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대축일:만법귀일(萬法歸一), 그리고 향기로운 셋(3)
삼위일체 대축일 2024. 05. 26
수많은 빛 - 하나의 태양
수많은 별 - 하나의 하늘
수많은 호흡 - 하나의 공기
수많은 생각 - 하나의 뇌
수많은 단어 - 하나의 혀
수많은 거짓 - 하나의 진실
수많은 감정 - 하나의 사랑
수많은 사랑 - 하나의 심장
수많은 사람 - 하나의 아버지
수많은 믿음 - 하나의 하느님 (Benjamin Ziv, 반박할 수 없는 하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갈등과 대립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이 다르면 서로 바라보려 하지 않습니다.
국가 간의 갈등은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그럴수록 서로가 하나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커져만 갑니다.
이스라엘의 시인인 벤야민 치프가 이 시를 쓴 이유일 것입니다.
‘하나’라는 숫자는 모든 숫자의 출발점입니다.
세포는 분열을 통해 수 숫자를 늘려 갑니다.
그러나 그 출발점이 하나임은 분명합니다.
다양한 세포들은 하나의 줄기세포에서 퍼져 나간 것입니다.
진화론은 진화와 발전, 분화(分化) 쪽에 관심을 둡니다.
종교의 세계에서는 그 반대 방향이 관심의 대상입니다.
불교에서는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간다’는 뜻이죠.
노자(老子)는 ‘모든 것은 근본으로 돌아간다’고 헀습니다.
그는 ‘근본으로,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라 하였습니다(反者道之動).
산수 문제 하나 내겠습니다.
1에 1을 더하면 무엇이 될까요?
제가 원한 답은 1입니다.
사랑이란 서로 다른 둘이 만나 하나를 이루는 것이라 했습니다.
혼배미사 때 우리는 ‘신랑과 신부는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입니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신랑과 신부 둘이 사랑으로 하나가 될 때, 사랑의 선물인 사랑이 태어납니다.
사랑은 사랑을 낳는 것입니다.
다시 산수 문제 나갑니다.
그러면 1 더하기 1 더하기 1은 무엇일까요?
1+1+1=3 이 아니라 1입니다.
엄마, 아빠, 아이들이 만드는 가정은 사랑으로 하나가 된 가정입니다.
괴테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사랑
고귀한 둘을 가깝게 하네
그러나 더할 수 없이 황홀하게도
그 사랑은 향기로운 셋을 만들었구나”(오토 베츠, 숫자의 비밀, 41쪽).
아이들 없이, 부부끼리 살아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정에는 엄마, 아빠와 함께 아이들도 있어야 좋을 것 같습니다.
엄마와 아빠와 아이들로 이루어지는 숫자 3은 조화와 완성의 숫자입니다.
라틴어에 ‘3은 완전한 숫자다’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Tria est numerus perfectus).
‘3은 더 없이 좋은 것이다’라는 격언도 있습니다 (Omne trinum perfectum).
숫자 공부 조금 더 하겠습니다.
1이라는 수는 최초의 양의 수입니다(陽數).
2는 최초의 음수(陰數)입니다.
3은 양수 1과 음수 2가 합한 완전한 숫자, 길수(吉數)입니다.
음양의 조화가 최고에 이르는 숫자가 3이라는 숫자라는 것이죠.
음양의 조화가 최고에 이르니 만물을 낳을 수 있을 것입니다.
노자에 ‘셋(3)은 만물을 낳는다((三生萬物/노자 42장)’는 말이 있는 이유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숫자 1과 3은 창조의 숫자요 하느님의 숫자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한 분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의 다양성은 하나이신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다양성 속에서 헤매고 살다가 뿌리를 잊어버렸습니다.
우리 존재의 뿌리를 다시 생각해 내서 다시 그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게 우리의 신앙입니다.
‘만법(萬法)은 귀일(歸一)하고, 도는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게 그 말입니다.
이것이 에페소서 4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셔서 안겨 주시는 희망도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꿰뚫어 계시며 만물 안에 계십니다”(4-6절).
카인이 아벨을 죽였지만, 그 둘은 형제였고, 같은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한 배에서 나온 형제였습니다.
오늘날의 갈등과 미움은 너와 내가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망각한 데 기인할 것입니다.
서로 달라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하더라도 하나로 돌아가려는 노력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신앙을 믿고 실천하는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상도동성당 박성칠 미카엘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