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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 읽기> 너에게 묻는다/안도현
안도현을 아시는지요. 물론 알고 있겠지요. 그는 최근 들어 아주 유명해졌으니까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를 어떤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까? 어른을 위한 동화작가라고요. 그렇습니다. 그는 어른을 위한 동화작가입니다. 그가 펴낸 어른을 위한 동화로는 《연어》와 《관계》가 있습니다. 아, 요즘(1999년) 문학지를 보니까 계간 『문학동네』에 《미키》라는 또 하나의 어른을 위한 동화를 연재하고 있더군요. 그러나 이 중 《연어》가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안도현의 《연어》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에서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그런데 독자가 어린이든 노인이든 간에 안도현의 《연어》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 동화 속에 나오는 ‘눈맑은연어’와 ‘은빛연어’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모천을 찾아가며 나누던 그 드높은 이상과 따스한 우정을 기억할 것입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이들이 모천에 다다라 산란을 마친 뒤에 보여준, 그 쓸쓸하나 아름다운 죽음이 시간도 기억할 것입니다. 저는 금방 앞에서 ‘쓸쓸하나 아름다운 시간’이라는 모순된 표현을 썼습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하시겠지요? 말할 것도 없이 이 ‘쓸쓸하나 아름다운 시간’이란 알을 낳고 그 알의 부화를 기다리며 자신들을 주검으로 하얗게 만든 어미 연어의 시간을 뜻합니다. 안도현은 이 작품의 끝부분에서 자기가 낳은 알의 부화를 기다리며 죽은 어미의 속마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
그들은 눈을 감기 전에 서로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하지도 모른다.
“저 알들 속에 맑은 눈이 들어 있을 거야.”
“그 눈들은 벌써부터 북태평양 물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을지도 몰라.”라고
그리고.
초록강에는 겨울이 올 것이다.
겨울이 오면 강은 강물이 얼지 않도록 얼음장으로 만든 이불을 덮을 것이다. 강은 그 이불을 겨우내 걷지 않고 연어알을 제 가슴 속에다 키울 것이다. 가끔 초록강의 푸른 얼음장을 보고 누군가 지나가다가 돌을 던지기도 할 것이고, 그 때마다 강은 쩡쩡 소리내어 울 것이다.
봄이 올 때까지는 조심하라고, 가슴 깊은 곳에서 어린 연어가 자라고 있다고.
연어알을 품고 있는 강물의 모습이 아름답지요? 어미 연어는 이런 강물의 깊고 따스한 마음을 믿으며 눈을 감았습니다. 강물의 품속에서 연어알이 건강하게 부화될 것이라 믿은 것입니다.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감상하려다 안도현의 동화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길게 했군요. 그러나 여기에는 뜻이 있습니다. 안도현의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의 세계야말로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는 말할 것도 없고 그의 다른 시를 이해하는 데에도 아주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에요. 저는 <너에게 묻는다>를 비롯한 안도현의 시세계 전체를 가리켜 한마디로 “드높은 이상주의자와 숭고한 낭만주의자의 세계”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표현은 그의 동화세계를 가리키는 데도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그럼 이제 여기서 함께 감상해보고자 하는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로 넘어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을 인용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겠지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
아주 짤막한 시입니다. 겨우 3행에 불과합니다. 이 시는 안도현이 등단(1984년 『동아일보』에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됨) 이후에 세 번째로 낸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속에 들어 있습니다. 파란 표지에 시인의 초상이 어슴푸레하게 숨어 있는 이 시집의 첫 장을 열어보면 곧 바로 <너에게 묻는다>라는 이 시가 실려 있습니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자신의 시집 첫 면은 자신의 시세계를 대표한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특별히 애정을 갖고 있는 시로 장식하는 거의 일반적이니까요. 이 시도 안도현 시인에게 아주 중요한 뜻을 갖는다고 생각하여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안도현의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의 첫 장을 넘기면서 만난 이 시를 보고 아마도 여러분들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먼저 시의 제목이 가진 어조로 인하여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질문하는, 시인의 날카로운 지적으로 인하여 그럴 것입니다.
먼저 제목이 주는 충격에 대하여 생각해볼까요? 시에서 제목은 우리들이 사는 집의 대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어느 집을 방문할 때 우리는 먼저 그 집의 대문을 보면서 이러저런 상상을 합니다. 시를 읽는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의 제목을 보면 우리는 여간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시집을 열자마자 첫 시에서 갑자기 우리를 향해 심문(?)을 하겠다고 대듭니다. 즉 시의 제목이 심문하는 어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긴장해야 합니다. 도대체 저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질문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기분 나빠하면서 시집을 닫을 수도 없습니다. 물론 닫을 수야 있겠지요. 그러나 질문을 하겠다고 누군가가 나섰을 때 그에 대한 저항감 못지않게 호기심 또한 큰 것이고 보면 시집을 닫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을까요? 어쨌든 시집은 열려 있고 그 시집의 첫 시는 우리를 향하여 ‘너에게 묻는다’고 달려듭니다. 어쩌겠어요. 적어도 이 시인과 화해를 하려면 그가 묻는 내용을 일단 들어보는 수밖에…….
우리는 시인의 질문 내용을 조용히 듣습니다. 그런데 그의 질문은 아주 짤막합니다. 행으로 따져도 불과 3행에 지나지 않고, 글자 수로 따져도 불과 32자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질문을 받고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질문을 받고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시인의 질문 내용이 우리가 돌보지 않고 살던, 그렇지만 돌보고 살아야 마땅한 점을 집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는 우리에게 “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 질문은 받고 우리는 몸둘 바를 모르면서 정말로 나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 된 적이 있는가 하고 자신을 돌아다보면, 그의 질문에 답해야 할 의무 같은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 시의 매력은 여기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또 어떤 점 때문입니다. 안도현은 이 시의 첫 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여러분들은 연탄재를 발로 차본 적이 있습니까? 요즘은 모두들 기름으로 또 가스로 난방을 하니까 연탄재를 볼 기회도 또 차볼 기회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가정집 대문 앞에는 하얗게 탄 연탄재가 줄을 맞춰 쌓여 있었고, 우리의 겨우살이는 창고에 수백 장의 연탄을 가득히, 차곡차곡 채우는 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몇 가마니 쌀, 몇 항아리의 김치, 몇백 장의 연탄을 준비해야만 우리의 겨울나기가 시작됐던 것이지요.
다 타버린 연탄재를 우리는 함부로 또 재미로 차곤 했습니다. 발이 심심하니까요. 아니, 연탄재란 이미 쓰레기 신세가 된 것이니까요, 바깥에서 떨고 있는 연탄재 정도야 거지의 신분이라도 마구 찰 수 있을 만큼 이미 폐물이 된 것이니까요. 어쨌든 우리는 타버린 연탄재를 아무런 가책 없이 차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안도현 시인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고 우리에게 명령(?)을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우리는 마음이 찔끔 조여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아니면 왜 연탄재를 발로 차지 말라고 외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오해는 곧바로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첫 줄의 내용으로 인하여 안도현이 진짜 말하고자 하는 “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질문 내용이 빛을 발하여 다가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안도현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비록 연탄재를 쓰레기로 취급하여 마구 차고 다니지만, 그래도 연탄은 너에게 따뜻한 아랫목, 맛있는 밥과 국, 겨울날의 더운 세숫물 들을 주며 하얗게 자신의 몸을 태우지 않았느냐고……. 사실 그랬습니다. 연탄 하나로 우리는 밥도 짓고, 국도 끓이고, 방도 데우고, 물도 데우고, 고구마도 구워 먹었습니다. 그 까만 연탄으로 말입니다.
안도현은 바로 이런 연탄을 생각하면서 우리에게는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찰 자격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이어서 ‘뜨거운 희생’의 표상인 연탄과 냉혈동물 같은 인간을 대비시키면서 우리에게 질문을 한 것입니다. 너는 정말 까맣고 못생긴 연탄만큼이나 ‘뜨거운 열림’ 혹은 ‘뜨거운 희생’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느냐고. 너(인간)에게서 나는 냉혈동물의 차가운 기운만을 느낄 뿐이라고. 너의 그 냉기 때문에 세상에 봄이 오지 않는다고, 그보다도 먼저 네 몸 속에 가득 찬 냉기 때문에 네 몸에 영원히 봄이 오지 않는다고.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연탄의 ‘뜨거운 희생’이 얼마나 많은 세계를 살려내는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연탄보다도 검고 차가워진 우리의 마음을 점검해볼 수 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안도현의 당돌한 질문이 실은 우리로 하여금 자아 성찰의 계기를 갖도록 하였기 때문에 그 질문을 받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내 마음이 봄이어야 세상에 봄이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냉기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얼어 죽고 마는 생명들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내 몸이 어느새 슬슬 열리면서 온기를 맞이하는 느낌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내가 뜨거운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소망해볼 수 있습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시감상이란 어차피 개인의 몫이니까 또 다른 수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겠지요.
안도현의 시를 넘기면 바로 <연탄 한 장>과 <반쯤 깨진 연단 한 장>이라는 시가 나옵니다. 저는 이 세편의 시를 일명 안도현의 ‘연탄 시리즈’라고 부릅니다. 안도현은 이 세 편의 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질문하고 명령하며 우리들을 ‘따뜻한 세계’로 안내하지만 실은 그 자신이 이렇게 뜨거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전합니다.
인간이란 본래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유전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우리들이 유전자에 이미 이기적 유전자가 들어 있다지요. 그러므로 우리들이 ‘뜨거운 사람’이 되는 일은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인간이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런 소망 속에서 조금씩 따뜻해져오는 우리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와 일면 ‘연탄 시리즈’를 읽는 동안만이라도 우리들의 마음이 덥혀지고 열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안도현에게는 뜨거움을 품은 연탄이야말로 연어알을 품고 봄을 기다리는 강물과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안도현은 우리가 모천을 찾아오는 어미 연어, ‘눈맑은연어’와 ‘은빛연어’를 닮았으면 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이런 생각과 느낌 속에서 다시 한 번 안도현의 시 <너에에 묻는다>를 읽어볼까요. 좀더 깊고 진하게 그 시가 스며들 것입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글을 마치며 한 가지만 더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시가 아주 짧은 것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였나요?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 반응이 있을 겁니다. 누군가는 ‘아, 바쁜 세상에 이렇게 짧은 시가 어울리지’, 또 누군가는 ‘어떻게 이처럼 짧은 시로 많은 말을 하지’, 또 다른 누군가는 ‘차라리 경구에 가깝구먼’,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시의 매력은 짧은 데 있어’라는 식의 다양한 반응을 나타낼 겁니다. 시가 꼭 짧을 이유는 없습니다. 서사시나 장시는 소설보다 더 길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일반 서정시는 짧은 형식을 취하지요. 그것은 가장 압축된 말로, 가장 많은 의미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 시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 우는 울음이야말로 가장 압축된 형식의 시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울음 속에는 생의 기쁨, 고단한, 슬픔 등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안도현은 위 시에서 아주 적은 말로 참으로 많은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시는 매우 경제적인 장르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위의 시에서 실감 있게 확인한 것입니다.
―정효구, 『시 읽는 기쁨』, 작가정신, 2003.
첫댓글 2십년 전 시
이 시는 늙을 줄도 모르네요
아직도 가슴 따뜻해지는 연탄 시, 짭아서 마음에 새겨두기 좋은 시, 나도 이런 시 한편 남기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