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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락자(伯樂子)
백락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어리석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伯 : 맏 백(亻/5)
樂 : 즐거울 락(木/11)
子 : 아들 자(子/0)
장정사(張鼎思)의 낭야대취편(琅椰代醉編)에 나오는 말이다.
주(周)나라 때 말(馬)에 대한 지식(知識)이 뛰어나 말(馬) 감정(鑑定)을 잘 하는 백락(伯樂)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백락(伯樂)에게는 말(馬) 감정법(鑑定法)을 배우는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백락(伯樂)은 아들에게 말(馬)을 보는 방법(方法)에 대해“좋은 말(馬)은, 이마는 불쑥 나와야 하고, 눈은 툭 튀어 나와야 하며, 말발굽은 누룩을 쌓아 놓은 것처럼 생겨야 한다.”라고 가르쳐 주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가르쳐 준 감정법(鑑定法)을 손에 적어 좋은 말(馬)을 구하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어느 날 아들은 두꺼비를 잡아 가지고 와서“명마(名馬)를 구했습니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신 명마(名馬)의 외모(外貌)와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백락(伯樂)은 두꺼비를 명마(名馬)라고 하는 아들의 어리석음에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 백락(伯樂)은 화가 치밀어오는 것을 겨우 참으면서“이 말(馬)은 잘 뛰겠지만 수레는 끌지 못하겠구나.”라고 대답(對答)하였다.
백락(伯樂)의 아들은, 말(馬)의 본래의 모습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백락(伯樂)이 이야기한 것만을 염두(念頭)에 두고 명마(名馬)를 찾으려고 하였기 때문에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것이었다. 정작 말의 참뜻은 제쳐두고 얼토당토 않은 것에 초점(焦點)을 맞추어 행동하는 어리석은 것을 의미(意味)하는 말이다.
주(周)나라 때의 말(馬) 감정사(鑑定士)였던 백락(伯樂)이란 사람과 그 아들의 이야기이다.
아마 그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다시 나가서 생긴 것은 두꺼비 비슷하면서 수레도 잘 끌게 생긴 다른 짐승을 찾아다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멍청함으로 미루어 보면 평생 좋은 말(馬)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백락(伯樂)의 아들, 즉 백락자(伯樂子)라는 말은 남이 하는 말에 담긴 진정한 의미(意味)를 새기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뜻하게 되었는데 지식(知識)은 전달할 수 있지만 지혜(知慧)는 전달하기 어렵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을 보면 백락자(伯樂子)가 아닌 인간을 찾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은 말(馬)을 보면서도 천리마(千里馬)를 알아볼 수 없지만 천리마(千里馬)는 그 말(馬)들 사이에 섞여 있는 법이다. 세상(世上)에 백락(伯樂)이 있어야 천리마(千里馬)가 있다고 한유(韓兪)는 그의 사설(私設) 잡설(雜說)에서 말 하였다.
천리마(千里馬)는 언제나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천리마를 알아볼 수 있는 백락(伯樂)이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비록 명마(名馬)가 있다 하더라도 명마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다만 종들의 손에서 천대를 받으며 마구간에서 보통 말과 함께 나란히 죽어갈 뿐 천리마라는 이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천리마는 한 끼니에 간혹 한 섬의 곡식을 먹어 치우는 일도 있는데 말을 먹이는 자는 그것이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먹이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이 비록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충분히 먹지 못하면 달리는 힘이 부족하여 그 능력의 훌륭함이 밖으로 드러나지 아니한다.
그렇다고 보통 말과 같은 일을 하려해도 되지 않으니 어찌 하루에 천리를 가기를 기대하겠는가? 이는 채찍을 휘두를 뿐 말의 천성을 살리지 못하고 먹이를 줘도 충분하지 못하여 양을 채워주지 못하면서 목청을 울려도 천리마의 불만이나 괴로움을 알지 못하면서 채찍을 들고 말 앞에 서서 “천하에 좋은 말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세상에 정말로 좋은 말이 없는 것일까? 보통사람들은 좋은 말을 알아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뿌리가 얕으면 끝이 짧고 근본이 상하면 가지가 마른다. 지도자가 근본이라면 각료들은 지엽이다. 근본이 깨끗하지 못하면 입사귀가 무성할리 없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법이다. 쇠와 놋쇠는 녹이지 않으면 주형에 부을 수가 없듯이, 지도자가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의 뜻을 순응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나라를 이끌 수가 없는 법이다. 현명한 지도자라면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하여 책임을 지워야 할 터인데, 경력과 학력을 중시하며 측근이나 인연을 중시하여 임용한다면 그들은 국가를 위한다기 보다는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하고 아랫사람과 어울려 개인의 욕심을 채우거나 세력가를 위해 일을 꾸밀 것이다.
고집과 독선은 나라를 망치는 편협한 행동이다. 말 한마디에 일사천리로 전봇대 뽑기식의 국정운영이란 어떤 반대도 용인할 수 없다는 오만한 독선일 뿐이다. 어리석은 지도자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고 자기의 의도에 따라 아랫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줄 것을 기대한다.
지도자가 가기의 취향과 속성을 드러낸다면 밑에 사람들은 권력의 의도에 따라 자신의 실체를 깎아 맞춘다. 직접 눈으로 관찰하고 직접 귀로 들으려 한다면,아랫사람들은 말을 꾸밀 것이요,궤변을 내세울 것이다. 이른바 눈이 밝다는 것은 다른 것을 잘 본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요, 귀가 밝다는 것은 다른 것을 잘 듣는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잘 듣는다는 것이다.
옛 군주들이 면류관을 쓰되 구슬줄을 앞에 드리운 것은 시야를 가리어 망령되게 보지 않게 하려는 까닭이요, 주광(黈纊)을 귀에 덮는 것은 청각을 가리어 함부로 듣지 않게 하려는 까닭이다.
어리석은 자는 사람이 모든 것을 볼 수 없고 모든 일을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하지 못하고 권세에 눈이 어두워 흰것을 흰것이라 말하지 못하고 검은 것을 검은 것이라 보지 못한다.
백사람이 능력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을 쓰면 백 사람의 힘을 얻는 것이요 천 사람이 사랑하는 자를 발탁해 쓰면 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인데도 가신과 측근으로 대체 한다면, 매가 개울 위로 날면 물고기와 자라는 깊이 잠기고, 나는 새는 높이 올라갈 것이다.
거짓말과 말 바꾸기로 신뢰를 상실하고, 통제와 간섭, 내 탓보다는 남의 탓으로 돌리며, 권력의 주구로 하여금 입을 막고 권세의 칼로 당장은 복종시킬 수 있으나 항룡유회(亢龍有悔)라고 끝까지 욕심을 놓지 못하면 남는 것은 분명 후회뿐일 것이다.
상생하는 경제통합과 협력하는 국민통합의 조화로운 정치를 구현하지 못한다면 난국을 타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불도저식 충돌정치는 정국을 파행시키고 일방적인 독주는 정권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다. 편향된 마음을 바로 잡고, 독선과 독주를 떨쳐내며, 상생과 통합 소통으로 나아가야 한다.
천박한 물신주의에 사로잡혀 성장만능의 정책으로 일관하거나, 매카시즘에 사로잡혀 남산위의 저소나무를 외쳐 된다면, 진보와 보수의 공존상쟁은 균형을 이루기가 힘들고, 잃어버린 십년이 아니라 시계바늘을 수십 년쯤 거꾸로 돌리게 될지 모른다.
불은 뜨겁지만 물은 이것을 끌 수 있고, 금은 단단 하지만 불은 이것을 녹일 수 있으며, 나무는 강하지만 도끼는 이를 베고, 물은 흐르지만 흙은 이를 막을 수 있는 까닭이다.
어느 나라든 간에 영원히 강하거나 영원히 약한 나라는 없다.
먹줄이 곧아야 굽은 나무를 깎을 수 있고 수평기가 평평해야 고르지 못한 면을 다듬을 수 있다. 저울로 무게를 가려야 가볍고 무거움을 알 수 있듯이 지도자에겐 엄격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벌레가 먹기 때문이요, 담장이 무너지는 것은 틈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도자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반대를 일삼는 정적이 아니라 자기가 지나치게 아끼거나 총애하는 측근이다.
우물에 오줌을 싼 개가 사람을 문다고 했다.
충실하게 집을 지킨다고 해서 기르는 개를 귀여워하고만 있다면, 어느 날 그 개가 우물에 오줌을 싸도 사람들은 개가 무서워 끝내 일러바칠 수가 없고 결국 주인은 개가 오줌 싼 물을 마실 수밖에 없는 법이다.
▶️ 伯(맏 백, 우두머리 패, 길 맥)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크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白(백)으로 이루어졌다. 우두머리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伯자는 ‘큰아버지’나, ‘맏이’,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伯자는 人(사람 인)자와 白(흰 백)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白자는 촛불이 밝게 켜져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밝다’나 ‘희다’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밝다’라는 뜻을 가진 白자에 人자를 더한 伯자는 ‘밝게 빛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밝게 빛나는 사람은 무리에서의 우두머리를 뜻한다. 씨족사회에서는 형제 중 제일 맏이를 伯이라고 했다. 그래서 伯(백, 패, 맥)은 ①맏, 첫 ②남편(男便) ③큰아버지 ④백작(伯爵) ⑤일 백(=百) ⑥말 귀신(鬼神) ⑦뛰어나다 ⑧나타나다, 드러나다, 그리고 ⓐ우두머리(패) 그리고 ㉠길(논밭 사이의 길)(맥)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맏 윤(允), 맏 맹(孟), 맏 곤(昆)이다. 용례로는 백씨나 장형이나 맏형을 이르는 말을 백형(伯兄), 남의 맏형을 이르는 말을 백씨(伯氏), 맏조카로 맏형의 맏아들을 백질(伯姪), 맏형수를 이르는 말을 백수(伯嫂), 둘 이상의 누이 가운데 맏이가 되는 누이를 이르는 말을 백자(伯姊), 큰아버지로 둘 이상의 아버지의 형 가운데 맏이가 되는 형을 백부(伯父), 큰어머니로 아버지 맏형의 아내를 이르는 말을 백모(伯母), 화가의 높임말을 화백(畫伯), 아우와 형을 숙백(叔伯), 남에게 대해 자기의 맏형을 일컫는 말을 가백(家伯), 시문에 능한 사람 또는 시문의 대가를 높이어 일컫는 말을 사백(詞伯), 뛰어난 의사나 의사의 경칭을 의백(醫伯),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는 뜻으로 자기를 알아주는 절친한 벗 즉 지기지우의 죽음을 슬퍼함을 이르는 말을 백아절현(伯牙絶絃), 누구를 형이라 아우라 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형제인 장남과 차남의 차이처럼 큰 차이가 없는 형세로 우열의 차이가 없이 엇비슷함을 이르는 말을 백중지세(伯仲之勢), 백유가 매를 맞으며 운다는 뜻으로 늙고 쇠약해진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 슬퍼한다는 말을 백유읍장(伯兪泣杖), 백유의 효도라는 뜻으로 어버이에 대한 지극한 효심을 일컫는 말을 백유지효(伯兪之孝), 명마가 백낙을 만나 세상에 알려진다는 뜻으로 훌륭한 사람에게 인정받음을 이르는 말을 백낙일고(伯樂一顧) 등에 쓰인다.
▶️ 樂(노래 악, 즐길 락/낙, 좋아할 요)은 ❶상형문자로 楽(락)의 본자(本字), 乐(락)은 간자(簡字)이다. 현악기를 본뜬 글자, 신을 모시는 춤을 출 때 손에 가지는 방울을 본뜬 글자, 북 따위의 타악기를 본뜬 글자 등의 유래가 존재한다.기본 음가는 악이고, 전주된 음가로 락과 요가 있다. 락은 주로 형용사로 사용될 때, 요는 좋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락이 두음법칙이 적용되면 낙으로 표기된다. ❷상형문자로 樂자는 '음악'이나 '즐겁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樂자는 본래 악기의 일종을 뜻했던 글자였다. 갑골문에 처음 등장한 樂자를 보면 木(나무 목)자에 絲(실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거문고처럼 실을 튕겨 소리를 내는 악기와 줄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白(흰 백)자가 더해지게 되는데, 이것은 줄을 튕길 때 사용하는 피크를 뜻하기 위해서였다. 또 음악을 들으면 즐거우므로 '즐겁다'라는 뜻도 파생되었다. 그래서 樂(악)의 경우는 ①노래, 음악(音樂) ②악기(樂器) ③연주하다 ④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등의 뜻이 있고, 樂(락/낙)의 경우는 ⓐ즐기다(락) ⓑ즐거워하다(락) ⓒ편안하다(락) ⓓ풍년(豐年)(락) ⓔ즐거움(락) 등의 뜻이 있고, 樂(요)의 경우는 ⓕ좋아하다(요) ⓖ바라다(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노래 가(歌), 노래 요(謠), 노래 구(謳)이다. 용례로는 인생을 즐겁게 여기거나 세상을 밝고 좋게 생각함을 낙관(樂觀), 아무런 걱정이나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는 즐거운 곳을 낙원(樂園), 늘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을 낙토(樂土), 재미 붙일 만한 일을 낙사(樂事), 경기 등에서 힘들이지 않고 쉽게 이기는 것을 낙승(樂勝), 세상이나 인생을 즐겁게 생각함을 낙천(樂天), 노래의 곡조를 악곡(樂曲), 음악 기구를 악기(樂器), 작곡에 관한 착상이나 구상을 악상(樂想), 음악에서 연주되는 음의 배열을 악보(樂譜), 노랫소리 또는 가락스런 소리를 악음(樂音), 음악을 연주하는 단체를 악단(樂團), 물을 좋아함을 요수(樂水), 산을 좋아함을 요산(樂山), 즐기기는 하나 음탕하지는 않게 한다는 뜻으로 즐거움의 도를 지나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낙이불음(樂而不淫), 즐거움도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긴다는 말을 낙극애생(樂極哀生), 타향의 생활이 즐거워 고향 생각을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낙이사촉(樂而思蜀), 즐거움은 언제나 걱정하는데서 나온다는 말을 낙생어우(樂生於憂), 안락은 고통의 원인이라는 말을 낙시고인(樂是苦因), 천명을 깨달아 즐기면서 이에 순응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낙천지명(樂天知命), 즐겨서 시름을 잊는다는 뜻으로 도를 행하기를 즐거워하여 가난 따위의 근심을 잊는다는 말을 낙이망우(樂而忘憂), 즐거움에 젖어 촉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쾌락 또는 향락에 빠져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을 낙불사촉(樂不思蜀), 즐거움 속에 삶이 있다는 뜻을 나타냄을 일컫는 말을 낙중지생(樂中之生), 좋아서 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지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요차불피(樂此不疲),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산수 경치를 좋아함을 이르는 말을 요산요수(樂山樂水) 등에 쓰인다.
▶️ 子(아들 자)는 ❶상형문자로 어린 아이가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아들을 뜻한다. 지금의 子(자)라는 글자는 여러 가지 글자가 합쳐져 하나가 된 듯하다. 지지(地支)의 첫째인 子와 지지(地支)의 여섯째인 巳(사)와 자손의 뜻이나 사람의 신분이나 호칭 따위에 쓰인 子가 합침이다. 음(音)을 빌어 십이지(十二支)의 첫째 글자로 쓴다. ❷상형문자로 子자는 ‘아들’이나 ‘자식’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子자는 포대기에 싸여있는 아이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양팔과 머리만이 그려져 있다. 고대에는 子자가 ‘아이’나 ‘자식’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중국이 부계사회로 전환된 이후부터는 ‘남자아이’를 뜻하게 되었고 후에 ‘자식’이나 ‘사람’, ‘당신’과 같은 뜻이 파생되었다. 그래서 子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아이’나 ‘사람’이라는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子(자)는 (1)아주 작은 것을 나타내는 접미어 (2)신문(新聞), 잡지(雜誌) 따위 간행물(刊行物)의 어느 난을 맡은 기자(記者)가 자칭(自稱)할 때 쓰는 말 (3)십이지(十二支)의 첫째 쥐를 상징함 (4)자방(子方) (5)자시(子時) (6)글체에서, 그대의 뜻으로 쓰이는 구투(舊套) (7)글체에서, 아들의 뜻으로 쓰이는 말 (8)민법상에 있어서는 적출자(嫡出子), 서자(庶子), 사생자, 양자(養子)의 통틀어 일컬음 (9)공자(孔子)의 높임말 (10)성도(聖道)를 전하는 사람이나 또는 일가(一家)의 학설을 세운 사람의 높임말, 또는 그 사람들이 자기의 학설을 말한 책 (11)자작(子爵) 등의 뜻으로 ①아들 ②자식(子息) ③첫째 지지(地支) ④남자(男子) ⑤사람 ⑥당신(當身) ⑦경칭(敬稱) ⑧스승 ⑨열매 ⑩이자(利子) ⑪작위(爵位)의 이름 ⑫접미사(接尾辭) ⑬어조사(語助辭) ⑭번식하다 ⑮양자로 삼다 ⑯어리다 ⑰사랑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여자 녀/여(女), 어머니 모(母), 아버지 부(父)이다. 용례로는 아들과 딸의 높임말을 자녀(子女), 며느리 또는 아들의 아내를 자부(子婦), 아들과 사위를 자서(子壻), 아들과 손자 또는 후손을 자손(子孫), 아들과 딸의 총칭을 자식(子息), 남의 아들의 높임말을 자제(子弟), 십이시의 첫째 시를 자시(子時), 밤 12시를 자정(子正), 새끼 고양이를 자묘(子猫), 다른 나라의 법률을 이어받거나 본떠서 만든 법률을 자법(子法), 모선에 딸린 배를 자선(子船), 융통성이 없고 임기응변할 줄 모르는 사람을 자막집중(子莫執中), 자애로운 어머니의 마음을 자모지심(子母之心), 듣고 본 것이 아주 좁고 고루한 사람을 일컫는 자성제인(子誠齊人), 자식은 아비를 위해 아비의 나쁜 것을 숨긴다는 자위부은(子爲父隱)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