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가 만든 하이브리드 쿠페와 메르세데스-벤츠의 접이식 하드톱 컨버터블이 대결을 펼친다. LC 500h와 SL 400이 각각 혁신과 관록을 앞세우며 맞붙었다
렉서스가 만든 슈퍼카 LFA는 놀라운 차다. 이와 달리 렉서스 퍼포먼스 쿠페는 겉보기에만 화려할 뿐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LC가 등장하면서 렉서스에 커다란 변화가 시작됐다. 시승차는 LC 500h. 엔진과 전기모터, 배터리가 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연료 효율에서도 강점을 보인다. 가격이 비슷한 메르세데스-벤츠 SL은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은 없지만 멋있는 전동식 하드톱 루프를 갖췄다. 7만5000파운드(1억1000만원)를 들여 이 차를 살 때 어떤 차가 더 나은지는 고민해볼 문제다.
렉서스 LC 500h는 2+2 형태 쿠페다. 디자인은 보는 내내 만족스럽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넣었지만 가속성도 뛰어나다. 멋진 디자인 속에 감춘 파워트레인 기술은 훌륭하다. LC는 렉서스가 최근에 만들어 낸 모델 중 가장 훌륭하다. 이 시장에서 승리하려면 세련된 스타일과 편안한 승차감은 물론, 첨단기술에서 우러나는 정교한 움직임과 스릴까지 운전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한마디로 매우 힘든 일이다.
LC 500h에서 가장 먼저 관심이 가는 곳은 스타일이다. LC를 만들기 전 콘셉트는 섬세하고 날카로웠다. 양산차로 나온 LC 500h 역시 콘셉트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보닛 아래에는 요즘 유행하는 터보차저 엔진은 없다. 자연흡기 엔진과 전기모터가 결합한다. 렉서스의 새로운 글로벌 아키텍처인 GA-L 플랫폼은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효율을 높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LC 500h에는 V6 3.5L 엔진과 전기모터를 결합해 최고출력 359마력을 내는 멀티 스테이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넣었다. 1985kg 무게를 생각하면 엄청난 출력은 아니다.
대신 최신 변속기가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는 역할을 해낸다. LC 500h는 변속기 2개가 맞물려 움직인다. 첫 번째는 CVT. 일정한 회전수에서 최적 효율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두 번째는 4단 자동변속기로 저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토크를 제공한다. 변속기는 소프트웨어 세팅으로 10단계로 구분해 가속성이 우수하고 주행감이 자연스럽다.
기어비에 따른 가속시간은 측정할 수 없었지만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은 측정했다. LC 500h는 SL 400과 비교해 0.5초 빠른 5.8초를 기록했다. 무게를 고려하면 준수한 실력이다. 전기모터는 직진 및 추월가속 성능 향상에 기여한다. 전기모터가 매번 좋지만은 않다. 제동할 때 배터리 충전을 돕기 위해 제너레이터가 작동하는데 페달과 이질감이 있어서 브레이크를 밟을 때 자신감이 떨어진다. 특히 시내에서 차를 부드럽게 세울 때 어렵다. LC 500h가 지향하는 편안한 GT 성격과는 맞지 않는다.
다른 부분은 만족스럽다. 마무리는 정교하고 품질은 뛰어나고 승차감은 매우 안락하다. CVT가 가끔 답답하기도 한데 낮은 속도에서는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다. 순수 전기모터로만 움직일 때 만족감은 더 커진다. LC의 주행모드는 6가지(컴포트, 에코, 노멀, 커스텀,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로 나뉜다. 좀 많다. 모드마다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아서 3가지 구성이면 충분하다. LC는 하이브리드 신모델치고는 SL 400과 비교해 효율이 떨어진다. 시승 중 테스트 연비는 1L에 12.3km로 12.4km인 SL 400보다 조금 안 나왔다. 트렁크 공간은 172L로 배터리팩 위치 때문에 손해를 봤다.
LC 500h는 렉서스가 한 단계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신모델이지만 운전이 아주 편하지는 않다. 특히 후방 시야가 좋지 못하고, 차선을 변경하기도 쉽지 않다. 10.3인치 스크린은 많은 기능을 보여주지만 렉서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사용이 쉽지 않다. 작동법이 까다로운 터치패드는 운전 중에 사용하기 힘들다. 독창성은 고성능 럭셔리 쿠페 시장에서 최고 수준이다. 실내는 아름답고, 특히 부드러운 가죽과 고급스러운 플라스틱으로 마무리한 대시보드와 도어트림이 눈에 들어온다. 품질은 SL 400보다 좋다.
편안하고 온순한 LC 500h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다. 세련된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움직임이 민첩하다. 속도를 높여야 할 때는 아낌없이 힘을 발휘한다. SL 400보다 활용 범위가 넓다.
벤츠 SL은 렉서스의 신모델 등장이 반갑지 않다. 몇 년 동안은 판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게 분명하다. 접이식 하드톱은 LC 500h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날씨가 좋을 때는 오픈 에어링을 즐길 수 있고, 톱을 닫으면 정교한 쿠페가 된다. 시승차에는 V6 터보차저 엔진이 들어있는데 여전히 성능은 만족스럽다.
AMG 라인은 역동적인 감각이 매력적이다. 날카로운 렉서스 디자인과 비교해도 존재감에서 밀리지 않는다. 작지만 뒷좌석 2개를 갖춘 LC 500h와 비교해 2인승 구조인 SL은 실용성이 떨어진다. SL은 2013년 6세대 출시 이후 2016년 부분변경을 거쳤다. 현대적인 감각을 입힌 LC 500h와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내세울 부분은 LC 500h에 없는 접이식 하드톱이다. 시속 40km 이하에서 단 20초 만에 언제든지 여닫을 수 있다. 575파운드(84만원)를 더 주고 에어스카프 옵션을 선택하면 목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와 추운 겨울에도 문제없다. 열선시트는 기본이다.
이 밖에도 7만5000파운드(1억1000만원) 가격표가 달린 모델에는 거의 모든 장비가 기본이다. 내비게이션 시스템과 블루투스를 포함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LED 헤드램프, 후방카메라를 포함한다. SL 400의 운전석은 LC 500h와 비교해 좁다. 가격이 비싼 차치고는 아쉬운 부분이다. 지붕을 열면 조금은 해소되지만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하드톱이라서 닫으면 높이가 낮아 머리 공간이 부족하고 열면 트렁크 공간이 줄어든다.
역동적인 감각은 알맞게 조율했다. SL 400은 운전자가 원하는 만큼 예리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롤이 많아 스티어링의 정교함이 떨어진다. 적응형 댐퍼는 단단함보다는 편안한 주행에 초점을 뒀다. 상태가 좋지 않은 도로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을 때, 침착함을 잃고 떨린다. 감성적인 측면에서는 강점을 보이고 고속도로에서는 한결 쾌적하고 여유롭다. 정속주행 할 때는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최고출력 362마력을 내는 V6 3.0L 엔진에서 나오는 소리는 중독이 강하다. 톱을 열면 더욱 생생하게 들린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97km까지 가속시간은 6.0초. LC 500h와 비교해 0.2초 느리다. 무게는 LC 500h보다 250kg 가볍지만 객관적으로 따지면 무겁다.
트랙션컨트롤을 끄면 움직임이 좋아지지만 변속기가 효율적으로 힘을 전달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른다. 그런데도 파워트레인은 LC보다 한 수 위다. 9단 자동변속기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변속이 부드럽다. 패들시프트를 사용해 수동으로 조작하면 충분히 빠른 반응을 경험할 수 있다. 가속성은 SL이 앞선다. 시속 48km에서 80km, 112km까지 가속시간은 모두 SL 400이 조금 빨랐다.
SL은 톱을 열면 트렁크 공간이 485L에서 364L로 줄어든다. 그래도 LC 500h보다는 192L 크다. 아주 큰 짐만 아니라면 어지간해서는 다 들어간다. SL 400은 하드톱을 선택한 대신에 뒷좌석을 놓쳤다. 반대로 뒷좌석이 있는 렉서스는 공간 활용성이 좋다. 사람을 태우기는 힘들지만 추가 적재 공간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다.
SL의 매력은 톱을 열 때 나온다. 센터콘솔에 배치한 버튼을 누르면 루프가 열리면서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실내는 가죽을 많이 사용했지만 LC 500h의 고품질 플라스틱과 비교해 고급스러움이 떨어진다. 그만큼 SL 400이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다. 7인치 스크린은 요즘 추세에 비추면 크기가 작다. 그래픽이 아주 훌륭하지는 않지만 로터리 컨트롤러는 LC 500h의 터치패드보다 사용하기 쉽다.
SL은 세부 트림 수가 적다. 엔트리 모델이 우리가 시승한 SL 400이다. 위로는 SL 500과 SL 63 AMG가 있다. AMG 라인은 오직 SL 400에서만 선택할 수 있다. 트림이 적다 보니 아무래도 옵션에 더 많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SL 400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여전히 좋지만 비좁은 실내와 구식 인포테인먼트, 만족스럽지 못한 승차감과 진동은 개선이 필요하다. 파워트레인만 가지고서는 LC 500h와 정면 대결하기 힘들다. 단 하나, 지붕이 열린다는 점이 그나마 아직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