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평호 칼럼] 부자의,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정치
김평호 저술가 · 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미국 민주주의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2021년의 트럼프 쿠데타 시도 이후 지금까지 시행된 많은 정치현안 관련 여론조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미국민들의 답변이다. 눈여겨 볼 것은 지지 정당에 따라 이유가 다르다는 점이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선거를 더 이상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거짓이 진실로 통용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트럼프 쿠데타에 대해서도 공화당 지지자들은 선거부정 비판 시위가 격해진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선거부정이라는 거짓을 믿는 사람들이 ‘집단 정신병(group mental illness)’에 걸린 게 아닐까 개탄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상식 중 하나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인데 여론조사는 그 토대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초 중 기초인 선거가 불신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경악스러운 일이다. 나아가 ‘선거부정’이라는 거짓 주장이 진실로 통용되는 만화경 역시 납득불가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 허위와 진실이 동일한 비중으로 공존한다는 것은 분단국가라는 증거이기도 하고 망가져가는 민주주의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진 것은 그 때문만이 아니다. 더 깊고 오랜 원인이 있으니 곧 금권 과두정의 문제다. 미국의 정치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실은 ‘부자의,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정치’로 추락한 것이다. 이 문제는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됐고 2007-8년 금융공황 사태를 거치면서 대중의 오큐파이 운동으로 폭발했다.
오큐파이 운동의 메시지 “자본이 좌우하는 정치는 민주주의 아니다”
세계 각국이 금융공황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었을 2009년 가을부터 길게는 2012년 4월까지, 미국은 물론 전 세계 80여개 국가로 ‘오큐파이 운동’의 물결이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여의도를 점령하라’, ‘오큐파이 서울’ 등의 시위와 농성이 2011년 10월부터 11월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99%다’라는 대표구호가 말해주듯, 점령운동은 1%를 위한 대책에 몰두하고 있는 정부에 맞서, ‘1. 금융공황을 불러온 자들을 법정에 세워야 한다, 2.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3. 기업-자본이 좌우하는 정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를 선포하는 인민의 저항이었다. 미국의 오큐파이 시위대가 월가를 점령한 것은 그곳이 이 세 가지 문제를 집약적으로 상징하는 장소인 때문이었다.
오큐파이의 메시지를 한 줄로 요약하면 ‘자본에 포획된 정부는 경제정의도 사회정의도 실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뉴딜 시절, 루스벨트 대통령은 “돈이 좌우하는 정부는 폭력배가 좌우하는 정부만큼이나 위험하다”고 일갈한 바 있다. 금권 과두정의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지적이다.
‘상원의 우두머리들 (Bosses of the Senate).’ 19세기 말-20세기 초 금권정치 시대(Gilded age)를 그린 풍자만평(1899년 1월, 시사만화 잡지 Puck. 작가는 J. 케플러). 그림 중간 위쪽 현판에는 ‘This is the Senate of the monopolists, by the monopolists, for the monopolists: 독점 기업의, 독점 기업에 의한, 독점 기업을 위한 상원’이라고 쓰여 있다. 아래쪽 조무래기 정치인들을 거느리며 우뚝 서 있는 돈주머니 모양의 배불뚝이 인물들은 오른쪽부터 강철, 구리, 석유, 철, 설탕, 주석, 석탄, 제지 등, 당시 해당 업종의 독과점 대기업들을 상징한다. 왼쪽 상단 벽의 작은 문에는 ‘People’s entrance: Closed: 보통사람 출입금지‘라고 새겨진 채 빗장과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그런데 오늘의 미국 정치가 바로 금권 과두정이다. 의회의 법, 정부의 정책이 자본권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뜻이다. 사실 보통사람보다 자본과 정치의 권력집단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불평등의 역사는 동서고금의 사실이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해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금권정치를 제1기, 최근의 금권정치를 제2기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곳에서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지지 않으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부자방어산업‘이 돌보는 ’백만장자 클럽‘
미국 정치가 ‘부자의,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정치’라면, 실제로는 어떻게 작동할까?
인물의 안면에 ‘god save the super rich’라고 쓰여 있다.
첫째, 정치인들이 부자다. 2022년 기준 이들의 연봉(17만 4000달러)은 상위 6%에 속하는 수준이며 재산 규모 역시 미국 평균의 열두 배가 넘는 150만 달러에 이른다. 위계상 개별 의원들에게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도부는 공화, 민주 양 당 공히 대체로 부유층 중의 부유층에 속한다. 한편 정치인들의 가장 큰 일은 돈을 끌어 모으는 것이다. 업무 시간의 1/3을 후원전화 돌리는데 쓰지 않으면 낙선한다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다. 자본가와 로비스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정치구조인 때문이다. 한편, 그 구조는 정치인들에게 ‘백만장자 클럽’이라고도 불리는 워싱턴 정가의 사치스런 삶을 제공해준다. 당이나 로비스트들이 주관하는 회의나 연수, 세미나 같은 공식모임은 사실상 정치인들의 호사스런 여행과 유흥과 식도락의 경로가 된 지 오래다. 또 정치 후원금은 의원들의 개인경비로 어렵지 않게 전용 가능하다. 정치인의 삶과 다수 인민의 삶은 천양지차다.
둘째, 부자가 결정한다. 1981년부터 2002년까지, 1800건에 이르는 경제, 사회, 외교 및 군사 분야 정책을 연구한 결과, 정부가 채택한 정책은 거의 예외 없이 소득 상위 10%가 원하는 것이었다. 부자가 정부와 의회의 정책을 결정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하위 소득계층이 원하는 것도 일부 포함됐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사실상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 점에서는 공화당 정부와 민주당 정부 간에 차이가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기업과 유관단체의 정치활동(예: 선거 후원금과 로비), 주류 매체와 각종 정책 연구소의 여론 영향력 등이 정치인 각자의 입법 활동을 사실상 좌우하기 때문이다. 또 초대형 부자들—최상위 1%의 부유층—은 개인이면서도, 각자의 사회적 네트워크와 막대한 규모의 정치 후원금을 통해 정치인들에게 기업과 단체 이상의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즉 기업과 부자들이 제공하는 ‘정치를 키우는 모유’로서의 돈이 정치인들에게 직·간접적인 행동지침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셋째, 부자를 보호한다. ‘부자방어산업(wealth defense industry)’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다. 금융공황 사태 이후, 오바마 정부는 해외 조세도피처에 대한 조사 및 과세조처를 개혁과제로 내세웠다. 2010년 3월, 해외 탈세자금의 탐지·추적을 위해 800명의 국세청 요원 추가 및 예산지원 법안이 발효됐다. 그 즉시 싱크탱크, 로비스트, 변호사 등, 부자방어산업 요원들(?)이 동원됐다. 법은 실상 허점이 많아 도피처 계좌의 소유주를 대조·확인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해 중간선거에서 다수당이 된 공화당은 국세청의 해당 예산을 삭감했다. 조사 인원도 조사 건수도 대폭 줄었다. 삭감 이유는 ‘영업 비밀 공개로 인한 미국 기업의 국제 경쟁력 약화’라는 것이었다. 자유방임주의 싱크탱크인 카토연구소는 조세 회피처를 ‘자유의 초소’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돈을 옮기는 이유가 더 나은 세제 때문이라며 미국 과세제도의 개편, 즉 더욱 큰 부자감세를 촉구’했다. 부자보호산업은 이렇게 승리한다.
신자유주의 풍조 속 이정표 잃어버린 미국 정치
금권 과두정 문제의 핵심은 정치, 경제, 사회의 불평등이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미국이 ‘불평등한 나라’라는 것은 대형 스캔들이다. 독립선언서에 명시된 만인의 평등에 기초한 민주주의 정치제제는 미국 건국의 이상이자 사회의 기둥이다. 그런데 국가의 토대가 불평등으로 기울어지면서 무너진다는 것은 미국이 다른 나라로 달라지고 있다는, 문자 그대로 대형 스캔들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사회운동의 지속적 동력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 오큐파이 운동은 1년 반여 지나면서 사위었고 경제정의를 기본 메시지로 한 B. 샌더스의 대선운동도 좌절되었다.
이유는 무엇일까? 한 정치학자는 이를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상식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신자유주의의 핵심논리는 탈규제와 자유, 경쟁과 시장의 선택, 개인의 능력과 책임, 국가/정부의 최소화 등이다. 더 짧게 요약하면 ‘시장의 자유경쟁 과정에서 능력의 차이로 발생하는 성공과 실패, 나아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요약하면 사람들이 불평등 사회를 당연한 것으로 내면화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미국 정치는 어땠을까? 70년대까지 미국 사회의 이념적 토대는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 안전망의 구축과 공동체의 가치를 우선하는 뉴딜의 정신이었다. 그 시절에는 석유, 철강, 자동차 재벌의 해체를 주창하는 의원, 선거 후원금을 거부하면서 대형 은행과 금융산업의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의원, 국방비를 삭감하고 그 재원으로 기본소득제를 추진하고자 했던 의원, CIA나 FBI의 직권남용과 비리를 파헤치는 의원들이 있었다. 한편 워싱턴으로 몰려드는 젊은 정치 지망생들의 태도와 사고방식도 남달랐다. 그들은 국가를 바꾸고 나아가 세계를 구하겠다는 정치적 열망과 이상의 실현을 위해 권력을 추구했다.
그러나 60-70년대 미국 사회의 변혁운동이 실패하면서 뉴딜의 이념도 함께 무너진다. 대신 신자유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는다. 이때부터 ‘합법적 뇌물거래업’이라 불리는 로비산업이 빠르고 크게 성장한다. 각종 기업과 자본가들, 그리고 이익단체를 대변하는 로비회사와 로비스트, 로비예산도 가파르게 증가한다. 거대한 규모의 돈이 워싱턴에 돌기 시작하고 부유층 파티 스타일의 정치행위가 번성한다. 급진파(?) 정치인들은 점차 소수로 밀려나면서 사라진다. 젊은 정치 지망생들도 이젠 부자가 되기 위해 DC로 뛰어 든다. 과두 금권정치의 틀이 갖춰지기 시작한 것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1기 금권정치 시대, T. 루스벨트 대통령은 과감한 개혁조처를 통해, ‘강도귀족(robber baron)’이라 불리던 자본가들의 독점적 경제구조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작금의 2기 금권정치 시대, 대안의 이념을 모색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극복하려는 정치인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루스벨트의 개혁조처는 노동조합과 사회 운동가, 개혁적 정치인들이 앞장섰던 불평등 타파 투쟁의 산물이다. 오늘날 그 같은 투쟁의 전선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돈의 힘이 좌우하는 정치의 대안을 모색치 않거나 못하고 있는 정치가 가장 큰 이유이다. 이정표가 없는 정치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사기극인가? 사기극은 아닐 것이다. 다만 더 완강한 금권 과두정으로 변모하는 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을 자유와 민주의 모범국가로 생각하는 것, 그것은 거대한 거짓만큼이나 유해한 거대한 착각이다.
‘금권 과두정’으로 추락한 미국 민주주의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