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멈춰요!"
여인이 소악을 향해 뾰족한 음성으로 외쳤다.
"알았소."
소악은 그 자리에서 뚝 멈추어 서더니 교자 위에서 안면을 찡그리고 있는 여인에게 제
법 정중한 태도로 포권했다.
"그간 안녕하셨소이까?"
"덕분에."
여인은 불편함을 드러내면서도 소악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하고 마주 목례를 취해 보였
다.
반면에 그녀의 표정에서 경멸의 빛을 읽어낸 소악은 피식 웃더니 이제까지와는 달리
진중하게 말문을 열었다.
"소저를 위해 우리 형님께선 바쁘신 중에도 여기서 반각이나 기다리셨소. 만남을 중개
한 이 소악으로서는 너무도 가슴이 아파 견디기가 힘들었소이다. 짐작컨대 소저께서는
이 아픈 가슴을 치유할 방도를 가지고 계실 듯하오만?"
아울러 그는 한 쪽 손을 씻는 것처럼 옷자락에 대충 문지른 뒤,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흐음?"
여인의 얼굴이 재차 찌푸려졌다가 한참 시간이 걸려 간신히 풀렸다. 그녀의 입에서 불
만에 찬 음성이 흘러 나왔다.
"지난번에 황금 일백 냥을 지불했는데, 또......?"
그녀는 말하다 말고 제 풀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소악이 갑자기 미간을 팍 구겼기 때
문이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쪽은 소저가 아니시오?"
여인을 추궁하는 소악의 기세는 실로 볼만했다.
"소인도 정말이지, 소저께서 우리 형님을 기다리시게 하는 일이 생길 줄은 미처 몰랐
소이다."
말을 마친 그는 손을 내리며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등을 돌려 버렸다. 그 모습에 여인
은 이를 악물어야 했다.
'소악귀(少惡鬼)!'
그녀는 내심 욕설을 퍼부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소악은 한 술 더 떴다.
"염려 마시오. 형님께는 필히 전하리다. 소저께서 사정이 있어 오시지 못했다고 말이
외다."
말을 마치자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대책 없는 협박
에 여인은 당혹을 금치 못했다.
"공자, 잠깐만......!"
그녀는 다급한 음성으로 소악을 불러 세웠다. 그러나 소악은 듣지 못한 듯 계속하여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공자!"
여인의 음성이 약간 높아졌다. 그제야 소악은 힐끗 고개를 돌리더니 의아한 얼굴로 물
었다.
"날 부르셨소이까?"
그 어투는 흡사 처음 만나는 사람을 대하는 듯한 것이었다. 여인은 기가 막혔으나 애
써 표정을 부드럽게 고쳤다. 그리고 최대한의 상냥한 음성으로 말했다.
"제가 왜 공자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겠어요? 부족하지만 이것으로 약이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어요."
그녀의 손에는 한 장의 은표가 쥐어져 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황금 일천 냥짜리 은표였다. 그 액수는 한 개인이 쓰자면 몇 년은 편
안하게 놀고 먹을 수 있는 거금이었다.
더구나 여인이 내민 은표는 대륙제일의 전장인 은하대전장(銀河大錢場)이 발행한 것으
로 신용을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하지만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소악의 행태였다. 그는 은표를 일견하더니 오히려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허어! 요즘 세상은 왜 이렇게 돌아가는 것인지......."
말끝을 흐리는 그에게 여인이 물었다.
"그건 무슨 말씀인지요?"
소악은 문득 정색을 하고 대꾸했다.
"시중의 약값은 가격이 점점 더 높아지는데 성의는 반대로 형편이 없어지니 정녕 큰일
아닙니까?"
"그, 그럼......!"
여인의 표정은 대번에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묘한 것으로 변하고 말았다. 시종
무심을 가장하고 있던 장한들조차 이 사태에는 안면을 괴이하게 일그러뜨렸다.
소악만이 앞서와 마찬가지로 진지한 얼굴이었다.
'못된 꼬마 놈!'
여인은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참느라 무진 애를 써야 했다. 겉으로는 되려 화사한 웃음
을 머금었지만.
"아! 제가 생각이 모자라 미처 거기까지는 염두에 두지 못했군요. 부디 넓은 아량으로
용서하세요."
그녀는 이번에는 품 속에서 하나의 은색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안의 내용물
을 확인할 수 있도록 주머니를 활짝 열어 소악에게 보여 주었다.
그 안에는 용안(龍眼)만한 진주가 세 개나 들어 있었다. 그것은 엄청난 가치를 지닌
보옥이었다.
소악은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일단 약방에 가서 알아보기는 하지요."
애매모호한 대답을 하면서도 그는 여인이 내미는 은색 주머니만은 빼앗듯 받아 들었다
소악을 바라보는 여인은 쓴 입맛을 다셨으나 끝내 그의 앞에서 미소를 잃지는 않았다.
그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이 소악이 형님이라 부르는 십전무판자 뇌우를 의식해서였
다.
그를 접견하기 위해서라면 설사 이보다 더한 횡포라 할지라도 그녀로서는 필히 감수해
야 되었던 것이다.
"이제 그만 가시지요."
소악은 비로소 안내역을 자처하며 몸을 돌렸다.
앞서 산을 오르는 그를 말없이 응시하던 여인은 장한들에게 따르라는 눈짓을 해 보였
다. 그녀를 태운 교자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소악과 여인의 교자가 다 함께 사두마차가 서 있는 곳에 당도했다. 그녀는 마차 안에
있는 뇌우를 보자 언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느냐 싶게 활짝 웃어 보였다.
교자에서 내려서며 먼저 말을 건넨 것도 그녀였다.
"처음 뵙습니다. 소녀는 이 곳 무창의 수궁보(水宮堡) 출신인 화자연(火紫燕)이라고
해요."
웃음기가 떠나지 않았으나 그녀의 안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긴장이 역력히 묻어 나왔
다.
무창의 수궁보라면 명실공히 신주구대명가(神州九大名家) 중 하나다. 호북 일대의 수
로를 장악하고 있는 바, 상업과 해운업 방면에서는 제왕(帝王)으로 일컬어지는 터였다
그들이 가진 재산은 대륙에서도 손꼽을 정도였다.
보주(堡主)인 천수익룡군(千手翼龍君) 화추양(火秋陽)은 무림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
사하는 인물로 무공 수준도 극고하여 당금 무림에서 십대고수(十大高手)의 서열에 들
었다.
화자연의 인사에 뇌우도 마차에서 내려와 포권했다.
"반갑소이다. 본인은 북리뇌우(北里雷雨)라 하오."
화자연은 미소 띤 얼굴로 말을 받았다.
"공자의 위명은 소녀도 익히 듣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녀의 심중에서는 이런 읊조림이 일고 있었다.
'무림을 제멋대로 휘젓고 다닌 십전무판자의 성이 북리(北里)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구
나.'
그녀는 표정과는 별개인 날카로운 시선으로 상대의 준미한 얼굴을 몰래 훔쳐 보았다.
북리뇌우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 무슨 일로 본인을 찾았소?"
담담한 그의 어투에는 어떤 심리도 드러나지 않았다. 이에 화자연은 보다 적극적인 태
도로 밀고 나갔다.
"주안을 드시면서 천천히 얘기하기로 해요. 우선 소녀가 한 잔 따르겠어요."
그녀는 서슴없이 자리를 잡고 앉아 북리뇌우에게 잔을 건넸다. 그리고 두 손으로 조심
스럽게 술을 따랐다.
그 곁에서 소악은 분주하기 이를 데 없었다. 주빈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벌써부
터 한 자리를 차지하고는 이것저것 맛난 음식들을 입 속에 구겨 넣느라 정신이 없었다
북리뇌우는 소악과 화자연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묵묵히 술잔을 비웠다. 그에게 화자연
이 자신의 술잔을 내밀었다.
"소녀도 한 잔 주셔야지요?"
"좋소."
북리뇌우는 흔쾌히 그녀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계속 대작을 했고, 몇 순배의 술이 오가자 화자연의 얼굴은 보기 좋
게 달아올랐다.
그 모습이란 실로 고혹적인 것으로 남자의 색정을 자극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을 듯
했다. 그래서일까? 그녀를 응시하는 북리뇌우의 눈이 애초와는 달리 미미한 흔들림을
보였다.
그의 입술이 다시금 열린 것은 그 때였다.
"나를 찾은 연유는 언제 말해 주려오?"
화자연은 홍옥처럼 붉어진 얼굴에 살풋 미소를 떠올렸다.
"실은...... 귀공께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예요."
"부탁?"
북리뇌우가 되묻자 그녀는 무엇 때문인지 새삼스레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꺼냈다.
"본 수궁보는 귀공께 감히 무학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자 해요. 가주(家主)께서는 그
일을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라도 치르시겠다는 언질을 주신 바 있지요."
북리뇌우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본인은 이제껏 스스로 무학을 수련해 왔을 뿐이지, 누구를 가르쳐 본 경험은 없소.
흥미도 없고."
그의 거절은 화자연을 매우 당혹시킨 것 같았다. 그녀는 비로소 태도를 바꾸어 북리뇌
우를 정시하며 말했다.
"소녀는 수궁보의 명예를 걸고 부탁드리는 거예요. 귀공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녀의 표정에는 일견하기에도 뭔가 절박한 느낌이 깔려 있어 그로서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내게 이 일의 경위를 말해 줄 의향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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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흥미진진하고 재미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