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완녀에 대해
아마도 가장 잘 알고있는 제가
한 번 쯤 정리를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알다시피,
도완녀와 돈연 스님은
남산에 있는 독일 문화원에서 만났습니다.
도완녀는 서울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 유학을 위해,
돈연 스님은 조계종 최고의 학승으로
각국어로 불교 경전을 번역하던 학승이었습니다.
독일어로 경전을 번역하기 위해 독일문화원을 다녔지요.
도완녀는 유학을 다녀와서 그럴싸한 남자와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여의치 않아 곧 이혼을 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대부분 모르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혼의 아픔을 안고 있던 도완녀,
잡지에 실린 돈연의 글을 보고 연락을 해서 다시 만나 결혼을 하게 됩니다.
결혼 실패로 어디론가 도피하고싶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원도 정선이 안성맞춤이었겠지요.
저와 도완녀의 관계,
제가 처음 쓴 장편소설이 '휘파람새'였습니다.
그 책을 낸 출판사는 신용자라는 1인 벤처기업인이 운영하는 다음 출판사였습니다.
신용자,
역시 대단한 여자,
자신이 3년 동안 체험한 화전민 이야기로
동아일보 논픽션에 당선된 여자입니다.
그러자 춘천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이외수도 깜짝 놀랐지요.
춘천에 이런 인재가 있었나...
그래서 강원일보에 특채되어 기자가 되었습니다.
신용자가 취재한 글은 대부분 강원도에 뭍여있는 사람들의 특이한 인생 이야기였지요.
그 중 하나가 도완녀였습니다.
물론 도완녀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을 엮은 사람도 신용자였고요.
원래의 책 이름은 '메주스님과 첼리스트'였는데,
제작과정에서 '스님'을 빼먹는 바람에
'메주와 첼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저도 마침 그 출판사에서 책을내던 터라 자연히 알게 되었지요.
그들의 결혼 기념일에 정선에 초대받아 가기도 했고요.
문제는 도완녀가 예술가 답지 않게 돈을 너무 밝힌다는 사실입니다.
예술가가 돈을 밝히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신용자의 출판사에서 판매가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판권을 회수하여 다른 출판사로 넘겼습니다.
자신이 쓰지도 않은 글을 가지고...
그 외,
돈에 관한 도완녀의 집착은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그럴싸한 면만 세상에 알려지는 바람에 묻히고 말았지요.
도완녀,
넉넉한 돈연 스님에 비해 예술가적인 실험정신이 강한 여자입니다.
무당이 된 것도 어느날 문득 백일기도를 해 보고 싶다...는 충동으로
기도를 하던 중에 어떤 계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돈연 스님,
삶은 다 자신의 몫이니 남들이 함부로 말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학승으로 남아 있었으면 더 좋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서경
첫댓글 아마도 결혼을 결심 했을때이였던가요..그분의 강론을 들으면서 평소 돈연스님같지 않음에 갸우둥했었는데...
첼로 리스트와 결혼이 세간에 떠들썩.. 송광사 여러 학승님.. 스님들께 많은 실망을 ..안타까운일이였지요...
참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돈을 지나치게 밝히면 좋은 결과가 없지요.
순수한 예술인으로 남았으면 좋았으련만 무녀가 되어버렸으니 에효~
그 부부에게 서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별난 인물로 상상하고 싶었는데
결국 다 벗겨지니 통속적인 인물이란 생각으로 바뀌네요.
그런데 그런 경우 일부 사람들은 한 쪽을 가리고 선택적으로 보려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던데
아쉬워서 그럴까요?......*
그게 사실이라면... 마지막으로 진짜 실망했습니다. 난 그래도 그녀가 그동안 돈에는 관심이 없는데 장삿치들이 그녀를 앞세워 인생을 그르쳐 놓았다고만 생각했었네요. 욕심도 그녀가 부린게 아닌데 뒤집어 썻을 꺼라고 그리 생각했네요~~ ㅠㅠㅠ
한동안 잡지와 텔레비젼을 떠들썩하게 해서 그 두 사람의 얘기는 대강 알고 있었는데..
실망이네요
예술은 평범은 적이다
삶도 평범하지 아니하네요
욕심은 결국 본인을 천박(내생각)스럽게 만들었나요?
그것 또한 운명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