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같은 겨울비가 오전 나절 추적댔다. 비가 남긴 습기와 만둣집에서 토해내는 증기에 붕어빵 굽는 내가 스며 외투를 파고든다. 예전과 달리 파는 곳을 찾기 어려워, 역세권에서 파생된 단어 ‘학세권’처럼 이른바 ‘붕세권’ 지도가 알음알음으로 공유된다는 풍문을 들었다. 풍문은 그저 풍문일 따름일까. 후문 경비실을 지나가면 붕어빵 노점 몇 곳이 위풍당당하다. 거리 간격도 제법 균형감 있는 세 곳을 그가 한 군데씩 들른다.
달차근한 훈김이 도는 봉투를 안고 그가 온다. 꼬리의 바삭거리는 식감과 풍부한 단팥이 입안에서 어우러진다. 그가 인정한 맛집다웠다. 자매가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는 붕자매 붕어빵이다. 사실 먹음직하니 노르스름한 빛이 도는 마트 앞 붕어빵이 시각적으로는 더 높은 점수를 줄 만했다. 늘 살짝 탄 듯한 갈색이 도는, 그래서 더 바삭하게 느껴지는지 모를 붕자매 붕어빵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3천 원어치당 한 마리씩을 더 주는 횟집 앞집은 부드러움과 촉촉함에 신경을 쓴다는 사장님의 말처럼 집에 당도하면 촉촉함을 넘어 질척이듯 엉겨 있다.
붕어빵에 관한 그의 분석은 살아가는 데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작은 일이라도 증험하거나 현상을 분석함으로써 자신의 지식으로 체계화해야 한다는 신념에 대한 실천일 따름이다. 굳이 나머지 가게의 장점을 찾아내는 것도 중용의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독서로 터득한 습관이다.
소식가小食家인 그가 늘어놓은 세 개의 봉투 속 붕어빵은 영락없는 달제어獺祭魚이다. 달제어란 우수 이후 본격적인 사냥 활동을 시작하는 수달이 사냥감인 물고기를 물가에 차례로 늘어놓는 습성을 본떠 만든 말이다. 옛사람들은 그러한 수달의 모습에서 수신水神에게 제를 올리는 모습을 연상했다. 이 책 저 책 펼쳐놓고 전고典故를 참고하여 시문을 짓는 사람을 비유하여 달제어라 부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먹다 남긴 붕어빵이 아니라 그가 바로 달제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 그는 학문의 끈을 잡았다. 딱히 무언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세상을 좀 살고 보니 진리라 하는 것이 멀리 있지 않더라, 그리고 그 진리를 가장 쉬운 방법으로 일러주는 매개가 책이라는 것을 깨달았노라 말하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유희가 바로 독서가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그의 본격적인 독서 입문은 자기계발서라 해도 무방하다. 아침, 저녁, 십 분, 백 시간 혹은 만 시간 따위의 시간 표지에 관련된 표제와 습관이나 몰입 등의 단어로 이루어진 부제가 붙은 책들은 여전히 그의 서가 한쪽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그런 유의 책을 은근히 낮춰보는 사람을 그는 이해한다. 다만 본격적으로 이론서를 학습하기 전에 학습에 관한 자세와 공부법을 한 번 더 숙지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다. 말하자면 메타 학습을 위한 독서 역시 배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가 책에서 구하는 지식은 비단 학문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그에게 대놓고 질의한 적은 없지만, 결혼 당시 자신을 극렬히 반대했던 장모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처세 역시 책에서 배웠음이 틀림없다. 결혼에 골인하기까지의 여러 관문 중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첫인사에서 그는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장모가 가진 편견이나 선입견이 한몫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싫은 표정을 애써 누르는 예비 장모를 찾아갈 때마다 한결같이 웃는 얼굴을 보였다. 훗날 그때의 굴욕감에 관해 물었을 때 그는 대답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등의 옛말과 여러 사례로 미루어 자신이 전투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음을 이미 알았다. 다만 싸움에서 패배할 장모가 매우 안쓰러워 실질적으로는 그녀가 승리한 것과 같은 마음이었으면 했다고. 그러므로 차가운 눈길을 받던 시절을 자신이 이전보다 성숙했음을 발견한 아름다운 시간으로 회상했다.
누군가는 묻는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편집된 기억이거나 일종의 정신 승리가 아닌가. 그러면 그는, “맞다, 그것은 뇌를 속이는 방식이다. 뇌과학에 관한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 한번 참고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조언까지 해 버린다.
그는 프러포즈 멘트마저도 문헌을 참고했다. 건강검진차 들른 병원에서 읽은 잡지의 내용을 그날 오후 아내가 될 여자에게 달려가 바로 읊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어쩐 일인지 감동적인 프러포즈를 받은 여자 대신 자신의 눈자위가 먼저 붉어졌다. 출처를 상세하게 밝혔음은 물론이다. 그는 감성이 풍부하지만, 문헌의 출처를 중시할 만큼 정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자와 출판 연도까지 알려주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며 만약 그것이 자기 생각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사고 과정까지도 설명한다.
그러므로 그가 좋아하거나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학구열이 충만한 사람들이다. 직업과 관련해서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학문에 몸담은 사람들이라기보다는 학습 자체를 즐기거나 신지식에 호기심이 반짝이는 사람이다. 그들 모임의 화제는 단연 요즘 관심이 가는 분야이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알고 싶은 것들과 그것에 닿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 내게는 즐거움이다.
수신에게 제를 올리는 수달처럼 날마다 ‘문신文神 의례’를 행하는 그에게 제물이 집에 당도한다. 세상에서 가장 싼 가격의 제물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독자가 책값으로 부담하는 것은 광고비나 출판비 일부일 뿐, 책 속에 담긴 무궁한 지식과 지혜와 저자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책값에 관한 불평은 불경스럽기 짝이 없다.
그러니 자녀 교육에 관해서도 달인이 되었겠다며 부러워한 혹자도 있었다. 달제어의 사생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그는 교육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비법을 물어 왔다. 그 질문에 관해서는 달제어도 나도 명쾌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에게는 자식이 없다.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는 그것이 퍽이나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갖고 양육하는 일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대신, 자녀를 가져야 여느 가정과 같이 완전한 가족의 형태를 이루는 것으로 생각했다. 주위 시선도 다르지 않았다. 좋은 일 없느냐고 시작한 질문과 결혼을 했으면 응당 자식을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꾸짖음, 임신에 좋은 먹을거리와 용한 한의원을 소개해 주겠다는 호의들은 아프지만 견딜 만했다. 여러 경로를 통해 듣게 되는 무성한 뒷말들과 나를 작은며느리로 착각하여 아이를 낳은 착한 며느리라 치켜세운 뒤 큰며느리는 애가 없어 자식 노릇이나 할까 싶다며 걱정해 주는 이웃들의 ‘뒷담화’ 아닌 ‘앞담화’ 때문에 어느 날은 한참이나 시어머니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였다.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느라 몹시 지친 어느 날도 달제어는 태연자약한 낯빛으로 일체유심조를 입에 올렸다. 내 아픔과는 먼 세계에 사는 그의 모습에 참고 있던 서러움이 봇물 터지듯 했다. 울부짖는 여자는 달제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부터 무자식이 상팔자 등 전통적인 ‘자식 무용론無用論’에 관한 관용어를 읊은 후 그는 말했다. 다정한 친구가 돼 주겠다. 지금도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이지만 더 세심하게 마음을 살피겠다. 그리고 이토록 패악을 부려도 너그러이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딸처럼 고이 여기는 마음이 아니라면 안 될 일이니 당신을 딸같이 생각하겠다. 당신은 나를 아들로 생각해 달라.
레퍼런스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으므로 발언의 출처를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달제어의 그 말은 당시 피폐하리만치 날이 서 있던 나를 무장 해제시켰으며 이후 작정한 듯 찌르는 타인의 가시에도 무덤덤해졌다. 나는 그의 딸 같은 아내가 되었으며 그가 장담한, 돈 벌어오는 착한 아들 같은 남편이 되겠다는 말 또한 지켜졌다.
사람들은 말한다. 잡은 물고기에 미끼를 던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당장의 허기를 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잡은 물고기에게도 미끼를 꾸준히 공양해야 옳다. 그것이 남들에게 불완전하게 보일지도 모를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기본자세인 듯싶다. 그리고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둘만 생각한다면 나에게 가히 나쁘지 않다. 물론 초고령화와 초저출산 시대에 본의 아닌 부담감을 나라 공동체에 한몫 전가한 책임을 달제어와 내가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다른 일로는 폐를 끼치지 말자고 자주 다짐한다. 그가 외투 속에 품고 온 붕어빵처럼 어느 순간 한 틀에서 찍어낸 듯 우리는 닮아 버렸다.