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쓴글 입니다. 정리하다가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열 무 김 치 추억
전주 음식은 솜씨 좋고 맛이 좋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지역 특성을 살펴
본다. 백제 시대 만든 저수지 벽골제 유적이 있는 김제 평야에서는 좋은 쌀
이 나오고, 춘향전의 고장인 남원은 지리산이 있고, 동쪽은 호남정맥이 지나
는 산악지대로 산채와 버섯 등 임산물이 풍부하다. 여기에서 흘러오는 물을
담는 용담댐과 대아저수지 등 식수원도 좋다. 서쪽은 생선이 모이는 군산항,
여수에서는 호남선 열차로 수산물이 올라온다.
음식재료 공급원이 양호한 것이다.
옛날부터 지방 수령의 우두머리인 전주 관아가 있어, 대접하기도 하고 대접
받기도 하는 세상에 음식은 필수 요소, 수요가 있고 음식재료가 좋으면 음식
문화가 발달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전주 콩나물이 유명한데 전주 물이 좋아서 보다 기르는 방법 차이 아닐까?
어머니는 집에서 콩나물도 직접 기르고 전주 고유 음식인 쌉쌀한 맛 고들빼
기 김치도 담으셨다. 신입사원시절과 초등학교까지 전주에서 살았다.
여름방학이면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다녔는데 콩밭에서 나오는 열무김치
거리를 사기 위해 시장 곳곳을 다니며 비싸도 그걸 사셨다.
장보기 물건과 채소, 무거운 짐 들기는 내 몫이고, 연하며 새파란 잎줄기는
아삭하고 입맛을 돋우는데 여름철 큰 반찬이다.
콩밭에서 자란 열무로 담은 김치는 왜 맛이 좋을까? 우리지방 사투리로 콩
밭 짓거리라 한다. 콩 사이에 열무를 심으면 직사광선을 덜 받고 잘 자란다.
삼밭에 쑥(麻中之蓬)처럼 같은 이치일까?
음식 맛은 추억 속에 살아 있다는데 여름 한 철 보리밥에 비벼 먹기도 하
고 시원한 물김치 국물에 밥 말아 먹든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수입 콩이 들어오면서 콩 농사도 시들해지고 고냉지(高冷地) 배추가 나오면
서 콩밭에 심은 열무를 맛볼 수 없게 되었다.
할머니가 오시면 콩나물 콩을 상위에 그득 뿌리고 손자들하고 상한 것과
싹이 트지 못할 못난이들을 하나씩 하나씩 골라내었다. 그리고 불린 콩과 불
리지 않은 것을 반반, 아래는 불리지 않은 콩을, 위에는 불린 콩을 밑구멍이
없는 시루에 넣고 검은 보자기를 덮어 물 받침대 위에 세워 시원한 곳에
놓는다. 콩나물이 자라면서 필요로 하는 양만큼 물을 주는 것이다.
많이 주었으면 시루를 기울여 물을 쏟아내는데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간다.
그러나 콩나물이 통통하게 살이 찐다.
구멍 뚫린 시루에 물을 쫙 뿌리는 방식하고는노력의 차이가 크고 대량 생산을 못 한다.
어릴 적 방앗간은 쇳덩이 방앗공이로 쿵쿵 찧고 매운 냄새 맡아가며 고춧
가루를 만들었는데, 힘들어도 어머니는 옛 방식을 고집하셨는데 맛에 차이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방앗간도 변했다. 롤러로 갈아 순식간에 고춧가루를 만들어 준다.
오목한 그릇 모양으로 돌을 깎아 나지막하게 만든 돌절구를 우리 지방 사
투리는 학돌이고 절굿공이를 도굿대 라고 한다.
인절미 만들 때, 김치 담글 때, 고추 갈기, 메주콩 찧을 때 등 요긴하게 쓴다.
잘 보존된 성북동 한옥(최순우 옛집 등록문화재 268호)을 구경했는데
현대식 조리 기기에 밀려난 돌절구가 기와지붕 차양에서 내려오는 빗물을 받는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빗물에 마당이 패어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쓰인 용도도 걸작이고
집안 분위기와도 어울린다.
보리밥 한 덩이와 말린 통고추 마늘 생강 젓갈 간장 등 학독에 넣고 도굿
대로 갈아 김치 양념을 만드는데, 어려도 사내 꼭지니 힘 있게 갈아 보라는
데 고추가 왜 그리도 갈아지지 않는지, 믹서에다 갈면 순식간인데,
김치 양념 만드는 동안 소금에 절인 열무를 씻어 학 독에서 버무려 그릇에
담고 냉장고가 없던 시절 우물 속에 넣어두고 그때그때 꺼내 먹는데
시원하고 아삭한 맛, 지금은 맛볼 수가 없다.
망설였던 고들빼기 담기에 도전했다. 동네 시장에 샀는데 값이 비싸다.
조그만 것 두 단에 오천 원, 쪽파 한 줌이 이천 원, 뿌리와 잎 사이 찌든 때
를 칼로 베껴 내고 시든 잎은 떼어내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씻어 소금물에
담가 놓기까지 손이 많이 간다.
옛날 같으면 이틀은 우려 내야 하는데 재배한 것이라 몇 시간만 우려 담아도 된다.
열무김치 담기와 다를 바가 없다. 물이 빠진 고들빼기를 양념에 버무리고
하루저녁 지난 뒤 냉장고에 넣었다.
천국 가는 큰일(?)을 하고 교회에서 오는 집사람 저녁상에 곁들여서 먹는데
쌉쌀한 맛이 조금 강하지만 맛있어한다, 쓴 것이 위장에 좋고 몸에도 약이 된다.
녹황색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하는데,
더위로 힘든 계절 열무와 고들빼기로 입맛을 잡아야겠다.
처서와 백로가 지났는데 태풍이 연달아 올라와 큰비가 오니 채소 값이 급등한다.
벼농사와 고추농사도 피해가 크다.
작년 고추가 금값 이었는데 금년에도 비싸질 모양이다.
2012. 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