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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보레는 올해 전 구단을 상대로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는 등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사진 송기찬) |
경남 FC의 까보레는 ‘순둥이’다. 훤칠한 키에 마른 체형이며 성격이 온순하다. 큼지막한 눈동자까지 어디를 봐도 ‘킬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경기에 나서면 이같은 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순식간에 수비수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 골을 넣는 장면은 먹이를 낚아채는 독수리를 떠올리게 한다. 까보레는 10월 12일 현재 17골로 득점 1위다.
브라질리그에서 스타로 대접받던 모따(성남), 두두(서울) 등과는 달리 까보레는 1부리그에서 뛴 경험이 없다. ‘브라질 전국 2부리그 출신의 늦깎이 축구선수.’ 까보레의 이력서는 간략하다.
10월 6일 경남 FC의 정규리그 11번째 홈경기가 창원종합운동장에서 벌어졌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도 경기장은 썰렁했다. 관중석에 앉은 사람보다 빈자리가 더 많았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4,075명이었다. 올시즌 경남의 경기당 평균 관중 5,754명보다 적었다.
경남이 일찌감치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사실상 확정한 게 이유였다. 경기 전날까지 4위 경남은 12승4무7패(승점 40)로 3경기를 남겨놓은 가운데 5위 FC 서울(승점 33)과 승점 7점 차를 유지했다.
큰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경남이 탈락할 리는 없었다. 더욱이 상대는 꼴찌 광주 상무(승점 12)였다. 경남팬들로서는 썩 구미가 당기지 않는 대진이었다.
그러나 이날 경기의 비중은 컸다. 박항서(48) 경남 감독은 경기 전 “(6강 플레이오프 진출)가능성은 99.9%다. 마지막 0.1%를 채우기 위해 승점 1점이 필요하다”며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박감독은 “3위로 올라가야 플레이오프를 계속 안방에서 치를 수 있다. 이만한 이점은 없다”고 덧붙였다.
3위-6위전 승자와 4위-5위전 승자가 맞붙는 준플레이오프는 리그 성적이 더 좋은 팀의 홈경기로 열린다. 3위를 하면 6강 플레이오프에서 이길 경우 2경기 연속 홈에서 경기를 할 수 있다.
박감독은 정윤성(23)과 까보레(27)를 최전방 공격수로 내세웠다. 가장 믿음직한 조합이었다. 두 선수는 후반기에서만 13골(9도움)을 합작했다. 경남이 후반기에 넣은 17골 가운데 76.5%에 이른다.
그렇지만 박감독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대기록을 앞둔 까보레 때문이었다. 까보레는 9월 29일 제주 유나이티드전까지 8경기 연속 공격포인트(7골5도움)를 기록하며 절정의 골감각을 보였다.
광주전에서 골이나 도움을 기록할 경우 1997년 마니치(35, 당시 부산)가 세운 최다연속경기(9) 공격포인트 기록과 타이를 이루게 된다. 기록에 신경을 쓰다 보면 성적을 그르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벤치에 있던 박감독이 손을 번쩍 치켜 들었다. 까보레가 선제골을 터뜨린 것이다.
까보레는 수비수 두 명 사이로 빠르게 치고 들어간 뒤 골키퍼 박동석(26)이 나온 것을 보고 오른발 슈팅으로 광주의 골망을 흔들었다. 과감하고 빠른 돌파와 침착한 자세가 돋보인 100점짜리 슈팅이었다.
이로써 까보레는 마니치 이후 10년 만에 9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K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경남은 까보레의 결승골을 끝까지 잘 지켜 1-0으로 이기며 승점 43점으로 남은 2경기에 관계 없이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했다. 창단 2년 만에 거둔 결실이었다.
지독한 가난과의 싸움
브라질은 2005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7천961억 달러(약 731조 원)에 이르는 경제대국이다. 한국(7천913억 달러, 약 728조 원)보다 GDP가 많다.
그러나 소수의 브라질 국민이 안락한 삶을 누릴 뿐이다. 브라질 국민의 대다수는 빈민이다.
까보레는 브라질 북동부에 있는 살바도르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살바도르는 16세기 포르투갈에 의해 세워진 도시다. 아프리카에서 끌려 온 노예들의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사회 기반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치안까지 불안하고 생활 수준은 열악했다. 주한브라질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브라질은)치안이 상당히 불안정하다. 시장 등 중심가라고 할지라도 언제 어디서든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까보레의 집안 사정은 형편없었다. 제대로 먹고 살기도 힘들었으니 체계적인 교육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동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이 벌어졌다.
까보레도 싸움에 휘말렸다. 상처 없이 온전하게 살아남기 힘들었다. 까보레는 “어린 시절 나쁜 사람들과 싸움을 하다 등을 다쳤다. 아직도 상처가 남아있고 가끔 욱신거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힘겨웠던 생활은 오늘의 까보레를 있게 한 밑거름이 됐다. 까보레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 시절은 내 생애에서 가장 불행했다. 그러나 그때 느낀 가족 간의 정은 나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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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선수의 뒤늦은 성장
힘겹게 살아가는 까보레에게 축구공을 차는 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다른 건 다 포기해도 축구공만은 절대 놓지 않았다. 실력은 제법 있었다. 동네에서 한가락 했다. 주위 사람들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까보레는 형을 따라 축구선수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브라질에서 축구선수로 성공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전국 1부리그 유명 프로팀의 유소년 클럽에 들어가는 것조차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어릴 때부터 특별한 재능을 보인 선수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어린 까보레는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지역의 작은 클럽에서 축구를 계속할 따름이었다. 아무런 대가도 없었다. 그저 축구가 좋았을 뿐이다.
까보레는 “동네에서 그냥 운동을 계속했다. 체계적인 훈련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프로팀 산하 유소년 클럽에서 뛰는 건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고 기억했다.
청년이 된 까보레는 지역 하부리그의 클럽에서 활동했다. 아마추어 클럽이었다. 일주일에 몇 번씩 동료들과 손발을 맞추고 주말 경기에 출전하는 게 전부였다.
급여가 있었지만 가족들을 먹여 살릴 정도로 큰 돈이 아니었다. 때문에 축구선수 외에 다른 직업을 가져야 했다. 이는 브라질에서 빈민가 출신의 아마추어 또는 세미프로 선수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뽀뽀(29)도 세미프로 선수로 뛸 때 이삿짐 센터의 직원으로 일하며 집안 살림을 도왔다. 그렇지만 까보레는 다른 직업을 갖지 못했다. 능력이 없었던 게 아니라 가족의 거센 반대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까보레가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했다. 정식 프로선수가 되지 못한 형의 꿈을 까보레가 대신 이뤄주기를 희망했다. 까보레는 그때부터 축구선수로 성공하겠다는 마음을 굳게 다졌다.
축구화 끈을 더욱 세게 동여 맨 까보레는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 호나우두(31, AC밀란)를 목표로 삼았다. 같은 빈민가 출신이었기에 호나우두의 성공은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호나우두가 출전하는 경기는 하나도 빼놓지 않았다.
화면이 선명하지 않은 구식 텔레비전이었지만 까보레의 눈에는 호나우두의 플레이가 또렷하게 보였다. 호나우두의 움직임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따라하기를 반복했다. 가족의 헌신과 끊임 없는 노력 속에 빠르게 성장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까보레는 2003년 지역 1부리그 본수세소(전국 3부리그) 스카우트의 눈에 띄어 프로선수가 됐다. 축구선수치고는 꽤 늦은 23살 때였다.
데뷔는 늦었지만 성장세는 가팔랐다. 2005년 지역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등 유명세를 탔고 지난해 상파울루주리그의 이투아노(전국 2부리그)로 이적했다. 성공을 향한 또 하나의 발걸음이자 경남과 인연을 맺게 되는 연결고리였다.
‘명분보다 실리’ 한국행을 택하다
박항서 감독은 평소 인터뷰에서 까보레를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말한다. 기독교 신자인 박감독은 “하나님이 내 고민을 털어주기 위해 보내 준 보배 같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고 설명했다.
까보레와 경남의 만남은 극적이었다. 경남선수단은 지난 1월 중순 브라질 꾸리찌바에 짐을 풀었다. 지난해에는 터키 안탈리아를 해외전지훈련지로 했으나 별 재미를 못 봐 올해는 브라질로 바꿨다.
브라질을 전훈지로 택한 건 전력 강화 외에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산토스(35), 뽀뽀 외에 외국인선수의 남은 한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박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가 직접 보고 영입선수를 결정하기로 했다. 에이전트들이 보내 준 비디오 테이프로는 성이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남은 외국인 공격수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지난해 공격을 이끌었던 루시아노(26)와 하리(33)는 정규리그에서 6골(4도움)을 합작하는 데 그쳤다.
두 외국인 공격수의 부진으로 경남은 최소 득점 3위(22골)를 기록하며 12위에 머물렀다. 그랬기에 선택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몸싸움을 잘하며 공중 볼 장악 능력이 뛰어난 장신 공격수로 범위를 좁히고 여러 선수들을 불러 테스트했지만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박감독의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숙소에서 우연히 상파울루주리그 경기를 시청했다. 축구 경기가 중계되고 있어 기분 전환도 할 겸 가벼운 마음으로 본것이었다.
이투아노와 파우메이라스의 경기였다. 이투아노는 전국 2부리그 소속이지만 상파울루주리그에서는 1부리그 팀과 경기를 치렀다.
경기는 예상대로 파우메이라스가 끌고 갔지만 박감독의 눈에는 이투아노의 등번호 11번을 단 선수가 쏙 들어왔다. 까보레였다.
까보레는 고된 훈련이 계속돼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사진 송기찬) |
공격수가 아닌 공격형 미드필더였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었다. 까보레가 왼쪽 측면에서 수비수 3명을 뛰어난 발 재간으로 순식간에 돌파하는 장면에서 ‘바로 이 선수야. 반드시 잡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코칭스태프는 다음날 회의에서 까보레를 영입 대상으로 결정했다. 곧바로 전형두 단장과 함께 상파울루로 날아갔다.
까보레는 경남의 제의에 깜짝 놀랐다. 대뜸 한국에서 뛰어보지 않겠냐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2002년과 2006년 월드컵에 출전했다는 사실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미지의 세계였다.
더구나 브라질리그 명문 클럽인 코린티안스의 이적 제의를 받은 상태였다. 코린티안스행을 승낙하면 브라질리그 최고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연봉 등 조건이 썩 좋지 않았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까보레는 명분보다 실리를 택했다. 경남 관계자들의 적극성에 마음이 돌아선 면도 있다.
“오케이” 사인을 한 건 박감독을 비롯한 경남 선수단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이었다. 박감독은 편안한 마음으로 브라질을 떠날 수 있었다.
까보레는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안정적인 생활이 필요했다. 가족 가운데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또 바깥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힘겨운 타지 생활
까보레는 취업비자 발급 문제로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두고 경남에 합류했다. 동료 선수들과 제대로 손발도 맞춰 보지 못한 채 3월 4일 울산 현대와의 개막전에 출전했다.
신고식은 화끈하게 치렀다. 폭넓은 활동 반경과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울산 수비진을 흔들더니 후반 40분 뽀뽀의 프리킥을 헤딩으로 받아 넣었다.
경남은 까보레의 골로 울산과 1-1로 비겼다. 순조로운 출발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이후 까보레는 고전했다.
날씨, 음식 등 모든 게 낯설었다. 한국 문화에 익숙해지는 게 쉽지 않았다. 브라질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까보레에게는 처음 겪는 모든 게 고역이었다. 특히 음식은 적응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브라질에서 먹던 음식보다 맵고 짰다.
쉴 때나 훈련할 때나 고향이 그리웠다. 브라질에 두고 온 가족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내 줄리아니의 출산일이 다가오면서 더욱 신경이 예민해졌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몸 상태가 엉망이니 좋은 경기내용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골을 넣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3월 17일 인천 유나이티드와 치른 원정경기에서 결승골을 터뜨려 2-1로 팀의 시즌 첫 승을 이끌었다. 4월 15일 가진 부산 아이파크전에서는 2골을 터뜨려 4-1 대승의 주역이 됐다.
그렇지만 실력보다는 운이 더 작용했던 골이었다. 경남의 한 관계자는 “부산전의 경우 까보레가 잘했다기보다 부산이 스스로 무너진 경기였다”고 말했다.
팀 동료이자 같은 브라질 출신인 뽀뽀와 산토스가 까보레의 도우미를 자청하고 나섰다. ‘5년생 K리거’ 산토스와 ‘3년생 K리거’ 뽀뽀는 이미 반 한국인이 됐다.
물가 등 한국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그들은 까보레에게 최고의 선생님이었다. 뽀뽀와 산토스는 언제 어디서든 까보레를 따라 붙었다. 먼저 먹을거리부터 도왔다. 브라질 음식에 쓰이는 재료와 비슷한 재료를 골라 음식을 만들었다.
경기 템포가 빠르고 압박이 강한 K리그에 대한 적응 방법과 수비수 개개인에 대한 세세한 자료도 받았다. 배가 든든해지고 자료가 축적되면서 K리그에 대한 적응 속도가 빨라졌다.
창원 집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함안 클럽하우스까지 차를 몰고 다닐 정도로 지리에도 익숙해졌다.
까보레는 “K리그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많이 힘들었다. 뽀뽀와 산토스의 도움을 받고 경기를 치르면서 K리그 스타일을 따라갈 수 있었다. 뽀뽀와 산토스가 없었다면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두긴)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멈출 줄 모르는 질주
“그 녀석 참 대단하지 않나요. 골만 넣었다 하면 까보레, 까보레 아닙니까. 상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너 까불래’라고.” 까보레를 아냐는 질문에 창원의 한 택시기사는 신이 나 말을 끝낼 줄 몰랐다.
택시기사의 칭찬대로 빠르게 K리그에 대한 적응을 마친 까보레의 활약은 눈부셨다. 10월 12일 현재 정규리그 17골(경기당 평균 0.71득점)로 득점 1위다.
2위 그룹인 데얀(인천), 데닐손(대전, 이상 14골)과는 3골 차다. 가장 유력한 득점왕 후보다.
“브라질에서 처음 봤을 때만 해도 (까보레의)골문 앞 움직임과 골 결정력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뭔가 부족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
까보레는 상대 수진에게는 공포의 대상이고 팀 동료들에게는 믿음직한 킬러다.(사진 선원익) |
박항서 감독의 말대로 까보레는 경기에 뛰었다 하면 골이나 도움을 기록했다. 약점으로 지목됐던 골 결정력은 그의 최대 강점이 됐다.
까보레의 득점 행진이 시작된 건 4월 2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FC 서울전부터다. 까보레는 전반 19분과 후반 20분 연속골을 넣으며 경남의 3-0 완승에 이바지했다.
박감독의 전술 운용 능력과 함께 까보레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경기다. 경남이 컵대회를 포기한 이후부터였다.
경남은 4월 25일 부산과 치른 컵대회 경기에서 0-1로 지자 미련 없이 컵대회를 포기했다. 정규리그에 전력투구해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리기로 했다.
‘주중 컵대회, 주말 정규리그’로 이어지는 빡빡한 경기 일정에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던 까보레는 그제서야 충분한 휴식을 하고 경기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서울전 이후 까보레는 말 그대로 날아 다녔다. 출전하는 경기마다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공격포인트가 쌓이면서 슈팅, 드리블, 패스 등 모든 플레이에 자신감이 붙었다.
누가 막아도 뚫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두려울 게 없었다. 골문이 커다랗게 보였다. 차는 대로 골로 연결됐다. 상대팀은 알고도 당했다.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상대 수비진에게는 공포의 대상이고 팀 동료에게는 믿음직한 ‘킬러’다. 김성길(24)은 “패스를 하면 반드시 골을 넣을 것 같다”며 신뢰감을 보였다.
까보레의 활약으로 지난 시즌 공격력이 최하위권이었던 경남은 1년 만에 막강 화력을 지닌 팀으로 180도 변신했다. 10월 12일 현재 41골로 성남 일화와 함께 정규리그 최다 득점 1위에 올라 있다.
그러나 까보레의 장점은 골만이 아니다. 수비수들이 자신에게 집중되면 공간을 파고들어 동료에게 득점기회를 만들어 주는 능력이 더욱 빛났다.
동료들이 뽑은 최고의 도움은 9월 16일 열린 대구 FC전이다. 까보레는 전반 12분 오른쪽 뒷공간으로 빠르게 침투해 대구의 수비진을 무너뜨렸다. 뽀뽀의 전진 패스를 받아 이를 왼쪽에서 들어오는 정윤성에게 정확하게 전달했다.
발로 툭 차기만 해도 골이 되는 완벽한 패스였다. 까보레는 “최전방 공격수보다는 처진 공격수나 공격형 미드필더로 많이 뛰었다. 공간을 파고들어 득점기회를 만드는 게 골을 넣는 것 보다 더 자신 있다”고 말했다.
폭주기관차처럼 멈출 줄 모르던 까보레의 공격포인트 행진은 8월 11일 인천전에서 경남이 득점 없이 비기며 7경기에서 끝났다. 그러나 잠시 숨을 골랐을 뿐이었다.
나흘 뒤 가진 대전 시티즌전에서 득점포를 재가동하며 다시 공격포인트 행진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 오래갔다. 10월 6일 광주전에서 넣은 결승골로 9경기까지 늘렸다. K리그 최다 연속 경기 공격포인트 타이였다.
경남의 한 관계자가 아쉬움이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인천전에서 골이나 도움을 1개만 기록했어도 17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라는 것이다.
그러나 까보레는 이에 개의치 않았다. 목소리도 평소처럼 차분하다. “이 성적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K리그에 내 이름을 남기게 돼 행복하다.”
코리안 드림 그리고 도전
25년 K리그 역사에서 이적 첫해 득점왕에 오른 외국인선수는 에드밀손(14골, 2002년), 모따(14골, 2004년), 마차도(13골, 2005년) 등 3명밖에 없다.
까보레는 네 번째 주인공으로 유력하다. 외국인선수들 사이에서는 최우수선수로 거론되고 있다. 성적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모따(27, 성남)는 “최우수선수상은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가 받아야 한다. 올시즌에는 단연 까보레”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될 경우 까보레는 이적 첫해 득점왕과 최우수선수상을 모두 받는 첫 번째 외국인선수가 된다.
그러나 K리그는 텃세가 심하다. 외국인선수는 2004년 나드손(25, 수원) 외에 최우수선수가 없다.
또 1999년의 안정환(31, 수원)말고는 시즌 우승팀에서 최우수선수가 나왔다. 경남을 우승으로 이끌어야 최우수선수상 수상이 가능하다. 까보레는 “팀 우승이 가장 큰 목표다. 개인상 수상은 그 이후”라고 말한다.
성공은 또 다른 성공을 부른다. 그리고 새로운 목표 의식을 갖게 한다. 건실한 까보레는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쇼핑도 생활용품 구매만 할 뿐이다.
집에서 어린 두 아들과 놀거나 성경책을 읽는 게 개인생활의 전부다. 까보레는 “브라질에 있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 급여의 90%를 브라질로 송금한다. 가족의 편안한 삶을 위해 꿈을 단계별로 세워 하나씩 이루려 한다”고 말했다.
첫 번째 목표는 브라질에 집을 짓는 것이다. 까보레는 자신의 노트북에 저장된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친구인 나드손의 집이었다. 나드손이 K리그에서 성공해 큰 돈을 모은 게 부러워 자신도 크고 멋진 집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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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보레는 경남과 내년까지 계약했으나 임대 신분이어서 거취가 불투명하다. 경남은 내심 완전 이적을 희망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 올해 까보레의 연봉은 적다.
K리그 외국인선수들의 연봉 가운데 최저 수준이다. 내년 시즌 몸값이 크게 오를 것이 뻔해 재정이 넉넉하지 못한 경남으로서는 까보레를 잡기가 힘들다. 까보레에 대한 다른 팀의 관심은 이미 드러났다.
지난 여름 이적시장에서 몇몇 팀이 입맛을 다셨다. 까보레는 “가족 같은 분위기의 경남에서 뛰는 게 좋다. 그러나 아직 확실하게 결정한 건 없다. K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팀에서 뛴다는 건 축구선수로서 당연한 꿈이지 않은가. 물론 경남도 좋은 팀이기는 하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나아가 K리그의 활약을 발판 삼아 유럽리그에 도전할 계획이다. 까보레는 “어려서부터 유럽리그를 동경했다. 최선을 다한다면 기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그렇지만 일단 K리그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게 가장 큰 꿈이다. 까보레는 말했다. “지금 당장 떠날 생각은 없다. 한국이 정말 좋다. 가능한 한 오랫동안 K리그에서 뛰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은 내게 성공의 시작을 안겨 준 소중한 곳이다.”
K리그의 브라질 선수
10월 12일 현재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등록된 외국인선수 38명 가운데 브라질 출신 선수는 29명이나 된다. 대부분 브라질 전국 1부리그 또는 해외리그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등 나름대로 유명한 선수들이다.
예전에는 브라질 전국 2,3부리그 선수들의 몸값 거품으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으나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브라질 전국 1부리그 출신의 유능한 선수들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모따, 이따마르(이상 성남), 두두(서울), 따바레즈(포항) 등은 브라질리그에서 이름만 대도 다 아는 스타 플레이어다. 뽀뽀(경남), 데닐손(대전) 등도 해외를 돌며 이름을 알렸다.
이들에 비해 전국 2,3부리그에서만 활동한 까보레는 철저한 무명 선수였다. 대우 수준도 하늘과 땅 차이다. 까보레의 연봉은 A급 외국인선수들의 ⅓ 수준도 안 된다. 몸값 문제로 기가 죽을 수도 있지만 까보레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해트트릭으로도 모자라네”
까보레는 시즌 초반 박항서 감독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몇 골을 넣을 수 있겠느냐”는 박감독의 질문에 까보레는 자신있게 “25골”이라고 대답했다.
지난해 외국인선수들의 부진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박감독은 까보레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박감독은 까보레의 자신감 넘치는 자세에 기쁜 나머지 “25골을 넣으면 자동차를 사 주겠다”고 약속했다.
까보레는 9월 30일 대구전까지 16골을 터뜨렸다. 박감독과 한 약속에 9골이 모자랐다. 박감독은 10월 6일 광주전을 앞두고 까보레에게 “이제 3경기가 남았으니까 경기마다 해트트릭을 해야 한다”고 겁을 줬다.
그러자 까보레는 “걱정 마세요. BMW 자동차 기대할게요”라며 또 다시 자신감을 보였다. 광주전에 선발 출전한 까보레는 전반 2분 만에 골을 넣었다.
대량 득점까지 기대됐으나 이후 광주의 집중 수비에 막혀 추가골을 넣는 데 실패했다. 게다가 옐로 카드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10월 10일 수원전에 뛸 수 없게 됐다.
남은 기회는 6강 플레이오프를 포함해 최소 2경기다. 경기당 4골을 넣어야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 가장 좋은 방법은 경남이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최대 6경기까지 뛸 수 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까보레는 벌칙을 받게 될까. 박감독은 웃으며 말했다. “클럽하우스에서 설거지라도 시킬까 보다.”
까보레
Everaldo De Jesus Pereira Capore
생년월일 | 1980년 2월 19일
출생지 | 브라질 살바도르
신체조건 | 187cm 78kg
주요경력 | 2003년 본수세소 입단
2006년 이투아노 입단
2007년 경남 FC 입단
SPORTS2.0 제 73호(발행일 10월 15일) 기사
함안=이상철 기자
첫댓글 엄청나게 긴 기사네요..ㅎㅎ
경남 떠나지마 1시즌만더 ㅠㅠ
'인천전에서 골이나 도움을 1개만 기록했어도 17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라는 것이다' ㄷㄷㄷ
아 오랜만에 좋은기사 잘읽었다..
22 아 뿌듯 ..
ㅋ, 까보레.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니 코리안드림 이루게 해줄게. 가지 말자. ㅠㅠ......
222222222
오랜만에 마니시 보네 ㅋㅋ
BMW 타자~!!!
아 정말 눈매가 이영표가타~
까보레..올시즌에 K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
이거 너무 완소인데요 ㅋㅋㅋ
까보레 귀하해라~!@
눈매가 맘에들어 ㅋ
좋은기사 잘읽었습니다~ 까보레 성실하고 멋있네요~ㅎㅎㅎ
저도 잘 보았습니다.. 거의 드라마 수준이네요..ㅠ ㅠ 까보레선수 나드손 선수 네 집 옆에 같이 집짓고 오래 오래 친하게 지내요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