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대윤사 대각전과 석탑>
<아산 공세리 성당에서 친구 은숙이랑>
일상탈출 짧은 여행 33 (아산 대윤사 - 공세리 성당)
목필균
드문드문 몇 년에 한 번 불현듯 다녀오는 아산 대윤사로 출발했다.
강남고속터미널에서 아산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가니 아산에 도착되었다. 마중나온 제자 순화 부부가 대윤사로 데려다 주었다.
10 여년 전부터 좋은 인연으로 알고 있는 성엽스님이 미리 방문을 알리면 혹여 신경쓰실까봐, 불현듯 찾아가고는 한다. 이번에도 그렇게 알리지 않고 찾아가는 것이다. 도착하니 11시 20분이 넘어섰는데 대각전에는 네 분의 스님들이 제를 지내고 계셨다.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법당에 들어서지 않고 있으니 들어와 있어도 된다고 했다.
대각전 미룩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준비한 보시물도 드렸다. 공양을 하고 가라는 성엽스님께 일행들이 일정이 있어서 그냥 가겠다고 했더니, 아쉬워하시며 제사상에 올렸던 과일들을 넉넉히 담아주셨다.
점심을 풍광좋은 한정식당 <오월의 꽃수레>에서 먹고, 아산 공세리 성당으로 향했다.
공세리 성당은 넓은 터에 산책길도 아름다운 곳이지만, 천주교 박해기를 견뎌낸 곳으로 성지이다. 박해기에 희생된 신자들의 위패도 모셔진 유서깊은 성당은 유럽풍의 건물로 이국적인 건축양식이다. 수백 년 넘은 아람드리 느티나무, 팽나무 등이 겨울에도 너른 가슴을 보여주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그리 크지않은 실내에는 성화로 그려진 스탠드그라스가 유리창마다 장식되어 있었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저절로 손을 모아 기도하게되는 장엄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희생없이 피어나는 꽃이 어디 있으랴
십자가에 못박힌 처절한 예수의 모습이 되기까지 고통의 과정별로 세워져 있는 성당 정원을 산책하며, 고통을 견텨낸 결실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오늘이 있게 된 것이라 생각되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불교와 천주교의 전설이 담겨있는 대윤사와 공세리 성당은 다시오고 싶은 곳이 될 것 같았다.
<공세리 성당 소개>
1895년 6월양촌성당(陽村本堂, 구합덕성당의 전신)에서 분리 창설되었으며, 공세리란 명칭은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의 조세를 보관하던 공세창(貢稅倉)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충청도 내포(內浦) 지역에 위치한 공세리 일대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기에 이미 ‘내포의 사도’라고 불리던 이존창(李存昌)에 의해 복음이 전래되었다. 이 후 박해기를 거치면서도 신앙을 보존하던 이 지역은 신앙의 자유를 얻은 뒤에는 양촌본당의 관할 아래 있다가 1895년 6월드비즈(Devise, 成一論) 신부가 공세리로 부임하면서 본당이 설립되었다.
겨울 산사
- 대윤사(2010 작)
목필균
긴 겨울
눈 속에서 묵언수행 중인
대윤사*에는
숫눈* 위 쌩한 바람소리로
명상에 잠기는 성엽스님
제 몸 부딪치며
수런대는 대나무들
독경소리 들으며
사철 다향을 가꾸는
부지런한 전 거사님
입으로 지은 구업口業도
가슴에 얼룩진 상처도
평정심으로 돌려놓는
대각전 부처님이
정갈한 풍경소리로
머물러 있다
*대윤사 - 충남 아산 인주면에 있는 절.
*숫눈 --- 눈이 와서 쌓인 상태 그대로인 깨끗한 눈
첫댓글 저도 이 곳 다녀온지 일년쯤 되어 가는군요..
며칠 전 아산과 보령에 다녀오면서 근처를 또 지나긴 했지만 들리지는 않았구요...
대윤사라는 사찰은 동창님이 소개해 주셨으니
지나는 길에 한번 들려 봐야겠습니다...^.^
겨울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이곳 저곳을 다녔는데~~ 한가로움이 참 좋았습니다.
종교적으로 몰입은 쉽지 않지만 마음 편한 곳으로 발길을 돌릴 때가 많습니다. 주로 사찰이지요...
꾸준하게 일상탈출을 시도하는 목후배님의 은근과 끈기가 시사하는바 큽니다.
덕분에 카페를 통해 이곳저곳을 따라다니며 공감하며 훔쳐보는 재미도 쏠쏠하답니다.
내년에도 변함없이 친구들과의 우정을 다지면서 많은곳을 다니시며 시와 사진으로 카페에 소개해 주세요.^^
선배님! 몇 십년 사람들과 지지고 볶으며 살아서 겨울여행의 한가로움이 좋습니다. 여행 비수기에 다니게 되니 겨울여행이 주가 되게 됩니다.
하루가 멀다고 달라진는 도시, 그래두 마음의 쉼터가 예나 다름없이 이리 곳곳에 숨어있어 다행입니다. 윤주님의 겨울여정이 다정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