나 잡목과 덤불이
우겨졌다.
암벽지대 벗어나 자작나무숲에 들고 그러나 자작나무 수피는 워낙 매끈하여 비탈길을 내리
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침내 746.2m봉 남릉이 맥을 놓고 골짜기 옆으로 개설 중인
임도에 내려선다. 장히 뒤돌아보는 공제선 아래 층층 암벽은 우리가 방금 교묘히 빠져나온
데라고 쉬이 믿기지 않는다. 그 배경한 자작나무숲이 장려하다. 그런 자작나무숲 임도를 간
다. 백석이 「山中吟」으로 읊은 ‘백화(白樺)’에 못지않을 풍경이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山도 자작나무다
그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山넘어는 平安道땅도 뵈인다는 이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자작나무 숲길로 산모퉁이 돌아내리면 주천강 지천인 상안교 앞이다. 모두 무사했다. 하이파
이프 힘차게 나눈다.
24-1. 표때봉에서
24-2. 표때봉에서(2012년 2월 11일), 이날은 눈 좀 밟았다
25. 멀리 오른쪽은 주봉산(?)
26. 등로 주변의 자작나무 숲
27. 등로 주변의 자작나무 숲
28. 치악산 비로봉
29. 사자산
30. 맨 오른쪽은 매화산, 그 왼쪽 뒤는 천지봉
31. 자작나무 숲
32. 하산 길 자작나무 숲
33. 하산 길 자작나무 숲
34. 하산 길 자작나무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