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甲濟의 현대사 토요강좌
「그때 그 사람 들 - 10ㆍ26 사건의 진실」
池鐘益 月刊朝鮮 인턴기자 (ji0218@chosun.com)
1월29일, 오후 2시 朝鮮日報 광화문빌딩 9층 강당에서 제1회 「趙甲濟의 현대사 토요강좌」가 열렸다. 한국 현대사의 진실을 올바르게 조명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이 강좌는 매월 마지막 토요일 오후2시에 열린다.
첫 강연의 주제는 「그때 그 사람 들 - 10ㆍ26 사건의 진실」이었다. 이날 강연에는 300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일부 사람들은 지정된 좌석이 모자라 보조 의자에 앉아서 강좌를 듣기도 했다.
강사로 나선 月刊朝鮮 趙甲濟 대표는 『10ㆍ26은 6ㆍ25와 더불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며 『단 하루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이 때문에 우리나라 10여 년의 역사의 흐름이 결정됐다』고 평가했다. 趙대표는 『10.26은 「누구 말은 무조건 복종한다」는 식의 여러 가지 인간관계에 따른 것』이라며 『이 사건 만큼 100% 투명하게 조사되고, 밝혀지고, 공개된 사건도 없다』고 말했다.
趙대표는 『金載圭에 대해 일부에서는 「천하의 패륜아」라고 하고 또 일부에서는 「민주투사」라는 말을 하지만 둘 다 진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趙대표는 『金載圭가 거사를 결정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위하여」라고 중얼거리며 박 대통령이 있는 만찬장으로 갔다고 진술했지만 이는 박 대통령을 살해하게된 3-4번째 이유 정도 되는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車智澈과의 불화」』라고 못 박았다.
趙대표는 金載圭를 「민주투사」라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 『살인을 통해 민주투사가 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金載圭는 민주투사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에서 제기한 「미국이 金載圭를 원격조종해 박 대통령을 살해하게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趙대표는 『비약 중의 비약』이라고 일축했다. 趙대표는 『다만 金載圭는 거사 후 집권에 성공하면 미국도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정도의 생각은 했을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다음은 강좌 요약이다.
金載圭는 朴正熙 대통령보다 9살 적은 고향 후배입니다. 이 두 사람은 육사 동기이며, 키도 비슷합니다. 사실 만찬 자리에 있던 네 사람 모두 키가 164cm에 불과했습니다. 金載圭의 성격 포인트는 「우직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보부장으로서 필요한 종합적인 사고력은 대단히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만찬장에서 車智澈이 金載圭를 약 올렸습니다. 박 대통령도 車智澈 실장의 편을 들었습니다. 金載圭는 코너에 몰렸습니다. 10.26 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백동림 대령은 『대통령 살해의 주범은 車智澈이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金載圭에게 사건을 일으킬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 車智澈이라는 것입니다. 車智澈이 그날 안하무인식의 발언을 하지 않았고 朴대통령도 金載圭를 자극하지 않았더라면 金載圭도 살의를 풀었을 것이라는 가정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車智澈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부패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車智澈의 과도한 충성심이 박대통령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車智澈은 박 대통령에 대한 경호를 너무 삼엄하게 해 박 대통령을 대중으로부터 고립시켰습니다.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므로 그의 행동을 아무도 말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車智澈은 그 날 권총이 담긴 가방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車智澈은 몇달 전부터 그 가방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나의 짐작으로는 아마도 박대통령이 車智澈에게 『권총을 소지하지 말라』고 한 것 같습니다.
당일 金載圭는 궁정동 안가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계원 비서실장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도착했습니다. 金載圭와 김계원은 굉장히 친한 사이입니다. 김계원은 金載圭를 형님으로 모셨습니다. 金載圭는 김계원에게 『차지철이 때문에 될 일도 안 된다. 오늘 해치워야겠다』고 불평했습니다. 김계원은 金載圭가 흔히 하던 얘기라서 이 말을 농담처럼 받아들였다고 주장해습니다.
당시 궁정동의 경호상황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궁정동 안가는 정보부 요원들이 경비를 담당합니다. 대통령이 정보부 요원들의 경비 하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정보부 요원의 숫자가 경호원보다 많습니다. 이는 경호 원칙을 무시한 시스템입니다.
10월26일 18시5분, 박 대통령과 車智澈, 그리고 경호원들이 도착하고 최후의 만찬이 시작됐습니다. 여자도 있었습니다. 심수봉과 신재순입니다. 심수봉은 노래를 하기 위해, 신재순은 다른 임무를 위해 왔습니다.
박선호는 정보부장의 의전과장으로 궁정동의 시설 관리, 대통령 방문 시 행사를 준비합니다. 박선호는 金載圭 다음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박선호는 金載圭가 대구 대륜중학교 체육교사를 할 당시 그 학교의 학생이었습니다. 金載圭는 실직한 박선호를 취직시켜주기도 했고, 의전과장으로 선발도 했습니다. 金載圭의 말이라면 들을 수밖에 없는 관계였습니다.
18시30분 두 여자가 만찬장에 들어갔습니다. 이 사건에는 3명의 생존자가 있습니다. 김계원, 심수봉, 신재순입니다. 두 여자 중, 신재순은 현재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는데 담이 크고 관찰력이 뛰어난 여자입니다. 심수봉은 충격을 크게 받아서 당시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일이 터진 후, 모두 자리에서 피했지만 신재순만이 박 대통령이 흘리는 피를 막고 있었습니다. 신재순은 『처음부터 金載圭의 얼굴이 무겁고 어두워 불안했다』고 말했습니다.
18시40분 金載圭가 식사 도중 슬그머니 자리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본격적인 시해 준비를 위해서 입니다. 金載圭는 2층으로 올라가서 호신용인 독일제 권총에 탄알을 7발 장전하고 호주머니에 넣고 내려왔습니다.
金載圭는 가장 믿는 박선호와 박흥주(金載圭의 수행실장)를 뜰에 불러 놓고 『나라가 잘못되면 우리도 다 죽는다』며 『각오는 다 돼 있겠지』라고 말했습니다. 박선호는 金載圭의 귀에 대고 『각하까지입니까』라고 물었고 金載圭는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박선호는 金載圭에게 『경호원이 7명이나 되는데 다음에 하시죠』라고 말했지만 金載圭는 『오늘 해야 된다』며 『똑똑한 놈 세 명을 골라 나를 지원해』라고 했습니다. 박선호는 金載圭에게 『30분의 여유를 달라』고 말했고 金載圭는 『알았다』고 한 후 만찬이 열리고 있던 방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박흥주의 진술에 따르면 金載圭는 방으로 들어가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하여』라고 중얼거렸고, 권총이 들어있는 호주머니를 「탁」 쳤다고 합니다. 金載圭는 만찬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박선호는 해병대 출신 경비원 이기주와 하사관 출신 운전수 유성옥에게 무장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19시20분 박선호가 박 대통령의 경호원 두 명이 대기하고 있는 대기실로 들어갔습니다. 박선호는 TV쪽에 앉아 신호를 기다렸습니다.
19시40분 만찬장에서는 노래판이 시작됐습니다. 심수봉과 車智澈이 노래를 했고, 음치인 신재순이 「사랑해 당신을」 부를 때 박선호가 金載圭를 불러 『준비가 다 됐다』고 했습니다. 金載圭가 다 됐다는 통보를 받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보니 신재순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박 대통령은 노래에 맞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金載圭는 총을 빼서 車智澈을 쐈습니다. 車智澈은 오른손 손목에 총을 맞은 후, 화장실로 도망갔습니다. 車智澈이 비난 받는 이유입니다. 金載圭는 총을 쏘고 박 대통령에게 『각하, 버러지 같은 놈을 두고 무슨 정치를 하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박 대통령은 『뭣들 하는 거야』라고 고함을 질렀고, 김계원은 왼손으로 金載圭를 쳤습니다. 金載圭는 자리에서 일어나 車智澈을 잇따라 쏘려다가 총부리를 아래로 내려 박 대통령을 쐈습니다.
박 대통령은 총을 맞고 스르르 쓰러졌습니다. 피하려는 행동이나 아파서 고함을 지르는 행위는 전혀 없었습니다.
김계원은 밖으로 나갔고, 車智澈은 화장실로 도망갔습니다. 신재순은 박 대통령의 등에서 솟구쳐 오르는 피를 손으로 막았습니다. 車智澈이 화장실 문을 빼꼼히 열고 『각하, 괜찮으십니까』라고 묻자, 박 대통령은 『난 괜찮아』라고 했고, 신재순이 다시 『각하, 정말 괜찮으십니까』라고 묻자 또 『난 괜찮아』고 대답했습니다. 신재순은 박 대통령의 이 말은 『난 괜찮으니 당신들은 빨리 피하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신재순은 『金載圭의 눈과 마주쳤는데 영원히 잊지 못할 짐승의 눈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신재순은 『박 대통령이 체념, 해탈한 사람의 모습 같았다』고 했습니다. 총을 맞고도 현실을 받아들이겠다는 자세였다는 것입니다.
金載圭가 車智澈을 쏘았을 때 박 대통령은 『뭐하는 짓들이야』라고 화를 냈지만, 그 후 『난 괜찮아』만 두 번 반복하고 죽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보통사람처럼 행동했다면, 예를 들어 화장실로 도망갔는데 金載圭가 문을 박차고 쐈다면 그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총을 맞는 순간에도 박 대통령은 담담하게 있었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박정희를 한 영웅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입니다.
첫댓글 좋은 글이라 가져 왔습니다
국부를 살해한 갬재규를 민주투사라고 여길 인간들은 빨갱이가 아니구서야 ~~
어두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