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는 많은 관리가 있었지만 그 중에 청백리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많이 없다.
청백리 이어서 백성들의 고충을 잘 아는 분들이 선정비는 세우지 않았을것이라 생각을 하였지만 그래도 남아 있었다.
전국에 남아 있는 청백리에 이름을 올린 관리의 선정비를 찾아 보았다.
손중돈: 경주/참찬 이증영:전의/공정
주세붕: 상주/찬성 신잠 고령/목사
노진: 풍천/판서 이기 한산/이판
민여임: 여흥/참판 이안눌: 덕수/이판
김덕함: 상주/대사헌 이시백 연안/영의정
이지온: 공주/좌윤 이단석 전주/참판
서기순 대구/판서 한익상: 청주/관찰사
정대년 ;동래/대사헌
추가 조사 하니
백인걸 허세린 심의신 이병태 심희수가 추가 되었다.
지금 까지 조사 된 선정비에서 쳥백리는 19좌의 비가 남아 있었다.
위의 이름 순서대로 청백리의 선정비를 소개한다.
위의 사진은 손중돈 선정비 인데 추정하기로는 승려의 탑비의 이용한 것으로 보이고 지금 남아 있는 청백 선정비 중에서
제일 오래 되었다.
군위 향교에도 비석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을 만든 주세붕 선정비
상주에도 비가 있지만 신잠이 활동하던 시기는 아니었다.
이기 비 두번이나 가서 확인하였다.
민여임 비 인데 울산에도 있다.
이안눌 비 인데 부산 금강공원에는 1좌 강화도에는 2좌의 비가 있다.
김덕함 춘천부사를 지내고 여주부사도 지냈다.
이시백 이고 수원에도 비가 있다.
이지온 비이다.
이단석 비인데 하나가 아니고 2좌가 같이 있다.
이단석은 경기도 양주에도 비석이 있다.
서기순 비는 많이 남았다.
경기도 양주에 있는 백인걸 선정비 이다.
심의신 비로 관찰사로 많이 활동 하였다.
영조의 노여움으로 인해 군수로 좌천되어 왔다 이병태 선정비
청도에 있는 허세린 비 인데 찾기 어렵고 염근리 선정되었지만 비가 관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심희수의 금산군수 재임은 금산 금석문과 신도비명,,,그리고 조선 왕조 실록에는
정확하게 기록이 되지 않아 언제 인지는 알수 없다.
양주 목사를 지낸 정대년의 선정비가 남아 있다.
여주에는 그의 묘와 신도비가 있는데 2번3번 방문 끝에 보고 왔다 신도비만
인명을 연구하는 데 있어 비와 묘는 필수 이면서 우리가 역사를 공부 한다는 것은
사람을 연구하고 공부하는것이다.
모든것이 사람과 관련 된 것이라 어느것 하나 소홀함이 없어야 될것으로 생각된다.
모든것이 소중하므로 잘 보존하기를 기원한다.
특히 청백리 선정비는 희귀하지만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옥산 이희득
첫댓글 ○ 예전에 태조조에는 청백리에 찬성(贊成) 안성(安省) 등 3명을 뽑았고, 태종조에는 도절제사(都節制使) 경의(慶儀) 등 8명을 뽑았고, 세종조에는 부제학 최만리(崔萬理) 등 12명을 뽑았고, 세조조에는 대사헌 노숙동(盧叔仝) 등 6명을 뽑았고, 성종조에는 판서 임정(林整) 등 16명을 뽑았고, 중종조에는 판서 최명창(崔命昌) 등 15명을 뽑았고, 명종조에는 참판 윤부(尹釜) 등 4명을 뽑았고, 선조조에는 영의정 이준경(李浚慶) 등 12명을 뽑았고, 인조조에는 참판 민여임(閔汝任) 등 9명을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