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라스 카사스 (2004-02-21 01:39:00, Hit : 495, Vote : 34)
현대중공업 노동자 여러분들께,
제 소개를 하면 서른 아홉 해를 살아온 이름없는 사내입니다.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결코 적다고 할 수도 없는 인생을 살아온 셈입니다.
저는 여러분들께 제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한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리고자 합니다.
가난 때문에 국민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12살부터 동대문시장에서 어린 동생과 함께 온갖 잡동사니를 파는 행상을 하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17살 나이에 평화시장의 시다로 취직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14시간 이상을 일하며 당시 다방의 차 한잔값에 불과한 일당 50원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런 소년의 꿈은 하루빨리 기술을 배워서 재단사가 되어 온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소년은 청년이 되어 마침내 꿈에 그리던 재단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그만 더 고생하면 몇년 후에는 사장이 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청년이 되면서 소년의 꿈은 변했습니다.
자신보다 어린 연악한 소녀들이 창문조차 없는 어두운 다락방에서 온갖 먼지를 마셔가며 하루 14시간 이상을 시다로 일해서 왕복교통비를 제외하면 별로 남는 것이 없는 월급 3천원을 받는 평화시장의 현실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어린 소녀들은 그나마 있는 짧은 점심시간도 굶기가 일쑤였고 화장실에 한번 가려고 해도 짬이 없는데다 간다해도 500명당 한개 뿐인 화장실을 빠른 시간내에 갔다오는 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게다가 체력에 비해 견디기 힘든 일을 하면서도 심한 욕은 물론이고 어떤 때는 매까지도 맞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14-5시간을 일하고도 야간작업이라도 있는 날이면 잠 안 오는 약까지 먹으면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시다에서 미싱보조로, 다시 미싱사가 된 청년은 가엾은 시다들을 위해 자신의 차비를 털어 빵을 사주고 자신은 밤을 세워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청년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암울한 현실은 청년이 재단사가 된 후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열악한 작업환경 때문에 폐병에 걸린 미싱사를 무자비하게 해고하는 사업주에게 항의를 하던 청년은 결국 자신마저도 해고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해고당한 청년은 얼마후 근로기준법이란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국민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청년에게 한자투성이의 근로기준법을 읽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청년은 근로기준법 속에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근로기준법 속에서 더 나은 세상을 발견한 청년은 그 내용이 현실속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심지어는 당시의 대통령에게까지 편지를 썼습니다. 하지만 법과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온갖 좌절을 다 겪은 청년은 말뿐인 근로기준법을 화형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1970년 11월 13일 22살의 청년 전태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외치며 근로기준법과 함께 자신의 몸을 불살랐습니다.
암울했던 전두환군사독재시절, 불법도서였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밤새워 읽으며 20대의 대학생은 전태일열사의 숭고한 삶에 비교되는 자신의 비겁한 삶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새벽녘이 되도록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런 대학생에게 87년, 88년, 89년, 90년 저 멀리 울산의 현대중공업이란 곳에서 민주노조를 만들고 지키기 위한 싸움이 벌어졌다는 소식은 너무나도 가슴벅찬 감격이었습니다. 그것은 진정 전태일열사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골리앗 위에서 목숨을 건 투쟁을 전개하던 현대중공업노동자에게 그 대학생은 전태일열사가 그렇게 원하던 대학생친구가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구속을 무릅쓰고 거리에서 '현대중공업노조탄압저지투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진정으로 노동자의 벗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다니던 학교를 스스로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5년이란 세월을 도망다녀야 했습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 동지들,
이제 저는 여러분들을 동지라고 부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의 자랑스러운 현대중공업노조는 여러분들만의 것이 아니라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함께 밴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여러분들은 모두가 함께 흘렸던 땀과 눈물의 결실을 누리고 계십니다. 하지만 저는 몸과 마음이 모두 상한 채 이 나이가 되도록 돈 한푼도, 처자식도 없는 몸으로 중년의 나이를 맞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제 처지가 비참하다고 해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투정을 부리려고 이 글을 쓴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정도의 현실은 여러분의 벗이 되고자 결심했을 때 이미 각오한 것이기에 누구를 탓할 것도, 원망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다시 한번 저의 벗인 골리앗전사들을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것처럼 지난 2월 14일 여러분이 다니는 현대중공업의 하청업체인 인터기업 소속의 하청노동자인 박일수동지가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며 분신자살을 했습니다.
물론 박일수열사 죽음의 주범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들어낸 노무현정권과 현대중공업, 그리고 하청업체인 인터기업입니다.
하지만 동지 여러분,
여러분의 잘못도 없었다고만 할 수 있을까요?
박일수열사는 유서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남겠습니다.
하청노동자는 콘테이너 박스에서 옷을 갈아입고 한여름 점심시간 쉴 곳이 없어 그늘 찾아 헤맨다. 한 겨울 점심시간 쉴 곳이 없어 바람피할 곳을 찾아 헤맨다. 직영노동자는 시설 잘되어 있는 건물 내부에 휴식을 취한다. 이렇듯 직영노동자에 비해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는 차별을 받는다. 직영노동조합 단체협약을 보면 백가지도 넘는 복지혜택, 문화의료혜택, 자녀교육혜택, 주거혜택,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는 정해진 시급, 일급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청비정규직 노동자 90%가 불법파견근로로 현장에 투입되다 보면 직영노동자에게 작업지시를 받는다. 작업하기 더럽고 어렵고 힘든 곳은 하청노동자에게 투입시킨다. 이토록 비인간적이고 불합리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현대 좃지나 공장 현실이다.
여러분의 선배인 전태일열사는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어린 시다들에게 빵을 사먹이고 자신은 밤을 새워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노동자계급의 도덕성입니다.
따라서 동지들은 박일수열사의 유서에서 언급된 차별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사실만으로도 머리숙여 사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차이입니다.
동지 여러분,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매도당하고 있다고 분노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위에서 제가 말한 노동자계급의 도덕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여러분은 사죄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이름인 종업원일 뿐입니다.
동지 여러분,
여러분과 우리 모두의 조직인 현대중공업노조의 지도부를 설득하여 우선 사죄를 하십시요. 그리고 조건없이 여러분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고 박일수 열사 분신 대책위'로 들어오십시요.
그것만이 여러분이 살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살고, 민주노총이 살고, 이 땅의 노동자계급이 사는 길입니다.
노동자계급의 유일한 무기는 단결뿐입니다. 단결을 잊어버리는 순간 당장은 여러분에게 편할지 모르지만 결국 언젠가는 여러분들도 '토끼사냥이 끝난 후의 사냥개'처럼 자본가들에 의해 하청노동자와 똑같은 처지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것은 역사이래로 불변하는 진리입니다.
동지 여러분,
이제 박일수열사가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덧 1주일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여러분의 동료와 여러분의 노조집행부가 계속해서 현재와 같은 태도를 취한다면 진정 노동자계급의 대의를 잊어버리지 않은 동지들이라도 먼저 뜻을 모으십시요.
성경의 타락한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義人) 열사람이 없어서 멸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2만명의 조합원 중에서 최소한 열명의 의인은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아니 단 한사람의 의인이라도 좋습니다.
자랑스러운 골리앗 동지 여러분,
저는 끝으로 여러분들께 평화시장에서 쫓겨났던 전태일열사가 다시 평화시장으로 돌아가면서 스스로에게 한 다짐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위대한 골리앗 전사들을 믿으며
라스 카사스 올림
RVD 명문입니다. 2004/02/21
아 가슴이 저려오네요... 2004/02/21
필치 추천!!! 2004/02/21
밥 이 글이 메인이라...;;;;;
현장 안 가봤지요? 노동자는 일하는 자이기도 하지만, 보통의 경우는 가장입니다. 골리앗 위 올라가는 가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에요. 더구나 함께 가는 것도 아니고, 니는 올라가고 나는 여기서 올라가라라고 글이나 쓴다니요...;;;;
현중노조가 뭔가 많이 잘못한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이게 메인인 게, 진보누리라니...;;; 2004/02/21
지나다 밥/ 님이야말로 이 글 제대로 안 읽으셨지요.
아래는 이 글의 일부 내용입니다.
현재 여러분들은 모두가 함께 흘렸던 땀과 눈물의 결실을 누리고 계십니다. 하지만 저는 몸과 마음이 모두 상한 채 이 나이가 되도록 돈 한푼도, 처자식도 없는 몸으로 중년의 나이를 맞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2004/02/21
눈팅 밥/ 윗글을 쓴 사람이 다시 골리앗 위로 올라가라고 한 것은 정말 그렇게 하라는 말보다는 하나의 비유입니다. 2004/02/21
밥 지나다/
제 독해력은, 재독을 하여도 변치를 않는군요.
전태일 열사와 병치시킨 글의 배열이 그렇고, 현중노조원과 현중비노조원 사이의 관계의 모호함, 자본의 공격 앞에 대기업 정규직 노조원은 기회주의적으로 변합니다.
팩트를 모으고 전망을 내놔야, 글에 호소력이 있습니다.
관념적으로 쓰면, 현장에서는 심리적 반발이 생길 가능성이 큽니다. 현실도 잘 모르면서 자기들을 어떻게 구할 수 있겠냐고, 또한 스스로의 구제책이 보이지 않을 겁니다.
현중 정규직이 파업을 하거나, 천막 치고 단식하거나, 또는 제시하신 골리앗 투쟁을 다시 하거나, 그 방법의 적정선을 가늠하기 힘듭니다.
우선은 대책위로 복귀하는 것이 맞겠지만,
장기적인 싸움?을 준비해야 할 것이데, 출혈적인 싸움을 제시하면, 다시 기회주의적 속성을 드러낼 것입니다.
...... 2004/02/21
lifa 최근 게시판 글들을 보면 일부는 현중노조를 어용이라 하고 일부는 현중노조에 기대한다고 하고 또 현중노조의 입장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유족 납치에 현중노조가 가담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한 사람이 분신했다는 것인데. 2004/02/21
필치 밥/님 저의 독해도 님과 같이 골리앗에 올라가야 할때라고 읽었고 분명 선동문입니다만 저는 글쓴님의 내용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저도 글쓴이와 비슷한(불혹) 나이입니다. 저는 과거 조그만 회사의 노조위원장도 했었고요.
관념이라고요? 우리가 생각하는 관념이... 현제 어느 노동자는 분신하고 어떤 가장을 자살로 삶을 포기하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이 결코 관념은 아닌듯합니다. 물론 많은 조합원들의 구체적인 삶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한 것들을 감안한다면 그간의 노동자 투쟁,선도투라는것은 없었을 겁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선동도 필요하고 소위 선도 투쟁도 필요한 부분 아닐까요? 2004/02/21
이승재 밥/ 노동자들이 자신의 계급성을 인식하고 단결하는 것은 그들을 위해 아주 중요하며, 그냥 쉽게 말하는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입니다. 문제는 당장은 자신과 관련 없는 듯 보이죠. 그러나, 본인이 해고당하거나, 비정규직화된다면, 그때 가서 자신이 잘못 생각하였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것이고요. 왜 글쓴이가 현장에 모른다고 생각하시나요? 누구보다도 현장의 현실을 알기에 이런 호소문을 쓰는 것이지 않나요? 2004/02/21
팔뚝 밥/골리앗 동지 여러분,
다시 골리앗 위로 올라가십시요.
그리고 외치십시요.
이는 현중 노조 지도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노동자로서의 동지적 연대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도 우선 비정규직 차별 철폐 투쟁에 나서라는 얘기입니다. 그 대상은 현중, 반성하지 않는 현중 노조 지도부, 나아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노정권의 정책까지 다양하고 그 투쟁의 수위도 다양함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님도 얘기한 것처럼 대책위에 합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도 있겠지요. 이후의 투쟁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전개되어야 하겠고. 2004/02/21
청년 사민주의자 가슴 뭉클한 글입니다.....
근데 제가 주워들은 바로는 현중 노조지도부는 물론 대부분의 대의원조차도 자본에 포섭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2004/02/21
밥 필치. 이승재, 팔뚝.../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일했던 대기업의 하청업체는 샤워실과 식당을 따로 사용했습니다. 식당은 대략 5년 정도 지났지만, 샤워실의 경우는 10년도 넘었을 겁니다. 식당의 식단은 서로 비슷하나, 원재료와 요리의 숙달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게 다 원재료나 원가와 관련된 것임을 아실 겁니다. 하청업체의 주방에는 알바 아줌마[비정규직]를 고용하였고, 그들의 노동강도 정도는 음식맛이 고려되기 힘든 상황에 있습니다. 또한 하청업체 사용자는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밥의 차이"입니다.
같이 일하면서도[사실, 정규직은 욕 섞인 관리?이고 비정규직은 묵묵히 쇳가루 먹는 빡신 일입니다.] 커피를 먹을 때는 비정규직은 150원 짜리 커피 자판기를 이용하고, 그것도 그 자리에 서서, 거의 원샷~으로 마십니다. 그러나 정규직은 현장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정수기를 이용한 커피를 타서 마십니다. 물론 비정규직도 현장 컨테이너 사무실에는 일회용 커피는 있습니다.
하청업체의 비정규직이 일하다가, 거기 한번 들어가는 것은 거의 해고를 각오해야할 정도의 사건?이 됩니다.
이 일화만으로도 고 박일수 열사의 유서를 뛰어넘는 일이, 실제 노동 현장에서는 비일비재하다는 걸 아셨을 겁니다.
또한 정리해고가 되어도 정규직은 하청업체의 관리팀에 들어갈 길이 있습니다. "오다?" 하나 따주고 적당히 자리 지키며 결국 또 비정규직의 인건비 착취에 동원될 겁니다.
저도 현중노조 지도부를 강력히 비판합니다. 현중노조 지도부는 즉각, 대책위에 복귀해야 됩니다. 또한 그것과 상관없이 민주노총은, 현중노조의 제명에 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토론의 중심은 고 박일수 열사이어야 하며, 때문에 열사의 뜻에 따라, 실제하는 비정규직이라는 노동현장의 모순이면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어떤 실체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해결책을 위한 모순구조의 생산자?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DJ 시절의 전환배치라든가 파견근로법이라든가 제정과정을 밝혀내고, 정리해고로의 진화 과정[소사장제 확대], 자본의 노동에 대한 가압류, 손배소까지 논의가 열려가기를 희망합니다. 물론 놈현 정권의 반노동정책까지도.
...... 2004/02/21
2월 14일 꼭두새벽, 울산의 현대조선소 공장 한 복판에서 故 박일수 열사가
몸에 신나를 뿌리고 분신 항거하였다. 같은 날 새벽 6시, 같은 공장에 다니던
직영 조합원 유석상 동지 역시 산업재해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목을 매 자살
하였다. 작년 초 배달호 열사에 이어 김주익, 이용석, 이해남 열사가 죽음으
로 투쟁을 호소하고 정부의 강제추방에 내몰린 이주노동자들이 지하철로 연신
투신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우리는 또 한번 열사의 주검을 넋놓고 지켜보아
야 했다.
누가 이렇듯 우리의 노동자들과 투쟁하는 동지들을 죽음으로 내모는가? 그것
은 바로 자본과 정권 그리고 노동운동 내 기회주의 어용세력들이다. 가장 밑바
닥 열악한 처지에 놓여있는 이 땅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착취와 억압에 신음하
며 죽어가고 있다. 현대중공업(이하 현중) 박일수 열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민주노총의 성명처럼, 고인의 분신은 자살이 아니다. 그것은 이윤만을 위해
서 사내하청 노동자를 늘리고, 이들에게 죽음에까지 이르는 비인간적 삶과 노
예노동을 강요하는 사용자와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고 공언하면서도 아무런 대
책도 없이 이 상황을 방관하고 있는 정부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다.
“어용노조 제명”이 열사투쟁의 슬로건이 될 수 있는가?
그런데 자본가들을 대변하는 언론과 현중 자본은 언제나처럼 박일수 열사의
분신 항거를 비틀어 왜곡하고 ‘개인적 자살’로 치부하고 있다. 박일수 열사
의 과거 전력을 빌미 삼고 딸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눈물어린 편지까지 거들먹
거리면서 말이다. 이는 우리 노동자들이 열사의 넋을 기리고 그의 유지를 받들
어 “비정규직 철폐, 노동운동 탄압분쇄” 투쟁에 나서는 것을 사전 제압하려
는 의도에서 나온 파렴치한 음모에 불과하다. 사측은 ‘무쟁의 10년’의 역사
를 자랑하는 현장 장악력이 아래로부터 끓어오르는 노동대중의 분노와 저항으
로 조금이라도 금이 갈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현중 자본은 90년대 초반부터 차근차근 대의원들을 매수해왔고, 이제는 90%
이상의 어용대의원과 어용노조를 통해 대중투쟁을 사전 예방하고 통제해 왔
다. 이번에도 열사의 분신투쟁은 현중(원청) 자본을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해보
고 직영 어용집행부에 의해 구겨지고 있다. 직영노조 탁학수 집행부는 “박일
수는 열사가 아니다”라며 분신대책위에서 이탈, 독자적인(즉, 사측의 이해를
대변하는) 대책위를 구성했다. 또 하청노조 조합원들이 목숨을 건 각오로 크레
인에 올라가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고 있는 와중에도 엄호와 지지를 하기는커
녕, “점거농성을 즉시 해산하고 사태를 빠르게 수습하지 않으면 민주노총 및
제 운동세력과의 관계를 끊겠다”고 울산본부 분신대책위를 협박했다. 게다가
사태를 ‘자기 선에서’ 빠르게 마무리짓기 위해 박일수 열사의 유족(따님)을
회유코자 기습 납치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에 분노한 전국의 노동자들이 “현중노조 제명”을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 열린마당과 하청노조 게시판에는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은 어용노조를
제명하라는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열사의 죽음에 대한 분노가 어용노
조 타도로 제한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즉 열사투쟁의 방향을 정확히 “비정규
직 철폐, 노동운동탄압 분쇄”로 맞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투쟁이 노-노 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비화되지 않고 현중 원청자본과 자본가정부에 대한 것으로 곧
장 나아갈 수 있다. 물론 현중노조에 대한 규탄과 심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
지만 현중에서 어용노조를 박살내고 민주노조운동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현장에
서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으로 무력화 되어야지 사무실 서류 위에서 상층부의
제명 서명으로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조합원 대중에 의한 “어용
집행부 탄핵”이라면 모를까 연맹이나 총연맹 차원에서 행정적으로 이루어지
는 “어용노조 제명”은 열사투쟁의 성격을 변질시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열사는 생전에 인터기업에서 뿌린 유인물과 분신 당시 유서에서 전 최
윤석 집행부와 현 탁학수 집행부의 어용행각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하고 있
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용노조를 제명하고 민주노총
(과 민주노동당)을 강화한다”는 데서 정치적 의미를 찾고 있는 일각의 논리
는 현실적으로 기회주의적 노선으로 흐를 수 있다. 왜냐하면 민주노총 중앙이
나 민주노동당은 현재 아무 것도 안하고 방관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원청)에 대한 투쟁을 회피하면서 열사를 추모하려는가?
박일수 열사투쟁 초반에는 ‘과연 분신항거인가’ 내지는 ‘그가 열사인
가’ 따위를 두고서 노동과 자본 간에 공방이 벌어졌다. 현중 자본은 공장 안
인터기업 앞에 숨져있는 박일수 열사의 시신을 발견하고는 회사 차량으로 가까
운 울산대병원을 놔두고 중공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현대병원으로 옮겼다. 이
는 명백한 현장 훼손이었으나 담당검사는 이를 문제시하기보다는 “사인이 불
분명하다.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방화를 한 것일 수도 있다”며 부
검을 요구하고, 이 과정에서 압수영장을 발부받았다는 거짓말로 유족을 기만하
였다. 그리고는 시신을 울산대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대책위의 요구에 “먼
저 교섭권을 직영노조로 위임해야 한다”며 본색을 드러냈다. 즉 현중 자본은
열사 분신 문제를 어용노조를 통해 적당 선에서 무마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가 뜻대로 관철되지 않자, 탁학수 어용집행부는 “각 노
동단체들이 박일수씨의 분신자살을 이용하여 조직단위의 위상을 강화하거나 정
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짙다”는 빌미로 울산본부 분신대책위를 이탈했
다. 이를 울산본부 대책위에서 “반노동자적 행위”로 규정함으로써 그 어용
성은 여실히 까발려졌고 이렇게 제1라운드는 완료되었다. 여전히 현중 자본과
탁학수 어용집행부는 박일수 ‘열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를 통
해 어용노조가 해고자 청산 이후 공개적이고 대중적으로 폭로되었다는 점에 의
의가 있다.
이윽고 벌어진 인터기업 하청노동자들의 작업거부와 하청노조의 크레인 점거
투쟁은 열사의 뜻을 대변하고 투쟁을 책임질 단위가 하청노조와 만 5천명 하청
노동자들임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2라운드가 개막되었다. 하청노조가 기습적으
로 크레인 점거투쟁에 돌입하자 어용노조는 “크레인 전술이 대책위 차원에서
기획된 것인지” 노골적으로 떠봄으로써 하청노조와 대책위를 갈라놓으려 하였
고 만약 그렇다면 “민주노총과 갈라설 수도 있다”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대책
위를 압박하였다.
그러나 대책위는 아직까지 크레인 점거투쟁에 대한 별다른 입장과 태도를 취
하고 있지 않다. 이 속에서 현중노조는 자신과 하청노조 둘 중 하나를 선택하
라고 울산본부 대책위(혹은 민주노총)에 공을 던진 것이며, 울산본부 대책위
는 애매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책위는 현중 자본이나 어용노조처럼 노골적으로 하청노조의 존재 자
체를 부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하청노조의 입장과 전술을 전면적으
로 받아 안고 있지도 않다. 현장 대중투쟁을 당장에 실물화하는 것이 현실적으
로 힘겨운 상황에서 대책위는 지역시민단체를 포괄하는 범대위로 확대 개편하
여 대시민선전, 촛불시위 등 ‘추모 분위기’로 간다는 계획이다.
그에 반해 하청노조와 비정규직연대회의는 자본과 정부에 대한 요구안을 제
출하고 그에 기반해 현장과 지역을 조직할 계획이다. 이 3라운드에서 열사투쟁
의 계급적 성격과 향방은 가름날 것이다. 고인에 대한 추모인가? 열사정신의
계승인가?
전국적 연대투쟁만이 열사의 한을 푸는 유일한 길이다
지금 서울의 명동성당은 “노동운동탄압분쇄” 투쟁의 상징적 거점이 되어있
다. 이주노동자 동지들이 100여 일에 가깝도록 “고용허가제 철폐, 노동비자
쟁취”를 위해 농성투쟁을 전개하고 있으며, 지역건설노조 역시 노동3권 쟁취
를 위해 농성을 하고 있다. 둘 다 자본과 정권에 의한 노동운동탄압에 맞서 노
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다.
그러나 이들 투쟁은 서로 연결되어 더 큰 싸움으로 융합되고 있지 못하다.
지난 2월 7일 2시 같은 시각, 이주노동자들은 종묘에서 건설노동자들은 명동성
당에서 각각 집회가 있었던 점도 이런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최근 이주농성단장 샤말 타파가 거리에서 선전전을 진행하던 중 불법체류자
라는 이유로 강제 연행되는 일이 발생하였고, 지역건설노조는 정당한 노조활동
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반노동자적인 판결로 인해 공갈협박 및 금품갈취범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마디로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거리
에서, 법정에서, 사업장에서 탄압 세례를 받고 있는 것이다.
현중의 하청노동자들이 크레인에서 죽도록 맞아가며 하청 철폐를 위해 투쟁
할 때, 또 현자 하청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며 단식과 작업거부 투쟁
을 전개할 때, 마찬가지로 서울에서는 겨울동안 차가운 명동성당 바닥 위에서
투쟁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과 건설노동자들이 있었다.
이제 이러한 우리들의 투쟁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주노동자 투쟁도 조금
만 더 생각해 보면, 불법체류자 운동이 아니라 이 땅에서 3D 저임금 노동에 시
달리면서 ‘사업장 이동의 자유 쟁취’, 즉 고용불안을 철폐하는 비정규직 투
쟁이다. 건설노동자들 역시 대공장에서 관행이 되어온 불법 하도급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현중 하청노조 역시 노조활동 탄압분쇄와 비정규직 철폐를 위
해 현재 가장 선봉에 서서 싸우고 있다.
오는 2월 22일 일요일은 이주농성단 투쟁이 100일째가 되는 날이다. 또 이
날은 박일수 열사가 분신하신지 10일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번 주말 서울에
서의 투쟁과 울산에서의 투쟁을 하나의 투쟁으로 이어가야 한다. 특히 서울 집
회는 단순히 이주농성단의 투쟁이 아니라 울산 투쟁을 엄호 지지하는 것이어
야 하고, 울산 현중에서의 집회는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가장 선도
적으로 제기하고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 우리의 투쟁이 지금처럼 고립분산 되어서는 안된다. 작은 힘이라도
하나로 모으고 계급적 연대의 실천들을 조직해 나가야 한다. 이번 주말에 울산
의 현중투쟁과 서울의 이주투쟁이 “노동운동 탄압 분쇄! 비정규직 철폐!”라
는 하나의 정신으로 조직되고 또 이후 투쟁의 거점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아갈
수 있도록 모든 투쟁주체 단위들은 분투해야 한다. 그것만이 박일수 열사의 한
을 풀고 이주노동자, 건설 일용직노동자, 대공장 하청노동자를 비롯한 계급적
노동자 전체가 하나 되어 전국적 연대투쟁망을 건설해 나갈 수 있는 길이다.
2월 22일, 울산과 서울을 연결하자! 이것을 시발점으로 현중과 명성을 투쟁
거점으로 “열사정신 계승! 노동탄압 분쇄!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전국적
연대투쟁망을 전국적으로 건설해 나가자! 투쟁! 2004/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