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시편 77:1~12
오늘 저녁 봉독한 시편 77편은 하나님의 교회가 당하는 고난과 역경을 개인적인 형식의 시로 표현하였습니다. 본문의 내용에서 그 고난이 아주 심했고 그런 절망적인 시기가 오래였던 것으로 보아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던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이 큰 환난 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을 찾고, 밤중에 손을 들어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리 어려운 환경 가운데 처해 있을지라도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큰 힘과 위안을 얻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던 역사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 땅위에 존재하는 한 잊을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은 이를 생각하여 회고하면서 어려움 가운데서도 담대함을 얻곤 하였습니다.
구약 하박국서 3장에 보면 감사의 노래가 있습니다.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 주의 날으는 살의 빛과 주의 번쩍이는 창의 광채로 인하여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에 둘리셨으며 분을 내사 열국을 밟으셨나이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끝까지 드러내셨나이다 그들이 회리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합 3:10-15)
사람은 연약하기 때문에 내가 어려운 형편에 이르러 보지 않으면 남의 어려운 사정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것으로 볼 때 아마 우리 한국 성도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계속 인접해 있는 강대국에게 침략을 당했었고, 한때는 40년 가까이 일본 사람들에게 삼키운 바 되기도 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눌리고 찢기고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향하신 특별한 경륜이 있으시기 때문에 그와 같은 시달림 속에서도 견디어 왔습니다. 아마 한국 교회를 통해서 세계에 기여코자 하시는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1. 1-4 절은 큰 환난 중에서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기도하는 데 여러 가지 길이 있습니다. 조용히 아무 말 없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더듬어 생각하며 감사하고 과거에 함께 하시고 도와주신 그 은총에 감격하면서 오늘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기도인지 모릅니다. 그 입에서는 아무 말이 나오지 아니하지만, 그 마음 속에는 깊은 사연이 있고 하나님께 대한 깊은 감사와 신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눈에서는 감격에 넘쳐서 눈물이 흐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대로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가 있습니다. 여기 ‘부르짖는다’는 것은 죽게 된 형편에 있는 사람이 그 생명을 건져 달라고 부르짖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물에 빠져서 떠내려갑니다. 이제 한 1000미터만 내려가면 이 강물이 낭떠러지의 폭포로 되어 떨어지는데 그렇게 되면 끝나고 맙니다. 이것을 알면서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는 헤엄쳐 나올 수 없고 죽게 되었으니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사람 살려 주세요!” 하고 소리칩니다.
높은 빌딩에 불이 났습니다. 불 속에 파묻혀 있는 사람은 조금만 더 있으면 불에 타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때 화염에 싸여 있는 사람이 “제가 여기 있는데 알아서 해 주세요.” 하고 조용히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나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점잖게 속삭이는 것처럼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이제 이 몇 분 안에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이 달려 있는데 어떻게 조용할 수가 있습니까? 아마 목에서 피가 나도록 있는 힘을 다해서 소리칠 것입니다.
산에 가면 목이 꽉 잠기도록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시는 분을 종종 봅니다. 너무 다급하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당장 필요하니까 체면도 염치도 차릴 사이 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로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만날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어 주시리라”
시편 50편 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했습니다. “죽게 되었을 때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내가 너를 건져내겠다”는 말씀입니다.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출애굽기 3장 9절에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이 시인에게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확신없이 기연미연한 태도로 하는 기도는 이루어지지 아니합니다.
야고보서 1장 5절 이하를 보세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했습니다.
여러분, 이 시인은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랬습니까? 그는 그의 당한 환난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서 처음 부분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마침내 그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들으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고난 당했기 때문에 기도했고, 번민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더욱 간곡히 기도했습니다.
이 시인은 어려운 지경에서 원망 대신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소리를 내서 하는, 매우 간절하고도 절박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본문 2절을 보세요.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으며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환난의 날, 특별히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신 것같이 느껴질 때 이때야말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하며, 그를 발견할 때까지 찾아야 합니다.
환난에 처할 때 그는 그의 고통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 기분 전환하는 일이나 오락을 찾지 않고, 하나님과 그의 은혜와 은총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보통 어떻게 합니까? 속이 상하면 술집에 가서 술을 마셔서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환난은 잊어버리려 한다고 잊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환난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이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주신 말씀에서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셨습니다.
환난을 이기는 길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며칠 전에 오랫동안 병 속에서 고생하시는 성도님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지금 임파선 암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데, 오른팔이 얼마나 부었는지 다리 굵기만큼 되어서 붕대로 졸라매고, 그래도 계속 부으니까 쇠로 팔 위를 강하게 압축을 해 놓았는데 그러니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너무 고통이 심할 땐 몰핀 주사를 맞는데 정말 심하게 아플 때는 그것도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픔이 심할 때는 하나님께 원망이 나온대요. “하나님, 사람을 이렇게까지 고생시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나를 이러다가 데려가시려면 무엇 때문에 공부를 하게 하고 남이 다 하지 못하는 박사까지 되게 하셨습니까? 이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 죽으면 하나님께 도움이 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얼마나 아프고 괴로우면 그러시겠어요.
그러다가 욥기를 펴놓고 읽고, 읽고 또 읽으신다고 합니다. 건강할 때는 욥기가 그렇게 실감이 나지 않았었는데, 이처럼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게 될 때 욥기를 읽으니 절절이 하나님의 말씀이 꼭 성도님 자신을 향해 주시는 말씀처럼 들려진다고 합니다.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고통이 정말 심하면, 환난이 극에 달하면 위로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하늘처럼 믿고 살던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철석같이 믿었던 외아들이 먼저 가버리고 말았을 때는 아무리 위로의 말을 해도 잘 들리지 아니합니다.
위로 받기를 거절하게 됩니다. 그러나 환난 날에 주를 찾고, 밤에도 손을 거두지 아니하는 것이 환난에 처한 신실한 성도의 자세입니다.
밤에는 해가 지고 어두워 사람들이 잠을 잡니다. 이 시인은 심한 환난 속에서 남들은 다 잠을 자며 쉬는 밤이지만 자기는 자지 아니하고 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기도할 때 으레 손을 들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이스라엘 군대와 아람 군대와 싸울 때 나이가 많고 기력이 쇠해서 일선에 직접 나가서 싸울 수 없었으나, 여호수아 장군 뒤에서 기도로 도왔습니다. 그때 양팔을 들고 기도하는데 너무 피곤해서 팔이 내려오면 여호수아의 군대가 아람군에게 집니다. 그래서 모세의 양팔을 아론과 훌이 받쳐 주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게 하여 결국 이스라엘 군대가 아람군에게 이긴 사실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밤’은 인간생활에 있어서 역경과 환난을 뜻합니다. 어두운 때, 역경의 날에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쉬지 아니해야 할 것입니다. 손을 들고 거두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밝을 때에 노래며 어둘 때에 기도와 위태할 때 도움을 주께 간구합니다.”
어느 때인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드리지 아니하리요마는 어두울 때, 밤에, 환난의 날에 주를 향하여 손을 들어야 합니다.
시편 121편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이 시인은 기도하여 응답을 얻기까지는 손을 거두지 아니하며, 응답되지 아니할 때 위로 받을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과연 간절한 기도요,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에 합당한 기도입니다.
이제 3절을 보십시다.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왜 이 시인이 하나님을 생각하며 불안해하고 근심이 더하고 심령이 상했습니까? 하나님이 내게서 그의 얼굴을 가리신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내버려두셨다고 생각할 때 오히려 마음에 불안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가 당하는 고통을 4절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주께서 나로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사람에게 괴로움이 많이 있지만, 가장 심한 괴로움은 잠을 자지 못하는 괴로움입니다. 사흘 동안 밥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흘 동안 잠을 못 자면 거의 미쳐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고문 중에 가장 심한 고문은 잠을 재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그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시인은 괴로움이 얼마나 심한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밤새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며 궁리를 합니다. 그것이 5-9절까지의 말씀입니다.
2.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여 회상합니다.
“내가 옛날 곧 이전 해를 생각하였사오며 밤에 한 나의 노래를 기억하여 마음에 묵상하며 심령이 궁구하기를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셨는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하였나이다”
이것은 낙심을 가져오게 하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을 더욱 견고히 가져 보려는 마음에서 나타난 탄원입니다.
“내가 옛날을 생각하였사오며”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이전에 형통했던 것은 현재의 참상을 더욱 가중시킬 뿐입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우리 조상이 이야기해 주었던 기사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밤에 한 나의 노래” 다시 말하면 이전에 그가 슬픔 속에 있었을 때 그를 즐겁게 했던 것들을 기억했습니다. 그는 노래들을 기억했고 그가 그것을 다시 부를 수 있는가 시험해 보았습니다.
여기 여섯 가지 의문을 가졌는데 실상 이것이 이 시인의 의심을 표현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결코 낙심을 가져오게 하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한 마음으로부터의 탄원입니다.
이사야서 50장 1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만사가 형통하며 잘되는 경우도 있지만, 문자 그대로 흑암, 어두움 속에 행하여도, 말하자면 밤같이 캄캄한 가운데 살면서 빛이 없이 답답하게 살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심령이 상한 것처럼 고통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때 자칫하면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은혜의 언약을 지키지 않으신다고 생각하는 것, 하나님의 긍휼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절대로 이런 시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여섯 가지 의문에 대하여 성경이 대답합니다.
1)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그럴 수 없습니다. 로마서 11장 1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시편 94편 14절에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 했습니다. 예수님도 친히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2) 주께서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베푸십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2절에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하셨습니다.
3)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아닙니다. 시편 103편 17절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친다”고 했습니다.
4)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셨는가?
아닙니다. 히브리서 6장 18절에 “하나님이 거짓말하실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5)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아닙니다. 출애굽기 34장 6절에 “그는 그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으며 그가 자비롭고 은혜로우심을 반포하신다”고 했습니다. 그의 이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6)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아닙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6절에 있는 말씀대로 그 긍휼 하심은 아침마다 새롭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9절 마지막에 ‘셀라’를 써서 “거기서 멈추고 더 계속하지 말라 우리의 불신으로 인한 이러한 추측은 더 이상 갖지 말라”고 저지시키면서 자신을 꾸짖습니다.
10절 말씀 이하 12절까지를 보세요.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연약함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곧 여호와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며 그 행하신 일을 진술하리이다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
우리 사람은 연약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 당할 때에 시험에 들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때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편 기자는 그가 빠졌던 큰 환난과 재난으로부터 그 자신을 회복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이전에 행하셨던 큰 일들을 생각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버리시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건짐받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옛날 그의 백성을 위해서 행하신 일에서 현재에 당하는 어둠 속에서도 밝은 결과를 찾을 때가지 그 일을 기억하여 진술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13절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비교할 만한 신은 없습니다”
14절 “그는 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15절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16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17절 “그는 애굽 사람을 멸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의 환경이 어둡습니까? 과거의 행하신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고 낙심하지 맙시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읍시다.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