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의 행운 ]
호주가 죄수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라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18세기에 영국은 자국의 범죄자들을 식민지의 유형지로 보냄으로써
영국을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고자 했습니다.
초기에는 기결수를 주로 아메리카 식민지로 보냈지만 독립을 쟁취한 미국이
죄수를 거부하자 자연스레 호주가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1788년 1월 영국의 죄수를 가득 태운 11척의 함대가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스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이 오늘날의 시드니에 진을 친 1월 26일을 호주 정부가 건국 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 뉴사우스웨일스에는 죄수와 이들을 감시하는 간수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죄수는 강제노역을 해야 했고 간수는 이를 통해 돈을 벌려고 했습니다.
죄수에게는 임금이 지급되지 않았고 생존에 필요한 식량만 배급되었습니다.
죄수가 생산하는 모든 것을 간수가 차지하는 불합리한 체제가 오래 지속될 리 없었습니다.
죄수는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생산성은 매우 낮았습니다.
간수는 불성실하고 게으른 죄수를 매질하거나 태평양의 외딴섬으로 추방했지만
이와 같은 벌칙만으로는 작업성과를 끌어올리기가 힘들었습니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호주 내에서 죄수를 대체할 다른 노동력을 구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당시 100만 명에 가까운 원주민이 있었지만 광활한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었으므로
뉴사우스웨일스에는 다른 식민지처럼 착취할 수 있는 인적자원이 부족했습니다.
죄수에게 임금을 지불하거나 재산 소유를 허용한다는 것이 말도 되지 않던 시절에
간수들은 어쩔 수 없이 영국보다 한층 더 포용적인 제도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호주의 죄수들은 주어진 일을 끝내고 남는 시간에 자신을 위한 생산활동을
할 수가 있었고 생산된 제품을 판매할 수가 있었습니다.
죄수에게 경제적 자유를 허용하자 간수들도 이득을 보게 되었습니다.
죄수들이 돈을 벌고 개인 재산을 소유하게 되자 간수들은 죄수들에게
럼주와 같은 독점적 물품을 판매하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죄수들에게도 사업이 허용되었고 죄수가 죄수를 고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수들은 형기를 마치고 나면 복역 기간에 축적한 재산을 그대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부자가 된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호주에서는 엘리트 계층과 죄수 및 출소자로 이루어진
신흥 계층 간에 갈등의 조짐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죄수 출신의 신흥 계층은 영국으로부터의 죄수 유형 중단, 토지 소유 허용, 동료 배심원에
의한 재판 기회 부여 등과 같은 엘리트 계층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조건을 내걸었습니다.
1831년 리차드 버크 총독은 압력에 못 이겨 출소자에게도 배심원의 자격을 허용했습니다.
영국에서 유입되는 죄수들을 저렴한 임금으로 이용해 왔던 엘리트 계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840년에는 죄수 유형도 중단되었습니다.
1850년대에는 성인 백인 남성의 보통 선거권이 보장되었고 1856년에는 세계 최초로
비밀투표 제도가 도입되어 매표 행위와 강압적 투표가 근절될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선거에서 사용되는 비밀투표의 제도적 표준을 우리는 호주식
투표(Australian ballot)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호주의 행운은 식민시대 초반부터 착취적 제도가 생겨날 수 없는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는
데서 시작됩니다. 착취할 수 있는 원주민의 수가 많지 않았고, 금이나 은과 같은 귀금속도
없었으며, 노예를 동원하여 대농장을 세울만한 토양과 작물이 없었다는 것이
호주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뉴사우스웨일스를 운영하던 간수, 군인, 자유 정착민들은
죄수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점진적으로 포용적 경제 제도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발맞추어 정치제도 역시 포용성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호주로 죄수를 보냈던 영국은 내전과 명예혁명이라는 희생을 치르며 포용적 정치/경제체제를
완성해 나갔지만 호주는 큰 장애물 없이 포용적 제도를 정착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포용적 제도가 뿌리를 내림으로써 호주는 산업혁명을 빠르게 받아들일 수가 있었고
이를 통해 국부를 크게 증대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죄수의 유형지로 출발한 호주가 포용적 제도의 채택을 통해 살기 좋은 나라로 거듭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역사에도 행운과 우연성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산업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사)지역산업입지연구원 원장 홍진기 드림
첫댓글 이글이 홍진기 원장의 글이군요!
많은 역사공부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