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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39. 미사 해설 – 성찬 전례 (3) 예물 준비에 대해서
예물 준비가 이루어지는 동안에 제단에서 사제의 모습을 유심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다음과 같은 순서로 예물이 준비됩니다.
빵 봉헌
사제는 빵이 담긴 성반을 두 손으로 제대 위에 조금 높이 받쳐 들고 조용히 기도한다.
포도주 준비
사제 또는 부제는 성작에 포도주를 붓고 물을 조금 따르면서 속으로 기도한다.
포도주 봉헌
사제는 두 손으로 성작을 제대 위에 조금 높이 받쳐 들고 조용히 기도한다.
봉헌 기도
그 다음에 사제는 허리를 굽히고 속으로 기도한다.
정화 예식
이어서 사제는 제대 한쪽으로 가서 손을 씻으며 속으로 기도한다.
성찬례로 초대
사제는 제대로 가서 교우들을 바라보고 팔을 벌렸다 모으면서 말한다.
① 빵 봉헌 : 동·서양의 차이가 있지만, 서양에서 빵은 기본적이며, 필수적인 것입니다. 하느님 제단에 인간의 필수적인 것을 봉헌함으로써 이 제사가 우리와 별개의 것이 아닌, 우리의 봉헌물로 이루어지는 제사가 되게 하고, 나아가 이 제사를 통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린다는 것이 이 행위를 통해 전달됩니다. 특히 사제가 빵을 들어 올리고 기도하는 행위는 하느님을 향한 “봉헌과 감사”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② 포도주 준비 및 포도주 봉헌 : 포도주는 구약과 신약 시대를 거쳐 교회의 중요한 음식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최후의 만찬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포도주를 들고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흘리는 자신의 피”라고 말씀하신 후부터 인류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극진한 사랑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포도주 준비와 포도주 봉헌 역시 구원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구원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③ 봉헌 기도 : 미사 중에 사제가 바치는 기도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바로 주례 기도와 사적 기도입니다. 주례 기도는 전례를 집전하는 사제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교회와 공동체 전체의 이름으로 바치는 공적 기도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주로 소리를 내어 공동체를 향하여, 나아가 공동체를 대표하여 바치는 기도입니다. 이와 달리 사적 기도는 주례가 자신의 봉사 직무를 더욱 잘 수행하기 위하여 개별적으로 바치는 기도로써 언제나 침묵 중에 바칩니다. 특히 예물 준비 중 조용히 바치는 “주 하느님, 진심으로 뉘우치는 저희를 굽어보시어, 오늘 저희가 바치는 이 제사를 너그러이 받아들이소서.” 기도는 빵과 포도주 봉헌 이후, 이어질 성찬례를 주 하느님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십사 청하는 기도입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40. 미사 해설 – 성찬 전례 (4) 예물 준비에 대해서
④ 정화 예식 : 예물 준비가 끝나면, 주례사제는 제대 한쪽으로 가서 조용히 손을 씻으며 다음과 같이 사적 기도를 바칩니다. “주님,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없애 주소서.” 이 기도는 유다인들이 식사 전 손을 깨끗이 씻었던(마르 7,3-4) 전통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예식 안에 담긴 상징성은 깨끗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성찬례에 임하겠다는 내적 정화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⑤ 성찬례로 초대 : 예물을 제대 위에 차리고 정해진 예식을 마치면, 사제는 함께 기도하자고 신자들을 초대합니다. 이 초대문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예식서에 나온 부분을 다시금 읽어 보고, 되새겨봅니다.
사제는 제대 한가운데로 가서 교우들을 바라보고 팔을 벌렸다 모으면서 말한다.
† 형제 여러분, 우리가 바치는 이 제사를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기꺼이 받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교우들은 일어서서 응답한다.
◎ 사제의 손으로 바치는 이 제사가 주님의 이름에는 찬미와 영광이 되고 저희와 온 교회에는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가 함께 모여 드리는 미사는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제사이자, 기도 그 자체입니다. 그렇기에 주례사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가 봉헌하는 이 거룩한 제사를 받아주십사 청하고, 신자들에게는 거룩한 제사를 봉헌하는 데 합당한 마음을 지니자고 초대합니다. 이러한 초대에 신자들은 주님의 이름을 통해 봉헌되는 이 제사가 우리 공동체와 온 교회, 그리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응답합니다. 즉, 이 부분은 성찬례를 준비시키는 목적과 동시에 거룩한 미사의 합당한 목적을 일러주는 부분입니다.
[전례력 돋보기] 성 요셉 대축일이 3월 20일?
3월 19일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이다. 성모님의 든든한 배우자로 또 예수님의 지상 생활의 아버지로서 보호와 양육을 묵묵히 수행한 요셉 성인이기에 교회는 커다란 공경심으로 성 요셉 대축일을 지낸다.
요셉 성인은 복음서에서 한마디 말이 없다. 천사의 말을 들을 뿐이다. 꿈에 마리아와 파혼하지 말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라는 천사의 알림을 들었을 때도, 헤로데의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며 이집트로 떠나라는 분부에도, 그리고 안전해졌으니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들었을 때도 요셉은 그저 순명했다. 불확실하고, 의심스러우며 자신의 방식과 다를 수도 있었지만 그는 침묵하며 하느님의 계획 앞에 자신의 계획을 내려 놓았다. 예수님이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성전에서 잃어버린 아들을 사흘 만에 되찾았을 때도 성모님과 예수님의 대화만 전해질 뿐 현장에 있던 요셉은 묵묵히 말이 없다. 이 세상의 어느 남편, 어느 아버지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오롯이 수용과 침묵, 그리고 인내의 모습이 바로 성 요셉의 삶이었다.
그저 묵묵히 삶을 살아서일까? 성 요셉에 대한 기록은 그의 죽음 이후에도 없다.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공경도 비교적 늦은 9세기가 되어서야 발전되기 시작했지만 그 확산은 빨랐다. 폭넓은 대중 신심으로 인해 비오 9세 교황이 그를 1870년 보편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그 이전인 1841년 8월 22일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그분의 배필 성 요셉을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로 정했다. 요한 23세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중에 로마 전문(Canon Romanus) 이라 불리던 감사기도 1양식의 전구 부분에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의 이름을 표기했고,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머지 감사 기도에도 성 요셉의 이름을 부르게 하여 매일 미사에서 그에게 전구와 보호를 빈다.
이렇게 믿음과 덕행에서 큰 모범이 되는 성 요셉 축일이 올해는 왜 20일로 이동되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3월 19일이 사순 제4주일이기 때문이다. 교회 전례력은 같은 날에 축일이나 기념일이 겹치거나 주일에 다른 축일이 있으면 그 거행의 우선 순위를 지정해 놓았다. 관련 항목은 다음과 같다.
「주일은 이렇게 중요하므로 대축일과 주님의 축일에만 자리를 내준다. 그러나 대림·사순·부활 시기의 주일은 모든 주님의 축일과 모든 대축일보다 앞선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나 주님 부활 대축일이 아닌 이런 주일에 오는 대축일들은 뒤따르는 월요일로 옮겨 지낸다.(전례 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 5항)」
즉 주님의 날, 주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매주 기념하는 날로 근원적인 축일이다. 따라서 주일에 축일을 지내는 일은 주님의 축일이거나 성인의 대축일만 가능하다. 가령 올해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8월 6일은 주일이다. 그래서 연중 제18주일 대신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을 지낸다. 그러나 이는 연중 시기에 해당되고, 대림·사순·부활 시기의 주일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 시기 주일은 모든 주님의 축일과 대축일보다 앞서는 아주 높은 등급의 주일이다. 이로 인해 성 요셉 대축일을 3월 19일 주일이 아닌 월요일인 20일에 거행하는 것이다.
전례력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기준을 알고 보면 한결 이해하기 쉽다. 올해 성 요셉 대축일은 이런 연유로 주일이 아닌 월요일로 지내게 된 것을 숙지하면서, 사순 시기 주일의 의미 또한 되새기며 성인의 축제도 지내는 더욱 풍요로운 3월이 되었으면 한다.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38. 미사 해설 – 성찬 전례 (2) 성찬 전례 구성과 예물 준비에 대해서
성찬 전례는 예물 준비, 감사 기도, 그리고 영성체 예식으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구성은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72항에서 제시된 대로 각각의 분명한 특성이 있습니다.
1) 예물 준비에서, 빵과 포도주와 물, 곧 그리스도께서 손에 드셨던 똑같은 재료들을 제대에 가져간다.
2) 감사 기도에서, 하느님의 모든 구원 업적에 대하여 감사를 드린다. 예물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
3) 빵 나눔과 영성체를 통하여, 사도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손에서 받아 먹고 마셨듯이, 신자들은 비록 수가 많을지라도 하나의 빵에서 주님의 몸을 받아 먹고 하나의 잔에서 주님의 피를 받아 마신다.
첫 번째, 성찬 전례 중 예물 준비. 제물 없는 제사가 없듯이, 성찬례 준비는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이 될 빵과 포도주를 제대에 봉헌함으로써 시작합니다. 초기 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 자신들의 정성과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서 빵이나 포도주를 비롯하여 식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봉헌했고, 이 봉헌물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나누어 주거나 성직자들의 생활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11세기 이후 화폐의 발달로 인하여 예물봉헌이 현금으로 바뀌었습니다. 봉헌된 빵과 포도주는 제대로 옮기고 금전이나 다른 예물은 성찬의 식탁이 아닌 알맞은 곳으로 옮겨 봉헌하였습니다. 특별히 오늘날 예물봉헌의 쓰임은 이웃을 위한 자선과 성직자 생활비, 교회 운영비, 교회 관련 건물 유지비 등을 위해 사용됩니다. 예물 준비 때, 특이한 점은 신자들이 봉헌예물을 위해 행렬하는 부분입니다. 이 예절은 20세기 초 전례 부흥 운동 때 교회 내에서 되살리려는 노력으로 말미암아 제2차 바타칸 공의회 이후 미사 전례에서 다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빵과 포도주를 회중들의 대표가 사제에게 봉헌하기 위해 운반하고, 회중은 뒤이어 봉헌금을 바치는 행렬에 참여합니다.
성찬례에 쓰이는 빵과 포도주의 의미는 당시 유다인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양식임을 뜻합니다. 물론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가 있지만 빵이 갖는 의미는 가장 보편적이고 기본적이며 필수적인 생활양식으로써 “삶의 기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미사 때 봉헌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을 봉헌한다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다음 시간에도 “성찬 전례 중 예물 준비”에 대한 설명이 계속됩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37. 미사 해설 – 성찬 전례 (1) 성찬 전례의 의미
우리는 말씀 전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받았고, 하느님 말씀 안에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이제 미사는 성찬 전례를 시작함으로써 구체적인 파스카 신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성찬 전례는 예물 준비, 감사기도, 영성체 예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72항의 내용은 성찬 전례의 핵심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만찬에서 파스카의 희생 제사와 잔치를 제정하시고, 이를 통하여 십자가의 희생 제사가 교회 안에서 언제나 지속되게 하셨다. 사제는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주님께서 스스로 행하셨고 당신을 기억하여 행하도록 제자들에게 맡기신 것을 그대로 재현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빵과 잔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빵을 쪼개시고, 빵과 잔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먹어라. 받아 마셔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의 잔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라. 이를 행하여라.’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 말씀과 행동에 맞추어 성찬 전례의 거행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배열해 놓았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72항에 의하면, 성찬 전례는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하신 말씀과 행위를 반복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성찬 전례 중요 행위 : 빵과 잔을 들고 감사를 드리는 행위, 빵을 쪼개고 나누는 행위
성찬 전례 중요 말씀 : 받아 먹어라. 받아 마셔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의 잔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라. 이를 행하여라
말씀과 행위의 반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기념하고, 축성된 빵과 포도주를 나눔으로써 공동체의 일치를 이루는 예식임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반복하는 의미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찬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을 주관하여 십자가상의 제사를 지금 이 자리(Hic et nunc)에서 재현하고 기념한다는 의미에서 과거의 구원이 아닌 지금의 구원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따라서 성찬례를 통해 구체화된 구원의 신비가 미사에 참석한 이들에게 고스란히 다가온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미사 중 기념하는 성찬 전례는 “최후의 만찬의 형식과 절차에 따라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성찬 전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슬기로운 ‘전례상징’] 전례에서의 동작과 자세
언제부턴가 ‘한류(韓流, Korean Wave)’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고, 드라마, 영화, 음악, 음식, 패션, 화장품, 관광, 무술, 산업 등에서 대한민국의 문화가 세계에 알려지는 현상이 점점 범위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국인들의 예의범절이 돋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 세계적인 흥행을 일으켰던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주인공 이정재 씨는 미국 토크쇼에 출연했을 때 환호 속에 등장하여 활짝 웃는 얼굴로 제자리에 선 채 관객들을 향해 깊이 허리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이를 본 해외 누리꾼들은 이 한국식 인사에 ‘겸손과 친절을 갖춘 행동’이라며 극찬했습니다.
이렇듯 동작과 자세는 말 이외에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는 소통의 매개체 중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문화적인 통합 과정을 거치면서 통일되고 일관된 동작과 자세를 전례에서 사용했습니다. 이 동작과 자세를 통하여 하느님으로부터 은총과 말씀을 내려받고, 또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청원을 드리는 소통의 상하운동을 합니다. 머리는 절, 손은 십자성호, 무릎은 무릎 꿇음과 연결하여 그 의미와 전례에서의 활용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느님께는 흠숭을, 다른 대상에게는 공경과 영애를 드리는 절!
인사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인사는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몸을 굽히기, 악수하기, 미소 짓기 등은 원칙적으로 몇 마디 말이나 또는 한마디 말을 덧붙임으로써 그 뜻이 강화되기도 합니다. 신약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은 나자렛의 마리아 집에 나타나 그분께 격식을 갖추어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라고 인사했습니다.
전례에서 “절은 어떤 이나 그의 표상에 공경과 영예를 드림”(로마미사경본 총지침 이하 ‘총지침’, 275항)을 뜻하며, 허리를 굽히는 깊은 절과 고개를 숙이는 절 두 가지가 있습니다.
미사를 시작하면서 사제는 복사들과 함께 입당 행렬을 하여 제단 앞에 이르러 제대에 깊은 절을 합니다. 이 깊은 절은 신경에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 부분(총지침, 136항 참조), 축성된 빵을 거행한 다음, 성작을 거양한 다음, 그리고 영성체하기 전에도 합니다(총지침, 274항 참조). 깊은 절은 하느님에 대한 지극한 흠숭을 드러내는 동작이지요. 다른 나라에서는 입당 때를 제외하고는 무릎 절을 하지만, 한국교회는 무릎 절을 깊은 절로 대신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절은 “하느님의 세 위격을 한꺼번에 부를 때, 그리고 예수님이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이름을 부를 때, 어떤 성인을 공경하여 거행하는 미사에서 그 이름을 부를 때”(총지침, 275항 ㄱ) 합니다. 그래서 영광송에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부분에서 고개를 숙이지요.
삼위일체 하느님을 통하여 구원되었음을 고백하는 십자성호!
전례 학자인 로마노 과르디니(1885-1968)는 “영혼은 몸의 모든 선과 자태와 움직임에서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얼굴과 손을 영혼의 뛰어난 도구이며 거울”이라고 말합니다. 때때로 손짓 하나가 주는 의미가 상당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로마노 과르디니의 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전례 상징에 관한 책인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의 저자인 에곤 카펠라리는 많은 종교에서 “손은 하느님을 지향하고,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을 드러내는 표현”이라 했습니다.
로마 제국에서 죄인에 대한 사형 도구였던 십자가가 “하느님의 어린 양”(요한 1,29)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매달리시면서 ‘구원의 도구’로 바뀌었음을 아실 겁니다. 그리스도인이 십자성호를 긋는 것은 우리 주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셨음을 믿고 고백한다는 의미입니다. 로욜라 이냐시오 성인의 십자성호에 대한 말씀은 깊이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성호를 그을 때 손가락을 우선 이마에 댑니다. 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으신 하느님 아버지를 의미합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몸에 손가락을 댑니다. 이는 아버지로부터 낳음을 받으시고 거룩한 동정녀 마리아의 몸 안으로 내려오신 우리 주님, 성자를 의미합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손가락을 양어깨에 댑니다. 이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그러고 나서 손을 다시 모으면 이는 세 위격께서 하나의 본체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들어가 몸을 굽혀 경배드리세. 우리를 만드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시편 95,6)
한국 성당에서 80년대까지는 있었는데, 지금은 찾기 힘든 것이 장궤틀입니다. 이젠 고해소에서 겨우 찾을 수 있습니다. 13세기부터 보편적인 기도 자세 중의 하나로 자리 잡은 무릎을 꿇음은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을 잘 드러내는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 앞에서 몸을 굽히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지요(요한 13,5 참조).
이러한 동작은 인간을 향해 예수님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태도를 압축하여 보여줍니다.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시편의 다음 구절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이 동작이 주님께 경배를 드리고 겸손을 표하는 자세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들어가 몸을 굽혀 경배드리세. 우리를 만드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시편 95,6)
미사에서는 건강상의 이유나 자리가 좁거나 사람이 너무 많거나 다른 합당한 이유가 아니라면, “성체 성혈 축성 때는 무릎을 꿇어야 한다.”(총지침, 43항)고 말합니다. 중요한 성변화의 순간에는 가장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교우들이 전례 중에 가장 오랫동안 취하는 자세는 서 있는 자세와 앉은 자세입니다. 서 있는 자세는 긴장하고 깨어 있으며 환호하며 준비된 자세입니다. 따라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태양이 솟아오르는 동쪽을 향하여 서서 양팔을 들고 기도했다고 하며, 이는 카타콤바의 벽화 ‘기도하는 사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청하고 묵상하기에 적절한 앉은 자세는 말씀 전례 때 취하는 자세입니다.
전례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할 통일된 동작과 자세는 “거룩한 전례에 모인 그리스도교 공동체 구성원이 이루는 일치의 표지”이며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표현해 주고 길러 줍니다(총지침, 42항 참조). 이렇듯 몸이 취하는 동작과 자세를 통해서 전례 회중은 가장 높은 공경과 흠숭을 드러냅니다.
[특집] 사순 시기, 전례꽃으로 묵상하는 주님 수난
꽃과 나무에 입힌 상징과 말씀, 더욱 깊은 묵상 이끌
“군사들은 예수님께 자주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서는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하며 인사하기 시작했다. 또 갈대로 그분의 머리를 때리고 침을 뱉고서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예수님께 절하였다.”(마르 15,16-19 참조)
사형선고를 받은 뒤 군사들에게 가시관이 씌워진 채 조롱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예수 그리스도는 자주색 옷을 입은 채 가시관에 머리를 찔리는 고통 속에서 죽음을 기다렸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 시기 전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가장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바로 꽃이다. 화려한 색이 모두 사라진 잿빛 나뭇가지, 뾰족한 가시, 죽은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 생명이 살아있는 나뭇가지. 예수 그리스도 수난기의 모든 장면은 전례꽃 한 꾸러미에 모두 담겨있다.
마르고 날카로운 질감의 식물로 절제된 꽃꽂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상징
사순 제1주일이 일주일가량 남은 2월 17일, 전례꽃꽂이 취재차 찾은 역곡성당에는 돌아오는 주일 전례에 놓을 하얗고 노란, 아름다운 색들의 꽃이 진열돼 있다. 오늘 취재를 위해 보여줄 꽃꽂이 꽃들인가 싶어 묻자, 역곡본당 헌화회원 박은희(릿다)씨는 그 반대쪽에 놓인 나뭇가지들을 가리킨다. 거칠고 건조해서 부서지기 쉬워 보이는 나뭇가지와 뾰족한 가시가 있어 위협적으로 보이는 나뭇가지, 색이 바래 죽은 듯 보이는 대나무. 화려한 색의 꽃들과 대비되는 식물들은 식물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버려진 것을 주워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화살나무, 탱자나무, 오죽 등 각자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식물들. 박은희씨는 “회개, 참회, 보속, 희생, 정화를 통한 회심을 의미하는 사순 시기에는 탱자나무나 화살나무 같은 마르고 날카로운 질감의 소재로 전례꽃꽂이를 하며 화려한 장식은 절제한다”고 밝혔다.
사순 시기, 교회나 성당에서 대부분 쓰는 탓에 귀하게 여겨지는 이 식물들은 꽃꽂이를 하기에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잎이 모두 떨어진 화살나무 가지는 표면이 말라 플로랄 폼에 꽂는 과정에서 금세 부서져 바닥에 가루가 가득하다. 탱자나무 가지는 길고 단단한 가시가 빽빽하게 나있어 손으로 잡기조차 힘들다.
“탱자나무의 가시를 잘 피해서 둥그렇게 말아보세요.”
십자가 옆에 놓일 가시관 만드는 것을 보여준다며 박씨는 나뭇가지를 둥글게 말아 가시관 하나를 뚝딱 완성했다. 박씨의 말을 듣고 가지를 구부려 보지만, 단단해서 잘 휘어지지 않는다. 손의 열기로 잘 달랜 뒤에야 겨우 둥그렇게 말린 나뭇가지. 하나를 구부리는 데만 해도 가시에 여기저기 찔려 몇 시간 동안 손가락이 얼얼하다.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완성된 가시관을 머리에 올려놓자, 따가운 가시로 인해 1분도 참기가 어렵다. 성경에서 눈으로 읽는데 그쳤던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이 몸으로 전해졌다. 매년 사순 시기, 날카로운 탱자나무를 이용해 전례꽃꽂이를 하고 있는 박씨도 “매년 할 때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그 마음은 어땠을까, 그 고통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례꽃꽂이는 각 전례시기마다 그 모습이 다르다. 특히 꽃의 색으로 시기를 표현한다. 흰색은 하느님의 영광, 완전한 승리, 기쁨, 환희, 순결의 의미를 담고 있어 예수 승천 대축일과 거룩한 변모 축일에 사용한다. 성령의 불, 순교, 희생과 승리를 표현하는 빨강색은 성경 강림 대축일과 순교 축일에 많이 사용한다. 황금색은 영광, 기쁨, 불변의 표현으로 성탄, 부활,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사용한다. 사순 시기와 대림 시기에는 회개와 보속, 위엄과 엄숙함을 의미하는 보라색이 쓰인다. 생명과 영원을 향한 성장을 상징하는 초록색도 연중시기와 대림 시기, 사순 시기에 많이 사용한다. 시기마다 쓰이는 색이 다르기 때문에 쓰는 식물도 차이가 있다.
주님 부활 대축일에는 백합, 조팝나무, 백장미, 카라 등 흰색 꽃을 사용하며 부활 꽃이라 불리는 방울수선, 노랑 아이리스, 노랑나리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사순 시기 전례꽃꽂이는 색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회개와 보속을 의미하는 보라색, 다가올 생명의 의미를 담은 초록색을 소량 사용한다.
가정에서 전례꽃 함께 만들며 의미있는 사순 시기 보낼 수 있어
잿빛 십자가와 가시관 뒤로 푸른색 그린훅과 보라색 아네모네와 버들이 꽂히자 사순 시기의 느낌이 배가된다. 베테랑 전례꽃 지도자인 박씨의 손길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가 집약된 꽃들. 워낙 손놀림이 빠른 탓에 빈 곳 아무데나 식물을 꽂아 넣는 것처럼 보이지만 박씨는 사순의 의미가 잘 느껴질 수 있는 곳에 식물을 배치하고 있었다.
박씨는 “전례 시기마다 색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주 성경말씀과 어울리는 작품을 완성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꽃으로 성경말씀을 잘 표현하고자 전례꽃꽂이를 시작하고 나서 성경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예쁜 꽃으로 하는 꽃꽂이를 할 때도 행복하지만 손이 아프고 다치는 식물을 다뤄야 하는 사순 시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깊이 묵상할 수 있어 의미가 있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박씨는 “한 주 동안 불만이나 불평을 가지고 있다가도 전례꽃 작업을 하는 금요일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생각하며 마음의 위로를 얻곤 한다”고 말했다.
꽃과 나무에 말씀이 더해지자,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보다 생생하게 전해지게 된 것이다.
박씨는 “특히 사순 시기 꽃꽂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직관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정에서 작은 꽃꽂이를 아이들과 함께 해보길 권한다”고 조언했다. 꽃 도매시장에서 화살나무를 구입해 십자가를 만들고, 탱자나무로 가시관을 만들며 사순 시기 꽃꽂이를 할 수 있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집에 놓을 작은 십자가를 만들고자 손 위에 놓은 화살나무. 다 부서져 죽은 것만 같았던 나뭇가지의 끝에는 연두색 싹이 자라나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은 끝이 아닌, 생명을 향한 시작임을 식물들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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