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살림을 꾸리는 데는 돈이 들어갑니다. 그 돈을 우리는 ‘예산’이라고 부릅니다. 예산은 정부의 정책적 의지와 계획이 가장 잘 드러나는 중요한 지표이기도 합니다. 정부에서 가장 필요로 하고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즉 우선순위를 두는 분야에 예산을 많이 투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얼마의 돈을 쓸지를 결정하는 예산 수립 과정은 각각의 분야에서 예산 투입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치열한 ‘정치’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산의 면면을 살피면 정부의 주요 정책이 무엇인지, 예산 수립 과정에 누구의 목소리가 가장 크고 셌는지, 혹은 누구의 목소리가 가장 작고 들리지 않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동 예산에 대한 당사자인 아동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해 5월 전국 10~18세 아동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부가 모든 아동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충분한 예산을 쓰고 있다는 답변이 35.9%에 그쳤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두 배 가까운 64.1%로 예산 부족 문제를 아동들도 체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학대와 성범죄 등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필요한 예산 부족(70.1%) 등 아동 보호 관련 예산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65.0%로 가장 높았고 뒤이어 생존(60.4%), 발달(54.0%), 참여(52.7%) 분야의 예산이 부족하다고 답했습니다. 예산 증액이 가장 필요한 분야도 아동 보호(57.0%)가 꼽혔습니다.
또, 아동 예산을 수립할 때 아동의 의견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응답이 78.8%로 높았던 반면, 관련한 정보를 듣거나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23.2%에 그쳤습니다. 또, 예산 수립과 같은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싶다는 응답은 75.7%로 높게 나왔지만, 이 과정에 참여해 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21.8%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예산 결정 과정에 대해 알고, 참여하고 싶은 의지는 크지만, 관련한 정보 제공이나 참여할 기회는 미흡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설문에 참여한 아동들은 아동 예산에 대해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정말 아동이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제도가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어른의 입장이 아닌 아동의 입장에서 예산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취약계층 아동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세요”.
실제 아동 예산을 보면 아동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이해가 됩니다. 참여연대의 2024년 보건복지 분야 예산안 분석 결과 를 보면, 보건복지부 예산 중 아동·청소년 예산은 2조 8,209억 원으로, 2023년 2조 8,384원과 비교해 0.62% 줄었습니다. 아동·청소년 1인당 예산은 약 41만 원으로 2023년 약 40만 원 대비 단 1만원 늘었습니다.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과 사회복지 예산은 증가했지만 아동에 대한 예산은 줄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정부가 아동·청소년을 중요한 정책 대상으로 인식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2024년 보건복지부 총지출, 사회복지, 아동청소년복지 예산안
사실, 한국 정부의 아동에 대한 인색한 투자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간 사회복지지출을 비교할 수 있는 지표 중 ‘가족지출’이 있습니다. 1인 가구를 제외한 가족을 지원하는 지출로, 자녀 양육과 양육자를 지원하는 예산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지출을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했을 때 2017년 기준 한국은 1.10%로 38개 가입국 중 34위 최하위 수준입니다.
▲ 주요 OECD 회원국 GDP 대비 가족 지출(2017년)
이처럼 부족한 예산에,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아동에 대한 예산 확충과 취약한 상황에 있는 아동을 위한 예산을 일정한 몫으로 마련할 것을 촉구하였고, 특별히 아동에 대한 폭력이 지속되는 것을 우려하며 이를 막는데 지원을 강화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제5·6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최종견해(2019) >
“아동을 위한 예산 및 전반적인 사회복지지출을 GDP에 비례하여 증가시킬 것을 촉구한다”
“취약한 상황에 있는 아동을 위한 예산할당을 도입할 것을 촉구한다”
“학대 예방, 피해아동의 회복 및 사회통합을 위한 프로그램과 정책 개발을 보장할 것과
이를 이행할 수 있는 적절한 인적, 재정적, 그리고 기술적 자원 할당을 촉구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대로 줄어든 아동·청소년 예산을 고려하면, 유엔의 권고는 올해도 지켜지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가장 작고 낮은 목소리를 가진 아동은 예산을 결정하는 중요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기 쉽습니다. 아동을 위한 예산이 얼마나 책정되었는지 정보에 가 닿기 어렵고 어디에 얼마나 쓰이고 있는지는 더더욱 알기 어렵습니다. 학대 피해 아동, 보호해줄 어른이 없는 아동, 장애 아동, 이주배경을 가진 아동 등 취약한 상황에 있는 아동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정부의 지원이 가장 필요한 아동들임에도 예산에 대한 정보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도 가장 부족한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알리고자 세이브더칠드런은 내가 직접 나라를 만들어 운영해 보는 ‘나라 만들기 테스트’를 마련했습니다. 내가 나라를 세운다면 어떤 정책을 펼칠까요? 아동의 목소리는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요? 아동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은 무엇일까요? 나만의 나라를 만들며 아동을 위해 어떤 정책이 실현되면 좋을지 잠시 상상해 보세요. 올 한해 더욱 많은 아이들이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글 권리옹호부문 박영의 정리 커뮤니케이션부문 이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