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호 씨의 웃음
병호 씨는 늘 혼자 다닌다. 혼자 걸으며 혼자 웃고… 간혹 내가 웃는 이유를 물으면 그냥 웃음이 나와서 웃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웃는 게 당신은 익숙하고 이상하지 않은데, 남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이상한 사람이라고 얘기한다고 했다.
무지개마을로 이사하기 전, 부모님과 살 때도 둘레 사람들이 이렇게 혼자 웃는 당신을 보며 이상한 사람이라고 자주 말했다고 했다. 둘레 사람 시선 때문에 부모님이 병호 씨를 요양원에 보냈다고 했다. 요양원에 보낸 부모님이 원망스러울 만도 한데 병호 씨는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내가 간호업무를 하다 보니 직업 특성상 병호 씨가 혼자 중얼거리거나 혼자 웃는 모습을 어떤 증상으로 이해하기도 했었다.
‘지금 환청이 들리나?’, ‘왜 웃지? 어디가 아픈가?’
웃음이 나와서 웃는다고 얘기하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혹 어떤 증상으로 인한 행동이라고 해고 본인이 아무렇지 않다고 하면 문제로 볼 이유가 없다.
이런 모습을 큰 문제인 양, 우리가 일일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병호 씨를 문제 있는 사람,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저 잘 웃는 사람, 웃음이 많은 여느 사람으로 보면 안 될까?
무지개마을에 입주해 있는 이들 대부분 이런 증상을 한 가지 정도는 가지고 계신다. 증상이란 것도 우리가 부르는 말이지, 정작 당사자는 그런 행동이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특별한 증상이라는 걸 안다고 해도 아무런 상관없이 살아가신다. 오히려 둘레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이상행동이라 규정하고, 이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하는 건 아닌가 싶다.
당사자들은 이런 증상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이제는 이런 모습을 자기 생활의 일부로 여기는데,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내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힘들어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이분들을 만날 때 남들과 다르다는 선입관을 갖고 대해온 건 아닌지 병호 씨를 만나며 돌아보았다.
망상이 있어도 환청이 있어도, 당사자가 이를 문제로 여기지 않고 실제로 둘레 사람에게도 문제를 주는 게 아니라면,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때로 이 증상으로 힘들어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옆에서 조용히 들어주며 그때그때 아는 만큼 조언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첫댓글 다음 주 월요일과 화요일, 제주에서 사회사업 글쓰기 공부합니다. 월요일은 제주사회복지사협회에서, 화요일은 제주공생에서 공부합니다.
제주 공생, 작년 12월에 한덕연 선생님께서 주선하셔서 글쓰기 특강하고 워크숍했습니다. 2월에 다녀왔고 이번에 또 내려갑니다. 그 사이 여러 선생님이 과제로 책 읽고 소감 쓰시고, 자기 실천 이야기도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말에 제주 공생 선생님들 보내주신 글 읽었습니다. 조금씩 쓰고 다듬어 가십니다. 고맙습니다.
한덕연 선생님 다녀가신 뒤 제주 공생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김복희 선생님 고맙습니다.
감동해요. 제가 다 떨리고 두근거립니다.
김세진 선생님 응원합니다.
그때그때 아는 만큼 묻고 의논하며 나누는~
무엇을 해주겠다. 해주어야 한다는 마음을 비우고 있는 그대로 사람살이 사람다움을 지켜 드리는 것
어느덧 이 곳 제주공생 무지개마을에서 3개월 차 생활하며 하루하루 감동과 이야기들로 넘쳐 납니다.
가치있는 글이 되도록 당사자와 묻고 의논하고 나누는 모습들 저 역시 동참하며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낍니다.
고맙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베델의 집 사람들'에 나오는 말이 떠오릅니다.
<장애인에 대한 지역사회의 편견이 있다는 사회복지사의 편견이 가장 큰 편견이다.>
우석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 역시 '베델의집 사람들'에 나오는 [장애인에 대한 지역사회의 편견이 있다는 사회복지사의 편견이 가장 큰 편견이다.] 이 부분의 글에 되새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