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2번째 편지 - 발로 걷는 사람, 머리로 걷는 사람
저는 거북목입니다. 주위에서 "조 대표 어깨 좀 펴고 걸으면 좋을 텐데" 하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헬스 트레이너와 상의하였습니다. "가슴을 펴고 걸어라. 턱을 당겨라." 등의 여러 가지 주문을 받았지만 해결될 기미가 없습니다. 거북목 교정은 오랜 숙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알렉산더 테크닉>을 지도하는 김경희 선생님에게서 새로운 시각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테크닉은 20세기 초에 개발된 서양의 대체 운동 기법입니다. 호주 출신의 배우 프레더릭 마티어스 알렉산더(Frederick Matthias Alexander, 1869-1955)가 목소리 문제로 고통받던 중 자신의 몸 사용 방식을 관찰하고 연구하여 이 기법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테크닉의 핵심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무엇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알렉산더 테크닉은 몸의 불필요한 긴장을 줄이고 뼈와 뼈 사이의 공간을 유지하여 자연스러운 자세와 움직임을 찾는 운동 기법입니다. 핵심은 '뼈와 뼈 사이의 공간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알렉산더는 뼈와 뼈 사이의 공간에 많은 관들이 지나가고 있어 그 관이 잘 지나게 해주면 건강은 저절로 회복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특별한 생각입니다. 물론 '척추를 펴라, 자세를 바르게 해라'라는 이야기는 수없이 듣지만 왜 그런지는 잘 설명해 주지 않았는데 알렉산더 테크닉에서는 뼈와 뼈 사이 공간을 확보하면 그 공간 사이로 많은 것들이 원활하게 이동하게 되어 건강해진다는 발상이었습니다.
우리 몸은 잘 만들어진 복잡한 대형 화학공장입니다. 그 공장에서는 물질들이 잘 흐르는 관들이 제대로 유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관이 어떤 이유로 막히거나 좁혀지면 물질들은 제대로 이동하지 못할 것입니다.
찾아보니 뼈와 뼈 사이의 공간을 지나는 물질에는 다양한 것이 있었습니다. 혈관, 모세혈관, 말초신경, 척수신경, 림프관, 인대, 힘줄, 연골, 세포외기질, 물 등이 있다고 합니다. 동양의학에서 말하는 '기'도 뼈와 뼈 사이의 공간을 따라 흐르지 않을까요?
김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우리 몸을 척추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세요. 척추는 경추, 흉추, 요추, 천추, 미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머리 쪽이 경추입니다. 척추의 머리쪽 끝을 경추 1번이라고 합니다. 경추 1번은 어디에 있을까요? 목일까요?"
김선생님은 강의실에 있는 뼈로만 구성되어 있는 인체를 보여주면서 경추 1번의 위치는 목보다 더 위인 턱관절 부위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즉, 척추라는 막대기가 우리 몸 중간에 있다면 그 막대기의 위쪽 끝은 목이 아니라 바로 턱관절까지 쑥 들어와 있는 것이죠. 그 위에 해골이 꽂혀 있는 것입니다.
"머리의 무게가 얼마쯤 될까요?" 제가 머뭇거리자 4kg쯤 된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리고 4kg짜리 공 모양의 물체를 제 손에 얹어줬습니다. 꽤 무거웠습니다. 이 무거운 것을 머리에 얹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고개를 약 10도 숙이면 4kg가 15kg까지 무게가 올라간다고 합니다. 저는 거북목으로 15kg을 머리에 얹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목에 병이 안 생기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머리는 경추 1번 위에 잘 놓여 합니다. 손끝 위에 계란이 올려져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중심을 잘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지 계란이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머리가 계란처럼 살포시 경추 1번 위에 놓여 있다고 상상하고 그런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그럴 때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런 자세를 하여야 우리 몸은 늘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고 뼈 사이에 공간이 확보될 수 있습니다. 거북목은 그 자체로 보기에 흉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척추를 눌러 뼈 사이의 공간을 줄임으로써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한번 걸어보시죠. 먼저 똑바로 서서 몸을 최대한 위로 끌어올린다고 생각하세요. 척추가 똑바로 펴졌는지 엉덩이, 허리, 목을 흔들어봅니다. 목이 경추 1번 위에 적당하게 잘 올려져 있다는 상상을 합니다.
그리고 걷습니다. 그런데 발로 걷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걷습니다. 시선을 앞으로 하고 머리가 먼저 나갑니다. 머리가 나가면 어깨와 가슴이 나가고, 이어 배, 엉덩이, 허벅지, 발이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걷는 자세입니다.
지금까지는 우리는 발로 걷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발이 움직이면 다리가 움직이고, 엉덩이, 배, 어깨, 머리가 따라서 움직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몸 전체가 쭉 늘어지게 됩니다. 척추가 곳곳이 서지 않게 되고, 머리도 척추 위에 똑바로 올려져 있지 않습니다.
길거리를 보면 이렇게 걷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고개를 앞으로 숙이거나, 엉덩이가 뒤로 빠지고 배가 앞으로 나온 그런 상태로 다리에 의존해서 걷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굉장히 힘이 들어 얼마 걷지 못합니다.
반대로 척추를 똑바로 하고 머리를 경추 1번 위에 올려놓고, 머리가 앞으로 나가면서 걷는 사람은 아무리 걸어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이 자세는 몸에 무리를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걷는다는 행위는 다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입니다. 제가 한번 머리를 잡고 이끌어 보겠습니다. 얼마나 편안하게 걸어지는지 한번 느껴보시죠."
김선생님은 제 머리를 잡고 이리저리 인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제가 걷는 것과 전혀 달랐습니다. 시선을 돌리면 머리가 따라가고 이어 몸이 따라 걸었습니다. 발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평소 걸을 때 이렇게 걸어 보세요. 그렇게 걷다가 한 100m쯤 걸었을 때 머리를 위로 띄우는 상상을 하세요. 약간 목을 늘리고 머리가 위로 붕 뜨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플로팅(floating)이라고 합니다. 띄운다는 것이죠. 이렇게 플로팅을 해서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날 걷는 자세에 관한 특별한 공부를 했습니다. 발이 아닌 머리로 걷는 방법입니다. 그날 이후 우면산을 산책할 때마다 이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한참을 걸었지만 피곤한지 몰랐습니다. 예전에는 조금만 걸어도 피곤했는데, 이 방식으로 걸어보니 걷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한평생을 걸었는데 걷기 자세가 틀렸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목은 안녕하십니까?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4.7.8. 조근호 드림
<출처 : 조근호의 월요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