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요약, 이럴수가?! 기자조선, 신라의 본토ㅣ신라 박제상 #부도지
2022. 12. 23.
책소개
제목 : 부도지
번역 : 김은수
출판 : 한문화
출간 : 2002년
https://www.youtube.com/watch?v=N_NEzWgzJfw
책보고님이 고정함
@탈중화
1년 전(수정됨)
당나라는 여러나라에게 여러 번 침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300년 도 가지 못한 나라입니다.
중국 당나라에 대한 과대망상을 버려야 합니다.
당나라가 왜 한심한 나라인지 설명하겠습니다.
<당 태종(이세민)>
정관의치라고 하며 중공 지나족이 대대적으로 떠벌리며 뻥튀기하는 당나라, 그 2대왕 태종 세민(서기599~649), 그는 아버지 이연을 협박하여 내치고 자기 형을 죽여 피로서 왕위를 강탈하여 왕위에 오릅니다. 그런데 세민이가 다스리던 당나라가 동서문물을 이는 대제국이라며 마치 대단한 나라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정관정요라는 책까지 나오며 이세민를 성군이라고 추켜세우며 정치나 경영의 모범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하였다는 세민이 다스리던 시대의 당나라를 보자. 첫째, 세민이 왕위에 있을 때, 당시 북방한겨레의 후예가 세운 토번(티베트)제국의 기마군단이 당나라 수도 장안(현재 서안)을 접수하려고 하자, 이를 피하고 결국 살아남고자 세민이는 자신의 딸 문성공주를 토번제국의 송첸감포칸에게 시집보내습니다.
이를 계기로 티벳에는 불교가 전해집니다. 고구려 침공에 실패하고 막대한 병력만 탕진하고 회군하다가, 고구려 명장 양만춘의 화살에 눈알이 뽑히고 결국 그 독으로 이세민은 죽었습니다.
<당 고종>
이세민의 뒤를 이은 당나라 고종 때는 북방한겨레가 세운 위구르 제국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댓가로 다시 자신의 딸 태화공주를 조공물로 바쳐야 했습니다. 이것은 지나족 한나라가 북방한겨레의 흉노제국에게 60여년간 속국으로 지내며한나라 왕의 딸과 조공물을 바치며 근근히 명맥을 이어간 전통을 이은 것이라고 봅니다.
<당 현종>
개원의치라고 하며 이번에도 마치 성군인양 대대적으로 뻥튀기된 당나라 현종(玄宗:재위 서기712~756), 그는 자기자식의 아내인 양귀비를 빼앗아 자기의 첩으로 삼고 결국 자기자식과 구멍동서가 된 폐륜아 입니다. 이 현종 때 당나라는 몽골초원의 튀르크(돌궐) 제국에게 역시 속국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현재 몽골 초원에 남아 있는 튀르크(돌궐) 제국의 칸(황제-한)의 튀르크비석(이른바 돌궐비석)의 비문을 보면, 당나라는 북방기마민족인 대제국 튀르크(돌궐) 제국의 노예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 비문의 제원과 시기 그리고 비문의 내용을 확인해 봅니다.
먼저, 비문의 제원과 제작시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716년 톨라강(江) 상류에 세워진 돈욕곡(暾欲谷) 비문, 732년 오르콘 하반(河畔)에 세워진 궐특근(闕特勤) 비문, 735년 같은 오르콘 하반에 세워진 빌케가한[毗伽可汗-칸] 비문 등이 있습니다. 이 중 궐특근 비문이 가장 잘 보존되었는데, 높이 3.75 m, 너비 1.22∼1.33 m 규모이며 4면 중 한 면은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비문들은 모두 당(唐)나라 현종 개원시대(開元時代)의 것입니다.
다음은 비문의 내용입니다.
나는 영원한 돌을 세웠고 당나라 황제에게서 화공(畵工)과 조각공들을 데려오게 했다. 나는 (퀼 티긴의 무덤을) 장식하게 했다. (중국인들은) 내 말을 어기지 않았다. 당나라 황제는 직속 장인들을 보내 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매우 훌륭한 무덤을 만들게 했다. 무덤 안과 밖에는 훌륭한 그림과 조각상을 두게 했다. 또 마음 속에 있는 말을 새기게 했다'.그리고 나서 나는 당나라 황제에게서 많은 장인들을 데려오게 했다. 당나라 황제는 내 말을 어기지 않고 궁중 장인들을 보내 주었다. 그들에게 나는 훌륭한 사원을 만들게 했다. 나는 그 안팎으로 훌륭한 그림과 조각으로 장식하게 했다. 영원한 돌을 파게 하고 (거기에) 내 마음 속에 있는 말을 (새기게 했다)'.
비문은 당나라가 튀르크(돌궐) 제국의 속국인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다음엔 대진국(발해)에게 침공을 받아 등주와 래주를 점령 당합니다 . 태백일사의 기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태백일사> 제칠 대진국 본기)
대장 장문휴를 보내 자사 위준을 죽이고 등주와 래주를 점령하여 성읍으로 삼았다 당나라 황제 융기(당 현종)가 노하여 병사를 보냈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이듬해 수비장수 연충린이 말갈병과 함께 요서의 대산 남쪽에서 당나라 군대을 크게 격파하였다
그리고 당나라는 토번(티베트) 제국에게 수도을 함락 당합니다. 당나라 수도 장안을 함락시킨 토번(티베트) 제국은 꼭두각시 황제를 세웁니다.
(다짜뤼공 전승비)의 기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짜뤼공 전승비)
약 천년이 넘도록 당시 토번(티베트) 제국의 위상을 전세계에 알리던 라싸에 있는 다짜뤼공 전승비 이 비문에는 토번(吐蕃)이 어떻게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을 함락시켰으며 그 뒤 이곳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특히 당나라에서는 이 일(수도를 함락당하고 꼭두각시 황제를 세운것)을 수치로 여겨 제대로 기록하지 않아서 이 비문은 매우 중요한 비문입니다)
763년 토번의 첸뽀(皇帝) 치동송찬(赤松德贊) 다짜뤼공(達樂宮)을 동정원수(東征元帥)로 임명하여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을 치게하였다. 그 규모는 20만으로 이것은 단순한 약탈수준이 아닌 대대적인 침공이었다.『新唐書(신당서)』그들의 대대적인 공격에 당나라는 수도를 버렸으며 낙양까지 빼앗겼습니다. 아래 내용은 비문 내용중 일부입니다.
『다짜뤼공(達樂宮) 전승비에 나오는 승전보』
"아군(토번(吐蕃)의 공격에 당(唐)의 군신(軍臣)이 모두 도주했기에 장안(長安)성에 들어와 옹왕에 손자이며 금성공주의 조카 되는 광무왕(廣武王) 이승굉(李承宏)을 제위(황제黃帝)에 오르게 하고 문무백관도 새로 정했습니다 아울러 창고를 열어 많은 보물들과 각종 기술자들을 페하에게 헌납하고자 본국으로 실어나르게 했습니다...(중략)... 그리고 현제는 적의 대규모 공격에 대비하여 병력의 일부를 남겨 놓고 장안성에서 철수하였며 본대는 양주 감주 숙주를 점령하고 사주로 향하는 중입니다"
비문에 내용대로 당시 티베트는 대대적으로 당나라를 정벌한 뒤 꼭두각시 황제(자기(티베트)들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황제)을 세운 걸 알 수 있습니다. 공격한곳 10곳중 8곳은 함락했습니다.(물론 다짜뤼공(達樂宮)이 철군하면서 곽자의(郭子儀)가 이를 탈환했지만) 비문의 높이는 당시 토번(티베트)제국(吐蕃帝國)의 위용을 잘 나타내 줍니다. 그러나 이 비는 중국인들이 1950년 이후로 점령한 후로는 잘 보존되고 있지 않습니다.(사진에서 보시다 싶이 저렇게 허름한 담만 세워두었습니다. 천년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것이 용한 비입니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이제까지 중국 위주로 기술된 당나라에 대한 과대포장은 시정되어야 합니다. 당나라는 3백년도 채우지 못한 나라이며, 전성기라고 하는 세민과 융기(당현종)시대에도 주변의 한겨레 제국에게 속국이되어 있었던 약골이었습니다. 지나족의 자기중심의 뻥튀기사관에 우리가 장단을 맞출 필요가 없으며, 별볼릴 없는 중국 지나족을 바로 알고 혹시나 사대주의나 왜소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면 훌훌털어내길 바랍니다.
첫댓글 당나라 중국의 가장 발전한 고대국가
우리의 역사기록은 전부 조작 되고 잘못된 역사
그것을 진실이양 왜곡된 역사을 배우고 있으니
이 지구에 외계문명의 인간이 장착한 것은 3-5패거리
그중에 우리 선조 인류가 지구의 70%정도 차지 일명 엉덩이의 몽고반점
우리의 역사는 조작 되어서 현재 중국 대륙도 우리 선조의 땅
우리와 대립관계에 있던 패거리가 조작
즉 현재의 기독교 믿는 패거리가 조작 현재의 영국
대단한 역사 연구열정입니다~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