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36]
아버님의 예전 부하 직원이었고, 선친의 장례식 때 극진한 조문을 한 바 있는 K라는 서울의 구청장을 지내신 분이 있다. 그는 특별히 자신의 인생에 큰 전기가 된 사무관 승진을 시켜주신 아버님께 고마운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집이 가난해 청년기에 오물을 져 나르던 불우한 때도 있었다. 그는 그 때를 잊지 못해 가끔 술을 먹으면 그 시절을 회상하고 눈시울이 불그레해 지기도 했다. 그는 아버님을 본받아 청렴결백한 공무원의 길을 걸었고, 구청장을 지내는 동안에도 월급 외에는 다른 생각을 전혀 품지 않고 깨끗한 생활을 했다. 그런데 그는 자기의 학벌에 대한 열등감이 가슴 속 깊이 존재하고 있었다. 때문에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을 통해 대신 실현하고 싶어 아들 둘을 무리하게 미국 유학을 보냈다. 그는 그 일로 말미암아 주위로부터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둘째 아들은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취직했다. 그러나 맏아들은 박사학위를 받아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려 했었다. 그러나 학위취득은 쉽지 않았고, 설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다하더라도 국내에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실력이 달리는 탓에 학위취득기간이 너무 소요되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자 마침내 K씨가 아들에게 포기하라고 권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어느 날 아들이 귀국해 K씨에게 1년만 더 기회를 준다면 반드시 학위를 따겠다고 설득하였다. 자식을 이길 수 없는 여느 부모처럼 K씨는 또 빚을 내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다짐을 받고 아들을 미국에 다시 공부하러 보냈다. 그 후 아들은 배수진을 폈고 도서관에 파묻혀 지내다시피 했다. 어느 날 맏아들은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새벽녘에 차를 몰고 집으로 오고 있었다. 그는 심한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에 그만 깜박 잠이 들어 고속도로 가드레일에 크게 충돌했다.
아들의 죽음은 너무나 비극적인 사건이었고, K씨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참척(慘慽)의 한(恨)을 아로새겼다. K씨는 아들의 시신을 다니던 절에 안치해 놓고 49제를 지냈다. 아들의 영정사진을 붙잡고 우는 K씨는 넋이 나간 듯 했다. 아들이 죽은 지 몇 년 동안 K씨는 술만 먹으면 아들을 회상하며 눈물짓곤 했다. 살아있는 한 그토록 불행하게 죽은 아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으랴.....! 그러나 자신의 이루지 못한 한을 아들을 통해 대신 풀어 보려고 했던 K씨의 계획은 처음부터 무리였던 것이었다. 자기의 능력을 초과해서 학위에 무리하게 매달렸던 아들에게도 잘못은 있었다. K씨는 아들이 일시 귀국했을 때 자기가 아들을 말려야 했었다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K씨는 아들 때문에 많은 빚을 졌고 뒷수습도 만만치 않았다. 가까운 많은 사람들이 K씨에게 돈을 빌려주고 마음고생을 하게 되었다. 세무서 공무원인 그의 친동생은 K씨 때문에 봉급을 가압류 당했다. 그래서 그는 서장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었던 데도 불구하고 진급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었다. 그의 딸도 금융기관의 대출을 받기위해 집을 저당에 잡히는 등 K씨로 인한 후유증이 상당했다. K씨는 그 후 아들로 인한 마음의 깊은 상처와 빚으로 인한 과중한 부담 때문에 중풍이 왔고, 신체 일부의 마비현상이 일어났다. K씨는 너무나 다정다감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절제하는 힘이 부족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K씨의 경우를 보면서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의 자세가 아쉽게 느껴진다. K씨는 중풍이 온 후로, 자녀 외에는 세상과의 소통을 끊어, 그의 소식을 알 길이 없다. 아마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그는 세상을 달리 했을 것이다. 마음의 처절한 고통과 깊은 한을 품은 채.....
첫댓글 글을 읽으며 k씨의 사정이 답답하고 안타까워
가슴이 아리네요..ㅠ
자식 뒷바라지로 고생만 하셨는데,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다니..
k씨의 인생이 너무도 기구하네요..ㅠㅠ
모든 게 지나고 나면 그 때 그러는게 아니었어 라고,
분석하고 판단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런 상황에 봉착한 당사자 입장을 고려해 보면,
그 외의 다른 마땅한 방도도 없었겠다 싶습니다.
참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ㅠㅠ
그시절 자식 유학 보내는거 쉽지 않았을텐데 두 아들
유학 보내느라 다른
가족까지 힘들게 하고 결국은 큰아드님
그렇게 하늘 나라로 보냈으니 그 비통함
어찌 감당 할 수 있었겠어요..ㅠㅠ
자신이 못다한 공부에 대한 미련을
자식을 통해 보상 받고 싶었겠지만,
부모님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을 아들의 심정에 마음이 더욱
아려옵니다..ㅠ
보라님 선하신 마음이
가슴에 따뜻하게 공명을 일으키네요~~
전재산과 심지어는 끌어댈수 있는 모든 빚까지 투입하여 아들의 유학경비를 댄 K씨. 그리고 그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하여 자신의 능력을 초과하여 거의 미친듯이 노력한 맏아들
이 모두의 결과는 찢어지는 슬픔, 망연자실 만 댕그러니 남았습니다. 우리 슬픈 인생의 극단적인 한 단면입니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