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밀러
1915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빵집 배달원, 자동차 부품 회사 점원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 미시건 대학에 재학하면서 극작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뉴욕 연방 연극 프로젝트에 참여해 라디오극과 드라마 대본을 집필했다. 194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모든 행운을 가졌던 남자』가 평단의 호평에도 공연 나흘 만에 막을 내렸으나, 1947년 발표한 『모두가 나의 아들』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949년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퓰리처 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입센의 작품을 각색한 『인민의 적』, 세일럼 마녀 재판을 소재로 한 『시련』은 당시 미국의 공산주의자 고발 운동인 매카시즘 열풍에 대한 첨예한 비판 의식을 드러내며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 때문에 반미 지식인으로 몰려 법정에 서기도 했다. 1956년 영화배우 메릴린 먼로와 결혼, 1961년에 이혼한 후 이듬해 오스트리아 출신 사진작가 잉게 모라스와 재혼했다. 1964년 『타락 이후』와 『비시에서 생긴 일』을 발표하고 1983년 베이징 인민극장에서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출했으며, 자서전 『시간의 굴곡』을 출간하는 등 말년까지 집필과 연극 관련 활동을 쉬지 않았다. 2005년 코네티컷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현대 희곡을 대표하는 거장 아서 밀러의 대표작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사랑받은 20세기 최고의 드라마"
현대 희곡의 거장 아서 밀러의 대표작 『세일즈맨의 죽음』은 194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자마자 즉시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졌고 아서 밀러를 단숨에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끌어올렸다. 이후 오늘날까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공연되고 사랑받는 미국의 대표적인 희곡 중 하나로 손꼽힌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인간의 소외와 붕괴를 뿌리까지 파고드는 혁신적인 기법으로 미국 현대극에 새로운 지표를 제시했다. 초연 후 2년간 장기 공연되며 연극계 3대 상인 퓰리처 상, 토니 상, 뉴욕 연극비평가상을 휩쓸었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호평을 받았다.
세일즈맨의 죽음
<< 줄거리 >>30년간 세일즈맨으로 살아온 윌리는 그 일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성실하게 살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육체적 · 정신적 노동은 계속 늘어가는 반면 수입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생활고를 겪는다. 그러다가 오랜 세월 근무한 회사에서 몰인정하게 해고된다. 유일한 희망인 두 아들 비프와 해피는 기대와 달리 방황하고 타락한다. 현실과 자식에게 배반당하고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던 완고한 윌리는 늘 다투어 오던 비프와 화해하던 날, 아들에게 보험금을 물려줄 생각으로 자동차를 과속으로 몰아 자살한다. 장례식 날 아내 린다는 주택 할부금 납입도 끝나고 모든 것이 해결된 지금, 이 집에는 아무도 살 사람이 없다며 그의 무덤을 향해 울부짖는 것으로 끝이 난다.
주인공 윌리는 세일즈맨, 영업사원이다. 그런데 왜 하필 세일즈맨일까?
세일즈맨은 고객을 찾아다니며 물품 또는 보험과 같은 용역 상품을 직접 판매하는 사원이다. 수요와 공급 법칙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저절로 조절이 되기 때문에 상품은 고객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러나 20세기 초 대공황을 겪으면서 '대량생산의 신화', '보이지 않는 손'의 신화는 자본의 무한 증식이라는 습성에 의해 무너져버렸다. 결국 '대량소비' 없는 '대량생산'은 허무한 사상누각임을 깨달은 자본은 교묘하게 진화해서 소비자로 하여금 필요 이상의 상품을 구매하도록 자극한다. 있는 물건도 또 구매하도록 『유행』 을 만들고, 당장 돈이 없어도 구매 할 수 있는 『할부』 를 만들고, 『마케팅』 개념을 도입해서 직접 찾아다니며 소비를 자극한다.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그래서 생산사회가 아니라 '소비사회' 이며 생산이 미덕이 아니라 '소비가 미덕인 사회'이다.주인공 윌리의 아내 린다는 이번 달에 지출해야 할 항목을 쭉 열거하는데, 냉장고 · 세탁기 · 진공청소기 등의 할부값과 자동차 · 주택 수리비가 대부분이다. 자동차와 주택조차도 할부 구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일반인의 모습처럼 할부인생 이다. 카드결제도 결국 부채다. 문제는 할부 기간이 끝나갈 즈음이면 새로운 제품, 새로운 모델을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할부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할부에 의한 부채에 얽매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할부와 빚의 굴레에서 매일 허덕이며 보내는 삶이 수십 년 반복된다. 그 반복되는 일상이 모여 결국 그 한 사람의 인생이 돼버린다. 그 일상은 직장생활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 가정이나 학교생활 역시 직장을 위한 준비 혹은 예비 훈련과정일 뿐이니 말이다.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신분제에 기초한 강제력에 의해 사회가 유지되는 시스템이었지만 현대사회 · 국가는 개인을 체제 내에 묶어두기 위한 새로운 메커니즘과 이데올로기가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갖혀 있는 일상이다. 즉 전통사회나 민주화 이전의 사회가 노골적으로 눈에 보이는 강제와 폭력에 의해 지배력을 유지했다면 형식적 ·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이후에는 일상의 통제가 지배의 핵심이 됐다. 결국 일상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그 어떤 강제나 폭압이 아닌 개인의 자발성이라는 형식을 가지면서도 우리는 일상을 벗어날 수 없다. 어느 직업과 어느 직장을 선택할 것인가는 개인의 자유겠지만, 어떤 직업, 직장이던 임금을 받아야 살아 갈 수 있는 것은 강제된 사항이기 때문이다. 결국 윌리는 보험금을 노리고 자살을 택한다. 보험금이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재정적 도움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왜 '세일즈맨의 자살'이 아닌 '세일즈맨의 죽음'일까? 평생 할부 인생을 살다 죽음으로 내몰린 '자살'이 결국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인 타살일 수도 있다는 작가의 메시지는 아닐까?남편의 무덤 앞에서 마지막 집세도 내고 35년 만에 처음으로 빚을 다 갚고 홀가분해 졌는데 왜 죽었냐며 울부짖는 린다를 보며 이제 홀가분해진, 사라진 일상이, 그리고 그 허망함과 막막함이 윌리를 자살로 이끈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