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의 씨름그림
단원은 조선말 풍속화가로 순간의 표현력이 놀랍다. 화쟁이들은 중인의 대접을 받았지만 풍속도가 흔하지 않은 시절에 사는 모습들을 스냅처럼 묘사하였다. 표정도 순간의 행동모습도 놓치지 않았다. 김홍도 씨름그림은 왕의 행차도나 통신사의 행렬도가 아닌 그림에 등장인물이 이렇게 많다니 흥미롭다.
당시 백성들에게 구경거리는 씨름판이 아니었나 싶다. 구경꾼들의 행색으로 보아 동네 남정네들은 다 몰려들 나왔나 보다.
가로세로 1자 미만의 화지에 씨름꾼 중심으로 오른쪽 위로 다섯 사람 그 아래에 두 사람, 오른쪽 위로 여덟 명, 왼쪽 아래 엿판을 맨 엿장수와 네 명, 모두 다섯 갈래로 스물두 명이나 그렸다.
27×22.7cm 황금율 1:1.68 씨름그림 1:1.189
왼쪽 위의 구경꾼 여덟 명은 한 동네에 살거나 종친인 것 같고 부채로 얼굴을 가린 젊은이는 혹시 뒤에 앉은 어른이 제 아비라 송구해서인지 아니면 공부를 하다 몰래 씨름판에 나온 지도 모른다. 어쨌든 자기만 감추고 싶은 무엇이 있나 보다. 그 옆 자리에 신을 벗고 깍지 끼고 앉아 있는 품새는 다음 판 주자다. 두 사람은 갓을 쓰고 셋 어른은 갓을 벗어 앞자리에 놓았다. 이들은 앞에 구경꾼들보다 형색이 좀 나은 것 같다.
오른쪽 위, 땅바닥에 놓인 모자는 대패랭이 같다. 당시는 부채도 귀해 부채질을 하고는 으레 허리춤에 꽂아 보관했다. 구경꾼들은 씨름꾼 쪽으로 집중해 있는 것을 보면 오늘 씨름판이 상판인 모양이다. 큰절하듯 승패를 지켜보는 모습이 오늘 씨름판이 자웅을 정해지기 때문인가 보다. 소년들의 머리는 진하게 칠해 젊음을 과시하고 그들은 씨름판에서도 예의범절을 갖춰 어른들 뒤쪽으로 물려 나앉았다.
이 씨름판에서 한가한 이는 엿장수다. 씨름판이 최절정이라 판을 휘젓고 다닐 처지도 아니지만 그는 허공에다 뭣을 생각하는 걸까? 엿판에 셋 닢으로 보아 오늘 장사도 시원찮았나 보다.
이 씨름판에서 오늘 장사는 누굴까? 화면에 벗어놓은 씨름꾼의 가죽신과 짚신으로 보아 그들 두 사람의 생활을 가늠할 수 있다.
요즘처럼 샅바가 없어 허름한 광목허리띠나 바지가랑이만 잡고 씨름을 했다. 씨름꾼의 힘이 실린 어깨와 등때기, 오른 손의 힘줄, 벌어진 다리의 각도, 버선발의 강도, 아랫바지를 감싼 댓님, 두툼한 목덜미의 기운, 얼굴의 각을 보면 옹골찬 전율이 절정에 이룬다. 들배지기나 밀어붙이기로 끝낼 것 같기도 하고 어깨에 걸친 상대를 어느 쪽으로 곤두박을까 하겠지만 씨름판 성패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자칫 들린 씨름꾼의 뒤치기로 한방으로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지는 것이 종종 보기도 한다.
상대방의 적삼을 말아 쥐고 한 손으로는 뒷다리의 뒤치기를 이길 수 도 있다. 씨름판 관객들의 순간의 진면목을 잘도 표현했다.
이 부분의 그림을 보고, 어느 화평에는 상투 튼 이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잘못 그려졌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양손 엄지손가락이 다 뒤틀어져 있어 잘못 그려졌다. 두 손목 부분을 바꾸면 정상일 것 같다.
더벅머리 총각은 마부인지 종인지. 이들 두 사람은 어느 순간을 보고 입을 쩍 벌리고 다물지 못할까! 아마 이길 줄 예상했던 장사가 넘어지는 순간을 본 것이 아닐까 싶다. 김홍도의 씨름그림을 보면서 씨름꾼들의 채취도 관객들의 형색도 어쩜 무딘 붓으로 사진처럼 일필 할 수 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