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상철 / 전남대학교 석좌교수
예부터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오래 산다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잘 산다는 것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오래 잘 살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그래서 인간의 오복(五福)을 논할 때 첫째가 수(壽)이다. 그러나 다음에 부, 귀, 건강, 그리고 자손이 많거나 편안히 죽을 수 있음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장수인들을 조사하면서 또다른 소중한 가치를 배웠다.
바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것의 중요성이다. 이러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각자가 스스로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백세인 특히 백세독거인 들을 만나면서 알 수 있었다. 처음 조사를 나갈 때만 해도 백세인중 독거노인이 있다는 소식에 매우 의아하였지만 백세인 중 독거인의 비율이 거의 열명 중 한 분이었다. 생존과 직결된 문제인데, 과연 백세인에게 그러한 홀로 생활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있었다.
그러나 직접 백세 독거인 들을 보면서 모든 의문이 풀렸다. 우선 우리나라 시골 마을들은 아직도 대부분 집성촌이기에 친자식들이 떠나고 없더라도 이웃사촌이 있다는 점과 아직도 시골에는 두레라는 상부상조 정신이 남아있다는 점이 이러한 초고령 독거생활을 가능하게 해준 사회적 요인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홀로 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체는 백세인 스스로가 모두 사교적이고 원만한 성격이며 구변이 좋고 정이 많아서 항상 주변에 사람들이 있다는 개인적 이유가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
강원도 양주읍 고대리에서 만난 백세인 할머니의 경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할머니는 허름한 판자집에 스스로 빨래하고 청소하고 이웃나들이 하며 혼자 사는 분이었다. 자식들이 있지만 모두 도회지에서 따로 살고 있었다. 할머님과 인터뷰를 위하여 들어간 방 윗목에 컵라면, 커피와 과자봉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어, 할머니에게 그런 간식류를 좋아하는가 물었다.
“아냐. 나는 안 먹어. 이웃아이들 오면 컵라면 끓여 주고 동네 사람 오면 커피 끓여줘.”
동네 꼬마들이 오면 주기 위해 컵라면, 과자들을 준비해두고 있었고 동네사람 오면 주려고 간식을 따로 마련해두고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사는 집은 혼자 사는 집이 아니라, 동네 아낙들, 꼬마들이 항상 놀러 오는 곳이었다. 비록 가난하고 누추한 집이었지만 할머니의 이러한 배려는 할머니 집을 자연스럽게 동네 사랑방으로 만들었고 항상 사람들이 가까이 있었다.
담양군 용면 분통리 마을은 우선 마을의 특수한 구조에서부터 눈길을 끌었다. 강씨 집성촌인 마을 한가운데로 개울이 흐르고 있고, 개울을 향하여 모든 집들의 대문이 열려 있어서, 마을을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이 훤히 보이고, 앞집 살림살이가 모두 들여다보이는 정말로 개방적 자연 부락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백세인 신계순 할머니는 매우 인상이 깊었다. 조사 갔을 때, 온 동네 아낙들이 모두 할머니 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다 허물어가는 판자 집인데도 불구하고, 마루에 대여섯 명 그리고 마당에 놓인 평상에 서너 명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사단이 온다니까 동네 아낙들이 궁금해서 찾아 온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마을 아낙들이 할머니 댁에 모여서 놀고 지낸다는 사실을 나중 알게 되었다. 양옥으로 지은 번듯한 마을 노인회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신 할머니 주위에 사람들이 주로 모인다기에 그 이유를 물었다. 신 할머니가 봄부터 다리를 다쳐서 거동이 불편하다 보니까 마을 아줌마 부대가 신 할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모이기 시작하여 이제는 숫제 그 집에 모여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이 할머니가 도대체 어떤 분일까 궁금하기만 하였다. 가족관계 조사는 할머니의 불쌍한 모습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할머니는 삯바느질로 돈 몇 푼 벌면 남편과 자식들이 도박과 술로 날려 버렸고, 이제는 타지에 사는 딸을 가끔 만나는 이외에는 혼자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할머니는 평생을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뛰어가 몸으로 품앗이하고, 누가 당신에게 조그만 선물이라도 주면 반드시 일로써 되갚아 왔었다. 보건지소 간호사가 말하기를 할머니에게 건강을 생각해서 비타민 영양제를 가져다 주었더니 그 다음날 보건지소 앞 뜰의 잡초를 새벽에 가서 아무도 모르게 다 뽑아 놓았다고 하였다. 남들이 자신에게 베풀어 주는 모든 일에 헌신적으로 감사의 답례를 하였다. 그러다 보니 이 신 할머니는 어느덧 동네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이 되어버렸고, 가장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모든 어려움을 꿋꿋이 이겨내며 강인한 생존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반드시 이웃에게 몸을 바쳐 답례해온 신 할머니를 이웃 아낙네들이 모두 좋아하고 아끼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성공적 노화의 상징적 인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담양군 무정면 강업비 할머니(105세)는 매우 특이한 분이었다. 아들이 6.25때 전사하여 군경유가족 보상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강한 국가관과 반공의식이 너무도 인상 깊었다. 2년만에 다시 만났는데도 생리신체현상에 큰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혼자 살면서도 흰 모시옷을 빳빳하게 풀을 먹여서 단정하게 입고 있었다.
"누가 옷에 풀을 먹여 주었습니까?“고 묻자, ”내가 했지.“
할머님은 당당하기만 하였다. 이웃들 이야기로는 요즈음도 약주가 과하다 하고 하루에 4홉들이 소주 한병은 거뜬히 비운다는 통에 더욱 놀랍기만 하였다. 가지고 간 술을 한잔 따라 올리고 노래를 청하자 ”청춘가“ 와 ”진도아리랑“ 두 곡을 연달아 메들리로 불러 조사단들도 두 손 모아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웃들은 할머니가 쌀이며 돈이 생기면 동네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하였다. 선물로 가지고 간 과자봉지도 바로 뜯어서 우리들에게 한 개씩 강권하였다. 사양하려고 하자, ”그냥 가면 서운해서 안 돼“하면서 손을 잡으며 전해 주었다. 노래를 부르는 여유와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강한 의지는 이분들을 젊게 살게 해주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초고령자이면서도 여느 젊은 노인 못지 않게 여유를 가진 강할머님과의 대화는 매우 유쾌하였다. 조사단이 떠나려 하자 우리들 손을 잡으며 “편안하게 가시오, 편안하게 가시오”하며 헤어짐의 아쉬움을 짙게 표현하였다.
백세가 되었어도 혼자 사는 독거노인들이 큰 불편없이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것은, 평소에도 동네 사람들에게 언제나 사소한 것부터 베풀고 몸바쳐 헌신하며 살아온 것이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인정받고 서로 기꺼이 도우며 살게 해준 필요조건임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이냐 기다리지 않고 내가 그들을 위하여 해주면 결국 그들도 나에게 돌려준다는 너무도 간단한 삶의 진리가 백세인의 세상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오래 잘 살기 위한 충분조건으로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받으려 하기에 앞서 먼저 베풀고 나누어 주어야만 한다는 만고의 진리 Give and Take가 바로 제기됨을 되새기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