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십전무판자(十全武判子)
[1]
대륙의 바람은 거세다.
야망이 부침(浮沈)을 거듭하고, 생과 사를 가르는 칼바람이 끝없이 윤회하는 풍진강호
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 가운데 최근 들어 태풍의 눈으로 대두된 한 인물이 있었다. 그에 대해서는 세간에
별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다만 신출귀몰한 그의 행적과 활약으로 인해 십전무판자(十
全武判子)란 별호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는 무림에 등장하자마자 내로라 하는 인물들에게 겁도 없이 도전을 청해 단기간 내
에 무수한 일화들을 남겼다.
그가 선택한 대상은 한결같이 기라성 같은 무림명숙들이었는데, 문제는 이제 겨우 약
관에 불과한 그가 놀랍게도 전승불패(全勝不敗)의 기록을 세웠다는 점이었다.
그의 이름은 뇌우(雷雨).
영준한 외모에 백색 문사의(文士衣)를 즐겨 입고 다녔다.
일설에 의하면 검(劍)이나 도(刀) 등의 각종 무기는 물론 암기까지도 자유자재로 다루
는 천부적인 무인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아무도 그의 실체에 대해서는 아는 자가 없었
다.
뿐만 아니라 항간에서는 그의 학문 또한 대학자에 버금간다는 설도 있었으나 그 역시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는 지금까지 무려 백팔십 회가 넘는 비무를 했다고 알려졌다. 다시 말해 백
팔십 회의 승리를 거둔 그는 지금 마차에 몸을 실은 채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따각따각.......
때는 장하(長夏).
불볕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햇빛은 마차의 지붕 위로 온종일 무지막지하게 내리쬐어 마차 안을 뜨거운 용광로처럼
달구어 놓은 상태였다.
더위 탓인지 허리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흑발을 끈으로 질끈 묶고 있는 백의청년,
그가 바로 뇌우였다.
마차가 향하고 있는 곳은 호북성(湖北省)의 무창(武昌)으로, 대강남북을 잇는 육로(陸
路)와 수로(水路)의 요지였다.
무창은 예로부터 문물이 번창하고 상거래가 활발하여 번화하기 그지없는 대도(大都)였
다.
거리는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붐볐으며 생동감이 넘쳤다. 찌는 듯한 삼복 더
위가 계속되고 있는 중에도 무창의 하루는 분주하기만 했다.
이윽고 마차는 무창의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한적한 야산(野山)에 당도했다.
황혼 무렵임에도 불구하고 산등성이는 아직도 펄펄 끓어오르는 잔광에 잔뜩 지쳐 있었
다.
눈에 보이는 풍광은 제법 그럴 듯했다. 사위가 짙은 홍색으로 물들어 절미의 풍광을
연출했다.
열기를 품고 있기는 하나 간간이 미풍이 불어와 울울창창한 수림을 슬며시 훑고 지나
기도 했다.
마차는 별다른 장식이나 특징이라곤 없는 평범한 사두마차(四頭馬車)로 지붕도 형식적
으로 얹혀 있을 뿐 휘장은 커녕 사면이 훤히 뚫려 있어 안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었
다.
뇌우는 녹슨 철궤를 목뒤에 베고 편안한 자세로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일신에는 정갈
한 문사풍의 백의를 걸치고 있었다.
그의 입술 가에는 가벼운 미소가 매달려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조소처럼 느껴지기는
미소였다.
그런 그를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따르는 인물이 있었다.
그 자는 마부석에 버티고 앉아 있는 한 소년이었다. 청의를 걸친 소년은 나이가 열서
너 살 정도 되어 보였으며, 뇌우에 못지않게 신비한 표정이었다.
짤랑, 짤랑.......
소년은 한 손으로 말고삐를 쥔 채 다른 손으로는 은자 두 닢을 가지고 여유있는 장난
질을 하고 있었다.
귀엽고 붙임성 있는 용모와 더불어 그에게서 돋보이는 것은 영악스러운 빛을 발하는
한 쌍의 눈망울이었다.
짤랑짤랑......!
소년의 손놀림이 문득 달라졌다. 워낙 열중해 있는 탓이겠으나 그 속도나 기능으로 미
루어 보건대 어느덧 장난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대단한 재주를 과시하고 있었다.
한 가닥 담담한 음성이 소년을 불렀다.
"소악(少惡), 아직도 소식이 없느냐?"
음성의 주인은 마차 안의 뇌우였다. 소년은 여전히 손장난을 멈추지 않은 채 대꾸했다
"없는 것 같은데요."
무성의하게 들리는 그 말에 뇌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이만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벌써 약속한 시각에서 반각이나 지났다."
"뭘 그리 지루해 하십니까? 그 정도 지체한 걸 가지고."
"놈! 내가 너하고 입장이 같으냐?"
소년은 그제야 뇌우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이 은자를 빌려 드릴까요? 시간 때우기론 그만입니다."
뇌우는 입맛을 쩍 다셨다.
"난 됐으니 너나 실컷 가지고 놀아라."
"헤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왜냐하면 제가 그들에게 황금 일백 냥을 받았거든요
."
"뭐, 뭣?"
"물론 뇌물입죠."
소년의 말에 뇌우의 얼굴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황금 백 냥에 날 팔았단 말이냐?"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죠."
소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멀쩡하게 덧붙였다.
"제가 괜히 소악입니까? 챙길 건 확실하게 챙겨야죠."
"끙!"
뇌우는 괴상한 신음으로 대답을 대신해야 했다. 일찍이 소년의 특출한 자질(?)을 알아
보고 소악이란 별명을 붙여 준 것은 다름 아닌 그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는 사이, 소악은 눈썹을 모으며 산 아래쪽을 응시하더니 무슨 냄새를 맡는 듯 코
를 벌렁거렸다.
"뭐 하는 짓이냐?"
뇌우가 묻자 소악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징조를 엿보고 있는 것입지요."
"코로 말이냐?"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정확하기만 하면 되지요."
소악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드디어 나타난 모양입니다요."
"그래, 네 말이 맞다."
두 사람은 줄곧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과연 그들의 이상한 대화가 끝
나자마자 산 아래쪽에서 몇 개의 인영이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 인영이란 다섯 명의 아름다운 시비들이었다. 그녀들은 저마다 손에 술과 먹음직스
러운 안주들을 받쳐들고 두 사람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잠시 후, 가까이 이른 다섯 명의 시비들은 뇌우에게 날아갈 듯 대례를 올린 후 주석(
酒席)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부산한 움직임을 지켜보던 소악이 들리지 않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흠, 제법 예의를 차리는 척 한다만 어림없다. 그런다고 내가 은자를 벌어들이는 일을
소홀할 수야 있나?"
그는 무슨 생각에선지 마부석에서 훌쩍 뛰어내리더니 시비들을 지나쳐 산 아래쪽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뇌우는 그저 빙긋 웃을 따름이었다.
산 아래에는 어느 틈엔지 한 채의 화려한 교자(轎子)가 도착해 있었다. 교자의 전후로
는 무사 차림의 장한들이 각기 네 명씩 달라붙어 호위하고 있었다.
교자에는 은은한 옥색 휘장이 걸려 있었는데, 그 위에는 한 명의 미녀가 휘장을 걷고
그림 같은 자태로 앉아 있었다.
나이는 이십 세 정도로 용모만도 눈이 부실 정도인데다 농염한 자태마저 겸비한 여인
이었다. 그녀가 보여 주는 관능미(官能美)는 비단 일신에 걸친 벽라옥삼 때문만은 아
니리라.
문제는 그녀의 빼어난 미색도 소악에게는 전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 이 맹랑한 소년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태연하게 교자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짓궂은 웃음만이 감돌고 있었다.
첫댓글 시원한 꿀 잠 되세요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즐독입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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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감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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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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