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부류의 가정
(여호수아서 24:14~18)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그래서 가정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 축복과 은총을 주기 위하여 만들어준 두 기관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가정과 교회입니다. 이 두 기관은 이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은총의 매개체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내려오는데 이 가정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이 두 종류의 가정은 아주 정반대의 가정입니다. 하나는 순기능 가정이 있고, 그 다음엔 역기능 가정이 있습니다. 순기능 가정은 가정이 제대로 역할을 해서 모든 구성원이 행복한 가정이고 역기능 가정은 가정이 기능을 제대로 못해서 가정 구성원들이 불행한 가정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적으로 이야기해서 하나님 중심의 가정은 순기능 가정이고 행복한 가정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 신앙 중심 가정이 아니면 역기능적이고 불행한 가정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이런 두 부류의 가정에 대해 언급합니다. 본문은 광야생활과 가나안 정복을 마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언으로 남기는 마지막 메시지인데 두 부류의 가정이 어떤 형태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믿는 가정인가? 우상을 믿는 가정인가입니다. 여호수아 24:15에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보면 여호수아는 나와 내 집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가정은 하나님만 믿으시는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우상은 하나님이 아닌 것 즉 다른 것을 섬기는 가정입니다. 다른 신을 믿을 수도 있고 돈과 재력을 믿는 가정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가정은 하나님 외의 우상을 섬기는 역기능적인 가정입니다.
가정을 비교하는 연구도 있고 범례도 있습니다. 다음은 이 두 종류의 가정의 역사적 범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가정에 대한 연구
미국의 초기 청교도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 중 조나단 에드워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에드워드는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신앙적인 여인과 결혼해서 신혼 초기부터 철저하게 기독교적 원리에 입각해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형성해 갔습니다.
같은 때에 뉴잉글랜드에서 그와 같이 자란 동네 친구였던 맥수 쥬크는 신앙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방탕했던 여인과 결합하여 나중에 자신도 신앙을 저버려 그의 사람됨이 점차 잘못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후손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에드워드는 오늘날까지 617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대학의 총장을 지낸 사람이 12명, 교수가 75명, 의사가 60명, 성직자가 100명, 군대 장교가 75명, 저술가가 80명, 변호사가 100명, 판사가 30명, 공무원이 80명, 하원의원이 3명, 상원의원이 1명, 미국 부통령을 1명 배출했습니다.
반면 맥스 쥬크는 1,292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유아로 사망한 사람이 309명, 직업적인 거지가 310명, 불구자가 440명, 매춘부가 50명, 도둑이 60명, 살인자 70명,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이 53명이었습니다.
이것은 극단적인 예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성이 풍부한 가정과 그리스도가 떠나버린 가정과의 차이를 여실히 볼수 있는 좋은 예입니다. 당신의 가정에도 영성을 회복하십시오. 신앙적인 원리가 당신의 가정에서부터 실천되도록 하십시오. 당신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당신의 가정은 깨끗합니까? 그리고 가족 모두가 한결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또한 늘 영성이 넘쳐 찬양과 기도가 끊이지 않습니까?
본문 15절 말씀에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오늘 택하라며 선택을 강조합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예수님에 대해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도 예수님에 대해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예수님 말씀도 좋고 병도 고치고 하는데 한 가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은 자기가 하나님이시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람인데 하나님이라고 하니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쯤은 심각하게 이 사실을 판가름해야 합니다. 이제 복음서의 예수님의 행적을 세밀히 읽으면서 그가 미친 사람인지 진짜 하나님이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만약 그를 하나님이라고 믿지 못하겠거든 그를 정신병자라고 해야 합니다. 절대로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이라거나 위대한 선생이라거나 위대한 철학자요 사상가라고 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성인은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선생은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철학자는 절대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정직한 대답은 귀신들려 미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부딪히는 돌과 걸림돌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그저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그냥 마음 편하라고 왔다 갔다 하는 곳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살았던 역사적인 인물 예수님 그를 두고 한번쯤은 이런 일생일대의 고민을 해야 합니다. 이런 고민 없이 그저 다니는 사람들은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그 예수께서 요한복음 5:39에서 “너희가 영생을 얻고자 하여 열심히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금 이 책 처음부터 계속 이야기해 온 그 인류 역사 전체의 이야기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이제 신약에서 시작하는 예수님의 생애는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는 누구인가? 그것이 중심 내용입니다. 그가 하나님이시오, 창조주, 왕이신가 아니면 미친 사람인가 그것을 결정 못해서 고민하고 씨름했던 사람들이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오, 또 우리어야 합니다.
둘째, 과거의 고난을 하나님의 은혜로 보는 가정이냐? 과거의 고난으로 하나님을 불신하는 가정이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문 말씀 여호수아 24:17~18에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생활에서 보호하셨습니다. 여기서 여호수아는 광야 생활을 하나님의 은혜로 본 것입니다.
2차 대전 중에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뿐 아니라 여러 군데서 이루어졌습니다. 놀라운 것은 생존자가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존자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600만 유대인이 학살되는 동안 하나님은 죽었다고 믿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 덕분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믿는 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존의 기적을 우연이나 자기 노력으로 보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로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가정은 과거의 고난을 하나님의 은혜로 보지만 불신의 가정은 과거의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인가? 다른 것을 섬기는 가정인가입니다. 여기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라 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섬기라 하였습니다. 본문 말씀에 섬기라는 말이 8번 나옵니다. 섬기라는 영어로 ‘serve’라고 합니다. 이 섬기다의 히브리어 ‘아바드’는 종이 주인에게 시중드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에 대한 섬김은 보여집니다. 그런데 섬김의 두 가지 자세는 온전함과 진실함입니다. 온전함의 히브리어는 ‘타밈’인데 그것은 ‘흠이 없다’를 의미하고 진실함의 히브리어는 ‘에메트’인데 이것은 ‘진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일을 진실하게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또 하나는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조선일보에 난 기사 하나를 소개합니다. 문종성이란 사람이 7년 2개월 간 5대륙 112개국을 자전거로 여행을 합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동안 만난 사람들이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도와주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해를 끼치는 사람입니다. 대부분 다 도와줍니다. 그런데 여행 중 다섯 번이나 강도를 만납니다. 반면에 여러 번 가정에 초대되서 그들과 같이 밥 먹고 용기를 얻게 됩니다. 대부분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이 이웃도 잘 섬기는 가정이라고 그분은 말합니다. 길거리에 만난 사람이 두 부류이듯 우리 인생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두 종류입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 아니면 나를 방해하는 사람입니다.
40년 목회 결론은 목회를 도와주는 성도가 있고 목회를 힘들게 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이것은 경험에서 나온 간증입니다. 여러분 남을 도와주십니까? 남에게 해를 끼칩니까? 아무쪼록 남의 인생을 도와주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이 되어서 이웃도 잘 섬기는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