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16. 수요일
임은미(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이젠 더 이상 자책할 필요 없습니다!” 창세기 45장
어제 내 묵상에 누군가 댓글을 아래와 같이 보내 주었다.
***
선교사님 오늘 묵상 너무 멋있었어요!!!!!!!!!!!!!!!!!
역시 넘사벽!!!!!!!!!!!!!!!!!!!!!!
그냥 온전히 하나님만 높이고 집중되게 하시는 그 모습이
너무너무 멋졌어요!!!!
행복에 대한 태도,
선교사님이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자리에 서 있는 것에 대한 확실한 자기 인식.. 등등 ^^
요즘은
크리스천도 행복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마치 하나님이 개인을 만족시켜 줘야 하고,
행복한 느낌을 갖게 해 주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는데..
저는 선교사님의 저런 고백들이
부드럽지만, 세상에 일침을 가하는 날카롭고도 예리한 고백 같아서..
너무 감동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만족시키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 쓰임 받는 나에게 오롯이 포커스 되어서 ^^
좀 강렬한 메시지처럼 울림이 있었어요.
선교사님의 메시지는 다 지켜낸 것이라 진실한 울림이 있잖아요!!! ^^
***
이 댓글을 읽고 다시 내 묵상을 읽어 보았다.
“나는 무엇으로 행복해하는가?”에 대한 글이었는데,
오늘은 그러면 “나는 무엇으로 마음이 가라앉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 본다.
행복의 반대가 되는 표현인 ‘불행’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마음이 무겁거나 우울해지는 때가 나에게는 언제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나에게 하나님에 대한 원망의 글을 보내올 때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한 의심의 글을 보내올 때이다.
그러니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고, 하나님이 더 좋아졌다고 하고, 하나님께 더 감사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행복하고,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러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 맞는가?”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불신의 글을 나에게 보내 주면 나는 마음이 내려간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내가 도와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책임 의식(?) 같은 것을 갖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따라 유독 이렇게 마음이 내려가는 사람들의 글을 많이 받는다.
그만큼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는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한국 경제는 나의 선교헌금이 들어오는 그 숫자에 따라 나는 나름 판단하는 것 같다.
9월 중순이다.
평상시 들어오던 선교헌금의 거의 반밖에(?) 안 들어왔다.
나도 이런 때는 마음이 불안(?)해진다.
이번 달 사역비가 모두 나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다가오기도 한다.
나는 수고하는 많은 사역자에게 추석이나 연말이 되면 격려비를 다 따로 챙겨서 보내 준다.
그러나 이번 추석 때는 꼭 해야 할 것 같은 부분의 사역자들에게만 보내 주었을 뿐,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도 보내 주지 못했다.
“광에서 인심이 난다”라고 내가 자주 말하는데, 나는 내가 받은 후원금에서 다른 사역자들을 후원해 주고 또 다른 많은 사역을 후원하기 때문에 나에게 후원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내가 평상시 하는 사역을 모두 감당할 수는 없다.
도와주어야 하고 보내 주어야 할 많은 사람의 사역비 앞에서 나는 어느 부분을 줄여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면 마음이 좀 내려간다.
그러다가 어디서 전혀 생각지 못했던 선교헌금이 들어와서 모든 것이 다 해결(?)되면 너무 기뻐한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 가운데
음...
나의 일희일비는 그럼 재정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 그것인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면서
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요즘은 사역을 이전에 내가 하던 "말씀 사역"을 많이 하지 않고 그야말로 육체노동(?)의 사역을 하니까 이런저런 생각할 것들이 많아진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다.
하하하하
우리말성경 창세기 45장
5. 하지만 형님들이 저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거나 자책하지 마십시오. 이는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하시려고 저를 형님들보다 먼저 여기로 보내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저를 여기에 보내신 분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바로의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의 주인과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에 와닿는 단어는 “자책”이다.
요셉은 형들에게 “저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거나 자책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한다.
이 말씀을 보면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이 요셉에게 행한 일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일에 대한 죄책감과 자책을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나중에 아버지 야곱이 죽고 난 뒤에도 형들은 다시 두려워한다. 혹시 요셉이 아버지가 살아 계셨기 때문에 자신들을 용서한 것이고,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자신들에게 복수하지 않을까 염려한다.
그래서 형들은 요셉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형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한다.
그 모습을 생각하면 형들의 마음속에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자책이 얼마나 오랫동안 남아 있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잘못한다.
내가 잘못한 일 때문에 누군가 상처를 입을 수도 있고, 돌이켜 생각할수록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면서 후회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한 일을 평생 붙들고 스스로를 정죄하며 자책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원하실까?
물론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회개해야 한다. 내가 상처를 준 사람이 있다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회개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과거의 잘못에 붙들려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아가는 것이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모습일까?
오늘 요셉의 고백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저를 여기에 보내신 분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형들이 요셉을 팔았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행동이 잘한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저지른 잘못보다 크신 분이셨다.
사람들이 악하게 행한 일조차도 하나님은 붙드시고 결국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선한 일로 바꾸어 놓으셨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과거에 잘못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회개한 뒤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잘못까지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립니다. 이 일을 통해서도 선한 일을 이루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서 다시 일어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에게 잘못했다면, 이제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하면서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전에 사랑하지 못했다면 이제 더 사랑하고,
전에 배려하지 못했다면 이제 더 배려하고,
전에 상처를 주었다면 이제는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면서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자책은 우리를 과거에 머물게 하지만 회개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향하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향한 회개에는 소망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보다 크시고,
우리의 실패보다 크시며,
우리가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까지도 붙들어 선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잘못을 깨달았다면 회개하되,
자책 속에 오래 머물지는 말아야겠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딛고 다시 일어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갈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과거도 사용하시고, 나의 실수도 사용하시고, 심지어 나의 잘못까지도 주님의 손에 붙드셔서 선한 일을 이루실 수 있음을 믿을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저를 여기에 보내신 분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이 고백처럼 오늘도 나의 모든 지나간 시간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 드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소망이십니다!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며
상처투성이요, 죄악투성이였던 우리를
기쁘게 하나님의 “복음의 도구”로 사용해 주시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의 "산 소망"이십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쁨을 넘어서 감동을 받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
2026. 9. 16.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셨나요?
자책이라고 하는 것
영어로는 self-condemnation
그런 말 표현도 되겠죠.
self-condemnation
스스로를 저주한다.
자책한다. 이러한 말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에 그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로
담당하게 하셨다고
그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이 복음이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 내가
그러지 않아야 했는데.
그러지 말걸.
후회하고 이 후회가
후회에서 멈추는 것도
아니고 자책
계속 스스로를
꾸짖고 정죄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한 이유가
없어지는 것 아닐까요?
사랑하는 그대여
자책하지 않고 감사하는
그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앞으로 잘하면 되죠.
또 하나님이 도와주시니까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대의 삶에 참 소망이 되십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