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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엡 6:10-20 제목 : 영적싸움에서 승리하는 성도 ----------------------------------------------------------------------------------- 서론 저는 오늘 그동안 목회자로서 한국교회가 가고 있는 모습과 방향을 보면서 성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 크리스챤으로서 제대로 된 신앙의 바른길을 제시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오늘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에 대단히 위험한 위기가 닥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2013년 10월 30일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지난번 금요기도회 시간을 통하여 이단의 실체들에 대하여 공부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WCC에 대한 실상과 문제들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부산에서 열리는 WCC에 대하여 떠들기는 떠드는데 이것이 얼마나 악한 것이며, 본체를 드러내지 않은 체 정상적인 기독교 행사를 하는 것처럼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을 속이는 행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 WCC를 개최함으로 인하여 순수한 한국교회를 기만하고 생명력을 빼앗아 가는 영향을 가져올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WCC를 한국교회에 유치한 종교 지도자들의 교단과 한국 교회사와의 관계성을 비교 검증하면서 한국교회사와 WCC의 관계성과 초대교회와 현대교회의 비교를 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한국 교회사적인 분열을 통한 측면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한국 교회사적인 분열
1910년 일본은 한일합방과 더불어 문화침략 및 동화정책의 일환으로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조상신은 신도로서 일본의 태양여신 아마데라스 오미가미의 손자인 천왕의 황조황종인 조상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일본은 가는 곳마다 신사를 세워 천황을 중심으로 자국민의 단결을 도모하고 대외적으로는 타민족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일제가 한일합방을 하여 1925년 6월 조선 신궁에다가 천조대신과(태양여신) 명치대황(메이지덴노)를 모셨습니다. 일제는 1935년 서기산에서 만주 출정식, 전몰장병 위령에 기독교 학생들의 참석을 강요했으나 거부함으로서 다시 강제적인 정책이 발령되었는데 1935년 11월 평난 도지사인 야스다께는 공립, 사립학교 교장회의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한 숭실전문학교장 매큔을 파면하고 귀국조치 시켰으며, 대부분의 기독교 학생들이 이를 이기지 못하여 자진 폐교하였고 총독부에 이전되었습니다.
평양장로회 신학교는 1901년에 개교하여 신사참배 항거문제로 1940년 문을 닫기까지 고난의 길을 걸았으며 수많은 교역자들을 양성하였습니다. 일제의 신사참배에 대한 본격적인 강요는 1932년 기독교학교를 시작으로 각 교회로 까지 확대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1935년 12월 안식교단과 성결교단이 신사참배를 가결하였고, 1936년 5월 25일 천주교회가 교황 피우스 12세의 선포를 통하여 신사참배는 종교적 행사가 아니고 애국적 행사이므로 이를 허용한다고 하였습니다. 1938년 10월 감리교 총리사인 양주삼목사가 신사참배를 가결하였으며, 1938년 9월 9-11일 제27회 장로교 총회가 "천조대신"이라 불리는 일본 신을 섬기는 신사에 참배하기로 가결하였습니다.
일제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주기철, 이기선, 감선두목사를 구속하였고, 제27회 총회에서 홍기택 총회장은 선교사 블레어와 헌트의 거친 항의에도 불구하고 신사참배를 가결시킴으로 한국교회사에 씻을수 없는 치욕적인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1939년 한상동목사는 경남을 중심으로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1940년 한상동목사는 일제에 의하여 끌려가서 평양감옥으로 압송되어 약 5년간 폐결핵 4기로 고난의 쓴 잔을 마셨습니다. 한국교회는 본래 정통한 복음주의 선교사에 의해 가르침을 받아 성경을 "정확무오한 말씀으로 믿는 개혁주의 정통신학"을 기반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평양의 장로회신학교는 성경만을 교과서로 가르쳤으며, 주관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중심 사상을 배격하여 올바른 목회자들을 길러 냈던 것입니다.
교계에서는 1930년을 전후하여 일본, 카나다, 미국등에서 자유주의 신학사상으로 훈련을 받은 채필근, 김관식, 송창근, 김재준 등 목사들이 귀국하여 자유주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은 성경에 "계시된 복음을 절대진리"로 받지 않을뿐만 아니라 "타 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종교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로 기울어 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평양의 장로교 신학교가 건재할 때에는 숨을 죽이고 있다가 사단이 일본의 종교정책을 통하여 신사참배를 가결시키고, 평양신학교를 문 닫게 만들고 복음의 문호가 차단되자 기회가 왔다는 식으로 1940년 4월 19일 총독부에 조선신학교 설립 허락을 받고 평양과 서울에 신학교를 개교하였습니다. 평양신학교 교장은 친일적인 성향을 가진 동경제국대학 출신의 채필근 목사이며, 서울에는 자유주의 신학자 김재준목사가 주도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채필근의 평양신학교는 평양감옥에서 풀려나온 순교적 신앙을 가졌던 목사들과 일제의 탄압을 이겨 낸 평양노회 지도자들의 위력에 밀려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이 때부터 초대교회의 참 모습이 변질이 되었고 부수와 진보로 나누어 지는 비극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울에 있는 김재준의 조선신학교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서울에는 순교적 지도자들이 없었고 대부분 신사참배를 했던 지도자들은 총회 인준을 받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1945년 8월 17일 해방과 함께 평양감옥에서 나온 20여명의 지도자들이 2개월간 주기철목사님이 시무하던 산정현교회에 모여 한국교회재건에 대하여 의논하기를 1) 신사참배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2) 배교자들에게 권징을 해야 한다. 3) 순수한 복음증거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를 논의했습니다.
1946년 6월 서울 승동교회에서 모인 남부총회에서 조선신학교를 총회직영으로 승인해 주었는데, 이 신학교에 김재준, 한경직, 서고도, 김관식 교수 등이 있어 한국교회에 신 신학적인 목회자를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이들 교수들은 "신사참배에 대한 깊은 회개"나 한국교회의 신학에 대한 새로운 성찰도 없이 교권을 행사하였습니다. 김재준은 정통신학은 신 신학보다 더 교묘하게 위장한 실제적 인본주의이며, 정통적 이단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였습니다.
해방과 더불어 출옥한 한상동목사는 1946년 3월 남한에 내려와 교계를 살펴보기 위해 승동교회당에서 모이는 남부총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김재준목사가 주도하는 조선신학교를 직영신학교로 인준해 주는 것을 보고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였고 일본시대 일본식 기독교를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이 주동이 되어 지도하고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성경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임"을 부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들에게 한국교회를 맡길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한상동목사는 1946년에 평양감옥에서 출옥 후 박윤선목사를 만주에서 모셔다가 부산 고려신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서리로 모셨습니다. 그러나 총회가 인준한 조선신학교가 있기 때문에 총회 밖에 개혁주의 정통신학교를 따로 세울 수 없다는 문제로 박형용목사와 한상동목사와의 견해차이가 발생되었는데, 1) 총회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한다 2) 신학교 위치가 한국의 중심인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문제 3) 미국 4개교단의 선교부와의 협력문제 등이었는데 더 큰 차이는 한상동목사가 주장하는 것은 "교회의 참된 재건과 건설은 참된 회개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박형용목사는 이에 대하여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였다는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형용목사는 신학교를 서울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에 관계를 맺자고 하였습니다. 당시 북장로교회는 당시 WCC에 가입한 교단으로서 용납이 안되는 상태였으므로 한상동목사는 반대한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박형용목사는 설립자들과 뜻이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1948년 4월 교장직을 사임하고 5월 27일 서울에 보수주의 신학교 설립을 원하는 목사들과 함께 서울 남산에 있는 기독교박물관에(성도교회) 장로회신학교라는 간판을 달고 신학교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1952년 4월 29일 대구 서문교회에서 개최된 제37회 총회에서 신앙정화운동을 제안한 한상동목사가 소속된 경남노회 총대 12명을 축출하게 됩니다. 축출당한 경남노회가 중심이 되어 한국교회사에 최초로 "고려파"라는 교단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1952년 9월 11일 한국교회에서 쫒겨 난 고려파는 진주 성남교회에서 제57회 노회에서 노회조직을 하고 "신사참배는 죄"라고 규정하고 결의하였습니다.
한국교회는 당시 옥중성도들의 순교가 오늘 한국교회의 빛나는 전통과 자랑이 되었는데 그들의 이름조차 기억 못하는 현실이 되었고 그들의 후손들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1953년 6월에 조선신학교를 옹호하는 소위 에큐메니칼(WCC)과 보수주의자(NAE)들 사이에서 암투가 있었는데, 에큐메니칼의 대표는 한경직목사이고, 복음주의 대표는 박형용목사였습니다.
1948년 암스텔담에서 모인 WCC대회에 김관식목사가 참석하고 귀국하여 WCC 가입을 정식으로 보고하였는데, 1957년 9월 19일 부산중앙교회에서 열린 제42회 총회에서 에큐메니칼 모임을 허락하기로 가결하였습니다.
1959년 9월 24일 제44회 총회가 대전중앙교회에서 모였는데 경기노회 총대권 문제로 두 편으로 나뉘었으며 양쪽에서 총대명단을 올렸는데, 어느편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투표결과 124대 119, 기권5로 에큐메니칼측(WCC)이 승리합니다. 즉 WCC를 인정한 에큐메니칼측에서 승리를 한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오자 복음주의자들로부터 반발이 나왔으며, 회의진행이 어려워 동의와 재청이 있어 노진현 회장이 강행 통과시켰습니다.
이후 에큐메니칼 대표들은 선교사들과 함께 대전 미락식당에서 회의를 열고 서울로 상경하여 연동교회에서 속회를 하여 연동측 소위 장로교 통합측 총회를 만들어 WCC 가입을 계속 유지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WCC를 계속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이 서울 승동교회에서 모여 속회를 한 후 WCC를 탈퇴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따라서 소위 장로교 합동측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결국에는 합동측과 통합측이 WCC의 신학적인 문제와 가입여부와 탈퇴문제로 인하여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일제시대 신사참배 당시, 신사참배에 찬성했던 대다수의 목사들은 한번 고개 숙이고 참배하는 것인데 뭐 어때? 지금 고개 숙이고 참배하지 않으면 예배 드리지 못하니까...? 이건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고 정치적인 문제이기에 종교와 상관없는 문제니까? 이런저런 여러 이유들을 들어 신사참배에 동참하였습니다...
그 결과, 20세기초 한반도 땅에 그 엄청난 영적 부흥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이 땅은 결국 남북으로 분단이 되었고, 김일성 정권에 의해 수백만 사상자가 발생한 6.25 전쟁이 일어났으며, 저 북한 땅은 여전히 저주받은 학살과 죽음의 땅으로 60년이 넘도록 철옹성처럼 굳건하게 서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한국교회사를 되돌아 본 것은 WCC 가입문제로 얼마나 큰 어려움을 당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일제 강정기에 신사참배를 하였던 교단들이 WCC를 옹호하고 한국에 대회를 유치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종교다원주의 및 혼합주의가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란 세계의 기독교 교파 간의 연합기구를 말합니다. 한국교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N.C.C.K.)의 명의로 WCC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현재 WCC 부산대회에 참여하고 지지하고 있는 한국기독교 교단을 보면 대한예수회장로회(통합측),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한국구세군,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여의도순복음) 기독교 한국루터회,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한국정교회대주교, 가 참여하고 있으며,
함께 참여하는 타종교로는 로마카톨릭(천주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대교, 원불교, 유교, 공산주의, 점술가, 시크교, 심령술사, 마술사, 무당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WCC의 신학적 기반은 종교다원주의이며, WCC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한 교회통합이 아니라 모든 종교들의 통합입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WCC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유일성을 부정하고 기독교 역시 많은 종교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기독교는 구원에 이르는 여러 가지 방법들 가운데 하나인 셈입니다. 실제로 WCC는 무속종교와 아프리카의 토착종교, 마녀들의 마술과 점성술, 그리고 뉴에이지 운동까지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수용하고 있습니다. WCC는 무당의 푸닥거리조차 성령의 역사로 보며 영지주의를 정당한 기독교로 승인합니다.
WCC는 이웃 사랑을 우상화하여 하나님에 대한 순종보다 앞세웁니다. WCC는 하나님께서 가증한 죄악이라고 정죄하신 동성애를 오히려 지지합니다. 인권을 빙자한 이웃 사랑의 실천을 위해 하나님보다 더 의로운 척하고 하나님을 가르치려 들며 더 나아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이런 WCC 제10차 총회가 오는 2013년 10월 30일 부산에서 개최됩니다. 이 총회의 한국유치준비위원장 김삼환 목사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너무나 놀라운 기적이다. 한국교회 모든 성도의 기도 덕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 권오성 전 총무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제 세계교회와 더불어 세계평화와 정의, 인권문제 등 사회적 선교에 관심을 갖고 기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WCC 총회 한국 유치가 그렇게 감사할 일입니까?
역사적으로 WCC운동은 한국교회 분열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WCC운동이 출발할 당시 한국 장로교회는 고신, 기장, 그리고 총회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고신은 신사참배 문제로 1952년에 분립하였고, 기장은 자유주의신학 문제로 1953년에 분립하였습니다. 그리고 1959년 총회의 분열은 WCC운동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으로 인하여, WCC 회원으로 잔류하기를 찬성하는 통합(연동측)과 반대하는 합동(승동측)으로 분열하게 된 것이다.
7년마다 개최되는 WCC운동의 9차에 걸친 지난 역사를 뒤돌아보면, WCC운동은 변함없이 비성경적인 교회 통일에 대한 이상을 강조해 왔습니다. 이러한 WCC운동은 당초에 우려하고 경계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탈기독교적인 종교다원주의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리고 세계 교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지난 9차에 걸친 역사를 되돌아 보면, 1948년 8월 3일 1차총회는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렸는데. 참석자 대부분이 자유주의자였으며, 공산주의는 가난과 불완전으로부터 구원의 수단이라는 용공주의를 내세웠으며, 1954년 8월 2차총회는 미국 에반스에서 열렸는데, 세상의 모든 악을 퇴치시키기 위한 World community를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1961년 7월 3차총회는 인도 뉴델리에서 열렸는데, 마르크스주의는 정의사회 구현을 위한 필수이념이라는 성명서을 채택하고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혼합주의를 시도하고 해방신학을 받아들였다. 1968년 7월 4차총회는 스웨덴 웁살라에서 열렸는데, 공산혁명가 게릴라들에게 자금 지원을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하였으며, 1975년 11월 5차총회는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렸는데, 로마카톨릭,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대교, 시크교가 참석하였으며 마르크스 게릴라운동을 묵인하고 각기 다른 성생활을 묵인하였으며, 1983년 7월 24일 6차총회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렸는데, 오직 예수를 부인하고, 예수를 믿지 않아도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채택하였으며 1991년 2월 7차총회는 호주 캔버라에서 열렸는데, 죽은 영들을 위로하고 기도한답시고 차례로 불러들이는 초혼제를 지내는 무속신앙을 접목하고, 범신론적 종교혼합주의를 채택하였으며, 1998년 12월 8차총회는 짐바브웨 하라레에서 열렸는데, 일부다처제를 주장하고, 동성애를 허용하는 안을 채택하였으며
2006년 2월 9차총회는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열렸는데, 성적 소수자들 즉 동성애자들에게 성직을 허락하는 제도적 구조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WCC의 이런 문제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 1) 성경의 신적 귄위를 부인하며, 2)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개인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의 기독교 구속의 진리를 무위로 만들며, 3) 세계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같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합니다. 이 말은 불교를 믿으나 이슬람을 믿으나 기독교를 믿으나 다 같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4) 개인 구원대신 사회적 구원, 즉 정치적 억압이나 계급에서 오는 탄압등을 구조적 개혁이나 계급투쟁 또는 혁명을 통해 해방시키는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상을 가진 자들이 주도하는 WCC가 부산에서 굿판을 벌이려고 합니다. 이제 2013년 10월 30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WCC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그 정체를 알지 못하고 순수한 기독교연합운동 또는 복음운동 행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WCC 한국지부격인 KNCC 홈페이지에 실린 저들의 기도문을 보면, 오, 하나님 부처님! 살려 달라 매달려야 하는 건 우리 자신인데 거꾸로 당신이 우리를 향해 애원하시나요? 무력한 당신, 한없이 작은 당신, 아직도 십자가에 서 내려오지 못하는 당신 한 중생이라도 더 구제하기 위해서 극락 언저리를 서성대는 당신 땅바닥에 납짝 엎드려 아래로 아래로 오랜 세월 흐르는 강물은 바로 당신의 눈물입니다. 사랑이고 자비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부처님, 성모 마리아와 소태산 대종사님의 마음을 연하여 오늘 4대 종단의 종교여성이 일심으로 간구하오니 부디 이 땅에서 죽임의 굿판 대신에 신명나는 살림의 굿판이 벌어지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나무아미타불, 아멘 이 기도문이 저들의 종교혼합주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실태에 대하여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잘못된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생명을 걸고 대항하지 않습니다. 자기 보신주의에 급급하여 숨 죽이고 있습니다. 기존 세대는 그렇다치고,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 할 다음세대에 과연 우리는 무엇을 물려줄 수 있습니까? 이제 우리는 WCC를 강력하게 비판해야 하며 이 땅에 저들의 잘못된 신앙의 작태들이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세대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WCC는 9차에 걸친 회의를 하면서 눈뜨고 보지 못할 온갖 악행을 행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가나안족속들의 우상숭배를 따라하면서 하나님을 버린 것처럼, WCC는 기이한 방법을 동원한 우상숭배부터 초혼제를 지내는 등으로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집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들의 대표적인 극악무도한 잘못된 것들을 살펴보면, WCC 카나다 뱅쿠버에서 열린 6차총회 2부순서로 유대교, 이슬람교, 로마카톨릭교, 힌두교, 시크교, 일본의 신도교 등 15명의 타 종교인들이 나와서 십자가를 떼어 버리고 십자가 대신 큰 통나무 기둥을 세워 놓고 그 앞에서 춤을 추며 혼합예배를 드렸으며,
오스트리아 캔버라에서 열린 7차총회에서는 개회행사로 초혼제를 지냈습니다. 무당신학자로 알려진 미국유니온신학교의 정현경교수가 기조강연자로 나와서 무릎꿇고 초혼문을 읽으면서 초혼제를 진행하였는데, 초혼문의 일부내용을 보면 애굽의 하갈의 영이여! 아브라함과 사라에 의해 착취당하고 버림받은 검둥이 여성 하갈의 영이여! 우리아의 영이여! 잔다크의 영혼과 중세기에 화형으로 살해된 무당의 영이여! 토착민의 영이여! 인간의 금전욕에 고문당하고 착취당한 흙, 공기 물의 영이여!...등등입니다.
초혼제를 지낼 때 정현경교수는 무명옷 차림으로 사물놀이 패를 앞세우고 호주 원주민 두 사람과 토속적인 무속춤을 추었으며, 춤을 추다가 멈추고 향불을 담은 그릇을 들고 한 맺힌 영혼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불에 태워 날리면서 초혼문을 읽었던 것입니다.
초혼제를 주도한 정현경은 히말라야 산에서 1년간 수도를 했고, 계룡산 신원사에서 머리 깎고 스님들과 살았던 사람이며, 불교 도교 이슬람 공부를 한 자였습니다. 그는 WCC 대회에서 성령을 고대 아시아의 신들과 동일시 하였으며, 그 곳에 모인 자들에게 나의 내장은 불교의 내장이요, 나의 심장은 불교의 심장이며, 오른쪽 두뇌는 유교도의 두뇌이며, 왼쪽 두뇌는 크리스쳔의 두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정현경은 WCC를 주도하는 미국 유니온신학교의 자유주의신학을 한 자이며, 성경은 종이에 글씨를 인쇄하여 제본한 책이며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자입니다. 우리나라에 유니온에서 보급하는 파란색성경이 이 자들이 보급하는 성경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젊은이들이여! 종교다원주의가 얼마나 위험하고 잘못되었는지를 아셔야 합니다.
종교다원주의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타 종교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는 잘못된 사상입니다. 이런 잘못된 주장에 절대로 미혹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들이 말하는 동성애, 용공주의들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들입니다. 더럽고 추한 저들의 행위는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진멸한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위기 한가운데 태풍의 눈처럼 서 있습니다. WCC 부산총회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종교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를 내세워 WCC가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금번 부산총회는 대단히 위험한 집단의 모임입니다. 저들이 모임을 갖는 장소는 부산 벡스코 건물입니다. 그곳에는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와 바티칸 베드로성당의 오벨리스크에 있는 상징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신화에서 유래되었는데 여신 이시스의 남편 오시리스의 성기를 의미하며 또한 태양신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부산벡스코 오벨리스크)
그리고 이단인 일루미나티의 대표적인 상징인 피라미드와, 두 기둥, 그리고 saturn(satan의 별)을 상징하는 정육면체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제 2 벡스코 전시관의 모습은 전시안 모양을 하고 있다. 오는 10월 wcc 부산총회가 열리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전시안(호루스)의 은총 속에서 종교통합을 위한 wcc 모임이 열리는 것이다. 호루스를 이집트에서는 고왕국시대부터 태양신 라가 국가적 절대신으로 숭배 받으면서 태양을 상징하는 라의 눈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또한 이시스와 호루스 신화가 대중화되면서 호루스의 눈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태양신 라로부터 왕권을 세속받은 호루스가 파라오와 왕권을 수호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호루스의 눈"은 파라오의 왕권을 보호하는 상징이 되었다고 합니다. 카톨릭 힌두교/요나와 링가 이슬람/카아반의 블랙스톤 벡스코전시안(호루스)
우리 한국 교회사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는 자들의 인본주의로부터 복음을 수호하기 위하여 옥고를 치른 자들을 배격하고 지배해 왔습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우상숭배를 근절하고 이단을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순교정신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WCC가 역사적으로 그 동안 걸어온 길과 발표했던 선언문들을 분석해 보면, WCC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상대화하고 선교목적을 영혼 구원보다 사회구원에 두어 교회를 해방기구로 활용하며 종교다원주의를 주창하고 혼합주의를 용인한다며 WCC는 각종 종교단체들의 혼합체로, 기독교 위장세력이자 교회분열의 주범 이라고 비판했습니다.
WCC는 도저히 정통 기독교가 아닌 이단중의 이단이라면서 교계 지도자들이 쌍심지를 켜면서도, 진짜 이단 앞에서 납득이 안 가는 행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목회자로서 크리스챤으로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WCC는 자신들은 역사적 기독교의 정통을 따르는 연합집단이며, 교회를 위한 연합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WCC의 홍보 자료들이 얼마나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것인지는 그들의 문서와 실제적인 활동상황을 살펴보면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제10차 WCC부산총회는 한국기독교 전체를 기만하는 대회입니다. 한국교회의 성경적 신학과 신앙을 파괴하고, 자유주의와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로 한국교회를 파괴하려는 교활한 사탄의 침투 활동으로 보아야 합니다. WCC가 사용하는 신학적인 용어와 저들이 말하는 복음, 선교, 교회, 등은 비록 겉으로는 같은 정통적인 용어를 사용하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기독교의 절대적인 구원과 구원의 유일성을 거부하는 WCC는 결코 정통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추구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
WCC의 이런 교활한 위장과 가면을 쓴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WCC를 마치 복음적이고, 정통적인 기독교연합단체로 알고 있지만 실상 그 정체는 사탄의 사악한 거짓이 가득한 하나님의 저주받은 집단입니다. WCC는 결코 기독교의 모임이 아닙니다. 그들은 거룩한 기독교 모임인 것처럼 위장하고 가면을 쓴 단체입니다. WCC의 실체를 가리고 거룩한 교회를 파괴하기 위한 사탄의 연합단체입니다.
WCC는 기독교의 중심교리와 복음의 유일성,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구원, 교회의 유일한 가치, 타종교의 거짓에 대해서, 로마천주교의 이단성과 이교성( 개신교를 교회로 인정하지 않는 음녀의 교회), 성경의 영감성 등 이런 문제에 대하여 한번도 성경을 따른적이 없습니다.
이런 WCC를 왜 한국교회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까? 교회는 WCC의 위선과 가면을 볼줄 모르는 재앙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닫고 WCC를 배격해야 합니다. WCC는 하나님의 저주가 가득한 재앙의 근원지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3.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목회자들의 관심과 우리 주님의 관심은 길 잃은 양을 어깨에 메고 집에 돌아와 기뻐하며 이웃을 불러 잔치하며 그 양은 다시는 교회를 떠나지 않으며 잘 성장하여 목자와 함께 다시 오실 주님을 고대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기복적인 바탕 위에 성장해 온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나 인격적인 면보다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잘 먹고 잘 사는 것과 돈을 많이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오래살고, 부자되고, 출세하고, 명예를 얻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어렵게 살아온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회가 이런 것들이 신앙의 핵심적인 것처럼 잘못 강조하여 근본적인 신앙을 흐트려 놓았습니다.
진보계통의 교회는 기복적인 것을, 보수주의 계통의 교회는 타계적인 신앙을 강조해 왔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현대교회가 물질주의와 세속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타계신앙이 필요합니다. 옛날에 순교자들이 죽음 앞에서 비굴하지 않고 목숨을 바쳤던 것은 타계 신앙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천국의 존재에 대하여 미국 교인들은 80%가 인정하였고, 한국 교인들은 30%였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타계신앙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타계신앙이 없기 때문에 희생을 거절하고 얄팍한 기복신앙에 빠지고 이단과 사이비 등에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교회의 3대 요소는 말씀과 성례와 권징입니다. 초대교회는 이것이 실천되었으나 지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먼저 말씀을 보면, 과거에는 강해설교가 많았지만 현대는 성경 본문을 읽고 동서남북 이야기를 합니다. 평신도들이 알아듣기 쉬운 진정한 복음을 설교하지 않고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설교를 하여 성도들의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고 부흥이 정지된 상태입니다.
성례를 살펴보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살 찢고 피 흘리신 고난에 동참하는 통회 자복의 시간을 경건하고 엄하게 집례하지를 않고 연례행사로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권징을 살펴보면 교회 내 많은 범죄자가 있지만 권징하지 않는 이유는 본 교회를 이탈하는 것이 두려워서입니다. 따라서 권징이 두려워 타 교회로 떠난 자가 다시 범죄를 자행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이제 우리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이 세우신 영광스러운 교회는 사단의 세력 앞에 굴복하지 않고 왕성해 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광스러운 승리는 항상 하나님 편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악한 영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우리는 영적으로 무장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오직 말씀인 성령의 검을 들고 평안의 복음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맑은물 지혜샘(맑은샘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 맑은생명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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