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文在寅, 1953년 1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2]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이끌며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하다 서대문 구치소에 투옥되었고 대학에서 제적 당했다. 출소 후에는 신체검사도 없이 바로 군에 강제징집 되었고 훈련소에서 특전사로 차출되었다. 군복무 중 최우수 특전사 표창을 2회나 수상했다. 제대 후에는 학적이 회복되어 복학 했으나, 다시 전두환 군부독재에 항거하다 청량리 구치소에 투옥되었고, 옥중에서 사법시험 2차, 3차에 합격하며 극적으로 풀려나왔다. 이후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연수원을 최우수 성적[3]으로 수료하고 연수원 내 최고상인 법무부장관상도 수상했으나, 학생운동 전과 때문에 법원에서 임용을 거부했다. 우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희망하던 판사 임용이 이례적으로 거부된 후, 고향 부산으로 내려가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오랜 기간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2003년에 참여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역임하였다. 2004년, 자리에서 물러나 히말라야로 트랙킹을 떠났고, 히말라야 체류 중 노무현의 탄핵 소추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의 간사를 맡았으며,[4]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제19대 총선에 출마하여 부산 사상구에서 당선되었다. 이후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였고, 같은 해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등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 제18대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이후 무소속으로 출마한 안철수가 문재인과의 단일화 및 경선 룰 협상을 하던 중, 돌연히 사퇴한 뒤 문재인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졌으나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2014년 12월 29일에 공식적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였고, 박지원, 이인영 등과 겨루어 이듬해 2월 8일에 당대표에 당선되었다.
유년 시절[편집]
문재인은 1953년 1월 24일에 경상남도 거제 거제면 명진리 694-1번지[1] 에서 아버지 문용형과 어머니 강한옥 사이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문용형은 함경남도 흥남의 남평 문씨 집성촌인 솔안마을 출신으로 당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이름난 수재로 흥남시청에서 농업과장으로 근무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12월 23일에 흥남 철수 작전 무렵에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가족과 함께 몸을 싣고 남쪽으로 겨우 피난해 내려왔다.[5] 아버지는 거제에 정착한 후 공무원 경력을 제시하며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노무자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으나, 수입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계란 행상을 해야만 했다. 문재인의 가족은 거제도에서 제대로 살 수 있는 거처가 없었기 때문에 문재인이 태어날 때에도 셋방을 살던 주인집에 임산부가 있다는 이유로, 산모가 진통 중에 이웃 집에 옮겨가 출산을 해야할 정도로 곤궁한 생활을 했으며, 이에 문재인의 생가는 실제 그가 살던 집이 아니었다. 결국 문재인의 부모는 자녀들의 교육을 생각해 부산으로 이사했으며, 문재인의 서류상의 본적은 부산 영선동으로 되어 있다. 문재인은 남항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가난 때문에 학교 바로 위의 '신선성당'에서 양동이를 들고 줄을 서서 정기적으로 배급을 타먹어야 했다. 배급을 받으러 온 문재인에게 수녀들이 귀엽다며 자주 사탕과 과일을 쥐어주었기 때문에 문재인에게는 수녀들의 모습이 천사의 모습으로 보일 정도로 감화가 되어 그는 천주교에 입교하고 세례를 받았다.
학창 시절[편집]
1965년에 남항국민학교를 졸업한 문재인은 당시 명문이던 경남중학교에 수석 입학했고, 1968년에 졸업한 후에는 당시 한강이남 최고의 명문고라 불리던 경남고등학교에 수석 입학했다.[6][7] 고교 시절 초기에는 '문과에 문재인, 이과에 승효상'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학업에 두각을 나타냈지만, 말기에는 극도로 가난한 자신의 처지에 낙망, 술·담배에도 손을 대며 방황을 하다 입시에 실패, 서울대학교 진학도 이루지 못했다.[8] 문재인은 졸업 후 1971년 종로학원 진입 시험에서도 일등을 하며 학원비를 면제받고 재수를 시작했지만,[9] 서울에서 계속 재수 생활을 이어갈 만큼의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에, 끝내 자신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이북에서 내려와 부산과 서울에서 경희대학교를 일으킨 조영식 박사의 권유를 받고,[10]1972년 4년 전액장학금을 약속한 경희대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문재인은 경희대 법대 시절 운동권으로서 총학생회장이던 강삼재를 대신하여 당시 총학생회 총무부장로서 집회를 주도하다가 1975년 4월 11일 집회 때 구속되어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었고, 그 해 6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출소 후 강제로 군에 징집되어 1975년 8월에 육군에 입대하였고 대한민국 39향토보병사단 훈련소를 거쳐 특수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 특전여단 제3대대에서 복무했다. 군복무 중 당시 특전사 사령관 정병주와 여단장 전두환으로부터 두 차례의 최우수 특전사 표창을 수상했다.[11] 전역 후 1980년에 경희대 법대를 졸업한 후 전두환 정권에 항거하다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청량리구치소에 수감 중, 경희대학교의 조영식 총장의 신원보증 아래 제22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한 후에 극적으로 석방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