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만나지 말았어야 할 인연이 있어요. 사람들은 그걸 보고 악연이라고 하죠." 김용철 변호사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일가의 불법 비리 의혹 사이의 신경전을 보면서 떠올리는 이야기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미 용기있는 이와 배신자라는 극단 사이에 서 있다. 삼성그룹이나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로서는 많은 연봉을 제공했음에도 그룹을 곤란하게 했다는 측면에서 배신자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김용철 변호사는 나는 원래 법무실장 업무를 하지 않으려 했는데 억지로 맡겨 내 몸과 건강까지 망쳐왔다. 그만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감시해왔고 내 명의 통장마저 도맡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 현실. 이 엇갈린 현실은 그야말로 악연이다. 일단 명분은 김용철 변호사에게 있다. 삼성그룹의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의 핵심에서 근무하면서 나 자신도 구속될 각오가 서 있다는 선언과 함께 시작한 폭로이기 때문이다. 그가 폭로하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일가 불법비리 의혹은 대통령 선거 때문에 한동안 가려지는 것도 같았지만,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하 사제단)이 5일에 추가폭로한 뇌물 수수 검사 명단으로 인해 다시 사회의 중심에 서게 됐다.
지난 폭로에서는 임채진 현 검찰총장, 이종백 현 국가청렴위원장, 이귀남 현 대검 중앙수사부장이 뇌물 수수 검사로 지목됐으며, 이번에는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내정자와 황영기 전 대통령직인수위 투자유치T/F 자문위원이 뇌물 수수 공직자로 지목됐다. 황영기 전 자문의원은 처음으로 지목된 법조계 외의 인물이다. 현재는 공직자도 아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선대위에서부터 깊게 현 정권에 가담하기 시작해 한때는 유력한 금융위원장 후보로 거론됐음을 기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김용철 변호사가 지속적으로 제시하는 폭로 내용에서 황영기라는 이름이 갖는 폭발력은 뇌물 수수 검사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그는 우리은행장으로서 삼성 비자금 차명계좌 개설과 관리를 주도했다고 하며, 지승림씨와 함께 이명박 대통령의 선대위에 가담한 삼성 출신 인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김용철 변호사는 그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삼성은 사람을 통해 돈을 전달하기도 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한 적도 있다. 사실일 경우 정권까지 위협할 수 있는 만만치 않은 내용이다. 뇌물 수수 공직자 2차 폭로가 이어지면서, 삼성그룹 불법비리 의혹은 이명박 정권 자체를 겨냥할 수 있는 내용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 뇌물검사 의혹과 김용철 그 기이한 악연
김용철 변호사와 사제단의 뇌물 수수 공직자 명단 2차 공개를 지켜보면서, 나는 김성호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번뜩이는 기억을 잡아낼 수 있었다. 월간 <신동아> 2007년 12월호 기사 김용철 변호사 2005년 오프 더 레코드 인터뷰의 일부분이다. "검사를 그만둔 계기를 묻자, 사과상자 얘기를 꺼냈다. 1995년 서울지검 특수2부 소속이던 그는 특수3부에 파견돼 전직 대통령 비자금 수사에 참여했다. 쌍용 김석원 회장 집에서 사과상자를 찾아내는 개가를 올렸다. 사과상자엔 김 회장이 관리하던 비자금이 들어 있었다. 수사를 확대하려 했으나 상부에서 막았다고 한다. 그 이유로 부천지청으로 좌천성 발령을 받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수사를 하라 했다가 하지 마라 했다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때 내가 몇 가지 못한 게 있다. 사과상자에서 김석원이 관리하던 비자금을 찾은 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계속 수사하겠다고 했다가 검찰고위관계자한테 질책을 들었다. 하명상복(下命上服)하냐고 했다. 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라는 얘기도 들었다. 너는 약점이 없느냐면서. 그 일로 말 안 듣는 놈으로 찍혔다. 나는 수사하느라 건강도 잃고 가정도 잃었는데…. 전두환 비자금 수사 때 외압이 있었다는 그의 주장은 최근 논란을 빚고 있다. 당시 서울지검 특수3부장으로 수사팀을 이끈 사람이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이다. 김 전 장관은 김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의문을 나타냈다. 무슨 압력을 받았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의 수사능력은 인정한다. 사과상자를 찾아냈을 때도 격려해줬다. 그런데 비자금 수사는 김용철 혼자 한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한 것이다. 수사과정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김 변호사가 따로 뭘 수사하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의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이 뇌물 검사로 지목된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내정자다. 물론 이 증언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오프 더 레코드에서 김용철 변호사는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을 이미 뇌물 검사로 지목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지켜보고 고민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는 것이다. 일단, 우리가 여기서 판단해봐야 할 것은 김용철 변호사가 당시에 몇 가지 못한 게 더 있다고 한 부분. 김용철 변호사는 이 몇 가지를 더 하려다가 좌천성 발령을 받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확실히 서울지검 특수3부에서 부천지청으로 발령된 것은 좌천성으로 느껴질 여지는 충분하다. 그리고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고 당시 특수3부장으로서 확실히 그의 상관이었던 사람은 김성호 내정자다. 물론 김성호 내정자는 그 당시의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랬고, 뇌물 검사로 지목된 오늘도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을 더 찾는다면, 당시 서울지검 3차장으로서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장을 맡아 사건을 총지휘한 사람은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사실. 그리고 김용철 변호사가 사과상자를 찾아내면서 수사를 확대하려 했다가 좌천당했다고 주장한 그 노태우 비자금 사건에는 현재 정계와 법조계를 주름잡는 이들이 두루 연계돼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도 노태우 비자금 사건의 수사대상에 올랐던 적이 있었다. 현대건설 사장 시절에 석유개발공사 사장을 통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비자금을 보태 건네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이명박 신한국당 의원은 입건되지 않았고 정주영·이건희 등 재벌 오너들을 겨냥해 수사를 진행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고 한다. 사과상자를 찾아낸 곳도 쌍용그룹 김석원 전 회장의 자택이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물론 과거의 기억도 거슬러 올라가보면 악연의 고리는 더 크게 발견된다. 2005년을 달궜던 엑스파일 사건 당시 실명이 언급됐던 바 있던 김상희 전 법무차관은 특수수사통으로 유명했던 서울지검 형사3부장으로서, 전·노 양 전직 대통령의 구속을 직접 처리한 바 있었다. 이 악연의 고리에는 당연히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도 포함돼 있다. 이건희 회장이 검찰에 소환된 경우는 단 한번 뿐이다. 바로 이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의혹 등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단 한번도 소환된 적이 없다. 물론 여기에는 이학수 부회장이 검찰 소환 조사에 대비해 예행연습까지 해가며 철저히 준비해 그의 소환을 차단했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어쨌든 신기하지 않은가. 뇌물 수수 의혹 검사와 엑스파일 실명 거론 검사 중 무려 셋이 그리고 현직 대통령이 된 당시의 대기업 CEO 출신 국회의원이 연계된 사건을 이후로 이건희 회장이 검찰에 소환되는 일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당시 사과상자를 찾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는 검사는 이건희 회장과 이명박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가면서 뇌물 수수 의혹 검사의 이름을 5명이나 거론했다. 악연이라면 이런 악연이 어디에 또 있을까.
○ 뇌물 수수 의혹 검사는 대한민국 사정 전체를 책임진 사람들
청와대는 김용철 변호사와 사제단의 폭로에 대해 공격적으로 반응했다. "폭로를 할 경우 폭로한 사람이 증거를 제시하고 해명을 요구하는 것이 상식이다. 예를 들어 길가는 사람에게 당신은 미친 사람이라고 하고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하는 어불성설이 어디 있느냐.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상대를 흠집내기 위한 아니면 말고 식의 네거티브 공세가 극성을 부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도 BBK 주가조작 의혹에서처럼 네거티브로 몰아가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다. 김경준씨야 이명박 대통령이 되면 사실상 죽은 목숨이 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김용철 변호사가 이명박 대통령과 무슨 이해관계가 있어서 공연히 대통령과 그 정권까지 건드릴까. 이건희 회장을 건드린 것만으로도 위험한 상황인데 말이다. 과연 청와대의 주장처럼 김용철 변호사도 아니면 말고식의 네거티브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를 시도하는 것일까?
청와대는 증거를 요구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김용철 변호사는 폭로 초반부터 입증할 문서도 있다고 했으며, 그 문서는 분명히 특검에 제출할 것이다. 물론 삼성 특검도 이명박 특검처럼 이건희 회장을 기껏 소환하는 식의 조사를 거쳤는데 3만 2천원짜리 꼬리곰탕을 같이 즐기는 가운데 훈훈한 분위기에서 조사를 할 가능성을 아주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단 지금으로서는 김용철 변호사가 입증할 문서를 특검에 제출하고, 특검은 그 입증할 문서를 세밀하게 조사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청와대도 김용철 변호사 측도 마찬가지다. 혹시라도 삼성 특검에 부당한 외압을 행사할 생각은 행여라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서글픈 것은 뇌물 수수 의혹 검사로 지목된 5인의 현실이다. 현직 검찰총장과 현직 대검 중앙수사부장, 공직자의 부패 방지를 위한다는 국가청렴위원회의 현직 위원장과 현직 청와대 민정수석 그리고 국가정보원 내정자다. 보라. 대한민국의 모든 수사기관, 부패 방지 기관의 수장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이나라 법조인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의 문제일까.
마침 1억 달러 내각이니 땅부자 내각이니 하는 비난을 자초하며 자연을 사랑했을 뿐 투기는 안했다고 주장한 사람을 환경부 장관에 임명하거나 삼청교육대 이론 정립과 복지정책 실패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 부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수준의 인사권 행사를 시도했던 청와대였기에 네거티브 운운해봐야 먹을 것은 욕 밖에 없다. 뇌물 수수 의혹 검사 추가 폭로로써 김용철 변호사와 사제단은 대한민국의 법 질서 자체에 정면으로 맞선 형국이 됐다. 하지만, 과연 이 추가 폭로가 다일까? 김용철 변호사는 <신동아>와 가졌다는 오프 더 레코드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중 삼성 돈 안 받은 사람이 몇이나 있나. 검찰도 받고 언론도 받는다. 백담사에 가 있는 전두환을 지원하기도 했다." "검찰만 있나. 국세청에도 언론사에도 다 있다. 왜 검찰에 대해서만 묻나." 이 주장까지 사실이며, 이것 역시 입증할 문서가 있다면 대한민국은 크나큰 소용돌이에 휘말릴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을 보는 대한민국 국민들 착잡할 것이다. 물론 착잡하지 않을 사람도 최소한 150여 명이 있을지도 모른다.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에 따르면 삼성 내부에 인터넷에서 삼성 관련 기사가 뜨면 150여 명의 정규직들이 동원된 인터넷 여론 공작 팀이 있다는 것이다. 이 150여 명의 존재가 사실이라면 궁금하다. 과연 이들은 이 사태를 무슨 마음으로 혹은 어떤 생각으로 바라보면서 인터넷 여론 공작을 시도하는 것일까.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그 취중진담을 듣고 싶어지는 하루다.
OhmyNews 박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