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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저집 제28권 / 교서(敎書) 8수(八首) 경상 감사 윤방(尹昉)에게 내린 교서....그런데 방면 중에서도 서북(西北 관서(關西)와 관북(關北) )과 양남(兩南 호남(湖南)과 영남(嶺南) )의 경우는 지역적으로 서융(西戎) 및 남만(南蠻)과 인접하고 있다.
성근보선생집(成謹甫先生集) 제2권 / 명(銘) 팔준도명(八駿圖銘) 병인(幷引)...활과 화살을 활집에 거둬들이고 신음하는 소리를 노래로 변하게 하였으며, 산과 물길로 남만(南蠻)까지 통하고 북쪽 풍속에 관대(冠帶)를 쓰게 하였습니다.
승정원일기 > 영조 > 영조 15년 기미 > 6월 1일 > 최종정보 영조 15년 기미(1739) 6월 1일(병자) 큰비가 옴 15-06-01[26] 관방의 요새인 영남을 잘 방비하고 왕화를 펼치라는 내용으로 경상 감사 조명겸에게 내린 교서..북쪽으로 조령(鳥嶺)이 가로막혀 관방(關防)을 견고한 요새에 충분히 의지할 수 있고, 남쪽으로 오랑캐 나라와 접해 있어 모든 토산물을 계곡을 통해 운반할 수 있다.
다산시문집 제20권 / 서(書) 중씨께 올림 신미(1811, 순조 11년, 선생 50세) 겨울...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의 호)께서 손수 베꼈던 일본지도(日本地圖) 1부를 보면 그 나라는 동서로 5천 리이고 남북으로는 통산 1천 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동기유(日東記游) 제3권 / 정법(政法) 22칙...일본 땅은 중국의 강절(江浙 강소성(江蘇省)과 절강성(浙江省))과 한 홍수(泓水)를 사이에 두고 있으니, 강절은 오(吳)ㆍ월(越)의 유지(遺地)인 것이다. 그 자손(子孫 태백과 중옹의 자손)이 저쪽에 있는 것은 오 나라가 되고, 이쪽에 있는 것은 일본이 되었던 것이다.
승정원일기 > 고종 > 고종 19년 임오 > 11월 28일 > 최종정보 고종 19년 임오(1882) 11월 28일(경술) 맑음...“왕래하는 데에 모두 며칠이나 소요되었는가?“ 하니, 박영효가 아뢰기를, “모두 9일이 소요되었습니다. 배를 탄 시간은 실제로 만 4일 19시간이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인천 화도(花島)에서 동경까지는 몇 리나 되는가?” 하니, 박영효가 아뢰기를, “9700리쯤 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윤선(輪船)이 과연 빠르도다. 만 4일 19시간 만에 왔다면 하루에 2천 리를 달린 셈이다.” 하였다...“일본 국왕의 자품은 과연 어떠하던가?” 하니, 박영효가 아뢰기를, “신이 본 바로는 성품이 너그러운 것 같았고, 키가 크고 얼굴이 검었습니다.”
임하필기 제32권 / 순일편(旬一編) 청령국(蜻蛉國)...일본 사람들은 잠자리[蜻蛉]를 추진(秋津)이라고 하는데, 그 지형이 잠자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한나라 광무제(光武帝) 때 처음 중국과 교통하였다.
中國史書 高麗·渤海遺民 記事 > 宋史 > 『宋史』卷491 列傳250 > 일본에 대한 개요와 고려악 『宋史』卷491 列傳250 外國7 日本國 宋 太宗 雍熙 元年 984년 미상(음) 일본에 대한 개요와 고려악...가축으로는 물소(水牛), 나귀(驢), 양(羊)이 있고, 코뿔소(犀)와 코끼리(象)가 많다. 누에를 쳐서 견직물이 많고, 얇고 섬세하여 〈품질이〉 매우 좋다
조선왕조실록 > 태종실록 > 태종 11년 신묘 > 2월 22일 > 최종정보 태종 11년 신묘(1411) 2월 22일(계축)11-02-22[02] 일본 국왕이 우리 나라에 없는 코끼리를 바치니 사복시에서 기르게 하다
왕환일기(往還日記) / 무자년(1828, 순조 28) 6월 29일(정유)....그전 명 나라 때에는 왜국(倭國)이었다가 본조에서 군현으로 귀속시켜 복건성에 속하는데 대만부로서 6개의 현과 2개의 청(廳)을 관할하고 있습니다
잡지명 동광 제39호 발행일 1932년 11월 01일 기사제목 完譯 三民主義(1), 民族主義 第1講 필자 孫文 原著............ 日本도 維新 前에는 역시 國勢가 매우 衰微하엿섯다. 領土는 겨우 四川省 一省만밖에 못하고 人口도 四川省 一省에 및지 못하야 역시 外國의 壓制의 耻辱을 받앗섯다.
연산군 7년 신유(1501) 1월 30일(기묘)
예조에서 제주도 내섬시의 종 장회이가 일본에 표류하여 보고 겪은 일을 아뢰다..소로 논을 갈아서 볍씨를 물에 담갔다가 싹이 트면 4월에 씨를 뿌려서 싹이 자란 뒤에 5월에 모내기를 하고, 제초(除草)는 하지 않으며, 7월에 수확합니다. 그 곡초(穀草)의 길이는 두 줌쯤 되고, 그 뿌리에 싹이 나서 익으면 9월에 수확하고, 또 그 뿌리에 싹이 나서 익지 않으면 사람은 먹지 않고 베어 들여서 마소를 먹였습니다.
기언 제47권 속집 / 사방(四方) 1 영남 관찰사를 보내는 서...그 바깥의 700리 너머에 대마도(對馬島)가 있는데 일본과 한 나라로서 죽음을 가볍게 여기고 창칼로 싸우는 것을 좋아한다. 대마도의 왜가 가장 간교하고 변덕이 심하다.
1870년(고종 7년) 4월 15일 > 일본 외무성, 조선과의 외교관계 모색을 위한 보고서를 작성함 기사제목 일본 외무성, 조선과의 외교관계 모색을 위한 보고서를 작성함 연월일 고종 7년(1870년, 淸 穆宗 同治 9年, 日本 明治 3年) 4월 15일 ..군함이 조선으로 향할 때 대주(對州)의 이즈하라(嚴原)는 대함이 정박할 장소가 아닙니다. 섬 안의 아소만(淺茅灣)이라 부르는 장소를 일람했는데, 조선 땅으로 향하는 큰 강으로 그 중에 이모자키(芋崎)라 부르는 장소는 군함 정박과 석탄 적립 등을 위한 굴지의 장소로 생각하므로 서양 측량도 일엽(一葉)을 제출함.
사료 고종시대사5 > 1871년(고종 8년) 3월 15일 > 이홍장, 미국 함대의 동향을 총리아문에 보고함(이홍장→총리아문) 기사제목 이홍장, 미국 함대의 동향을 총리아문에 보고함(이홍장→총리아문) 연월일 고종 8년(1871년, 淸 穆宗 同治 10年, 日本 明治 4年) 3월 15일 발신 이홍장 수신 총리아문...다만 듣건대 일본과 고려의 경계 지역에 새롭게 생긴 퇴적지가 한 군데 있는데 일본에서 관원을 파견하여 그곳으로 가서 조세를 거두게 하였으나 고려인에게 죽임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혹은 이 때문에 한을 품고 음으로 미국을 도와 고려와 난리를 일으키게 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역시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 > 1920년(경신년) > 3월 > 23일 《화요일》 어둑어둑하고 추움. 23일 《화요일》 어둑어둑하고 추움...아이누(Ainu)註 053족은 유럽의 백인종이 나중에 동쪽으로 이주해온 종이다. (7) 아이누 족은 일본 중부와 조선에 살았던 황인종에 의해서 정복되었다.
23rd. Tuesday. Gloomy-chilly.
Lunch at Y.M.C.A. Dr. Hardlicker's remarks continued. (6) The Ainu race is a later emigration to the East from the common white race in Europe. (7) The Ainu race was conquered by the yellow brown people who peopled central Japan from Korea.
『震光』 제4 · 5호 합간(중국어본)(1935년 11월호)
일본의 東京 · 武藏은 고대 백제 · 신라 · 가락인들이 처음 개척한 곳이다. 오늘날까지도 이곳에는 高麗村 · 聖天院 · 高麗王碑 · 狹山勝樂寺 · 山口觀音鐘 · 白鬚神社 등 우리의 선인들이 남긴 유적과 유물이 적지 않다. 백수신사는 고대 이 지역을 개척했던 우리 선인들의 신앙의 상징으로 向島 · 西介原 등 고려촌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백 수십 곳에 산재해 있다. 志木 · 白子와 같은 지명 역시 우리의 선인들이 명명한 것이다.
삼천리 제7권 제2호 발행일 1935년 02월 01일 烏居龍藏씨의 硏究에 의하면「古 日本民族은 아이누族 以外에 1. 朝鮮, 滿洲, 沿海州, 東蒙古 등 지방으로 渡來한 固有民族과 2. 쓰마토라 보르네오, 세레베쓰, 比率賓, 臺灣 등으로부터 渡來한 印度네지안系의 것과 3. 南支那에 예로부터 居住한 苗族 系統 즉 印度 支那民族이라고」하얏거니와(有史以前의 日本)
고전번역서 > 해행총재 > 동사록 > 병자년 > 11월 > 최종정보
병자년(1636, 인조 14) / 11월 큼..큰 호수(湖水)가 있는데, 이른바 비파호(琵琶湖)다. 길이가 2백 리며 너비가 1백 80리인데, 서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고 한다.
고전번역서 > 해행총재 > 동사록 > 임술년 > 8월 > 최종정....맑음. 아침에 강고(江尻)를 떠나 10리쯤 갔을 때 처음 부사산(富士山)이 보였는데 산의 높이는 4백 리라 하며 일년 내내 눈이 쌓여 있다고 한다
백과사전 비파호 : 남북 길이가 약 64㎞ 동서18km 부사산 ; 해발 3,776m로 일본에서 제일 높은 산
고전번역서 > 소호당집 > 소호당문집 제9권 > 전 > 최종정보소호당문집 제9권 / 전(傳)
안중근전 병진년(1916) ○ 처음 경술년(1910)에 호보에 의거하여 이 전을 지었는데, 근래 안 열사의 친구 박은식(朴殷植)이 기록한 한 편의 글을 얻어 살펴보니 실상을 잃은 것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이에 개작한다. 〔安重根傳 丙辰○始庚戌據滬報作是傳近得安烈士友朴殷植所記一編考之則失實甚多矣故玆改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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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여기에 이르자 목소리가 더욱 우렁차고 눈빛은 번개처럼 번득였는데, 이토 히로부미의 죄를 조목조목 따지며 꾸짖기를 “이토 히로부미의 죄는 위로 하늘까지 이르니, 이토 히로부미가 우리 대한의 황제를 폐위시킨 것이 이와 같고, 우리 대한국의 독립을 무너뜨린 것이 이와 같고, 동양의 평화를 파괴한 것이 이와 같다. 또 옛날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 모의도 이토 히로부미가 실제로 주관하였고, 귀국의 선황제(先皇帝, 孝明帝)를…….”라고 하였다. 마나베가 듣고 크게 놀라 안색을 잃고 급히 손을 휘저으며 중지시키고, 또 방청객을 퇴장시켰기 때문에 그 말의 끝을 들은 사람이 없었다. 선황제라고 말한 것은 이토 히로부미가 시해를 실행했다는 말이다.
> 고전번역서 > 각사등록 > 충청병영계록 > 순조 > 최종정보
충청병영계록(忠淸兵營啓錄)○순조(純祖) / 순조(純祖) 19년(1819)
7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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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 개탁
구함(具銜) 신 조운구(趙雲衢)
비인현(庇仁縣) 마량진(馬梁鎭)에 표도(漂到)한 이양선(異樣船)을 문정(問情)한 연유는 전에 이미 연속하여 치계하였습니다. 이달 17일 유시(酉時)에 도부(到付)한 수군우후(水軍虞候) 최화남(崔華男), 비인 현감(庇仁縣監) 윤영규(尹永圭), 마량진 첨사(馬梁鎭僉使) 이동형(李東馨)의 연보(聯報)에, “경역관이 내려온 연유는 어제 이미 첩보(牒報)하였습니다. 경역관(京譯官)의 수본(手本) 한 통을 아래에 개록하여 첩보하고 표인(漂人)의 물건은 성책(成冊)하여 올려 보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 표선(漂船)을 전후로 문정한 것에 비록 논할 만한 의단(疑端)이 없기는 하지만 이미 변정(邊情)에 관계된 중대한 일이니 문정에 대한 보고를 잠시도 지체해서는 안 되는데, 13일 술시(戌時)에 성첩(成貼)한 보고가 17일에 신의 영(營)에 도부한 것은 일의 체모를 생각해보건대 매우 놀라우므로 이것은 엄하게 과치(科治)할 계획입니다. 경역관이 보고한 집물 성책은 남김없이 모조리 상세히 갖추고 있으므로, 다시 성책하여 비변사(備邊司)와 병조에 올려 보내고 연유를 치계하오니 잘 아뢰어 주소서.
가경 24년 7월 17일
비직(卑職)이 7월 초8일에 하직한 뒤 그대로 출발하여 12일 신시(申時)쯤 공청도(公淸道) 비인현(庇仁縣) 마량진 앞바다 표선이 정박하고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수군우후(水軍虞候) 최화남(崔華男), 비인 현감(庇仁縣監) 윤영규(尹永圭), 마량진 첨사(馬梁鎭僉使) 이동형(李東馨)과 함께 문정하니 과연 일본국 살마주(薩摩州)에 사는 일고여일우위문의병(日高與一尤衛門義柄)ㆍ천상언십랑친결(川上彦十郞親訣)ㆍ안전희등태의방(安田喜藤太義方) 등 3인이 중(中) 3인과 하(下) 19인을 거느리고 문화(文化) 14년 정축년 살마주에 속하는 영량부도(永良部島)에 순찰(順察)하고 문정(文政) 2년 기묘년(1819) 후직(後職)과 교대하고 살마주로 돌아가기 위해 6월 14일 영량부도를 나와 선상(船上)에서 순풍을 기다렸다가 같은 달 21일 낮에 배를 출발하였는데 갑자기 동풍(東風)을 만나 서방으로 표류하고, 23일에 또 폭풍을 만나 오미시(午未時)에 돛대가 부러지고 노 역시 손상되어 부러지고, 24일에 바람이 조금 멎을 듯하고 파도가 잠시 그쳐 25일에 돛대와 노를 임시로 만들고 오미방(午未方)으로 항해하다가 초3일 새벽 귀국에 표도(漂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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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살마주(薩摩州) 일도(一島)의 둘레는 얼마나 되는가?
답:3천 리 정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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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와 병조에 올려 보낸 성책
선상 집물….............................
표인(漂人)의 나이ㆍ거주지ㆍ용파(容疤)
일고여일우위문의병(日高與一尤衛門義柄) 25세. 얼굴 검고 수염 깎았고 흉터 없고 몸은 중간.
천상언십랑친결(川上彦十郞親訣) 28세. 얼굴 검고 수염 깎았고 흉터 없고 몸은 중간.
안전희등태의방(安田喜藤太義方) 30세. 얼굴 검고 수염 깎았고 흉터 없고 몸은 중간.
즙공(楫公) 송원감우위문(松元勘右衛門) 40세. 얼굴 검고 수염 깎았고 흉터 없고 몸은 중간.
유야중조(猶野仲助) 20세. 얼굴 얽었고 수염 나기 시작하고 정수리 위에 검은 사마귀〔黑痣〕가 있고 몸은 작음.
길촌선지극(吉村善之亟) 19세. 얼굴 얽었고 수염과 흉터 없고 몸은 중간.
이상은 살마주(薩摩州) 서아도(庶兒島)에 거주.
곁꾼(格軍 배에서 노를 젓는 사람. 격인(格人)ㆍ선격(船格)) 정우위문(政右衛門) 50세. 얼굴 검고 수염 깎았고 흉터 없고 몸은 작음.
선조(仙助) 30세. 얼굴 얽었고 수염 깎았고 흉터 없고 몸은 작음.
장차랑(庄次郞) 18세. 얼굴 검고 수염 없고 흉터는 눈썹 사이에 검은 사마귀가 있고 몸은 작음.
낭장차랑(郞長次郞) 18세. 얼굴 검고 수염 없고 흉터는 가슴 위에 창흔(瘡痕)이 있고 몸은 중간.
이상은 살마주 하변군(河邊郡) 추목(秋目)에 거주.
각병위(覺兵衛) 35세. 얼굴 검고 수염 깎았고 흉터 없고 몸은 중간.
장일(長一) 34세. 얼굴 검고 수염 깎았고 흉터 없고 몸은 작음.
이상은 살마주 영성군(穎姓郡)에 거주.
삼사랑(三四郞) 40세. 얼굴 검고 수염 깎았고 흉터 없고 몸은 중간.
이조(利助) 30세. 얼굴 얽었고 수염 깎았고 흉터 없고 몸은 중간.
이상은 살마주 지각군(知覺郡)에 거주.
여병위(與兵衛) 51세. 얼굴 검고 수염 없고 흉터는 입술 위에 흰 사마귀가 있고, 몸은
이상은 살마주 지숙군(指宿郡)에 거주.
안태랑(安太郞) 31세. 얼굴 얽었고 수염 깎았고 흉터 없고 몸은 중간.
후차우위문(後次右衛門) 60세. 얼굴 검고 수염 깎았고 흉터 없고 몸은 중간.
권우위문(權右衛門) 25세. 얼굴 검고 수염 나기 시작하고 흉터 없고 몸은 중간.
평조(平助) 28세. 얼굴 검고 수염 깎았고 흉터는 눈썹 위에 작고 검은 사마귀가 있고 몸은 작음.
삼조(三助) 40세. 얼굴 검고 수염 깎았고 흉터 없고 몸은 중간.
중우위문(中右衛門) 28세. 얼굴 검고 수염 깎았고 흉터 없고 몸은 중간.
전우위문(田右衛門) 18세. 얼굴 검고 수염 났고 흉터 없고 몸은 작음.
차랑(次郞) 13세. 얼굴 검고 수염과 흉터 없고 몸은 작음.
산조(山助) 15세. 얼굴 검고 수염 없고 흉터는 이마 위에 창흔이 있고 몸은 작음.
정우위문(政右衛門) 18세. 얼굴 검고 수염 없고 흉터 없고 몸은 작음.
첫댓글 고맙습니다
네..좋은 자료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본의 정확한 위치는어디일까요... 일본도 시대따라 지명이동되면 변천해 온 것일까요...
고전번역서 > 해행총재 > 동사록 > 병자년 > 11월 > 최종정보
병자년(1636, 인조 14) / 11월 큼..큰 호수(湖水)가 있는데, 이른바 비파호(琵琶湖)다. 길이가 2백 리며 너비가 1백 80리인데, 서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고 한다.
고전번역서 > 해행총재 > 동사록 > 임술년 > 8월 > 최종정....맑음. 아침에 강고(江尻)를 떠나 10리쯤 갔을 때 처음 부사산(富士山)이 보였는데 산의 높이는 4백 리라 하며 일년 내내 눈이 쌓여 있다고 한다
백과사전 비파호 : 남북 길이가 약 64㎞ 동서18km 부사산 ; 해발 3,776m로 일본에서 제일 높은 산 조선중기 이후 인쇄체의 기록들이 등장하는데 사서와 현재와 크게 차이가 나죠. 풍신수길이 아이누족을 놔두고 조선을 정복하려했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죠. 명치유신이후에야 비로소 열도에 등장하죠. 대륙남부에서 살다가 동아시아로 쫒겨나고 다시 대만 그리고 대륙 및 열도에 정착한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