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궁인 [십전무판자] 서장

[여재성]

서문(序文)
운명(運命)이란 고정적인 것인가?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타고난 운(運)은 얼마든지 현실
을 살면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노력여하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 말에 동감한다.
만일 운명이 정해진 것이라면 삶이란 얼마나 무미건조하겠는가? 물론 시련 속에 시작
되는 불운한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들은 뼈를 깎는 인고 속에서 자신의 미
래를 개척해 나간다. 그런 사람들을 영웅, 또는 위인이라 부르는 것은 하등 이상할 이
유가 없을 것이다.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삶을 산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역경이 많은 만큼 비상할 기회 또한 많이 주어지게 되므로.
무협소설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파란만장하다.
그들의 과거는 혈한은구(血恨恩舊) 속에 잠겨 있으며, 숱한 환란을 겪으며 성장한다.
때로는 화려한 과거가 주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피비린내 나는 대결구도와 좌절이 설
정되어진다.
이는 작가가 재미있게 소설을 이끌어 가기 위한 트릭에 불과하다. 실은 소설은 허구적
이면서도 철저히 현실을 반영하게 되는 것이다.
무협소설이 비현실적인 소재와 구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보다 훨씬
 더 비현실적인 복층구조로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는 소설적인 삶이란 표
현을 쓰기도 한다.
뇌우(雷雨)는 망망대해를 떠돌던 한 난파선(難破船)으로부터 무림기인에게 구함을 받
는다.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운명이었고, 이후의 운명은 그 자신이 개척해 나가게 된
다.

음모의 소용돌이 속에서 과연 그가 어떤 행보를 해 나갈지를 지켜보자.
풍자와 해학 속에서, 한 순간도 눈감아서는 안 될 피비린내 나는 강호계를 헤쳐 나가
는 인간의 얘기다.
자오정(子午亭)에서
검궁인 배상

서장
중원십팔만리(中原十八萬里).
광활한 대륙의 바람은 거칠기 그지없다. 황토풍(黃土風)이 중원대륙을 뒤덮은 지 몇만
 년, 아니 몇 억겁이런가?
영웅은 난세(亂世)를 부르고 난세는 영웅을 부른다.
대륙을 질타하는 황토풍 속에서 어느 때부터인가 끓는 피를 가진 인간들이 등장했다.
이른바 무림인(武林人)들이었다. 그들은 하늘을 향해 부르짖었다.
(壇)을 쌓겠노라!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륙의 주인은 무수히 바뀌었다.
무릇 인간의 흥망성쇠는 풍진 속에 명멸하는 일장춘몽(一場春夢)과도 같다고 했던가?
무림이 형성된 이래 기라성 같은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이 탄생했고, 거마효웅(巨魔梟
雄)들이 대륙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혈겁을 벌여왔다.
그 가운데 당금에 이르기까지 인구에 회자(膾炙)되어 온 전설 아닌 전설이 있었으니..
.....
이른바 오대금단천(五大禁壇天)의 신화였다.
그것은 아득히 오래 전 무림에 실존해 왔다는 오대무류(五大武流)에 관한 전설이다.
그 전설의 진위 여부는 굳이 따질 필요조차 없었다. 왜냐면 당금 무림에까지 오대무류
는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가공할 음모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켰으며 숱한 혈풍을 조
성한 것이 바로 오대무류, 오대금단천이었으므로 재론할 여지조차 없는 것이다.
일명 혈풍십오대난겁(血風十五大亂劫)이라 불리는 공포의 대혈겁도 바로 오대금단천에

 의한 것이었다.
후대에 길이 남게 될 이 불미스러운 역사는 실상 몇몇 사람으로 인한 것이기도 했다.
오대금단천을 통합시킬 유일인이라는 지옥천룡지체(地獄天龍之體)가 탄생함에 따라 몇
몇 효웅(梟雄)들은 긴장했고, 그것이 바로 가공할 혈겁을 불러일으킨 주원인이었다.
그들은 지옥천룡지체뿐 아니라 그를 보좌하는 지옥삼혈좌(地獄三血座)마저 척살 대상
에 포함시켰다. 자신들의 안위와 야망을 위협하는 어떤 존재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
다.
그러나. 그들의 집요한 음모와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옥천룡지체와 지옥삼혈
좌는 합쳐지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대파천의 장(場)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과연, 어떠한 일이 당대에 일어났는지.......
풍운만변(風雲萬變)의 무림계를 이끌어 온 영웅들의 피와 눈물, 한과 증오 속에서 은
원(恩怨)의 역사는 파헤쳐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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