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여성들
권 화 송
우리 사회도 꾸준히 고정관념으로부터 헤어나면서 모든 분야에 남녀 평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 TV 토론회에서 지적된 여성에게만 쓰이는 성차별적인 언어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여편네, 부엌대기, 처녀작, 처녀항행, 미망인 등이 있고, 사회의 여성 지도층 인사들에게만 칭호에 여성이라는 접두사를 붙여서 부르는 여성총리 여류소설가 등이 있고, 화냥년이라는 말은 쓰지 않지만 여성단체에서 성매매업자라고 개칭하여 쓸 것을 건의 했는데도 여전히 창녀, 매춘부라는 말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남녀의 성애의 결과로써 여성에게만 희생과 불행을 가져오게 된 ‘미혼모’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분들이 거론하지 않는 것만을 보아도 미혼모는 아직도 일반인들 특히 여성에게도 관심 밖에 있는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성이 혼자만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것이다. 엄연히 있어야 할 미혼부(未婚父)라는 말은 일체 쓰지 않고 있다.
미혼모는 무책임한 남성들의 배신 때문에 정식 혼인을 하지 못한 죄로 아비 없이 자식을 낳아 홀로 가슴에 주홍글씨를 달고 온갖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여성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미혼모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속담에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고 하는 그 처녀이다. 정조 관념이 없는 탈선한 여인으로 보기 십상인 미혼모에 대한 고정관념은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방영된 아침 드라마 ‘맨발의 사랑’에서는 미혼모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있었다. 한 딸아이를 키우며 혼신의 정열로 삶에 열중하는 화장품 외판원인 강다연을 열열히 사랑하는 황진석이라는 총각 사장이 주인공으로 나왔다. 황사장은 회사 경영을 위해서도 유리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다가오는 미모의 아가씨를 뿌리치고 가족들의 극렬한 반대와 온갖 모략에도 꺾이지 않고 미혼모에게 꾸준한 애정을 보내며 결혼을 성취하게 된다. 물론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왜곡되게 성장한 특수한 인간유형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연민의 정 때문에 가능한 예외적인 일일 수 있으며 또한 참신성을 추구하는 작가정신의 산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도 무턱대고 색안경부터 쓰고 바라보는 고정관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해보고 싶다. 고정관념에서 깨어난다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고 무엇이 보다 아름다우며 보다 참된 선(善)인지를 밝혀나가는 지름길인 것이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서 돌이켜 볼 때 우리가 과거에 옳다고 믿고 살아왔던 사회통념이 얼마나 위선이며 악한 것인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여성은 정조가 곧 생명이라’ 하였고 남성의 정조관념이란 눈꼽마치도 없었던 시대가 수천 년 간 이어져 왔다. 오히려 ‘영웅호색’이라 하며 여성을 유린하는 남자를 ‘호걸’이라 하며 미화하지 않았던가? 조선시대에는 남성들이 정치를 잘못하고 국제외교에 눈이 어두워 초래한 병자호란 때에 우리 여성들이 청나라에 포로로 붙잡혀 가서 노예로 살다가 간신히 도망쳐 귀향해서 집이라고 찾아왔을 때, 우리의 사대부 양반들은 그들을 위로하기는커녕 화냥년(還鄕女에서 유래 되었음)이라면서 은장도를 내어주며 자결하도록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옛날의 여성들은 남성들이 범한 모든 잘못을 뒤집어쓰는 희생물일 때가 많았다. 욕망의 노예가 되어 불장난을 한 남성들의 뒤치다꺼리로 일생 동안 불행 속에 묵묵히 참고 살아왔던 희생양이 여성이 아니었던가?
내가 미 제일기갑사단에 근무했을 때였다. 545헌병중대 본부가 있고 한국의 텍사스라고 불리던 용주골(경기도 파주군 소재)은 당시에 제일 번화한 거리로 밤낮없이 흥청거리는 화려한 소도시였다. 하루는 당직대에 카튜사 병장 한 사람과 양색시 세 사람이 잡혀왔다. 고발자는 양색시들이지만 피해자는 오히려 카튜사인 것처럼 보였다. 카튜사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놓은 듯 런닝이 찢어진 체 모자와 옷이 험뻑 젖어있었고 팔뚝과 허벅지에는 시커먼 멍이 들어있었다. 상처 부위는 양색시들이 이로 물은 흔적이 있었다. 조사관이 카튜사에게 전말을 물으니 “제대 말년에 기념삼아 서부전선에서 최고 미인으로 소문난 양색시 미자와 한 번 사귀어보려고 일요일 일찍 신청했는데 양키들이 있다면서 받아주지 않아 무려 세 시간이나 기다려서 만났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지겨워서 마신 술에 취한 김이라 한국 군인이 너무 괄시를 받는다는 생각에 그만 미자의 뺨을 한 대 갈겼습니다. 그런데 사방에서 양색시들이 몰려와서 옷과 모자를 벗겨서 우물에 던져넣었고 온몸에 물을 퍼부었으며 런닝을 찢고 두 사람은 달려들어 꼬집고 물어뜯었습니다”
조사관이 보기에 카튜사의 폭행보다 양색시들의 집단폭행이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왜 한국군인이라고 차별했으며 제 삼자들이 집단 폭력을 행사했느냐고 따졌다.
조사관에게 이들의 답변 내용은 이러했다.
그들은 직업 여성이라 미군을 선호하기 마련이라 했다. 양키는 차지를 덤으로 주며 매너가 좋고 한국인들보다 인간적으로 대해준다는 것이다. 집단폭행은 직업여성들의 자구행위로써 양공주들의 모임인 아비뇽계(아비뇽은 피가소의 그림에서 인용한 것)의 계칙에 ‘우리의 적은 남자들이다. 복수하는 심정으로 남자들로부터 돈을 빨아 들여야 하며 우리에게 폭력이나 해악을 가하는 이가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동으로 대항한다’ 는 규약이 있는데 이에 따른 것이라 했다.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남자의 배신으로 타락하게 되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미혼모라고 했다.
60년대 초, 서부전선 전방 작전지구에서 성매매업을 하는 여성들이 천 명 가량 되었다고 한다. 미군을 상대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들이 윤락의 길을 걷게 된 동기가 거의 90%가 남성들의 배신과 남자 쪽 부모들의 반대로 정식 결혼에 실패하고 상처를 달래며 살아갈려니 마땅한 직업을 구할 수 없어서 멸시를 받으면서 인간 이하의 시궁창 같은 삶을 산다고 했다. 놀라운 것은 그들 중 5% 가량은 미혼모였다.
이들은 모두 불행한 여성들이었다. 누구나 처음부터 제 몸을 상품화하지 않는다.거의가 한 남자에게 순결을 바친 뒤에 굴러떨어진 경력자들이다. 모두가 남자들에게 원한이 있었고 남자들이 적개심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방종하고 무책임하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비열한 남자들의 성적 노리개요, 환락의 뒤끝에 버려진 불쌍한 영혼들이었다.
창녀 출신 작가 니키 로버츠는 문제가 되는 것은 윤락녀라고 비난하고 불법화하면서도 스스로 찾아가 즐기는 남자들의 가부장적 이중성에 있다고 하였다.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자식을 낳고 남녀가 함께 즐기며 행복하게 살도록 내려주신 선물이 바로 성(性)인데 이를 잘못 행사하여 여성들에게만 불행을 주고 남성들에게는 면죄부를 준다면 매우 불공평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도 여성을 불행하게 만드는 성문제가 많이 일어나지만 성격상 증거를 쉽게 포착할 수 없어 국가권력으로도 단속하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미혼부(未婚父)는 유전자 검사를 통하여 분명히 밝힐 수 있다. 다 같이 축복받아야 할 사랑의 결실이 미혼모에게만 십자가를 지울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마땅히 미혼부를 찾아서 자신이 뿌린 씨앗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는 법적인 규정을 둔다면 사람으로서 올바른 도리를 지키게 할 뿐 아니라 무책임하게 성적인 유희를 일삼는 남성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획기적인 시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온다는 그 한을 심지 않도록 남성들이 자제하고 반성해야만이 진정한 남녀평등과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세상은 이제 달라졌고 또 달라질 것입니다. 남자는 아무데나 씨를 뿌리면 안되며, 뿌린 씨는 받드시 거두어야 하겠지요. 죄 값은 언젠가는 꼭 치루게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