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거침없이 내리고 또 내렸다. 하늘에 뻥, 구멍이 크게 뚫려 퍼붓듯이
내리는 비였다. 굵은 장대비는 거칠고 무식하게, 온 세상을 집어 삼키겠다는
듯 가차없이 쏟아져 내렸다. 소년은 흐린 눈으로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세상이 온통 흐리다. 내리는 빗줄기는 사물의 윤곽뿐 아니라 색채와 그 안에
깃든 생명력까지도 지우는 힘을 지닌 모양이었다. 모든 것에서 생기가 빠져
나가 흐늘하고 질척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 바닥을 덮은 빗물에는 그 생기가 녹아 있을까?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아니, 사실 소년은 ‘생각’이라는 활동을 그만둔 지
상당히 오래되었다. 꽤 오랜 시간동안 그저 가만히 자리에 앉아, 열어둔 문과
활짝 젖힌 창을 통해 내리는 비와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뇌 속에
인식되지 못하는 정경은 그저 망막에 비친 상에 불과했다.
언제부터였을까……. 혼자 남겨진 것은. 누군가가 분명 곁에 있었던 듯도
한데. 그게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는 소년 혼자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다. 홀로.
문득 소년은 집 안이 춥다고 느꼈다. 실제로도 집 안은 냉랭했다. 여름의
우중충한 장마가 시작된 지 이제 겨우 이틀째였으나, 맑게 갠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뜨거웠던 공기는 상당히 식은 상태였다. 거기에 장마철
특유의 진득한 습기까지 더해져, 통나무로 지어진 집의 내부는 눅눅했다.
집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곰팡내가 어두운 분위기에 회색조를 덧칠했다.
소년은 무릎을 한데 모으고 양손을 깍지꼈다. 그리고는 작은 얼굴을 무릎
사이에 파묻는다. 어깨를 움츠리고 등을 한껏 구부렸지만 그래도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그러기엔 소년이 입고 있는 옷이 너무 얇았다.
빨지 않아 꾀죄죄한 옷. 빗물을 맞는다면 틀림없이 땟국물이 흐르겠지.
그러나 만사가 귀찮았다. 그래서 소년은 눈을 감았다. 시각을 차단한 채,
암흑이 펼쳐진 편안함 속에서 오로지 세상을 뒤덮은 빗줄기의 세찬 소리만을
들었다.
솨아아아 - .
차라리 저 무자비한 손길에 씻겨질 수만 있다면 - .
‘네가 걱정되는구나. 이번 장마는 아무래도 오래 갈 것 같은데.’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자신을 향해 말했었다. 기억나지 않는 얼굴로,
속삭이듯 작게 중얼거렸었다.
소년은 기억하고 있었다. 귓가에 와 닿던 따스한 숨결과 부드러운 어조의
목소리를. 어떤 음색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틀림없이 고왔던 것 같다. 그
예쁜 목소리로 상냥하게 중얼거렸었다.
그 사람은 누구였더라? 왜 내게 그런 말을 했었지? 왜 지금 나는 홀로
여기에 앉아 있는 걸까?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파와 소년은 생각을 그만두었다. 어쩌면 그의 머리
속에도 곰팡이가 슨 건지 모른다.
입술을 꾹 다문 소년은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이대로 잠들고 싶었다.
빗소리에 도취된 채 잠들고자 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수장당하는 기분 속
에서 죽을 수 있을 것이다. 창백한 모습으로 꽃과 함께 둥둥 떠내려가는 시체.
맑은 물과 햇빛이 한데 어울린다면 굉장히 아름다울 거다. 이대로 죽게
된다면 소년은 수장당하고 싶었다. 누군가의 꽃과 장마가 지난 뒤의 맑은
하늘에 뜬 태양과 물가까지 휘어진 버드나무 가지를 벗삼아.
* * *
솨아아아 - .
잔뜩 찌푸린 하늘은 기다렸다는 듯 용서없이 비를 토해냈다. 하늘에서 내
리는 물벼락을 흠뻑 맞고 돌아온 청년은 인상을 있는 대로 일그러뜨렸다.
“젠장, 더럽게도 퍼붓는군.”
선명한 녹색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뚝, 뚝, 흘러내렸다. 그의 온 몸은
이미 흠씬 젖은 상태였다. 몸에 찰싹 달라붙은 물먹은 옷의 감촉이 꽤나 불쾌
했다. 그래서 그의 기분은 한층 더 가라앉았다.
“아아. 장마니까. 일단은. 내릴 수 있는 만큼은 내리겠지.”
그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갈색 머리카락의 청년이 메마른 어조로 대꾸했다.
잘 생긴 얼굴과 깔끔한 옷차림, 어딘지 모르게 고상한 행동거지까지 여성들
로부터 꽤나 인기 있을 것 같은 남자였다. 나른한 듯 메마른 듯한 어조도
우울한 날씨와 어울리니 분위기 있어 보인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의 상대는
그런 류의 섬세한 감성 따윈 갖고 있지 않았다.
“엉? 뭐야, 그 맥빠지는 말투는? 게다가 ‘내릴 수 있는 만큼은 내리겠지’
라니, 거 어째 묘한 문장이다?”
한 쪽 고개를 갸웃거리는 녹색 머리의 청년, 에르가. 어딘지 이상한 문장
이긴 한데 딱히 꼬집을 데가 없다. 갈색 눈과 머리카락의 청년 딜트라엘은
가볍게 박수를 쳐주었다.
“축하한다. 드디어 단순 무식 암기가 실생활에 응용되기 시작했군. 대단한
진보야.”
“무슨 개소리야? 이 몸은 원래부터 천재였다고! 어디의 어떤 녀석과는
차원이 다른……제기랄! 그러고 보니까 순전히 그 녀석 때문에 내가 요 모양
요 꼴이 된 거잖아?!”
다시 흥분해서 발악하는 에르가를 보며 딜트라엘은 쯧쯧, 혀를 찼다. 저래서
단순한 녀석은 안 된다니까, 따위의 발언을 내뱉으며.
한참 동안 발광하던 에르가는 10여분이 지나서야 잠잠해졌다. 실은 몸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달라붙은 젖은 옷이 행동에 상당한 제약을 가하고 있었다.
얼른 벗어버리고 뜨거운 물이라도 몸에 끼얹은 다음, 뽀송뽀송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픈 마음이 굴뚝같은 에르가였다.
“찾았냐?”
딜트라엘이 불쑥 물었다. 그 질문에 움찔한 에르가가 고개를 숙이고서 작게
대답한다.
“아니.”
“……그래. ‘이번’에도 역시나로군.”
딜트라엘은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어투로 무표정하게 중얼거렸다.
딱히 누군가 대상을 정하고서 한 말이 아닌데도 에르가가 다시 움찔한다.
젊은 트로이 공작의 무심한 시선이 벽 한 귀퉁이로 향했다. 거기에는 달력이
걸려 있었다. 온통 붉은 색으로 X표시가 되어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한 칸
만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바로 오늘이었다.
“바보 같은 녀석…….”
에르가가 고개를 창 쪽으로 돌리며 화풀이하듯 투덜거렸다. 그렇지만 힘은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기도 뭐해서 반사적으로 꺼낸 말일 뿐,
정말로 상대를 바보 같다고 여기는 건 아니었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알아줄 수는 있었다. 사실 자신이나 딜트라엘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그 - 카류리드 - 와 그녀 - 혹은 존재 - 사이의 기묘한 교감을
겪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해할 수는 없어도 알아줄 수는 있다. 반드시 경험
해야만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것은 굳이 겪지 않아도 충분히 이성으로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이 날 왕성을 훌쩍 나가버린 젊은 왕의 ‘어떤
과거’는 후자에 속했다.
개나 소나 다 아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전 당시 반왕군에 속해
있었던 핵심 수뇌부들은 공공연히 아는 사실이었다. 세기의 천재, 신이 내려준
국왕, 드래곤의 수호를 받는 자 등등의 현란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마룡왕
카류리드가 일 년에 딱 하루, 페이스를 잃는 날이 있다는 것은.
그 날은 누구도 국왕을 알현하지 못한다. 아니, 알현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문제의 하루 동안 국왕은 부재중이므로.
‘나 외출하겠소’하고 당당히 선포한 뒤 떠나는 게 아니라 이른 아침부터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리기 때문에, 첫 해에 권력의 핵심층은 진땀을 빼야 했다.
멋모르고 국왕을 뵙겠다는 지방 귀족에서부터 ‘내 남편 어디 있어요’하는
왕비의 닥달까지 실로 다양한 상황에 부닥쳐야 했기 때문이다. 딜티는 말없이,
그러나 눈에 띄게 동요한 기색을 보이면서 오매불망 기다렸고 에르가는 갈지
않던 이를 득득 갈아댔다.
그러나 막상 한밤중이 되어서야 지친 기색으로 돌아온 국왕을 본 둘은 뭐라
추궁하지 못했다. 도저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을만치 녹초가 된 마룡왕의
모습 때문이었다. 다음 날 화창한 오후에서야 외출의 원인을 들은 둘은 입을
꾹 다물었고, 그 뒤 해마다 벌어지는 국왕의 해괴한 외출은 핵심층 사이에
암묵적인 비밀로 자리잡았다.
‘그렇지만 이번엔 정말로 걱정되는데…….’
트로이 공작은 속으로 고민에 빠져들었다. 올해는 유달리 장마가 일찍 시작
되었다. 이상 기후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이런 때 행선지도 알 수 없는 왕의
부재라니,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설령 일 주일 동안 성을 비운다 한들 국왕에게 따질 마음은 손톱만
큼도 없다. 그가 아닌 누구라도 똑같이 행동할 테니까. 오히려 나랏일에 시달
려야 하는 그에겐 단 하루일지언정 일 따윈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마음 내키는
곳으로 향하는 휴식이 절실히 필요했다.
‘마룡왕’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을 고려한다 해도 충분히 용납되는 일
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걱정되는 건 걱정되는 거다. 더군다나 지금
같은 장마철에 수도 내에서는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다니.
‘……내가 무슨 쓸데없는 걱정을.’
트로이 공작은 생각해놓고 나서도 스스로가 우스워져 피식, 웃었다. 그가
누구인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고한 경지에 다다른 대륙 최강의 마법
사다. 예전에 자신이 노심초사하며 지켜줘야 했던 제6왕자가 아니다. 아니면
역시 이건 어쩔 수 없는 습관일까.
‘하루뿐이니까……올해도 사라지지 말고 무사히 돌아와라. 카류.’
착 가라앉은 그의 눈길은 자연스레 창 밖으로 쏠렸다. 옷 좀 갈아입겠다며
구석에 난 문으로 향하는 에르가의 뒷모습도 편치만은 않아보였다.
* * *
“여긴 처음 보는 곳인걸…….”
아직도 앳된 구석이 남아있는 깨끗한 목소리가 로브 자락 밑으로 흘러나왔다.
후드를 깊숙이 뒤집어 쓴 탓에 얼굴 생김새는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만으로
판단해 보면 10대 후반, 내지는 20대 초반을 넘기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간혹 얼굴까지
가린 이 낯선 자를 흘끔 훑어보는 이도 있었지만, 각별히 주의하는 건 아니
었다.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만약 수상쩍은 자라면 경비대가 끌고 갈 테니까.
내전이 끝난 해와 그 다음 해에는 제법 혼란스런 분위기였으나, 새로 등극한
국왕은 빠른 속도로 나라를 안정시켰고 그가 시행한 새로운 제도들은 백성
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반란을 일으킨 제6왕자가 왕이 된 것에
대해 욕을 하던 이들까지도 입을 다물 정도였다.
사실 백성들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왕은 자신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왕이다. 왕위 순위든 정당성이든 그런 건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귀족들이나 입에 거품 물어가며 시시콜콜 따져들지,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다면
백성들은 차츰차츰 눈감아준다. 더군다나 잘 먹고 잘 살게 해 준다는데야
누군들 반대하랴.
유능한 국왕이 발휘하는 실력에 백성들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불과 몇 년
만에 내전으로 피폐해졌던 영토가 다시 윤택해졌고, 상업의 발달과 다방면에
걸친 개혁으로 오히려 나라는 전보다 더 부강해졌다. 지금에 와서는 원래
국왕이 되었어야 마땅한 제1왕자의 존재조차 잊어버린 경우가 대다수였다.
시간의 힘은 어디에서나 냉정했다.
로브를 입은 인물, 카류리드 드 크레티야 아르윈은 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분주히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에 만족했다. 이 곳이 수도가 아니라 지방
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다행이야.
카류리드는 속으로 안도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비를 맞는 건 좋아하지만 흠뻑
젖은 꼴로 돌아간다면 엄청난 잔소리와 구박을 받게 된다. 물론 에르가가
휘두르는 주먹을 피하는 건 쉽지만,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임을 잘 알기에
차마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에르가의 주먹은 너무 아프다.
카류리드는 주변을 둘러보며 어디쯤에서 묵을까, 고민했다. 사람들의 이목을
안 사면서도 많은 사람이 모여있어 민심을 읽기 쉬운 장소. 그런 장소를 원
했다. 한 바퀴 죽 둘러보다 마침내 최종 후보에 오른 두 곳을 놓고 어디로
정할까, 한참 고민할 때였다.
- 도와줘.
‘응?’
카류리드는 흠칫 고개를 돌렸다. 분명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정말
듣기 힘든, ‘의지’가 깃든 정신의 파장이.
- 도와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아주 가는 아이의 목소리다. 너무 파장이
가늘어서 조금만 힘을 주어 붙든다면 쉽게 뚝, 끊어질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가는 파장 속에는 절박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결코 평범한 부름이 아니다.
카류리드는 이 뜻밖의 사태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초조해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야 했다. 이런 인상깊은 파장을 내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필시…….
‘죽음을 앞둔 거겠지.’
그가 잘 아는 파장이다. 질릴 정도로 잘 알고 있다. 지금은 안 들린지 몇 년
이나 되었지만 전에는 지겹도록 들어야 했다. 내전 당시 카이의 힘을 계승한
이후로 몇 번이나 들었다. 사형대에 올라선 죄수들이 내는 절박한 파장이 살을
찌를 듯이 따갑게 와 닿았었다. 그들의 ‘살고 싶다’는 파장이 카류리드의
정신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때문에 여러 차례 지친 나머지 정신을 잃어 주위
사람들을 걱정시켰었다. 혼란을 일으킬까 봐 대외적으로는 비밀로 했지만,
그 때문인지 친구들은 지금까지도 그를 걱정한다.
이 파장은 바로 사람이 죽기 전 내는 파장이다. 죽고 싶지 않다는 절박한
마음이 내는 파장. 그래서 카류리드는 파장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어디니. 네가 있는 곳은. 어디서 이렇듯 나를 부르는 거니.’
- 도와줘.
다시 한 번 파장이 다가왔다. 카류리드는 정신을 바짝 곤두세우고 마나의
흐름을 감지했다. 미묘하게 주변과 어긋나는 마나의 흐름이 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카류리드는 눈을 감은 채로 마나가 만들어내는 인도의 길을 따라갔다.
쭉 뻗은 길은 마을을 지나 산자락까지 이어져 있었다. 파장은 산을 덮은 숲의
어귀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카류는 눈을 뜨고 숲을 살폈다. 수풀 사이로
어렴풋이 나무가 보였다. 놀랍게도 마을과 동떨어진 숲 속에 오두막 한 채가
있었다. 내리는 빗줄기들 사이로 뿌옇게 떠오른 오두막은 몽상 속의 풍경 같
았다.
비에 젖은 흙 냄새와 싱그러운 짙은 풀냄새 틈바구니에 섞여든 오두막은
사람이 산다기보다는 엘프가 사는 집 같다. 비록 카류 본인은 한 번도 엘프를
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 도와줘.
파장은 분명 마을에서보다 강하게 울렸다. 오두막 안이 파장의 발원지인 모양
이었다. 카류는 걱정스럽게 오두막으로 다가갔다. 내리는 빗소리 때문에 풀을
밟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수풀을 아무렇게나 헤치고 걸을 때 나는 소리도
묻혀 버린다.
갑자기 카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무언가 거슬리는
냄새가 풍겼다. 익숙한데도 거부감이 드는 역한 냄새. 바로 죽음의 냄새였다.
카류는 경직된 손으로 문을 열었다.
삐그덕.
문이 열리고 어두운 내부가 한 눈에 들어왔다. 카류는 빛을 찾아볼 수 없는
오두막 내부를 구석구석 살폈다. 역시 통나무로 된 벽이 가로막혀 있어 모든
방이 한 눈에 들어오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가 목표로 하던 건 찾을 수 있었다.
눅눅하고 서늘한 오두막 안의 한 쪽 구석에, 한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고개를 무릎 사이에 파묻은 채로 꼼짝도 않아서, 미약하게 오르내리는 등이
아니라면 시체로 착각할 정도였다.
카류는 아이에게서 흘러나오는 파장을 온몸으로 받으며 안쓰러움을 느꼈다.
- 도와줘.
아이는 미동도 않은 채 아무도 듣지 못할 외침을 속으로만 외치고 있었다. 입
밖으로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그저 누군가 이 절박한 외침을 들어주기를
바라며, 마음 속으로 되풀이할 뿐.
만약 내가 오늘 이 마을로 오지 않았다면 이 아이는 어떻게 될까?
문득 그런 의문이 솟구쳤다. 순간 카류는 깨달았다. 이런 게 바로 예정지어진
‘만남’이라는 것임을. 카류는 온화한 어조로 아이에게 물었다.
“네가 나를 불렀니?”
죽은 듯 앉아있던 아이의 고개가 천천히 들려졌다. 썩은 나무토막처럼 생의
냄새라곤 맡을 수 없었던 아이에게서 미약하나마 생명력이 느껴졌다. 아이의
어둡고 흐린 눈이 카류에게로 향했다. 작은 입술이 달싹이며 속삭이듯 흐느낌을
토해냈다.
...실은 생존 신고용입니다~(퍼억!)
이렇게 말해도 기억해주시는 분은 다섯 손가락조차 채 못 채울 듯합니다만.
지금 올리는 이 글도 실은 예전부터 쓰려고 생각했던 소재입니다.
원래는 카뮤르.카이야가 죽은 날짜마다 외출하는 국왕, 어느 해 그를
찾으러 바닷가에 간 딜티와 에르가가 카류의 넋두리를 들어준 뒤 슬며시
위로해준다...는 단순+밋밋한 글이었는데 오랫동안 글 쓰지 않다 보니까
다 까먹어 버려서요.(자랑이냐)
다시 이르나크에 불붙고 있는 현재, '패러디 쓰고 싶어'하는 심정으로
무작정 한글 켜 놓고 가만히 앉아 있다 보니 저 제목이 땡기지 뭡니까.
해서 그냥 질러버렸습니다.-_-;;
제목은 타투의 노래 - 유명하죠?^^ - 입니다. 무척 좋아하는 노래에요.
그 환상적이고 불안한 느낌의 사운드, 아슬아슬 무너질 듯한 균형과
가슴에 팍 꽂히는 묘~한 가사까지 딱 제 취향입니다. 작년 이맘 때쯤
PDA에 집어넣고 머리 아플 때마다 들었지요. 그럼 신기하게도 두통이 싹
가라앉았거든요. 아마도 전 노래 가사 중에서
Mother, looking at me.
Tell me what do you see.
Yes, I lost my mind.
Daddy, looking at me.
Will I ever be free.
Have I crossed the line.
이 부분을 좋아했던 게 아닌가... 싶군요.
어쨌든 이 노래가 너무 마음에 들어 제목을 따 카이야 추모글을 쓰려 했는데
예전에 추모글 올렸었잖아요?(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만;;)
그래서 쓰는 김에 내용을 확 바꿔버렸죠.
수능은 끝났지만 결과가 너무 암담해서(필요없는 과목만 심하게 잘 봤음.
정작 필요한 과목들은...;; 누가 내 계열 좀 바꿔줘~!!)...
뭔가 굉장히 재미없고 두서없는 글이 되버릴지도 몰라요.ㅠ_ㅠ
첫댓글 흐음... 꽤나 독특한 분위기의 글이군요.
이럴수가~! 디세님 오랜만이예요~~ㅜ0ㅜ 옛날 디세님의 "평행선"을 보고 님의 글에 무지 반해 버렸는데 이렇게 새로운 글을 들고 오시다니~!!! 이번글도 너무 기대가 되고 재미가 있어요~!! 그리고 길~~~어서 너무 좋아요~!!!!!>_< 어서어서 다음편을!!!+_+
단순 무식 암기가 실생활에 응용되기 시작하다니....세상에 말세로군요....그런데 생존신고용이라고 하기엔 글빨이 너무 좋은데요????
이게 생존신고용이면.................훗.....................전 뭐가 됩니까아아아아;ㅁ;//꺄아아아아악!!! 이번 편도 기대하겠습니다아~!!!
으음.......
흠...생존해 계시단걸 잊을리 잊나요...그치만,가끔 이렇게 글 올려주시는거 잊으시면 않되요?이거,생존 싱고용이라기엔 많이 잘된 글인걸요..?
와앗!!! 디세님이다아! 정말 오랜만이에요>ㅁ</ 에, 벌써 세 손가락 입니다아- 수능, 무척 수고하셨구요^^ 이제 집필에만 전력을!
오랫마아아안;ㅁ; 보자마자 디세님이다!좋아한걸요//∇//
음......생존신고용...이였습니까.....;;;
재밌게 봤어요~~>_</ [멋져~!!]
;ㅁ;.......와아, 이르나크에 저를 다시 불붙게 만드시는 소설입니다♥
디세니임... ;ㅂ; 디세님 덕분에 삽니다. 저를 잊으셨겠지만...[흙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